오리무중한 이태리란 나라
2007년 10월초 나와 아내는 둘째 딸을 영국에 석사 공부하러 데려다 주면서 평소 꿈꾸던 이태리 여행을 아내와 같이 회사휴가를 내고 배낭여행을 하게 되었다. 배낭여행이라함은 바쁘게 짜여진 단체여행이 아니라 등뒤에 간단히 가방만 매고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이태리 주요도시인 로마, 나폴리, 피렌체, 베니스, 밀라노를 목표로 호텔은 괁광지외곽지역에 위치하고 인터넷 세일을 하는 4스타 호텔을 미리 예약해 머물고, 딸이 있는 영국에서 로마까지는 Aitalia 이태리 여행사의 비행기를 이용하고 각 도시로의 이동은 기차 1등석으로 이동함으로서 10여년전 당했던 노상에서의 집시등의 소매치기, 지난해 프랑스에서 겪었던 등뒤 소매치기를 근본적으로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날 로마로가는 비행기에서 만난 한국에서 온 노처녀는 로마 시내 테르미역으로가는 기차까지 같이 타고가면서, 우리보다 젊은세대들이 어떻게 삶을 즐기는 지를 약간이나마 알 수있었다. 우리와 일정이 비슷해 나머지도 같이 돌아다니자는 아내의 생각은 길에서 우연히 만난 노처녀를 단지 한국인이라는 것때문에 금시 가까와진것인지, 숙박장소도 다르고, 나도 아내와 둘의 부담없는 배낭여행에 제3자가 끼어 부담이 갈 것같아 조용히 만류하였다. 호텔을 찾아가는 동안 지하철에서 만난 한국인 신혼부부는 신혼 여행중이고, "자전거 나라"라는 단체여행을 하고 있었고 선듯 소개자료를 다 주었다.
느낀 점 하나: 아, 참 이 먼곳에도 여행하는 젊은 한국인들은 참 많구나. 우린 그동안 카나다 촌구석에서 먹고 자식키우기만 하고 살았나..
택시운전사의 부당 바가지 요금을 10여년전 당한 적이 있어 기차로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갈려고 기차표를 사려니 밤 9시반경인데, 철도청 표 파는 창구는 이미 닫혀있고 사람들이 무인 승차권 티켓을 사느라 줄을 서 있었다. 영어로 읽을 수 있으나, 사고방식이 달라 소프트웨어 안내판도 쉽지가않아 실수를 계속하고 표는 나오지 않아 뒤에 선 양복입은 남자에게 물어 간단히 표를 살 수 있었다. 다행히 뒤에 줄선 이태리 사람들이 나가라고 소리치는 일은 없었다. 아마 관광객 우대 사고 방식에 젖어 살아서 일까?
느낀 점 둘: 영어가 안 통하니, 답답하다. 한국처럼 젊은 아이들만 간단히 의사소통 할 정도일 뿐이다.
미리 tripadvisor 인터넷 여행가이드에서 이미 갔다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부한 후 찾아가는 4스타 호텔을 쉽지가 않았고, 밤 10시반이 되니 지하철과 연결되는 버스 터미날 건물은 번듯한 데, 안내 창구는 이미 닫혔고, 버스들도 뜨엄뜨엄 왔다. 한참후 11시가 되어 원하는 버스가 와서 운전사에게 돈을 내려니 다시 내려서 터미날 건물안에 들어가 버스표를 사오라고 했다. 우리 부부는 버스가 출발하면 어쩌나 하고 뛰어가보니 찬구는 이미 닫혔고 무인 승차권 기계를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서로 헤매다 아내가 동전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버스표 기계를 찾을 수있었다. 그러나 우린 이미 관광 지역을 벗어나 버스표 기계의 모든 용어가 이태리어라 살 수가 없어 젊은 이에게 부탁하니 누추하게 보이는 젊은이는 거스름돈이 없는지 동전이 모자라는지 표를 못사더니만 우린 도와주고는 우리가 1유로를 주니 자기 표를 사고 자기돈 70센트를 미안하다고 하면서 주었다.
허겁지겁 버스로 뛰어와 운전사에게 주니, 어디서 내리는 지를 알수없었다, 그래서 무뚝뚝한 운전사 할아버지를 잡고 내 호텔이름을 보여주었더니 잘 모른다고 중얼거리더니, 한참만에 이태리식 발음으로 우리 호텔이름을 말했다. 올커니 됐구나 하고, 우릴 거기서 내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한참을 가는 데도 아무 소리가 없어 우리 불안해지기 시작하고, 나와서 문옆에 서있으니, 다음에 내리리고 했다. 버스가 선후 내려 어느방향으로 갈까하고 생각한후 조금 걸으니, 버스운전사는 떠나지않고 우릴 지켜보더니, 방향이 틀리다고, 크략션을 크게 눌렀다. 무뚝뚝한 이태리 노인이 참 인정이 있음을 알수 있었다. 시골 읍을 걷는 것처럼 차가 내몸을 스치며 10cm거리를 두고 달리는 인도가 없는 길을 위험을 느끼며 1-2분 걸으니 왠걸 이런곳에 으리한 호텔이 있었나 할 정도로 입구부터 야자수가 늘어선 4스타 호텔이 나오고 우린 이미 예약된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카운터의 정장을 한 이태리 소년은 친절하게 우리가 궁금한 것을 알려주었고 우린 다음날 시내 관광지로 나갈 호텔 버스를 예약하였다. 룸도 1단계 업그레이드시켜주었다고 강조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화장실에 대리석이 깔려있고 비데가 있고 월풀 사우나시설에 응접실이 따로있는 훌륭한 룸이었다. 1층 바에서는 피아노 생음악이 연주되고 있었다. 이 호텔 때문에 나는 아내로부터 상당한 점수를 딸 수 있었다.
느낀 점 셋: 이태리 사람들은 한국사람처럼 인정이 있다. 그래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있어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 사실 나는 그 이태리 노인 운전사가 크게 자기나라 말로 떠드는 것을 어렴풋히 알아채고 버스표를 터미날 안으로 사러갈 수 있었다. 그러나 공공시설은 한국처럼 미비하다. 관광지역을 떠나면 이태리어로 쓰여있다. 비싼 호텔은 한국처럼 부르조아들만 위해 화려하게 되어있다.
아침 8시에 예약된 관광 버스를 타고 시내를 나가는 데 왠걸...
창밖에는 그야말로 교통 지옥이었다. 왜이리 모페드(작은 오토바이)가 많은지, 남여 할 것없이 정체된 차사이를 모페드가 빠져나가고 있었고, 서로 부딪히지 않으면서 갈길을 마치 파리 목숨같이 있었다. 그런데 더 놀랄일은 지나가는 차와 10센티미만의 거리를 두고 달리고있어, 바라보는 나와 내 아내는 부딪힐까바, 소리를 지를 정도로 그들은 곡예를 부리고 차사이를 빠져나갔다.
아, 어느 새 이곳은 언제부터 모페드가 폭발적인지, 가만히 보니, 로마의 교통지옥에서 출퇴근을 하려면 모페드가 해결책임을 금시알 수있었다. 그러나, 교통담당 정부기관은 모페드에 대한 안전 사항을 강화하지 않은 둣했다. 파리목숨처럼 길거리에서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게시판 사진 참조).
로마 한복판 관광장소에서 아리따운 젊은 여자가 헬맷을 쓰고 달리는 모습은 참 젊음이 넘치고 아릿답고 신기한 장면이었다.
우리는 Hop and off 버스를 타고 하루를 지나니, 콜롯세움등 거의 다 볼수 있었다. 단지, 기대처럼 그렇게 인상이 강하지는 않은 것이 아마 영국 옥스포드 거리, 프랑스 베르사이유궁을 봐서인지, 이태리의 건물은 그들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더우기, 태양이 뜨거워서 우린 하루만에 로마 일정을 마칠수 있었다. 콜로세움에서 사진 촬영용으로 그예날 무사ㅣ복장에 마차가있어 아내가 무사 들러리뒤에서 사진을 짝으려고 하니, 그 이태리 무사가 한국말로 "도둑" "도둑"을 계속 반복하였다. 아내는 그말을 이해못했으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더운 날 로마 무사 목장에 모자까지쓴 그들은 5 유로(약 9불) 돈을 받고 사진 들러리를 서는 것이었다. 공짜로 사진을 찍으려하니 우리보고 도둑이라 한것이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와서 그짓을 했길래 이 이태리 사진 들러리가 한국말을 알아 놓고 말하는 것이었다.
호텔버스는 밤 8시경 떠나니, 테르미역 근처에서 이리저리 다니다보니 배가 고파오니 이태리에서는 피자가 좋다해서, 각종 피자( 해물 피자등)를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피자집에 들어가 서서 먹었는 데, 그 근처에서는 제일 싸고 맛있는 듯했다. 이 파자는 미국, 캐나다에서 먹는 피자와는 달리 빵을 굽는 기술이 놀라와 바삭바삭하고, 위에 얹는 topping도 아슬아슬하게 놓는 데도 맛이 있었다. 불편한 점은 팀호튼 커피가 없고 진한 커피만있어 맥도널드 햄버거가게에 들어가니 아메리칸 커피가 있어 그중 제일 비슷했다. 하나, 유럽 전역으로 가는 기차가 있는 이태리 로마 테르미역 앞에 있기에 화장실은 남녀 각 1개 좌변기만 있어 뒤가 급하더라도 문앞에서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세계적인 관광지에 화장실을 줄을 서고 들어가거나, 청소하고 지키는 사람이 있어 1 유로를 내고 들어가야 했다. 체르미역앞 노점상에서 산 사과는 한개 2 유로 (약5불)을 주고 사야했다. 관광지에서 과일은 금값이다. 그이후부터는 주민들이사는 주거지역 대형 슈퍼 마켓에서 사과,복숭아, 토마토를 사서 가방에 넣고 다니기로 했다. 덕부에 가방이 무거워지지만 기차, 버스, 호텔등 등 아무곳에서 항시 꺼내 먹을 수 있어 안심할 수가 있었다.
호텔로 와보니 데스크에서 어제 약속했던 대로 더 업그레이드된 방으로 옯겨주고 있고 같은 방에 다시 예약되어 있었다. 약속한 담당 젊은이는 없어 더이상 요구를 안했으나, 한국 사람처럼 입이 앞서고 실천을 안하는 것과 비슷했다.
느낀 점 넷: 로마는 더이상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않았다. 아마 영국과 프랑스가 이미 우리에게 큰 감종을 주어서일까. 길가의 모패드에 자기 복숨을 맡긴 이태리인들이 가여웠다. 안전 불감증이었기 때문이다. 입이만저 앞서는 서비스업종 직원들이 한국 고급호텔 직원처럼 데스크앞에서 정중하고 유니폼 벗으면 딴사람처럼 행동하는 것 같았다.
다음날 우린 남쪽 해안인 나폴리와 폼페이, 쏘렌토를 다녀오기로 하였다.
아침에 테르미 역으로 다시 나와 말로만 듯던 옛날 교과서에 나오는 '나폴리', '폼페이','쏘렌토' 지역을 기차로 가기로 했다. 나는 어떻게 가애 하는 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기차나 버스를 타야하기에 우선 나폴리까지는 기차로 가야하고 거기서 버스를 타고 간다는 정보를 수집했다. 약 1시간 반 유로스타 1등석을 타니, 평일인지 1등석에는 양복을 빼입은 멋진 이태리 신사와 정장여성들이 품위있게 앉아있었고 랩탑을 보고 있었다. 한국의 시골같은 풍경을 보여주며 조용히 달리더니 목적인인 나폴리는 도착했는 데 바다가 아직보이지않고, 보수가 안된 아파트들이 보이고 빨래를 차파트 난간에 어지럽게 널로잇는 것이 꼭 빈민촌을 연상했다. 게다가 철도역관장에서 화장실을 가니 입구에 청소겸 관리를 하는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이 앉아있었고, 시설이 한국의 시, 읍 철도역 화장실같이 미비했다. 다름 편으로는 한국같아서 푸근한 느낌을 받았다.
로마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여행안내소 직원이라도 영어레벨이 떨어지는 지, 아슬아슬하게 대충짐작해 알아낸 것이 소렌토나 롬페이는 전철을 타고 간다는 것을 알아내었고, 요금도 전철값 말 그대로 저렴하였다. 이것을 관광 대절버스로 간다면 한인 여행사의 경우 1인 약 미화 300 불을 요구하는 걸로 알고있다. 그런데 왠걸,
전철이 들어우는 걸 기다리고 전철을 타러 안으로 들어가는 데 갑자기 우리앞에서 싸움이 벌어져 건장한 두 남자가 서로 치고 박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전철안 사람들이 영문을 모르고 지켜 보았다. 그러더니 바닥에 지갑이 떨어져 있고 우린 그때서야 소매치기가 출현한 것을 알았다. 소매치기는 전철이 오기전 한 남자의 지갑을 노리고 있다가 그 남자가 전철에 오르자 같이 오르고 전철이 떠나려 할 때 마지막 작업인 지갑을 주머니에서 꺼내 절철에서 내리는 것이 시나리오였으나 불행히도 눈치챈 주인이 잡을랴고 서로 주먹다툼을 하다가 나이가 든 멀쩡한 이태리인 소매치기는 싸움에 빌려 터지기만 하고는 전철에서 내려 달아난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그 지갑 주인을 보고 "브라보!" 브라보!" 하고 외쳤다. 내아내는 그제서야 이태리 길거리의 분위기을 인식하고는 ㅇ로마에 도착하자마자 가슴에 돈과 여권을 보관한 화대를 두룬 남편의 군사 작전을 비웃기만 하다가 이제야 그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일 때문에 전철안은 한 집안에 들어온 도둑을 쫒은 한 가족같은 분위기가 되어 화기애애했다. 우린 쏘렌토를 가려면 어떻게 하는 지 영어로 불으니, 다행이 의사소통이 되는 젊은 여자가 있어 한번 갈아타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폴리는 낭만적인 도시가 아니라 평민에게는 소매치기가 있는 가난한 도시임을 알수있었다. 돌아오는 전철에서는 아빠가 아코디언 악기를 연주하고 어린 자식들이 돈그릇을 들고 동냥하는 것도 보았기 때문이며 전철안에 동냥가족이 있으니까 다른 동냥가족이 타지않는 것을 보았다. 한국 지하철에서 볼수있는 유사한 장면이었다, 아내는 2 유로 동전을 넣어주었다.
옆에 앉은 젊은 남자가 영어가 안될것같아, 몇일전 전철에서 만난 한인신혼부부가 준 이테리 남부 안내장에 폼페이 산 그림이 있어 보여주었더니, 금새 알고 전철이 지나갈때 가르쳐 주었다.
얼마후 학교가 끝나 전철에 올라온 순진한 중고교 학생들을 보니, 이태리 나름대로 시골 구석에는 순진한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부부를 신기한듯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2시간을 전철을 가니 쏘렌토는 전철 종착역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산등성에 아름다운 집들이 있는 그런 관광지였다.
우린 여기서 5 유로 짜리 시내 버스를 타고 약 2시간의 한계령이 비교가 안될만큼 낭떠러지 계곡을 아슬아슬하게 운전해 세계 7대 관광지의 하나인 격조높은 휴양지,amalfi, positano 를 갈수있게 되었다.
이태리인들은 한국사람처럼 안전 불감증이 있다. 북미인들처럼 산악 도로에 콘크리트 난간을 만들어 놓지않는다. 하이웨이법에 산간 길은 90도이내로 꺾어야 한다라는 조항이 없는 지 U자로 꺾던 180도로 꺾던 비탈진 산길을 버스가 다니게 해 놓았다. 아니, 버스가 나오리라고는 생각못하고 길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거기를 젋은 운전사가 햔들을 돌리며 달리는 데 겁많은 집사람의 입에서는 "Oh My God!" 가 연달아 나왔다.2시간을 이렇게 달리니 입에서는 침이 마르고 있었다. 마치 한국의 읍에 버스가 양쪽 집사이를 10cm 두고 지나듯 여기도 그랬다. 낭떠러지에 그옛날 어떻게 집질 재룔르 운반해 지었는 지, 각 집으로 가는 샛길이 있는 지 내려다보니 버스가 곧 곤두박질 칠것같아 속으로 아멘하였다.
차안에서는 미국 노 부부 관광객과 이태리 운전사사이에 싱갱이가 벌어지고 영어를 하는 승객들이 노부부편이 되어 운전사에게 불평했으나, 운전사는 시종일관 운전에 집중하며, "I don't speak English!"만 부르 짓었다. 이유인즉, 미국 노부부는 이미 호텔에 예약해 그곳에 내려 달라고 운전사에 요청해 놓았는 데 운전사는 깜박하게 거길 지나쳐 이 노부부는 이 산골길에 호텔을 찾아가기가 막막한 것이었다. 나중에는 종착지에 가서 다시 나오는 것으로 승객들도 합심해서 결정지었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그 곳은 산과 바다을 끼고 형성된 마을로 성당이 있고 세계 갑부들이 자기호화요트를 타고 다니는 휴양지였다. 나는 폼페이 마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 지 이마을에서 알 수있었다. 산등성이에 좋은 집들이 숨어있었고 돈많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예쁘고 아름다운 작은가게들이 흡사 한국의 달동네처럼 형성되어있었다. 그러나 도로는 모두 돌로 깔려있고 가게들은 고급 수공품이 많았고, 저녁이 깔리면 너무도 조용했다. 외부로 나가는 버스는 8시경 끊기게 된다.
우린 다시 2시간 버스를 다고 쏘렌토로 나왔다. 관광안내원에 물으니 이동네 모텔이 최저 120유로 이란다. 선택의 요지가 없으면 부르는 게 값일것같아 불안해서였다.
계속 쏘렌토의 1박: 호텔내에서 골프 파워 카트로 손님운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