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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이유식의 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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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포브스지 400대 부호들의 성공 비결

 

 미국의 세계적인 파인낸셜지에 게재된 미국의 400대 부호들의 성공비결을 읽고 이들의 인생관과 기업관을 한번 생각해 보려 한다. 이들 미국의 400대 부호들의 주 의견은 큰 성공을 하려면 재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운도 따라야 함을 중요 포인트로 각인하고 있음에 나는 의아심도 느꼈다. 


 우리같이 호구지책에 연연한 자가 이들의 높은 경륜과 세계관과 삶에 대한 철학을 어떻게 가늠할 수가 있으랴만, 이분들의 대체적 의견은 지장(智將) 위에 덕장(德將)이 있고 그 위에는 운장(運將)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하나같이 피력하고 있음에 나대로의 놀라움이 있다.


 세계의 일등 부자인 MS 창업자 "빌 게이트"는 인생을 살아갈수록 신의 잣대가 공평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의 말은 운발이 존재하고 있슴을 토로한다. 다시 말해서 신은 운을 분배하지 않음을 실감한다는 견해이다. 때로는 자비가 넘쳐나게 한번에 재운을 몰아서 가져다 주기도 하고 때로는 매정하게 모든 기회를 앗아가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지장 위에 덕장, 덕장 위에 운장이 있다고 하는 것을 강력히 피력한 말임에 틀림이 없다. 혹자는 운칠기삼(運七技三) 즉, 운이 70% 재능이 30% 작용하는 것이라고도 말을 한다.


 이 말은 성공을 넘어 성숙한 리더들이 자신의 성공 비결로 소개한 것 역시 운이라고 역설을 한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게 그들의 솔직한 술회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성공의 3대 요소로 운(運)•둔(鈍)•근(根)을 꼽은 바 있다. 중세 이탈리아의 정치 사상가 마키아벨리 역시 ‘군주론’에서 리더의 조건으로 운•역량•시대정신을 꼽았음은 운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포브스지가 선정한 미국 내 400대 부호 역시 운이 중요하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고 이 보고서는 말하고 있다. 텍사스 석유 재벌인 레이헌트가 운에 대해 “만일 운과 지능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언제나 운을 택할 것이다”라고 주저없이 말할 정도다. 


 자수성가형 부호 로스 페로는 해군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IBM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대부분의 세상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다. 인생사는 불규칙한 거미줄과 더 닮았다”고 털어놓은 것을 보면 운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아마 그가 능력보다도 운이 없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고배를 마셨다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다시 말해서, 하면 된다가 만사에 통하는 것은 아니고 해도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더란 설명인 것 같다. 즉 본인의 노력 못지않게 운이 크게 작용하는 것을 절실히 느끼면서 부호의 반열에 오르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리라.


 세상에 "운 좋은 사람은 못 이긴다”는 것이 완전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님을 증명해주는 대목이라는 생각이다. 


 운의 중요성을 주먹구구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학자인 이니타 앨버스 하버드대 MBA 교수는 연예계의 스타가 되기 위한 3대 요소로 자질 성실성과 함께 운을 꼽았다. 


 또한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다니엘 카네만은 아예 성공 = 재능 +운이라 적시했으며, 약간의 성공 + 큰 행운이란 것으로 성공과 운의 상관성을 공식화한 바도 있다.


 즉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큰 성공이든 작은 성공이든 운에서 기인하며 특히나 큰 성공의 요인은 기술이나 재능만이 아니라 운이 상당부문 좌우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단 중요한 것은 운을 요행수가 아니라 감사와 책임의 자세로 수용해야함에 운의 참 뜻이 있고 성공의 길에 첩경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다니엘 카네만은 성공과 운의 상관성을 공식화한 바가 있는데, 즉 타인의 불운과 희생을 잊지 말고 감사할 줄 아는 선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밝은 사회를 만든다고 역설을 하고 있슴은 아주 흥미있는 지적이라고 본다.


 성공을 한 사람들은 현재의 위치를 자기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 운발을 만들기 위해 희생한 다른 사람들의 불이익에 대해 뒤돌아보고 음미하지 않음은 큰 잘못이라는 지적도 한다. 


 성찰과 감사가 없는 자는 운을 잠시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운이 오래 지속하기는 어려우니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한다.


 이 잡설산책 21도 신문에서 읽은 기사를 나 나름대로 각색을 한 것이지만 여기에 필자는 옛날 내가 읽은 홍콩의 세계적인 부호 이가성 회장의 기업가 정신과 생존의 철학을 음미코자 한다. 


 이가성 회장은 세계 10대 부자이면서 아시아에서는 최고의 부자라 한다. 즉 홍콩 사람들 1달러를 쓰면 이중 5센트는 이가성 회장의 돈이라는 말을 한다. 즉 30조 달러의 순수한 자기 자산의 소유자이니 그의 부를 측정할 만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는 세탁소 점원으로 시작한 기업인으로 젊었을 때의 고생을 글로 형언할 수 없었다 한다. 현재도 그는 오만원짜리 이하의 구두에 십만원 짜리 양복을 입지 않으며 비행기를 타도 꼭 일반석을 탄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아시아에서 제일 많은 돈을 기부하는 자로 매년 3천억원의 장학금을 후진을 위하여 기꺼이 희사하고 있기에 만인의 존경을 받으며 모범적인 기업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인생철학이라 할까 중요한 지론은 육불합(六不合)과 칠불교(七不交)를 삶의 좌우명이면서 기업경영의 표상으로 생각하며 오늘도 운장보다는 성실한 삶과 자기의 노력과 능력을 경주하며 기업경영에 임하고 있다 한다. 


 육불합이란 1)개인적 욕심이 강한 자와 동업을 하지 말라. 2)사명감이 없는 자와 동업을 하지 말라. 3)인간미가 없는 자와 동업을 하지 말라. 4)부정적인 사람과 동업을 하지 말라. 5)감사할 줄 모르는 자와 동업을 하지 말라. 6)원칙없는 자와 동업을 하지말라고 피력하고 있다.


 칠불교는 1)불효하는 자와 사귀지 말라. 2)사람에게 각박한 자와 사귀지 말라. 3)시시콜콜하게 따지는 자와 사귀지 말라. 4)받기만 하고 주지않는 자와는 사귀지 말라. 5)아부하는 자와 사귀지 말라. 6)권력자 앞에서 원칙이 없는 자와 사귀지 말라. 7)동정심 없는 자와 사귀지 말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기의 생활 철학을 안고 오늘도 성실한 생존을 영위하기에 이가성 회장의 기업은 대성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을 해본다.


 남의 성공비결을 논하면서 이 변방의 나그네 이방인에게는 과연 무엇이 있었고 무엇을 생각하면서 오늘까지 살아왔을까를 생각하니 그저 한심한 회한만 도사린다. 그저 나대로의 막연한 생각이 있다면 성실한 마음으로 주어진 현실에서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열심히 실아 왔다고나 할까?  


 한마디 첨언을 한다면 정도(正道), 정심(正心), 정각(正刻)의 생활철학을 간직한 채 나의 능력을 전력투구하며 끊임없는 노력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할까. 어쨌든 부끄럽지 않는 생존을 살아야 하는데 나보다 못한 자들을 위하여 좀더 베풀지 못하고 살아가는 나의 생존에 눈물을 흘림은 위선일까. 가끔 자리에 누우면 나도 모를 눈물을 흘리고 있음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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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0
러시아에서 만난 한글학교 교장 엄 넬리 박사

 

 세계 750만 동포 제위님들의 민족의 정체성 고양을 계승 발전코자 제정한 민초해외문학상 제7회 시상식을 위해 지난 2014년 9월 26일 러시아 방문길에 올랐습니다. 공산체제의 나라였던 러시아를 방문한다는 두려움과 호기심 속에서 암스테르담에서 네덜란드 비행기를 타고 세인트 피터스 공항에 내린 우리 부부는 14일간의 러시아 여행 행운을 가지게 됩니다. 7일간 볼가강에서 Viking River Cruise를 타고 모스코바에 도착, 러시아 한국학교 엄넬리 교장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먼저 7회 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던 엄넬리 박사를 간단히 소개하면 강원도 영월이 고향인 영월 엄씨의 후손으로 일제 강점기에 조국을 떠나 북간도로 이민길에 오릅니다. 그 후 구 소련에 정착을 시도했으나 그의 아버지가 모스코바의 경제대학교를 졸업하게 되어 한국인이라는 점을 이용 북한에서 공직생활을 하다가 스탈린이 사망함으로 북한에서도 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모스코바로 돌아가려 하나 구 소련정부는 한국 사람들을 까레스키 즉 고려인이라 부르며 혹독한 겨울 추위에도 불구하고 화물을 싣는 기차 칸에 태워서 우즈베기스탄으로 강제로 추방을 하게 됩니다. 이 때 화물차에서 수많은 우리 동포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죽어갔다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황량한 들녘에 그냥 버려졌습니다. 용케 우즈베기스탄에 도착한 엄 넬리 박사 가족들은 움막생활에 식량도 물도 전기불도 없는 곳에서 연명하게 됩니다.


 그 후 엄 박사는 1940년 움막에서 태어납니다. 그 피눈물 나는 고통 속에서 세계 정치사의 변화로 다시 모스코바로 이주한 엄 박사의 가족은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게 됩니다. 엄 박사의 천재적 두뇌와 학구열로 모스코바 사범대학에서 학위를 받게 됩니다. 


 이 후 모스코바 1086 한민족 학교를 설립해 교장으로 취임을 합니다. 1970년 교육학 박사 학위. 1998년 독트르 러시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교육자로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게 됩니다. 1992년 한러 수교 후 모스코바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통합된 11년 과정의 러시아 유일한 한민족 학교를 설립하고 이 학교를 한민족의 얼을 잇고 전파하는 모스코바 제일의 명문으로 키워오고 있습니다.


 18년간 70여 차례 조국을 방문 민간 외교사절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의 자서전에서 말했듯이 당시 문학상 시상식에서 엄 교장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수상 소감을 말했습니다.


 “52살에 처음 조국을 방문하고 우리말 우리 글을 읽고 쓸 줄을 몰라 얼마나 울었는지 말을 할 수 없었다. 오늘 제가 민초 문학상을 수상함은 저 자신이 어떤 상을 받으려고 학교를 설립하고 민족의 얼을 심으려 노력한 것은 아닌데 이런 상을 받게 됨에 감명을 받으며 문학상을 제정 세계의 우리 민족의 정체성 고양에 일조를 하려는 이유식 시인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는 인사말을 했습니다. 나로서는 그저 조국애와 민족애에 무엇인가 기여코자 하는 열과 성을 과찬해 주심에 감사한 마음 가득 했습니다.


 엄 교장 선생님의 학교는 현재 유치원으로부터 고등학교까지 총 700여명의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으며 해마다 명문인 모스코바 대학에 12명 이상이 합격을 하는 명문으로 우뚝 서있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이 학교에는 우리 민족뿐이 아닌 총 52개 민족이 교육을 받고 있으며 학생들의 교육열은 어느 학교보다 높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특히 저의 부부가 방문하는 날은 52개국의 음식을 준비하신 엄 교장 선생님의 배려에 감복을 받았으며, 이 52개국 음식 페스티발을 마친 후에는 각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하고 노래와 춤 등으로 우리 부부를 환영해 주어서 황감한 대접을 어떻게 소화해야할지 모르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당시 문학상 시상식은 고려인연합회 회관에서 하객 100여명이 참석, 엄 교장 선생님을 축하해 주었으며 특히 주러 한국대사관 위성락 대사님의 축사는 저에게 더 많은 것을 생각해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엄 교장 선생님의 약력을 보면 1940년생으로 엄 넬리 니콜라에브나오로 러시아에서 불리어지며 한국이름은 엄복순입니다. 현재 러시아 모스코바 1086 학교 교장이며 1970년 교육학 박사, 1989년 모스코바 교육문화자문위원장, 1998년 독트르 최고박사 학위취득. 1970년 레닌 훈장, 1992년 유네스코 최우수 민족학교선정 표창, 2003년 국민훈장 석류장(대한민국), 2006년 러시아 최고애국훈장 2등, 2008년 국민훈당 목련장(대한민국), 2008년 러시아 공훈훈장(러시아정부) 등이 있습니다.


 끝으로 이렇듯 훌륭한 분에게 제가 설립 운영하고 있는 문학상이 수상된다는 것에 저 자신 무척 흐뭇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문학상에 응모하신 작품 <러시아 심장부에 활짝 핀 무궁화 (수필)>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분은 우리 민족 중 한 분도 없으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엄 교장 선생님 부디 오래오래 건강한 삶을 영위하시고 민족의 앞날을 위하여 이 후학에게 많은 지도와 격려를 앙청 드리며 지면상 엄 박사님을 좀더 상세히 소개치 못함에 서운함고 안타까움을 느끼며 19번째의 저의 잡설산책을 마칠까 합니다. 이어 저의 시 <멀고 먼 당신>을 상재해 봅니다.

 

 

<멀고먼 당신> (이유식) 

 


인연의 향기 멀기만 하다. 나는 자리이타(自利利他) 라는 말의 뜻을 되새김해 본다.


나도 이롭고 당신도 이로운 사랑 그 사랑을 찾는 당신은 어디에 있을까. 멀고 먼 당신 그 당신을 안고 멀고 먼 당신을 본다.


하늘만큼 닿을 수 없는 생존의 빛 과연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멀리있는 당신은 그립기만 하다. 


나와 당신과의 이타의 변곡점에서 가변의 진리는 가슴을 저며 온다. 멀어졌다는 것은 가까워짐이라는 위안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세월을 주워 모았다.


사람들이 지나간다. 바람이 불어온다. 하늬바람이 북쪽으로 불어준다. 새들도 날아간다.


모든 것은 변화하는 자연의 이법인지 신의 이법인지 나는 모른다. 내 눈이 어정쩡하게 모든 사물을 볼 수도 없고 음미할 수 없는 착각의 망각 속에 점점 죽어가는 바람 소리는 멀기만 하다.


아마 당신의 목소리도 멀리서 나를 부른다. 생존의 빛이 까마득한 당신의 가슴에서 식어가는 것을 보면서 슬퍼하는 나는 갈 길을 잃었다.


멀리 있어도 나도 좋고 당신도 좋고 내가 당신을 사랑도 하고 그리워도 하고 당신도 나를 사랑도 하고 그리워하는 그 아득한 억겁의 세월 속에 나를 묻어 버리고 나면 나는 이렇게 나 자신을 자학하면서 허탈한 하루를 넘기며 울어 본다.


소리없이 내리는 눈보라는 어디로 갈까. 이제 봄이 오는 계절의 변화는 나에게 이로움을 주고 당신에게도 이로움과 사랑을 주는 길을 찾으려 하나 이는 이백과 두보가 만나 술타령을 하는 낭만의 노래다.


멀고 먼 당신 그립기만 한 당신 그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구는 돌아가는데

 

 

▲모스코바 1086 한민족학교 교장 선생님 엄 넬리 박사와 필자 부부 (학교 교장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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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겨울 공원의 벤치에서 잔인한 4월을 맞이하며

 

겨울 공원의 벤치(이유식)


하이얀 눈이 쌓였다고/어느 누구도 앉아주지 않는 벤치/언젠가 쨍하고 햇빛 들면/누군가 찾아와 나를 밟기도 하고 앉아/시시닥 비비닥 하기도 한다/의자야 겨울 속의 벤치야/어느 누구도 앉아 주지 않는다고 서러워 마라/봄 여름 가을이 오면/ 너는 언제나 수 많은 사람들을/내 살같이 포근히 감싸주지 않았더냐/너는 알고 있지 않느냐/많고 많은 사람들 중 몇 사람이/노약자 가난한자 권력 없는자 돈 없는 자를 위하여 자기의 등을 내어주고/자기의 심장에 앉아 편히 쉬어가라는 자 있더냐/이 겨울이 가면 갈곳없는 노숙자들/생존의 실의에 빠진 수 많은 사람들/청춘남녀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들/마음놓고 토해내도/영원한 비밀 지켜주고 그 고통 포용해 주었지 않았더냐/돈 많고 잘 났다는 사람들아/권력행사 하지 말고 돈 자랑 마라/겨울공원의 벤치 외로움과 고난 속에 살아가도/자기의 몸이 낡아빠질 때까지 남을 포용하며 사랑하며/꿈 속에서 남을 배려하며 살아가지 않느냐


 이 시는 수년 전에 썼던 나의 작품이다. 나의 집에서 6, 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피시 크릭(Fish creek park)이란 공원이 있다. 4계절 변치 않고 내가 즐겨 찾는 곳이다. 황량한 들녘 같지만 자작나무가 우거진 길 사이사이를 걸을 수 있는 트레일이 있어 산책하기에 최고다. 


 파릇파릇 새싹이 솟아나고 연초록 나뭇잎이 손짓하는 봄에서 부터 녹음이 우거진 길 사이 가을 단풍잎이 처량하게 손짓하고,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낙엽 되어 바람으로 휘날리고, 겨울 눈보라가 나의 볼을 때릴 때도 어김없이 내가 찾아가는 곳은 이 공원이다. 언제나 일요일 오전 홀로 찾아가는 곳 이 곳은 나의 생존을 음미하는 아름다움을 안겨준다.


 오늘 아침에는 맥다방에서 노인 우대 커피를 1.10달러에 한잔 사들고 눈보라에 내 얼굴을 내어놓고 그저 이 공원의 10여 킬로의 길을 걸었다. 문득 연전에 러시아 여행길에서 보았던 산야 그 곳에서도 자작나무가 길 양옆을 메우고 있었음이 기억난다. 


 그 아득한 옛날 러시아가 짜르시대로 통치될 때 훌륭한 통치자 케서린 2세 황제는 국민들의 궁핍한 삶을 돕고자 산야에 무진장 많은 자작나무를 심었다는 전설 이야기를 관광안내원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즉 자작나무는 밤에는 나무껍질이 하얗게 빛을 발휘함으로 길을 밝히는 가로등 역할을 해 도움이 되고, 또한 가구를 만듦에 최고로 좋은 나무로 러시아는 자작나무의 천국이라 했다.


 이 때문일까 북극 찬바람이 불어주는 곳 어디에서나 자작나무의 군락이 산야를 덮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공원도 자작나무 외에 다른 나무는 볼 수가 없다. 오래된 자작나무는 자연으로 썩어서 볼품없이 여기저기 나뒹굴어 있음이 공원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다. 공원벤치의 눈을 털고 앉아 먹구름으로 쌓인 하늘을 본다.


 문득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인생에게 물었던 세 가지의 질문이 떠오른다. 즉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톨스토이의 답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라는 말을 상기해보며 눈송이가 얼굴을 때리는 하늘을 쳐다본다.


 한 무리의 기러기떼들이 서쪽에서 날아와 동쪽으로 끼륵끼륵 울면서 날아간다. 공원 옆 보우강 강물도 이제는 얼음이 녹은 양 물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물물물 서로 당기며 밀며 정처 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한 발짝 한발짝 공원길을 걸어본다. 정답게 소근대며 걸어가는 젊은 연인들, 노쇠한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중년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 애완용 파피에 줄을 매고 걸어가는 멋진 노부부들, 이 아름다운 모든 풍경들이 나의 옆을 지나간다. 


 오늘은 어쩐지 쓸쓸하다. 걷다 보니 이곳의 유명한 카페식당 보오발리 랜치에서(Bow Valley Ranche) 몸을 쉬고 싶었다. 이 카페 식당은 이곳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카페이니 조용하다. 낮 시간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까지만 영업을 한다. 창가에 홀로 앉아 드라이멜로 적색 와인을 한잔 시켰다. 한잔으로 끝내려던 나는 분위기에 취한 탓일까 3잔을 마시고 있는데 중국에서 고등학교 선생을 하다 이민왔다는 데이비드라는 웨이터가 이상한 눈으로 보며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조용히 눈발이 휘날리는 공원 풍경을 보며 나혼자 즐기려는 와인맛을 이 친구가 싹 가시게 만들어서 불쾌감을 느끼며 카페를 나왔다. 하기는 대낮에 혼자 앉아 와인을 3잔이나 마시는 동양사람이 이상하게 보였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이 친구의 무례함도 이해를 했다. 어쨌든 왔던 길을 되돌아서 길을 걷다가 문뜩 T.S Elliot의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T.S Eliot은 1888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출생했고, 하버드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그 후 프랑스 소르본느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1922년 비낭만파적 시를 발표하다가 1922년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를 발표해 세계적 시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1927년 영국으로 귀화 했으며 1948년 노벨 문학상을 받고 1965년 생을 마쳤다. Eliot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 외쳤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쓴 시작의 산실은 무녀의 죽음을 그린 작품으로 읽혀지고 있다는데 황무지의 1부를 흥얼흥얼 읊어 본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마른 구근(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슈타른 버거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우리는 주랑(柱廊)에 머물렀다가/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출생은 리투아니아지만/진짜 독일인입니다./어려서 사톤 태공의 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줬는데 겁이 났어요./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이하 생략)


 
 나는 Eliot이 죽어가는 무녀에게 원하는 바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저  죽고 싶다는 대답을 상기해본다. 나의 시 ‘겨울 공원의 벤치’는 죽어가고 쓸모없는 겨울공원의 벤치라 해도 언젠가 쓸모가 있는 벤치가 됨으로 우리네 인생사도 쓸모없는 듯해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고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음을 각인하며 서로 도우며 사람냄새 나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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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2
바이런(Lord Byron) 시인을 흠모하며

 
 영국이 낳은 낭만파 시인 로오드 바이런(Lord Byron-1788-1824)은 귀족 으로 태어났으나 절름발이였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 시절 방탕한 생활을 했고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그의 방탕 생활로 어머니와 불화 중에 지중해로 여행길에 오른다. 세계적 명문 대학 케임브리지 대학을 중퇴한 그는 자기가 불구라는 육체적 비관 속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인이 된다는 것, 좋은 시를 남긴다는 것은 그 시인 자신이 이 세상 평범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뇌와 슬픔, 그 번뇌를 눈물로 승화시켜 생존의 현실을 달관하는 속에 응어리진 마음의 잉태가 좋은 시로 탄생되리라는 생각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는 낭만파 시인으로 불후의 명작을 남긴 세계적인 시인이 되었다. 그의 유명한 한마디는 어느날 하룻밤을 자고 나니 세계적인 유명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나는 이 한마디를 음미하며 나 자신 시를 좋아해서 몇 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지금도 울적할 때는 시라는 것을 쓴다고 원고지와 씨름하는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원고지를 찢고 구겨서 휴지통에 넣으면 원고지가 나를 원망한다.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멋대로 끌적끌적 하다가는 갈기갈기 찢어서 휴지통에 처넣느냐고, 내 몸이 아프다고 항의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때마다 바이런을 생각한다. 내 육신도 바이런 같이 정상이 아니었다면 몸의 열등의식에서 오는 비애가 세계적인 명작 시 한편쯤 건졌을까 하는 막연한 상념을 씹으며 다시 원고지를 잡곤 한다. 나는 요즘 시라는 것을 쓰며 생각한다.


 릴케도 읽어 보고 괴테도 읽어 보고 그 속마음을, 소월의 나보기가 역겨워 할 것 같아 그의 시를 나의 마음에 접목시켰다가 나의 시가 불쌍해져 있음을 알고 나는 몇 번인가 울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감동도 주지 못했고, 북쪽 동포들이 못먹고 죽어가고 남쪽 동포들이 빈부격차와 부조리가 만연해도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했고, 더구나 요사이 조국의 현실을 보며 안타까움을 넘어 개탄을 한다. 


 도대체 사상이란 것이 무엇이며 이념이란 것이 무엇이며 나아가 권력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음미하며 때로는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짓는다. 나아가 IS라는 테러집단은 무고한 사람들을 무작정 살상을 하는가 하면 인류문명의 발상지를 모조리 망가트리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텅 빈 방, 언제나 홀로 앉아 원고지를 주무르며 웃다가 울고, 허탈에 쌓인 가여운 나의 시, 내 시가 가여우니 나의 시는 죽은 시임에 틀림없다. 누군가 말했던가 시인은 그 사회가 좋든 싫든 사회를 위한 반항에서 시를 쓴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여 년간 나는 나름대로 나에게 주어진 사회현실이 못마땅한 자괴감 속에서 시라는 것을 쓰지만 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이고 바다에 돌 하나 던져 넣는 형상임을 알면서도 나는 못마땅한 사회 현실에 대한 반항적인 칼럼도 쓰고 시도 발표하곤 했었다.


 생각해보니 조국은 무법천지가 되어 날이 새면 태극기 집회다 촛불집회다 하면서 사람들은 구름처럼 도심을 누비고 있다. 사회적 공기 역할을 해야 할 신문과 방송은 편파 기사로 선량한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 


 오늘 아침 한 50대의 어떤 여인이 전화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왔다. 우리의 조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안타까움 속에 생업을 중단을 하고 있다 했다.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이 분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오는 사람들이 힘없는 순수한 여자분들이 대종을 이루기에 여기에 엄마부대가 탄생했고 MFM이란 엄마방송도 열심히 탄핵기각을 외치고 있다 한다. 그러나 이 엄마부대의 남편들은 생업도 중요하지만 행여 정권이 바뀌면 불이익을 당할까 나타나지 않고 있다. 탄핵의 부당함을 알려야 할 지식인과 부유층은 자기들에게 불이익이 올까 복지부동 상태이니 참 한심스럽다는 의견이다. 


 촛불집회는 야권이 똘똘 뭉쳐 죽자 살자 탄핵 인용이 옳다며 정권 퇴출을 요구하고 있고, 특검팀은 고영태 일당이 시작한 기획과 부조리에 대한 수사는 하지 않고 여자 장관도 비서실장도 구치소에 처넣어도 국민들 특히 식자층은 벙어리가 되어가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좋으냐며 호소한다.


 태극기집회도 촛불집회도 강건너 불 보고 있는 이방의 나그네가 무슨 의견이 있을 수 있겠나만 나대로의 졸견은 처음 시작한 고영태를 엄격히 수사 후 탄핵이냐 기각이냐 하는 방향이 정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손뼉이 맞아야 일이 성사될텐데 쌍방을 공정히 수사한 후 탄핵을 결정해야 하는데 국회가 졸속 결정을 했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나의 의견이 나에게 돌아오는 불이익도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본다. 나대로는 알량한 시인의 생리 즉 어깃장 부리고 투정 부리고 제 잘난 맛에 사는 근성 속에서 나름대로 못돼 먹은 사회현실에 기여코자 하는 발버둥으로 이해를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의 시가 나의 글이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행여 신문사에 불이익을 주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그나마 나대로의 시인의 근성이 표출될 수도 있으므로 양지하시기를 독자님들에게 바라는 마음이다.


 한마디로 나의 글도 나의 시도 죽었지만 글을 쓴다는 사람들 특히, 시인이란 사람들이 사회를 위하여 시인의 근성을 발휘치 못하는 사회, 그 사회는 죽었고 또한 시를 쓰는 시인도 죽었다고 외쳐본다. 이를테면 정의도 목마르고 사랑도 목마르고 평화도 목마르고 자유도 목마르고 시도 목마르고 진실된 대화도 목마른 현실에서 나의 목은 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법과 원칙과 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 사람이 사람 대접받고 살 수 있는 사회, 능력과 성실이 인정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나의 생존의 철학이었기에 세상 사람들이 나를 무어라 매도하든 나에게 돌아오는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며 오늘도 시인이 죽은 이 사회를 한탄하며 글을 쓴다. 


 셰익스피어가 말하기를 "말(대사)의 성패는 듣고 판단하는 기준에 달렸지, 말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혀끝에 달려있지 않다"는 명언을 더듬으며 내 글에 올바른 판단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로오드 바이런을 흠모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한참 삼천포로 빠졌다. 바이런은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으로 그가 불구자가 아니었으면 이런 명시를 남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유식이 불구자가 되었더라도 바이런 같은 시를 남길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인이란 나대로의 근성의 망상을 피력한다. 바이런 시 중 명시 한편을 소개해본다.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구름 한 점 없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처럼/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어둠과 광명의 정화는 모두/

모두 그녀의 눈 속에서 만나서/

하늘이 저속되게 빛나는 낮에게 거절하는/

그런 부드러운 빛으로 무르익었다. (중략) 


 매우 상냥하고 침착하나 웅변적인/

그리고 저 뺨과 저 이마 위에서/

사람을 사로잡는 미소/

훤히 피어나는 얼굴빛은 말해준다/

선량히 지냈던 시절/

지상의 모든 것과 화평한 마음/

순진한 심장을

 


 이 시는 1814년 어느 무도회에서 검은 상복을 입은 wilmot horton의 아름다움과 매혹에 감명을 받고 즉흥적으로 썼다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인류의 역사는 여자없이 사랑없이 어이 좋은 시가 쓰일 수 있었을까를 음미한다. 하기에 나의 ‘너’라는 시를 발표해 본다. ‘너’는 누구를 의미함일까? 독자님들의 음미가 있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시는 은유의 세계라하니 너는 누구일까 숨겨둔 여인일까 나의 조국일까 사회적 부조리에 한탄하며 너의 아름다움과 고고함을 영원히 간직함일까 나의 가족일까 친구일까 독자의 몫이 되리라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너>

                       - 이유식

 


보고 또 보아도 보고 싶고
가까이서 보고 있으면 더욱 보고싶은 너
멀리서 보면 더욱 가까이서 보이는 너
그리움 가득한 슬픔은
멀리서만 보이는 너

 

살아생전에 지워지지 않는 꿈
반짝반짝 수많은 별들로 반짝이는 너
영하 30도 북극의 추위에 따스함을 안기는 너
죽어서도 보이는 그리울 너
태양빛처럼 나를 보는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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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0
고 김창영 박사님의 영전(靈前)에

 

▲고 김창영 박사

 

 


절명가(성삼문)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what I become after I died
I will become a tall and exuberant pine tree on the top of mountain Bongrae
I will become a man of integrity even though the heaven and the earth are covered with s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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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하나(이유식 추모 헌시) 

 

 

왔던 길 하나 있습니다 
가야할 길도 하나 있습니다
태양빛에 꽃을 피우는 길도 있고
님을 보내고 목 놓아 울고 있습니다.
사랑도 하나의 길이련만
항시 가변하는 길 하나 있습니다
찾아도 영원히 찾지못할 길 하나 있고
저를 두고 떠나가신 님도 있습니다
그리움이 손짓하는 길 하나도 있고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진 길도 있습니다
님이 간직한 길 제가 알길 없고
제가 드리는 사랑의 눈길 님은 알지 못합니다
억만겹으로 코팅된 심장에
빨간 장미꽃이 피어날 때
제가 님에게 드리는 길 하나는
천상에서 피어난 눈물입니다

 

 

 상기의 절명(節命) 시조는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은 사육신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절신(節臣)으로 꼽히는 성삼문의 시조입니다. 성삼문 등 사육신의 처형 후 그들의 의기와 순절에 깊이 감복한 한 의사(義士)가 시신을 거두어 한강 기슭 노량진에 묻었다 하고 현재 노량진의 사육신 묘역으로 우리의 곁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삼문의 약력을 보면 1435년(세종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8년에 식년시에 응시하여 뒷날 생사를 같이 한 하위지와 함께 급제를 했습니다. 집현전 학사로 뽑힌 뒤 수찬, 직집현전을 지냈으며 세종이 정음청(正音廳)을 설치하고 훈민정음을 만들 때 정인지, 신숙주, 최항, 박팽년, 이개(李塏) 등과 더불어 이를 도왔습니다.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단종복위운동을 계획했던 성삼문은 대역죄인으로 박팽년, 유응부, 유성원, 이개, 하위지와 함께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 찬탈을 한 세조로부터 역적이란 죄명하에 삼족이 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고인이 된 저의 동서 형님의 고매한 인격을 흠모하며 평소에 고인이 위의 시를 좋아하셔서 낭송을 하며 명상에 잠기셨던 모습을 되새김하며 지난 2월 4일 장례식장에서 이 성삼문의 절명시조를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낭송하며 곁들여 제가 좋아는 생존의 길을 음미한 저의 추모헌시도 한편을 낭송했습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란 숙명을 생자인 우리가 어찌할 수 있을까마는 우리들의 인생길을 공자는 일찍이 3단계로 논하며 젊음과 장년 노년을 심도 깊게 논했고, 영국의 철학자 라스릿은 이보다 한 단계 늘여 4단계의 길을 피력한 바가 있습니다. 


 즉 젊었을 때에는 주색을 멀리하고 학문에 정진하라 했고, 장년이 된 때에는 무엇이던지 다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오만해지면 인생길을 망치니 분수를 지키라는 교훈을, 노년이 되었을 때에 지금까지 살아온 생존을 음미하며 정진을 하라 했습니다. 이에 라스릿은 인생의 길을 4단계로 분류하며 계절로 따지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피력한 바가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고인이 된 동서 형님이 4단계의 생존을 영위하면서 왜 하필이면 이 성삼문의 절명가를 즐겨 음미하셨을까를 다시 한번 반추해 봅니다. 이는 고인은 일찌감치 우리 인생의 갈 길을 냉정히 각인하고 있었기에 그 많은 시조 중에서도 이 절명시를 좋아하셨으리라 생각을 해봅니다. 


 이는 생을 달관한 지혜에서 샘솟는 식견에서 그 참뜻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면에서 초연한 해탈의 경지를 가슴 속에 간직하고 살아온 형이상학적 수양의 결론이라는 생각입니다. 


 높고 낮음과 부와 빈의 경지,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든 초연하고 의연한 삶의 자세로 이는 우리 같은 평범한 범인으로서는 가늠키 어려운 일면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구나 즐겨 쓰는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말과 세월이 약이라는 자위적인 말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희로애락의 극치에 달한 자위적 말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 절명시에는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는 정신 자세를 후학에게 가르치고자하는 고인의 학덕에서 얻어진 결론이라 생각을 한답니다. 


 동포사회를 위하여 수많은 희생과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시면서도 고인은 한 번도 자기 자신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언제나 무색무취의 변함없은 자태로 동포사회에 헌신과 봉사를 해오시며 한생을 마쳤음에 인척인 제가 고인을 칭송함에 동포제위님께 양해를 구하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에 저의 시 길하나는 제가 7권의 시집을 출간하면서 그 중에서 저 나름대로 우리의 생존을 음미하는 4연의 시로 구성을 한 인간이 가야할 숙명적인 길, 죽음이란 명제 앞에 썼던 작품입니다. 즉 일연에서 우리의 길은 부모님으로부터 탯줄을 끊고 이 세상에 태어나 가야할 길을 음미해 본 내용입니다. 


 왔기에 가야하고 가는 길에 부귀영화의 길도 있지만 결국 가야할 길 종착역은 누구나 공수래공수거로 떠나야함을 각인코자하며 이연에서 인생길은 천갈래 만갈래 길 즉 성공을 하며 모든 것을 향유하며 살아가는 길도 있지만 아무리 노력하고 올바른 삶과 성공적인 생존을 영위코자 노력을 해도 사주팔자가 나쁘거나 조상을 잘못 만났다던가 능력이 없어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함과 동시에 원하는 바를 찾아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시궁창으로만 빠져드는 인생길을 음미코자 했습니다.


 삼연에서는 남녀의 애정도 한 가정을 지탱하는 길도 가화만사성 속에 꿈꾸는 노스탤지어에 지나지 않음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순결한 사랑도 상대가 나몰라라 하는 무관심은 대상없는 사랑이기에 짝사랑으로 끝이 남을 어이 한답니까. 이에 저는 사랑이란 관심을 얼마만큼 가져주느냐 하는 점에 우리의 생존의 즐거움이 표출될 수 있다는 생각을 피력해 보는 것입니다. 


 종연에서 그 토록 고진감래의 생존을 거처 인생의 종말을 고하는 곳에서 뒤돌아보면 회자정리란 말의 뜻도 모든 것이 헛것임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살아있으면 반드시 만날 수 있다는 회자정리도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고 사랑을 주고받고 싶어도 살아있을 수 없는 이생과 전생의 갈림에서는 모든 것이 헛거품이 되겠기에 살아있는 자는 죽음이란 명제 앞에 서로의 연을 다시해야 함은 피할 수 없기에 우리는 죽은 후의 삶 즉 전생에서 다시 만나 못 나누었던 이생의 삶을 가져보자는 절규를 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의 시 ‘길 하나’는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비극을 논함에 있습니다. 즉 생존의 슬픔이란 소외되고 상실되는 현실 즉 관심밖의 생존을 말합니다. 소외와 상실을 극복하기 위하여는 인간성의 회복을 강조해 봅니다. 인간 생존의 밖의 길에서 길 하나를 찾아서 인생은 오늘의 생존을 영위하고 있음을 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저의 동서 형님은 이생에서는 영원히 만날 수 없기에 남은 사람은 언젠가 천상에서 만나 이생에서 못 나눈 정한의 기쁨을 맛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신에 대한 이방인이 되어야하고 자연에 대한 타인이 되어야하는 모든 슬픔을 인연이란 두 글자 위에 아로새기며 조용히 눈물을 거두려 합니다. 형님 부디 편안히 영면하소서. (막내동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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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9
내 삶의 빛을 찾아서

 

 

<즐기며 살아가자> <사랑하며 살아가자> <참으며 살아가자>. 언제부터인가 이 세 줄의 시어가 저의 힘이 되었습니다. 읽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 세 줄의 시어의 메타포(metaphor)에 나의 힘과 생존 사랑의 철학이 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나뿐이 아니고 독자 개개인도 이 세 줄의 시어를 통해 사상의 적립과 생존의 철학을 음미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기실 저 자신의 생을 그렇게 즐기면서 살지도 못하고 또한 신앙이 없는 저 같은 사람이 남을 사랑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위선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참으면서 살아간다는 말도 저 같이 수양이 부족한 사람으로 어떤 일이나 사건에 관하여 참지 못하고 울컥 치미는 성격의 소유자라면 실천하기 힘든 말입니다 위 세줄의 시어에 대한 저대로의 관념적 생각을 음미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즐기며 살아가자.


 우리 인생이 길고 긴 듯도 하지만 짧디 짧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1분 1초가 헛되이 지나가는 듯할 때는 안타깝고 아쉬움에 초조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에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하루 하루의 현실을 즐기며 살아감이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를 곱씹어 보곤 합니다.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우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이고, 생존의 철학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빅토르 위고의 원작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영화속의 주인공 꼽추역의 안소니 퀸이 집시인 지나 노노부리지다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격적인 이야기입니까.  


 또한 20세기가 낳은 세계적인 혁명가 체 게바라의 삶은 어떠합니까. 그는 아르젠틴의 귀족의 가문에서 태어나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였지만 그의 본업인 의사를 포기하고 보다 넓은 세상을 알고자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며 나환자들의 삶과 궁핍한 농민들의 현실을 목격하고 고난 받고 가난에 허덕이는 민중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약한 자의 입장에서 그의 생존의 투쟁은 시작 됩니다. 


 즉 그가 좋아하는 혁명가로 변신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혁명가로 추앙을 받으며 39세의 나이로 중남미 볼리비아 정글에서 생을 마감했다 합니다. 그의 죽음 앞에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 장 폴 사르트르는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란 평을 했고, 시인 엘뤼 아르는 별이 없는 꿈은 잊혀진 꿈이고 별이 있는 꿈은 깨어있는 꿈이라 했습니다.


 이는 그가 누릴수 있는 부와 명예를 버리고 쿠바의 민중 혁명에 가담, 카스트로와 같이 공산혁명을 성공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는 민초들의 고난의 삶을 해방코자 다시 총을 잡고 민중 해방을 위한 투쟁을 하다가 생을 마쳤습니다. 아 얼마나 자기가 원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다가 생존을 마쳤습니까. 


 또한 순애보의 표상 노트르담 꼽추의 일생은 어떠합니까. 꼽추의 몸이지만 세상 모든 사람의 질시와 업신여김을 받으면서도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사랑을 위하여 그의 모든 것을 바친 순결의 사랑, 남을 의식치 않고 자기가 즐겨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저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혁명가 체게바라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생의 최고의 즐거움 이었기에 그 즐거움을 찾아서 일생을 바쳤습니다. 저 이유식도 이렇듯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다가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이 세상 소풍이 끝나는 날 즐기며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즐기는 일 하나도 제대로 못하며 생업에 허덕이다가 고희를 훌쩍 넘기고 나니 남아있는 것은 좌절감과 허무만 도사리고 있은 것 같습니다.


 집 친구 이 글 읽으면 입이 뾰족이 나올 일이지만 살아있는 동안 안소니 퀸 같은 멋진 연애도 한번 해보고 세상을 바꾸어 놓은 혁명가의 삶 또한 온 세계 인류가 즐겨 읽을 수 있는 글 한편 써 놓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리요만 이상의 파도가 노아의 홍수모양 출렁이고 있으니 이 어이 서글프지 않으리오.


 둘째, 사랑하며 살아가자.


 우리네 삶이 남을 위하여 끊임없는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생존을 영위한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울까하는 생각을 수 없이 하지만 사랑을 실천치 못하니 공염불이 되고 있으며, 오늘도 석양은 오고 있습니다. 주어진 여건에 따라 남을 사랑한다면 이 얼마나 보람찬 생존이 될까를 생각해 봅니다.


 저는 맹자의 성선설이나 순자의 성악설도 잘 인지 못하면서도 사랑이란 말의 원천은 마음의 근본이 착해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종종해본 답니다. 주기만 하고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랑 예컨대 마더 테레샤 같은 희생적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여건에 따라 주위의 모든 일에 대하여 베풀며 살아감도 행복의 조건이란 생각을 할 때가 수 없이 많지만 아직 저 자신을 희생하며 남을 위하여 크게 희생을 했거나 사랑을 베풀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음에 항시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 저 이유식이란 사람도 남을 위하여 희생을 하고 사랑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상념을 씹지만 아직 아무 것도 못하고 흘러가는 구름만 보며 무능한 저 자신을 한탄해 본답니다.


 누가 무어라 하던 가지고 있는 현실에 따라 서로 배려하고 도와주며 베풂의 정 속에 사회는 밝고 명랑해지리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음은 저의 양심에서 우러나는 독백이라는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 


 양보하고 이해하는 속에 나눔의 정은 싹트고 그 속에 베풂의 즐거움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꼭 금전으로만 환산할 수 없는 사람 냄새나는 사랑의 정을 생각해 보곤 한답니다.. 조그마한 나의 희생과 사랑이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기쁘게 할까를 생각하며 하루를 넘기는 이 허수아비 같은 생존은 오늘도 로키산에서 뛰노는 엘크사슴과 눈 쌓인 겨울산을 보며 한숨을 토해 본답니다.


 셋째, 참으며 살아가자.


 모든 일, 사건에 대하여 어떠한 난관과 슬픔에 처하더라도 남을 원망치 않고 참고 참으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음미코자 합니다. 참는 자에게 복이있다는 말, 좋은 소식도 삼일, 나쁜 소식도 삼일이라는 말을 다시 곱씹으면 어떤 순간적 수모와 모욕도 참고 참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다 지나가는 것인데 모든 것이 세월이 약인데 조금만 참으면 모든 것이 편한데 그 참는다는 것을 이겨내지 못하기에 인류는 항시 전쟁의 참화 속에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에 저는 참으며 살아 갈 수 있는 수양을 어떻게 쌓아야 할까. 위선의 파도에서 말의 유희에서 벗어나 진솔한 인간관계 속에 쌓아온 정이 아무렇게나 이용당하고 조소의 대상이 된다해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수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인격적 모욕 억울한 모함과 매도 이 모든 것도 순간으로 지나기에 참을 수 있는 수양이 얼마나 나의 생존에 중요한 자리매김을 하는가를 생각할 때가 있음은 나뿐이 아니고 누구나 느끼고 겪으면서 한 세상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하게 됩니다. 


 나이를 먹고 온갖 연륜의 채색된 빛깔은 우리의 생존을 슬프게만 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가변의 진리의 파도가 출렁이고 백팔번뇌가 펄떡 펄떡 춤을 추는 저 아득한 흙먼지 속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까 피할 수 없는 흙먼지라면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참고 또 참으며 살아가야하는 무지갯빛 수양이 항시 저와 같이 공존하고 있음을 각인하며 참자 참자 참자를 반복해 본답니다.


 이렇듯 위의 세 가지 시어 아닌 시어를 생존의 철학으로 각인해 봄도 뜻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의 졸고를 읽으시는 독자님들 우리 다같이 오늘의 복된 삶을 위하여 한번쯤 생존의 방향을 음미해 보자는 제언을 해봅니다. 저는 이 세 가지 시어 속에서 오늘도 내일도 부끄럼 없는 삶이 되고자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반성의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답니다. 산은 푸르고 강물도 흘러가고 새들의 울음소리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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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6
노추(老醜)를 염려하며

 

 노추(老醜)라는 말이 있다. ‘나이를 먹어 모습이 꾀죄죄하고, 행동이 추하다’는 뜻이다. 인생의 하반기에 들어선 나는 어떻게 하면 노추를 피하고 아름답게 세상을 마감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곤 한다. 하지만 허장성세의 세월은 화살처럼 날아가고 있다.


 공자님은 군자로서 경계해야 할 점으로 인생의 성장 과정에 따라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나이 15∼20세 정도의 청년기에는 ‘색욕’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다. 특히 여색과 주색은 함께 오는 것이니 더욱 주의하라 하셨다. 


 둘째, 나이 20∼40세까지의 장년기가 되면 자신감에 찬 나머지 안하무인으로 흐르거나 걸핏하면 남과 겨뤄 이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장년기에는 이런 ‘다툼’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다. 다툼의 결과로 적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셋째, 그 이후의 시기인 노년기에는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다. 누구나 인생의 황혼기에 느끼는 회한이 많을 것이다. 천하를 품을 듯한 포부는 사라지고 스스로 초라함을 느낀다. 그래서 이제는 여생을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하게 된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명예도 아니고, 의리도 아니고, 오로지 물질적인 욕구뿐이다. 이것이 지나칠 경우 노추를 보인다고 하셨다.


 상기 공자님의 말씀과 비슷한 이론(理論)을 편 영국의 철학자 '라스렛‘은 인생을 4기로 분류했는데 3기까지는 공자님과 같은 이론인 것 같다. 그러나 이분은 4기의 인생을 가미한 것이 특징이다. 즉 인생4기의 생존은 죽음으로 가는 자연의 이법에 따른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4기 인생은 일년 중 4계절인 겨울에 속하는 나의 인생의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노추를 염려하는 하루의 생존이라는 역설을 말해본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개인의 능력껏 ‘베풂’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기를 권장해 본다. 살아오면서 배운 것, 느낀 것, 맨몸으로 부딪쳐 알게 된 것, 알고는 있었으나 실천하지 못한 것 등등 적지 않게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인생 후배에게 또는 후학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것이 좋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나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들도 후배들에게는 아주 귀한 지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이 끝나는 날 그동안 쌓아 놓았던 것들 짊어지고 갈 수 없기에 베풀 수 있는 한 베풀고 떠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이 역시 뜻과 같지 못함이 우리네 인생살이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침저녁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의 주름살은 하루하루 깊고 두터워지는 것만 같으니 이 역시 슬픔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임을 알면서도 내가 벌써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년기에 들어서면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다. 요즈음은 주름을 인공적으로 없애기도 한다지만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주름은 사람마다 모양이 다르다.


 주름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역정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그 주름 때문에 더욱 인자하게 보이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그 주름으로 인하여 인상이 험악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사람의 경우 양쪽 볼에 욕심주머니를 차고 있는 경우도 있다. 꾀죄죄한 모습은 아니지만 이러한 모습도 노추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의 됨됨이는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가 물러난 후에라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높은 자리에서 물러난 다음에 찾아오는 친구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사람을 우리는 진정 훌륭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준다. 권력의 속성 때문이다. 그런 사람의 경우 무언가 얼굴에서 다른 모습이 느껴진다. 대부분 인상이 좋고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사람 아마 청빈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자기 권세를 내세우지 않고, 자기의 권한을 꼭 필요한 곳에 사용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동포사회의 높은 자리라는 것이 무엇일까 독자 한 사람 한 사람 이 글을 읽으면서 음미하시라는 주석을 달아본다. 나 이유식은 동포사회의 높은 자리는 자기 일에 성실한 삶을 살아가며 겸양과 희생 속에 동포사회를 위해 진실한 봉사와 희생을 하는 사람이다. 


 제 잘났다고 분수 모르고 날뛰는 사람, 감투 같지 않는 감투를 쓰고 그 감투가 인생의 전부인양 으스대며 위선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높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나는 이 점에서 항시 겸양 속에 옷깃을 여며보지만 내가 얼마나 익은 벼이삭이 되었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음을 밝히고 싶다.


 여기에서 나의 노추를 보이기 싫어서 시라는 것을 쓰면서 좋은 시 한편 남기는 것이 노년을 보람있게 살아갈 수 있는 덕목으로 생각했지만 그것 또한 노추를 벗어나는 길이 되지 못했기에 내 자신이 바보같은 시인이라는 것을 절감하며 하기와 같은 나는 바보 시인이라는 시 한 수로 나의 노추의 생존을 경계코자 한다. 나의 졸시에 대한 독자님의 댓글 시 한편도 여기에 상재해 본다.

 

 ‘바보 시인’


 내일이 오기에 오늘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제를 오늘로 회귀시킬 수 없기에 나는 오늘이 무섭고//

내일이 더 더욱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삼라만상이 저렇듯 말없는 속에 풍요와 자유로 유람하는데//

반성 없는 하루, 남길 일 하나 없는 하루하루가//

나를 슬프게 합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했나//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나 보다 못한 사람 없기에 무생물인 돌이 되어 굴러가는 나를 봅니다//

질곡의 파노라마에 나 자신을 잊고 하루를 넘기는 나는//

나 자신이 바보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 만큼에서 오는 석양 노을은//

내 사랑 저주하며 떠난 사람들을 알지 못하며//

내 사랑 그립다 찾아오는 마른 꽃송이들//

벙어리 시인의 눈물을 모른답니다//

나는 오늘도 내일을 맞이해야 하는 돌덩이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나는 바보입니다//

나의 눈물이 당신의 가슴을 적실 수 없는 바보 시인입니다.

 

 

 

 바보가 바보 시인에게 (독자님의 댓글 시)

 


 항상 손해만 보고 살아가는 너//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느니//

차라리 자신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 너//

그것이 차가운 머리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을 안으려 한 대가인 줄 알면서도//

고요한 그리움만이 말없는 벗이고//

고단한 삶의 안식처라고 되뇌는 너//

그리움조차 널 외면해도//

애꿎은 자신의 마음만 곤두박질치는 너//

따뜻한 말 한 마디에 눈물을 글썽이던//

천진함의 대가인 줄 알면서도//

행복은 다른 사람들에게 골고루 다 나누어 주고//

정작 자기 자신은 그렇지 못한 너//

단 하나 남은, 외로움만 부둥켜안는 너//

내 앞에 있어도 보고플 것 같은 너에게//

나 또한 아름다운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그 말조차 망설이는 내가 정말 바보인 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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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8
100년 후의 한-중-일 정치 경제 예측(2) & (3)

 

 2009년 중국을 방문했던 저의 여행기를 소개해 봅니다. 저는 중국을 이곳저곳 7번 갔었는데 그 중에도 연길에 2번을 방문했고, 두 번째는 제가 제정 운영하고 있는 민초해외문학상 2회 수상자가 연길의 조룡남 시인이었기에 시상식 차 방문했습니다. 


 이번 길에는 백두산에 올랐고 두만강 기슭을 따라 백두산에 오르며 <백두산에 올라>라는 시제로 다음과 같은 시도 한편 상재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사량했고 그리웠고 보고 싶었던 너 였던가/다아스포라의 눈물이 천지연 폭포수로 떨어지고/7천만 한민족의 통한/자작나무 사이 사이/숨어 울고 있는 바람소리로/남북을 오고 가누나/보아라/너와 나의 헤어져 있슴은/억새풀들의 흔들림으로/서녘 하늘에서 해 돋아 날을 기다리며/환희 속에 울고 있는 미소 일진데/억겁의 많은 별들 어디에서 반짝이리/산아/산아/백두산아/내 불타는 심장/여기에 두고 마른 풀잎 되어 나는 간다/사랑과 기쁨/희망과 절망을 감추고/민족의 업보/신 앞에 두 무릎 꿇고 앉아/통일 통일을 달라며 목놓아 울어본다//


 백두산 관광을 마치고 도문이란 곳에서 차를 한잔 나누면서 북한 땅과 도문을 연결하는, 차 두 대가 겨우 교차할 수 있는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가 1950년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밤을 이용, 북한으로 잠입하는 중요 도로의 역할을 했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도문 다리를 지나면 북한땅인데 산이 너무 경사져 있어 당시 중공군이 잠입하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군이 폭격을 할 수 없었다는 안타까운 내용도 알았습니다.


 귀갓길에는 연길 현지 한국인 유 변호사라는 분이 우리 일행을 평양 장수관이라는 북한이 경영하는 식당에 초대해 정갈한 북한음식 맛을 보았습니다. 7층 건물을 전부 사용하고 있는 장수관은 손님은 없는듯 썰렁했고, 우리 일행이 6층 전체를 차지하고 북한술과 요리를 즐겼습니다.


 한 테이블에 4명이 앉고 북한 여종업원 4명이 한사람 한사람을 친절히 봉사해주었습니다. 소위 손님을 대접하는 기쁨조라는 브라스 밴드 5인조가 흥을 돋워 주었으며 노래방시설이 있어 눈물 젖은 두만강, 울고 넘는 박달재, 찔레꽃 등 남한 노래방에서 흔히 부르는 노래도 있었지만 대부분 북한식 노래로 혁명피 등의 가사가 섬뜩하게 들렸습니다. 


 주연을 마치고 나오니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환송하는 북한 종업원의 아름다움과 친절에 저는 우리를 주빈으로 모시는 J회장에게 우리식 봉사료를 주고 싶다하니 한사코 말렸습니다. 이유인 즉, 팁을 주어도 그 봉사료는 다 빼앗기고 또한 불순하게 생각되면 그 여종업원이 곤욕을 치른다고 해서 쓸쓸히 돌아서야 했습니다. 하지만 20세 전후의 봉사원 눈에서 글썽이던 눈물방울을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답니다. 같은 민족이 어이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상념으로 그날 저녁은 통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제가 젊어서 정치 철학을 공부한다면 아니 세계에서 훌륭한 정치철학자가 나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와 유교사상을 합한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 구축된다면 우리 인류의 삶이 좀더 윤택하리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이제 프리드먼 교수의 100년 후의 중국의 정치 경제를 예측한 논문을 요약해 봅니다. 한마디 첨언한다면 이번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은 용정에 들러 용두레 우물가에서 목이 터져라 선구자 노래를 불렀던 기억, 윤동주님의 생가를 방문하고 민족 혼을 되새겼다는 것입니다.


 2000년대 중반, 신흥강국으로 부상해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심지어 G2로 불리게 된 중국의 앞날을 프리드먼 박사는 이렇게 예견했습니다.


 “중국의 미래는 이전처럼 부상이 아닌 붕괴를 생각해야 한다. 중국은 최근 잘해 왔지만 동시에 많은 문제를 떠안게 됐다. 핵심은 가난이다. 6억 명이 가구당 하루 3달러 미만의 벌이로 산다. 4억4,000만 명은 6달러 미만으로 산다. 13억명 중 10억 명 이상이 아프리카처럼 가난 속에서 살고있는 것이다. 물론 6,000만 명의 다른 중국이 있다. 연간 2만 달러를 버는, 하지만 이것은 중국의 5% 미만이다. 진정한 중국이 아니다. 


 중국은 ‘내부경제(internal economy)’가 없는 나라다. 유럽과 미국이 제품을 사주지 않으면 존립하지 못한다. 그래서 중국은 인질이나 마찬가지다. 계층 사이에는 상당한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을 때는 이 문제를 다루기 쉽다. 그러나 더 이상 그렇게는 못한다. 임금이 전처럼 싸지 않기 때문에 수익성을 받쳐주지도 못한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하려고 하지만 미국, 독일, 일본, 한국과 같은 쟁쟁한 나라가 버티고 있다.


 지금 중국의 위치는 1989년의 일본과 같다. 일본은 눈부신 성장 뒤에서 금융시스템이 붕괴하고 있었다. 지금 중국처럼 일본은 외국 자산을 사들였다. 중국의 성장 사이클이 막바지에 달했다는 신호다. 이럴 때 국가마다 제각기 다른 해법을 찾는다. 일본은 성장률을 낮췄다. 그러나 중국은 실업을 인내할 여력이 없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동한 농민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사회를 불안정하게 한다. 이들의 원망을 가라앉히기 위해 중국은 6,000만 명에게 세금을 거둬 분배해야 할 것이다. 거둬들인 돈으로 군대의 충성은 유지할 수 있겠지만 중국의 해법은 국민들을 억압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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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후의 한-중-일 정치 경제 예측(3)

 

 1987년 10월 말경 일본 동경 신죽구 미야꼬 호텔에 세계 한민족대표자 700여명이 모였습니다. 이 모임을 창립코자 애를 태웠던 일본 거류민단 단장 박병헌씨, 미주 총연합회 회장 조도식씨, 그리고 제5대 캐나다 한인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던 저는 처음 워커힐 쉐라톤 호텔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 후 초여름 서울 소공동 롯데 호텔에서 두 번째 모임을 가졌습니다. 모임의 목적은 사방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700만 동포들의 한 울타리를 만들어 해외에서 조직적인 한 목소리로 동포들의 상부상조와 조국에 대하여는 정치 경제 문화의 현실과 통일을 달성하는데 일조한다는 꿈이었습니다. 


 창립을 하는 모임이라 세계 각 나라에 흩어져 있는 동포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난제 중에 난제였음을 알면서 우리는 꾸준히 세계 각국 동포들의 현실 파악을 위하여 온갖 노력을 했으며,  특히 박병헌 일본 거류민단장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으로 그해 10월 드디어 첫 모임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캐나다 대표단은 총연 회장 이유식(캘거리)을 비롯, 동부 오타와 이태은 부회장, 중부 위니펙 김봉환 부회장, 서부 리자이나 한광수 부회장, 이사장 박동렬(몬트리얼), 부이사장 김원겸(위니펙), 사무총장 한성택, 전 7대 총연회장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일본을 방문하는 저는 일본이란 나라가 우리를 침략한 나라로 각인하고 있었기에 배타적인 심정과 적개심으로 쌓여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첫날밤을 피로에 지쳐 자고 일어나니 방안에는 김일성 및 북한 찬양 전단지가 있어 소름이 끼치도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조찬을 위해 식당에 내려갔더니 해외 각국에서 온 대표들 방 전부에 이런 김일성 찬양 전단지가 살포되었음을 알았고, 일본의 조총련 소행이라는 것을 민단으로부터 설명듣고 일본에서는 민단과 조총련의 대립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튿날 창립총회에서 박병헌 민단장을 회장으로 조도식 미주총연회장과 같이 부회장으로 선임이 되었습니다. 이로서 700만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해외 한민족대표자회 협의회가 창립되었습니다. 대표자협의회에서 줄기차게 모국 정부에 건의한 사항은 교민청을 신설해 달라고 강력히 건의를 했으며 그 결과가 1992년경에 우리가 건의한 교민청 대신 재외동포재단이 생기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87년 창립한 한민족대표자협의회는 그 후 독일 베를린, 미국 워싱턴, 프랑스 파리, 미국 하와이, 캐나다 밴쿠버 등에서 상임운영위원회를 개최하였으며, 그 후 동포재단에 우리의 행사를 넘기게 되었고 재단은 세계한인회장회의라는 명칭하에 지금까지 동포재단 주최의 행사를 매년 서울에서 개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한민족 대표자 협의회의 역사를 상세히 설명함은 우리 700만 동포의 역사를 후손들이 정확히 알아두어야 되겠다는 일념도 있습니다. 한민족 협의회를 창립한 박병헌 회장도 고인이 되었고, 미주 총연의 조도식 전 회장은 종교에 심취 지금은 신앙인이 되어 있습니다. 부족한 면이 있지만 한민족 대표자 협의회가 창립된 내면의 과정을 설명할 사람은 저 하나 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캐나다한인동포님들이 알아야 할 것은 대한항공의 캐나다 취항문제 입니다. 캐나다에 대한항공 취항이 그저 이루어진 것으로 많은 동포들이 인식하고 있겠지만 그 배후에는 총연합에서 취항을 위하여 일조의 노력을 경주했다는 것을 밝히고 싶습니다.


 즉 대한항공 취항을 위하여 그때 주 오타와 한국대사관의 허방빈 참사관의 노고에 감사를 이 자리를 통해 밝혀 둡니다. 첨언을 한다면 일본에서 회의를 마친 우리 회장단과 이사장단은 오타와 대사관의 허 참사관과 긴밀한 협의를 하며 대한항공 취항을 위하여 돈 메리진스키 연방교통장관을 만나 우리의 뜻을 간곡히 전했으며, 또한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을 예방해 대한항공 취항이 캐나다 한인동포들이 살 길이라고 간청했습니다. 


 한국정부와 오타와 연방정부의 합의에 의한 결정이었으리라는 생각도 하지만 우리 총연합회도 대한항공 취항을 위하여 물심으로 노력을 했음을 밝혀둡니다. 


 그 후 1988년 대한항공이 캐나다에 취항하면서 조중훈 회장께서는 그 때 총연합회 사무총장이던 한성택씨를 통해 저에게 감사장을 보내왔던 점 등을 한인동포들에게 인지시키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늘은 프리드먼 박사의 일본에 관한 정치경제 예측에 관한 이야기이니 총연과 일본 방문 등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생략하며 지난 11월 조국을 방문했을 때 제가 존경하는 한국 문단의 거목이신 K교수님과의 대화 한 토막을 소개코자 합니다.


 K교수님은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을 역임하셨고, 진주가 나은 3대 천재로서 k대학 문과대학장을 하신 분입니다. K교수님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장점은 수없이 많은데 장점이 아닌 단점 3가지만 지적을 하라 했습니다. 저는 장점은 생각해 보았지만 단점은 별로 생각을 한 적이 없다 했더니 교수님은 저에게 명쾌한 답을 주셨습니다. 


 첫째 단점은 우리 남한사람들은 얼마나 잘먹고 잘살고 잘입고 자유를 구가하면서도 권리는 주장하나 의무 수행은 하지 않는 민족이라는 점, 둘째는 북한정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못살며 배고픔과 동시에 자유라는 것이 말살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모른다는 것, 셋째 일본을 우리 민족은 왜놈들이라 비하하지만 일본사람들이 얼마나 높은 문화민족이며 법을 잘 지키고 정직하며 애국애족 하는지 우리 국민들은 모른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시인의 생각은 어떠냐고 물으셨습니다. 


 독자 여러분 우리 한번 생각을 해보자는 제언을 하며 이번 글이 일본의 정치 경제에 관한 프리드먼 교수의 예측이기에 여기에 한번 써보았음으로 양찰하시기를 바랍니다. 민초의 잡설산책은 한 중 일의 프리드먼 교수의 논문 요약을 이번 회로 끝을 맺으며 그 간 이 글이 발표되면서 캐나다 동포님들과 모국의 인터넷 카페 등에서 즐감하며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경제대국 일본을 프리드먼 박사는 일본의 무서운 단결력이 아시아 최강으로 복귀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가 일본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경제 볼륨에서 중국과 동등하다. 일본은 국방력이 강하고 빈곤층이 적다.

일본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고 해결할 능력이 있다. 일본은 단일국이다. 최근 쓰나미 대지진에 나타났듯 일본은 놀라운 단결력과 유대감을 갖고 있다. 일본에는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강한 비공식적 사회통제가 존재하는 고도의 응집사회다. 경제가 크고, 교육 수준이 높고, 정부를 따르는 국민이 있는 나라가 왜 쇠퇴하겠는가?


 외부에선 저성장, 고령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하면서 일본 경제가 정체된 20년을 ‘잃어버린 20년’ 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일본의 목표에 대한 오해다. 일본적 가치에 서양적 관점을 적용한 것이다. 일본은 기업의 이윤을 희생하면서 사회적 핵심가치인 고용을 유지했다. 20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가치를 보전한 것이다.


 일본도 더 이상 빚을 쌓아가며 가치를 보호할 수 없다. 일본 역시 경제와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 하지만 일본엔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이 있다. 중국처럼 빈곤 속에서 살고 있는 10억 인구가 없다는 것이다. 사회불안 없이 긴축을 견딜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대지진 수습 과정에서 리더십의 문제가 노출됐는데, 2차 대전 때에 일본의 리더들은 ‘어떤 전략으로든 반드시 승리하겠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리더가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기간에도 혁명을 일으키지 않은 유일한 국민이다. 리더십이 형성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나라다.


 하지만 프리드먼 박사는 일본의 위험성도 지적했다. 일본의 근본적인 약점은 천연자원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은 해상교통에 접근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호루무스 해협, 말래카 해협, 남중국해 모두가 일본의 생명선이다. 그래서 일본은 늘 걱정을 안고 있다.


 이 생명선에서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다시 공격적으로 변할 여지가 있다. 일본은 힘을 회복하면 필연적으로 해군력을 증강시킬 것이다. 공격적인 일본에 대처할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 3회에 걸쳐 프리드먼 교수의 세계정세 예측을 예의 주시함에 큰 뜻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즉 조국의 외환위기를 비롯한 세계정세를 정확하게 예측한 바 있는 미국 코넬대학 조지 프리드먼 교수는 코소보 전쟁과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정확하게 예견하여 ‘21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라 불리니 그의 저서 《100년 후, Next 100 years》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주: 노스트라다무스(중세의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예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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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4
100년 후의 한-중-일 정치 경제 예측

 

 50여 년 전의 옛 밥줄 길을 찾아 갔었습니다. 지난 11월의 일입니다. 첫 직장에서 밥줄을 달고 있던 소공동 111번지, 그 때의 밥솥에서 밥이 익어가는 소리를 듣고자 명동 한쪽에 호텔을 잡고 명동과 소공동 옛 골목길을 헤매어 보았습니다. 


 <길재>가 500년 도읍지 개성을 찾아서 노래한 옛 시조 ‘500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하는 시조를 저는 50여년이 지나서 다시 찾았는데 땅은 그 땅 그대로인데 정말 인걸은 간데도 온데도 없었습니다. 퇴근 후에 정종 한 잔 하던 일식집 미조리 거구장도 중국집 빼갈도 오향장육 안주도 가화 다방과 티파니 다방도 소리없이 사라졌고, 그 많던 양주코너도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조선 호텔 100여 미터 돌담장 길을 끼고 걸으면 명동이 나왔고, 사보이 호텔 지하 구디구디 양주집도 사라졌고, 코스모스백화점 뒤편 한구석에 <도금봉> 배우가 화사하게 웃으며 팔던 양주집도 없어졌습니다. 명동 길 골목골목에는 노점상이 거리를 매웠고, 중국사람 일본사람들의 황홀한 웃음 속에 저 이유식이란 사람은 없었습니다. 


 잘 가던 부산집 삼겹살집은 오겹살집으로 변해서 오겹살이 소주 맛을 풍요롭게 했습니다. 소공동 111번지의 건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남대문로로 자리를 옮겼음을 인식하고 옛 친정집을 찾았더니 옛 상사도 동료도 후배도 하나 없는 나그네의 발길을 서럽게 했습니다.


 그 인걸들 지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를 더듬으니 아련한 서글픔만 남았습니다. 나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고 노벨상 수상자 코넬대학 교수 <조지 프리드만> 박사의 한 중 일의 100년 후를 예측한 자료를 한 부 얻어 쓸쓸히 등을 돌려야 했습니다. 


 소공동 111번지의 추억은 38대의 1의 경쟁을 물리치고 입사한 곳 그 곳에서 입사 동기들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싼 땅, 한 평에 3천만원의 땅에서 밥줄을 달고있다는 엘리트 의식이 높았던 곳. 그 곳의 마지막 추억을 프리드만 교수의 한 중 일의 100년 후를 예측한 논문을 3회에 걸쳐 남기며 두 번 다시 찾지 않을 그 밥솥의 밥을 그리며 이방인의 허허로운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이유식의 독백>

 


 1. 첫 번째로 한반도는 중국ㆍ일본ㆍ러시아에 둘러싸인 폭탄 같은 존재다. 쇠퇴하는 중국이 과연 5년 후에도 북한을 지지할 수 있을까? 통일은 10~20년 안에 될 것이다.


 한국인들이 원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북한 문제를 다룰 때 미국의 도움을 필요할 것이다. 통일 후 금융문제가 닥칠 때 더욱 그럴 것이다. 통일 한국을 바라보는 주변국 중 미국은 다른 대안이 없으니 환영할 것이다. 일본은 반대하지 않겠지만 기뻐하지도 않을 것이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상태에서 반대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한국엔 북한의 붕괴가 그동안 이룬 경제성과를 무너뜨릴 것이란 공포가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역동적인 국력을 보유하고 있다. 북쪽에 무슨 일이 발생하든 국력은 유지될 것이다.


 통일 후 10년은 고통스럽겠지만 길게 보라! 북한의 땅과 자원, 값싼 노동력에 남한의 기술ㆍ자본ㆍ리더십이 합쳐지면 엄청난 시너지가 발생한다. 나는 늘 한국이 통일됐을 때 만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중국은 내부를 통제하기에 급급할 것이다. 러시아도 극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 일본은 거리가 너무 멀다. 한국이 통일되면 만주지역에서 큰 기회가 열릴 것이다.


 통일이 되면 한국은 강대국이 될 것이고, 일본에 가시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죽일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한 위협이 된다는 뜻이다. 향후 10년간 서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은 미국의 가장 강력한 협력국이 될 것이다.


 역사적 배경 때문에 한국은 일본을 경시하며 중국을 불신한다. 그렇다고 미국과 편안한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본이 강해지고 중국이 약해질 때 한국은 미국을 필요로 할 것이다. 미국도 일본과 중국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국에 의존할 것이다. 한국은 상당한 규모의 기술 중심지가 됐다.


 중국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의 기술을 갈망할 것이다. 미국은 기술 이전에 대한 부분적 통제권을 확보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영향력을 증가시키려 할 것이다.


 
 (조지 프리드먼 박사는 미국 코넬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그가 1996년 설립한 싱크탱크 '스트랫포(Stratfor)'는 미 국방부를 포함해 각국 정부와 포춘 500대 기업이 주 고객이다. 그가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정보는 220만 여명의 유료회원이 접속해 보고 있다. 20세기 말에 일어난 코소보전쟁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이후 미국방부는 ‘얼리 버드(early bird)’라 불리는 조간 브리핑에 그가 제공하는 정보를 매일 포함시키고 있다. 그는 또 아시아 외환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했고, 세계경제포럼은 연례행사에서 스트랫포의 보고서를 공식 배포하기도 했다. 


 <100년 후(Next 100 years)>는 출간되자마자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동시에 선풍적 인기를 몰고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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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yslee
76250
12855
2016-12-21
그리움 하나

 
그리움 하나

 

 

지나온 것은 다 아름다웠으리 
슬펐든 기뻤든 그렇게 살아왔던 것을
보내기 싫어도 만나기 싫어도
해와 달을 보며
너와 나도 만나면서
청잣빛 노을에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향내

 

바람은 오늘의 안주에 웃고
찾아오는 저 강 넘어 새들의 지저귐
눈쌓인 겨울산을 보노라면 
아직은 주고픈 욕망과 비워 내어야 하는 눈물들

 

내 심장을 도려내는 칼바람의 탄식
<아도니스>의 첫 사랑의 울음소리여
그 사랑 나의 조국 나의 동포 

 


*주)아도니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으로 아프로디테 여신의 애인. 전설에 따르면 시리아의 왕 테이아스와 그의 딸 스미르나(미르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의 아름다움에 반한 아프로디테는 젖먹이 아도니스를 상자 속에 넣어 지하세계 왕비 페르세포네에게 보살펴 주도록 부탁했다. 그런데 페르세포네 역시 이 미소년에게 반해 그를 돌려주지 않으려 하자, 결국 주신 제우스는 아도니스에게 페르세포네와 3년, 아프로디테와 3년을 보내고 나머지 3년은 아도니스 스스로가 결정하도록 했다.


 이 전설은 여러 가지 이형으로 남아 있다. 아도니스라는 이름은 페니키아어 아돈('군주')에서 유래한 듯하며, 바빌로니아 신 탐무즈와 같은 신으로 추정된다. 현대 학자들은 아도니스를 해마다 죽었다가 부활하는 자연의 순환을 나타내는 초목의 정령이라 보고 있다.


 아도니스의 죽음과 부활을 기리기 위해 아도니아라는 축제가 비블로스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해마다 열렸는데, 이때 그의 초상화나 다른 물건들을 물에 던지면 비가 내린다고 믿었다. 


 아테네에서 행해지는 아도니스 축제 중 특이한 것으로 '아도니스의 정원'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조그만 화분에서 빨리 자라고 빨리 시드는 식물을 재배하는 것을 말한다. 이 풍습은 키프로스의 그리스도교도들 사이에서 아직까지도 행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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