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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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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두 빚진 사람 비유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음으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 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 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눅 7:36-50)

 

 

“두 빚진 사람 비유”는 상당히 긴 것 같지만 사실은 3절 밖에 안 된다. 이 짧은 비유가 긴 것처럼 기록된 것은 예수님이 이것을 말씀하신 상황과 배경 그리고 이 비유를 끝내신 후 하신 말씀과 거기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들려주신 장소는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이다. 기록되어 있지는 앉지만 안식일인 그 날 회당에서 가르치신 예수님을 바리새인 시몬이 그의 집으로 초대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가 예수님을 초청한 까닭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을 존경하거나 사랑해서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예수께서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주인이 손님에게 해야 할 예우를 하나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서 당시 유대사회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에 과감하게 도전함으로 화제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예수라는 청년을 만나고도 싶은 호기심에서 함께 식사할 자리를 마련했다고 여겨진다. 


시몬의 집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마련된 식탁의 침상에 왼쪽 팔꿈치로 몸을 바치고 비스듬히 누우셨다. 그런 자세로 자유로운 오른손으로 음식을 골라 먹은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예수님 뒷발치에 그 동네에서 품행이 좋지 않기로 소문난 여인이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입 맞추며 향유를 부었다. 


거리의 여인으로 알려진 그녀가 그 자리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유명인사들이 함께하는 식사 자리엔 누구나 와서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고, 남은 음식을 나누어 갈 수 있도록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시몬의 집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당시의 풍습을 이용하여 상류사회의 식사 분위기를 체험하고, 남은 음식을 챙겨가겠다는 의도 아닌 예수님을 만나 뵙고 (어쩌면 그녀는 이미 회당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죄로 얼룩진 그녀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예수님을 뵙는 순간 그녀는 눈물부터 흘렸고, 눈물방울이 예수님의 발에 떨어지자 여자들이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고, 비싼 옥합까지 붓는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특히 예수님을 초청한 시몬은 크게 실망한다.


만일 예수님이 그가 생각했던 대로 선지자라면 그 여자의 정체를 파악했을 것이며, 그런 여자가 그의 몸에 손을 대고, 부정하게 번 돈으로 산 옥합을 그에게 붓는 행위를 허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신 예수께서는 “시몬아, 내가 네게 할 말이 있다.” 말씀하신다. 


순간 시몬은 예수님이 그 여인의 부적절한 행위와 그것을 저지하지 않으신 것에 대한 설명을 기대하며 “선생님, 말씀하십시오.”라 공손하게 대답한다.


이때 예수께서 하신 비유가 “두 빚진 사람 비유”다. 두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각기 오백 데나리온과 오십 데나리온의 돈을 빌린다. 그런데 둘 다 형편이 되지 못해 제때 돈을 갚지 못하게 되자 빌려준 사람이 빚 독촉을 하기는커녕 두 사람이 진 빚을 모두 면제해 주었다. 동서고금을 통해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짧은 비유를 들려주신 후 예수님은 시몬에게 둘 중 누가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겠느냐고 물으신다. 시몬은 “제 생각에는 더 많은 액수를 면제받은 사람입니다.”라 답한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께서 이 비유를 들려주신 까닭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다.


예수님은 그 여인이 죄인임을 알고 계셨다. 그녀가 그의 발아래 엎드려 눈물 흘리며 머리카락으로 그의 발에 떨어진 눈물을 닦고, 입 맞추며, 옥합을 붓는 까닭도 알고 계셨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그의 발아래 엎드려 눈물로 회개하는 가련한 여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나 시몬은 죄인인 그녀가 사람들 앞에서 부정한 여인의 티를 내며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을 보며 더욱 그녀를 괘씸하게 여겼으며, 그런 그녀를 그대로 내버려 두는 예수님을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평가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 같은 그의 마음을 읽으셨기에 “두 빚진 사람 비유‘를 들려주셨고, 빚을 면제 받은 두 사람 중 더 많은 돈을 면제받은 이가 더 감사할 것이란 시몬의 대답을 들으신 후 말씀하신다.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카락으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느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으니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예수님은 시몬이 그를 초청하고도 주인이 손님에게 갖추어야 할 예우를 하나도 행하지 않았음을 지적하셨다. 시몬이 그를 사랑하고 존경해서 그의 집으로 청한 것이 아님을 처음부터 알고 계셨음을 밝히신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의 비유를 시작하시면서 그녀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고 있었던 시몬에게 “네가 이 여자를 보느냐?”라고 물으신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예수께서 그렇게 물으신 것은 시몬이 그 여자를 영적인 면으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 시몬은 그녀를 부도덕한 여인으로만 보았지 지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용서함을 받은 거듭난 여인으로서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시몬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자부했지만 영적으로는 맹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녀의 죄만 보았지 그 죄를 사함 받은 그녀의 새로워진 모습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시몬은 그가 그녀를 죄인이라 부를 수 있는 자격조차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돌로 치겠다고 기세 등등하게 예수님에게 끌고 왔던 바리새인들처럼 말이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말이다. 그들은 간음한 여인은 돌에 맞아 죽는 것이 마땅하며, 그들은 그녀에게 돌을 던질 당당한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죄 없는 자부터 돌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들은 들고 있던 돌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영의 눈이 먼 사람들은 남의 적은 허물과 과실을 잘 보지만 자신의 무겁고 추악한 죄는 전혀 보지 못한다. 예수님은 이것을 비유를 통해 일깨워 주신 것이다. 그리고는 여자를 향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그녀를 억누르던 죄에서 해방되었음을 확인해 주신다. 


그러자 거기 있던 사람들이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군데 남의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라며 수군거린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신다. 이 장면을 통해서도 우리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만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임”(마 1:21)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온 죄 많은 여인은 그녀를 억누르던 무겁고 추한 죄 짐을 벗어버리고 소망 가운데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예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고,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로 값진 선물인 “구원”을 허락 받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평안히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새로워진 심령으로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그 여인의 예수님을 향한 참된 사랑과 믿음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렀음을 확인하고 예수님께 감사하며 구원받은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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