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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분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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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philboon
이필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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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9
가을이 날아 간다

 
 
시대가 빨라서 계절도 따라 가는지 바쁘게 살아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 해가 갈수록 아리송하다. 자연의 모습을 보지 못하면, 나 같은 사람은 계절의 경계를 도무지 느끼지 못할 거 같다. 눈 속에서 봄이 오고, 긴 여름날이라 해도 스산한 바람 몇 번 불면, 나뭇잎들 당황하며 얼굴 붉힌다.


‘아 벌써 단풍 물드네!’ 어쩌지 하다, 한 번 느긋하게 쳐다볼 겨를 없이 곱던 나뭇잎들은 낙엽 되어 날아다닌다. 캐나다의 올 겨울은 얼마나 추우려나. 10월인데도 눈이 내리고 앞으로 재현될 날들을 생각하면 두렵다. 그래도 아직은 귀퉁이에 남아 있는 가을이 있어,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어설픈 시인이 된다.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많다지만, 산다는 것, 함께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감사하고 고귀한지. 생각나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게 겨울나기를 마음 속으로 바래 본다.


단풍 따라 어디 가고 싶은 10월 마지막 주에 죠이풀합창단은 써니브룩 참전용사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가졌다. 어쩌면 인생의 계절인 가을을 보내고, 외롭고 쓸쓸한 겨울을 맞고 있는 분 들일지도 모른다. 그 분들을 앞에 모시고 합창과 중창, 고전무용,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를 했다. 


‘로렐라이 언덕을’ 첫 곡으로 시작해서 ‘가을이 오는 소리’ 등 한국 가곡과 또 그 분들이 젊은 날에 불렀을 법한 곡들을 함께 부르니 단원들이 입은 한복처럼 아름답고 고상했다. 항상 느끼지만 노래도 조금은 친숙한 곡이 듣기도 좋고 부르기도 쉽지 않나 싶다. 사람도 자주 만나는 사람이 편안하고 더 정답듯이.


병동에 있는 그들의 모습에 “수고하셨습니다. 존경합니다”라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있다면 해드리고 싶었다. 너무도 힘이 없고 연로하신 모습들을 보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도 이루지 못한 소망이 있다면 하나님이 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랬다. 


자신의 생명과 생각보다 나라와 공동체에 더 순종하며 살았을 세대들이 바로 우리 어른들의 세대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비록 휠체어를 의지하고 생각조차도 힘든 분들이지만, 그 수고와 희생이 땅에 사는 모든 후손들에게 평화를 누리게 한 분들이라 생각하니 고개가 숙여졌다. 


행사가 끝나고 우리가 입은 한복과 노래가 아름답고 예쁘다며 큰 소리로 화답해 주었다. 그렇다.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세상, 노래 가사처럼 서로 보듬어 주고 일으켜 세워주며 함께 가는 인생길. 그럼에도 우리는 언젠가 다 헤어진다. 떨어지는 낙엽처럼. 


내가 귀염 받던 손녀시절 “치이 그래도 할아버지가 살아 있으니 내 예쁜 얼굴 보고 내 말도 듣지. 애교 부리며 했던 말을 그 분들에게도 마음속으로 전하며 이제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 되었다. 소중한 분들. See you again next fall.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philboon
이필분
65654
14207
2018-04-22
푸른 봄에 만나자

 
 
겨울은 지나고 비바람과 눈보라도 그쳤다. “넓은 들에는 꽃이 피고 새들도 노래 하는 푸른 봄에 내게로 오라. 일어나 어서 내게로 오라” 설명이 필요 없는 아름다운 이 가사는 제목이 “나 비록 검으나”로 6월 초에 있을 예멜 합창 공연 곡이다.


 결혼 전 이런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분홍빛 꽃무늬 원피스를 구입해놓고, 진달래꽃 피기만을 기다리던 예쁘고 아기자기했던 시절. 바람 많은 바닷가의 날씨는 심술 궂었지만 오지 않는 봄은 없었다. 따뜻한 토요일 오후, 햇살에 기대어 입고 나갔던 옷과 화사했던 봄. 


 그때처럼 변덕스런 날씨는 오월을 바라보는 데도 눈치없이 눈까지 데리고 다닌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날씨를 불평하며 감기에 대해 말하지만, 새싹들은 보송한 맨얼굴로 아랑곳 없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해마다 교회를 찾아와 둥지를 트는 구스도 보이고, 새들 소리 명랑한 환상적인 봄, 그런 봄이 내게도 온다. 


 생애 첫 손녀가 태어나고, 보고싶은 친구를 만나게 된다. 서로에게 부담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고 편안하게 잠자며 지낼 수 있게 되는 길이 열렸다.


 매주 있는 공연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들뜬 마음으로 전화번호를 폈다. 이번에는 ‘갈 수 있어’ 연락처로 전화하니 전화가 되지 않는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확인 차 이메일로 몇 자 적어 보내니 반송이 된다. 평범한 날도 소식이 끊기니 평범하지가 않다. 


 그 시절 다니던 교회 인터넷에 들어갔다. 가끔씩 언제 한번 만날까 생각하면서, 커셔를 누른 채 한참을 보던 사진과 이름도 없다. 그렇게 오래 전에 본 것도 아닌데, 교회 연혁에만 흔적이 있었다. 새벽 1시가 넘어 교회사무실에 연락처를 남기고 잠을 자려 해도 눈이 어둠을 누른다.


 소식이 없어 몇날을 기다리다 연결이 되었지만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주일이 두 번 지나가도 연락이 없었다. 교회를 떠났는가? 미국으로 갔나? 포기하며 다른 방법으로 찾을 구상을 했다. 그러던 차 늦은 밤 전화가 왔다. 저어 혹시 눈썹 새까맣고 눈 까만 사람이냐며, 홍콩에서 온 반가운 전화였다.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가 보다. 


 그이는 내가 찾던 그리운 친구의 지인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그리운 친구는 홍콩에 살고 있다. 홍콩은 남편의 직장 관계로 삼 년 간 살았던 곳이다. 삼 년 동안 같은 동네에 살면서 언제나 유쾌했던 한 사람과, 당신 때문에 시계를 십 오분 빠르게 맞추고 산다던 또 한 사람. 둘 다 신앙생활로 친해진 사이이다.


 서로가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택하니 내게는 새벽이었다. 전화기 배터리를 확인하고, “여보세요. 어머머 세상에” 우리는 이 한마디로 25년 전의 세월을 끌고왔다. 요즈음 세상에 그 흔한 카톡도 안하고 살았음에도 잊은 적 없다고 말 할 수 있나 하겠지만, 우리는 그랬다. 


 삶이 때로는 그날이 그날 같아도 그 경계를 벗어나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몇 번 오라 해도 가지 못하고, 나는 캐나다로 이주하고, 그녀도 아이들 때문에 미국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연락을 놓쳤다. 


 보고 싶다고 다 만나고, 갖고 싶다고 다 가지고, 가고 싶다고 다 가고,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사나? 그렇게 사는 사람 있을까? 없을 거야. 속으로 되뇌며 카톡에 친구로 등록하니 가족 사진이 떴다. 손주까지 본 그녀의 사진을 보며 세월이 빠르게 지나간 것만 아니구나. 


 세월 속에 수고의 열매가 아이들에게 보였다. 바르게 키웠구나. 운동도 가지 않고 생각에 잠기는데 TV에 ‘보약같은 내 친구’ 라는 노래가 들려온다. 


 보약 같은 내 친구. 그렇지 허약한 내 마음에도 푸른 봄이 오고 그 때 그 마음으로 기다리는 내 친구 보약 먹으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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