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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원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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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0
서툰 예약문화

 

 서툰 '예약문화'는 '코리아 타임'과 함께 한국인의 2대 수치로 세계에 소문이 나 있다고 한국인 스스로가 자인, 개탄하고 있는 버릇이다. 이 두 가지는 선진과 후진을 가르는 문화잣대로서 현대를 살아가야 할 문화 민족이라면 분명 부끄러움이다.


 그렇다면 원인 없는 결과는 없을 터이니 우리 민족의 습성 속에 서투를 수밖에 없는 요인이 필시 있다 할 것인데,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혹시 우리 민족의 특성으로 보이는 '구속을 싫어하는 자유분방함'은 아닐지? 잘못 짚은 진단일까?


 그러나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단점으로 보이는 이 특성도 실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장점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우리의 튀는 개인주의적 이기주의가 무질서를 낳는다는 면에서는 분명 단점이지만 강한 개성의 다양성을 얻는다는 면에서 보면 민주성향이라는 장점이 된다.


 툭하면 "한국 사람은..." 하고 나오는 우리의 자조적 탄식은 많은 것들이 단점으로 보이기 때문이고, 우리 것이 최고라는 자만적 민족의식은 어떤 것들이 장점으로 부각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잘남과 못남도, 자랑과 부끄러움도 보는 눈의 차이,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 된다는 양면성으로 보면 이해는 넓어진다. 이런 양면성의 눈으로 단점이라고 개탄하고 있는 우리의 서툰 예약문화와 코리아 타임을 살펴보자.


 임진왜란 때 관군은 허수아비였으나 자발적 의병활동은 눈부셨고, 조선의 정치지배세력은 부패되고 무력하여 기어이 나라를 말아먹고 말았으나 끈질긴 백성의 저항은 불길처럼 일어나 목숨을 초개처럼 버렸다.


 동학혁명, 3.1만세, 4.19혁명, 5.18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중궐기는 조직의 힘이 아니라 자연 발생적 봉기였고, 가깝게는 지난 '한.일 월드컵' 때의 "대-한민국!" 그 함성도 조직의 명령에서가 아니라 자의적 참여라는데 더욱 값지고 빛나 보인다.


 구속을 싫어하는 자유분방함에서 분출되는 이런 자발적 참여들이 자칫 콩가루 무질서로 흐르기 쉬운데, 어느 때보다도 더 좋은 질서를 보여주고 있었다는 점이 묘하고 희한하다. 나라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놀랍게도 시민질서의식이 높아져 범죄율이 도리어 낮았다는 예가 어찌 예삿일이겠는가.


 판소리에는 추임새라는 일종의 장단 같은 "얼씨구 좋다!"하며 흥에 겨워서 내는 소리가 있다. 목사의 설교에 감동하여 연신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교회풍속도도 같은 맥락이다. 원로 코미디언 송해 씨가 이끄는 전국노래자랑을 보면 무대 위의 출연자들보다 흥겨워 어깨춤 추는 관중석이 더 볼만하다. 무대와 관중석이 따로 노는 짜여진 분위기가 아니라 함께 어울리는 잔칫날 같다.


 그랬다. 우리의 옛날(별로 옛날도 아니다.) 혼인 잔치, 회갑잔치, 심지어 초상집은 근방의 거지들까지도 참여하는 한 마당 축제 분위기다. 예약과 초대 그리고 시간 엄수로 진행되는 현대식(서구식) 결혼식, 회갑연, 장례식 그 경축식 같은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예약과 초대와 시간 엄수라는 지극히 서구적 세련미는 문화인다움을 풍기기는 하지만 자의보다 타의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언제나 자의식의 참여에 익숙하게 버릇들은 우리가 서투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데 어찌 흉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단지 우리 민족성향에 맞지 않아 결함은 예증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가고 싶을 때와 가야 할 곳은 남이 결정할 타의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가 결정할 자의의 영역인 것이다. 친구 딸 결혼식 참석 여부는 친구 쪽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에 딸린 것이다. 꼭 가야 할 곳이라 마음이 들어가 보니 내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불청객 신세가 되었을 때의 민망함, 이는 친구 쪽에서 스스로 절교를 선언한 꼴이 돼버린다. 이 어찌 황당하지 않은가.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에 얼른 따르면 그만이지만 그게 쉽지 않으니 탈일 수밖에.


 식당예약도 그렇다. 먹고 싶을 때와 먹고 싶은 메뉴는 나 자신도 예측이 안 되는 그때마다 문제다. 어제는 냉면이, 오늘은 자장면이 먹고 싶은 입맛의 변덕을 무시한 식당예약은 순간순간의 기분에 사는 한국인에게는 신체적 리듬을 무시한 폭력일 수 있다.


 눈으로 먹는 일본인이나, 격식을 중요시하는 서양인은 신체적 리듬의 영향을 덜 받을 터이니 한 달 후, 1년 후의 식당예약이 가능할는지 모르나 맛으로 먹는 기분에 사는 우리에게는 아무래도 거추장스러운 절차임이 분명하다. 한 달 후의 입맛은 그때의 사정이다. 비빔밥이 먹고 싶을지 냉면이 먹고 싶을지는 그때의 일이다.
 

아기자기하게 다듬어진 일본 정원은 눈으로 걷고, 웅장한 중국 정원은 그 스케일로 걷고, 자연 그대로의 우리 정원은 마음으로 걷는 우리에게 계산된 예약문화는 궁합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나는 흥에 취하기 위해 춤 구경을 가는 데 서양사람은 감상하기 위해 발레 구경을 간다. 그래서 우리는 춤 구경하다 신이 나면 함께 어우러져 추기도 하는데 서양인의 발레 구경은 조용함이 생명이다.


 한국 춤은 기분으로 추는 흥(신명)이 생명이고, 일본 춤은 모양으로 추는 인형극 같고, 서양 춤은 이론으로 추는 것 같아 기교적으로 보인다. 나는 긴장을 풀기 위해 춤 구경을 가는데 이네들은 긴장을 얻기 위해 가는 듯 보인다. 발레, 오페라 등의 공연장은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무덤 속 같은 분위기에서 분침의 시간표에 의해 진행된다.


 사람들은 일상적 일과에서 받는 긴장을 풀기 위해 놀이라는 여유를 즐기는 것인데 그 놀이에서 되레 긴장(스트레스)을 받는다면 난센스다. 더욱이 운동은 심신의 긴장을 풀어주는 최선의 방법이라 알고 있는데, 소위 신사도의 엄한 매너로 진행되는 골프는 되레 스트레스만 잔뜩 받고 온다. 소리도 죽여가며 일거수일투족 남 눈치 보며 하는 운동, 그게 운동인가 고역이지. 그래서 기분에 사는 한국인의 골프 매너가 매끄럽지 못한 것은 당연할는지 모른다.


 구속을 싫어하는 자유분방함의 생활습성에다 기분을 참지 못하고 그때그때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기질로 봐 아마 세계에서 스트레스를 가장 적게 받는 민족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 우리는 격식을 귀찮아하고, 매듭은 풀어야 하고, 한도 풀고, 해산의 고통도 몸풀기로, 악귀는 살풀이로, 지루함까지도 심심풀이로 풀며 산 풀이의 천재들이다.


 순서도 뒤죽박죽이요, 감정 노출도 제멋대로라 외국인의 눈에는 박살이 날듯 불안하고 위태해 보이는데 어느 시기를 지나고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가지런히 제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희한하단다. 이를 일러 역동적이라 말하고 있다. 오랜만에 한국엘 갔을 때 엉킨 실타래처럼 어수선하고 허둥대는 듯한 무질서가 불안하게 보이는데 역동적이라는 변명을 들으면 그를 듯 보인다.


 어찌 되었거나 민주자본주의를 택한 남한은 부자로 잘사는데 공산독재를 택한 북한은 거지 나라가 돼버렸는데 이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우열로 따질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 풀어주느냐 옭아매느냐로 이미 판가름은 뻔한 결과로 예증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한민족의 성향에는 옥죔보다 풂이 궁합이 맞기 때문이다. 자유분방함의 한민족에게 일사불란한 군대식은 치수 틀린 신발을 신은 격이라 십 리도 못 가 발병이 날 수밖에 없다.


 한민족은 똑같은 봉급(특히 배급제도)보다는 도급이라야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을 김일성은 몰랐던 것이다. 조선 500년 가난의 유산도 그 지독한 승유사상(주로 성리학)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자유분방함의 민족성을 죄어 눌러 민족적 역동성(에너지)을 발산 못 하게 한 결과로 본 것이다.


전체주의적 성향이 강한 일본인 정서에는 오히려 공산주의가 쉽게 먹혀, 혹 선택했었다면 동구 공산 국가들처럼 실패의 쓴 잔이 아니라 공산이념이라는 사회주의적 꿈을 멋지게 이루어 냈을지 혹 모를 일이다.


 전번 ‘한.일 월드컵’ 때 한국과 일본의 분위기 비교에서도 엿볼 수가 있었다. 일본은 질서가 만점으로 났으나 분위기가 냉랭한 경축식 같은 대회였었다고 하는 데 반해 한국은 나라가 요절날 듯 그 열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요란한 잔치 같은 대회를 치렀다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일본은 월드컵대회를 했으나 한국은 월드컵잔치를 벌였던 것이다. 일본이 눈으로 치렀다면 한국은 기분으로 치렀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풀어놓으면 잘해내는 민족적 장점의 최대치의 수확물이 지난 2002년 월드컵이라 하겠는데, 이 우리 민족성향을 잘 파악 활용한 인물이 바로 ‘히딩거 감독’이다.


 위계질서의 화합이 아니라 개성을 발휘시킨 융화의 힘 그 적절한 민족적 에너지의 장점의 활용이라는 점에서 히딩거감독은 거장이 된다.


 어찌 세상 물정을 2분 법적 단순잣대로 재단할 일인가. 이것과 저것의 종합적 관계로 봐야 마땅하다면 우리의 서툰 예약문화나 코리아 타임도 그럴 수밖에 없는 연유가 있다 생각되어 우리의 민족성향을 바탕으로 해서 살펴봤다.


 하지만 21세기 오늘 이 시대는 지금까지 살아온 긴 역사의 시대와는 완연이 다른 격변의 시대다. 시간개념과 예약절차는 필수 생활 기본이다. 내가 먼저라는 이기주의적 서툰 줄서기식 같은 고약한 성질의 고집으로는 부패의 기생충만을 기생시킬 뿐 오늘을 살아가는 세계시민으로서의 덕목에서는 분명히 낙제점이다.


 새 시대 문화민족으로 거듭나는 민족성 탈바꿈이라는 산모의 고통을 견디는 노력 없이는 만년 후진적 떠들썩한 모습으로 세계인들에게 폐를 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21세기를 함께 살아가야 할 세계시민으로서의 책무를 가벼이 여길 수 없지 않나 싶다. 내식대로의 삶에서 자긍심을 갖는다는 오기를 부린다면 더 할 말은 없지만.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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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9
신동, 천재 그리고 노벨상

 

 신동, 천재가 노벨상으로 이어지기를 우리처럼 바라는 국가도 아마 들물게다. 신동,천재가 소문이나 여론의 부추김에 의해 대성하는 것이 아니라면 평범 속에서 스스로 여물도록 내버려 둘 일이다. 일상적 삶 속에서 자기일에 성실히 살아가는 자의 천재성이야말로 사회의 소금이 되는 참 천재성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공명심의 천재성은 사회에 보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있어 해가 되는 사회악의 씨앗일 수가 더 많다는 것을 나는 세계영웅전을 읽으면서 발견한다. 영웅전을 장식하고 있는 그 많은 전쟁 천재들의 야망의 결과는 무고한 인민들의 피로 지구촌 강산을 물들였을 뿐이다. 때론 신의 욕심까지 가담되면 그 비극은 극에 달한다.


 우리의 성웅’ 이순신’을 내가 존경하는 이유는 개인적 공명심이나 야망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만 그 열악한 조건에서 24전 24승이라는 천재적 전쟁기적을 만들어낸 하늘을 닮은 분이시기 때문이다. 평범 속에서 올곧게 살다 늦은 나이에 쓰인 그분의 천재적 영웅전은 왜란이라는 위란이 탄생시킨 것이지 그분의 야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동서고금 세계 전쟁천재 영웅들은 다만 영웅이 되기 위해 지구촌을 분탕질했지만 충무공은 평범 속에서의 행위셨기에 영웅을 넘어 성웅이라 높임을 받는 것이다.


 신동, 천재가 그 자신은 물론, 사회에 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더불어 사는 일상적 평범을 먼저 버릇 들게 하는 것이 우선이 되었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박주영’ 이라는 축구천재 출현으로 가뭄에 단비 만났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풍선처럼 띄우고 있다. 축구는 11명이 호흡 맞춰 뛰는 운동인데 더불어 함께라는 일원의식을 망각하고 개인 명성에다 욕심까지 목에 차면 헛발질로 될성부른 떡잎이 시들까 걱정된다.


 또 한분있다. 신문마다 방송마다 경쟁하듯 띄우고 있는 이름인데 ‘황우석’교수라는 걸출한 인재 등장으로 온 국민이 노벨상감이라 흥분하고 있다. 실험실을 지켜야 할 학자를 방송국마다 얼굴 내기 경쟁이고 국가적 큰 행사때마다 불러내며 뉴스가치 1호로 띄우고 있다.


 심지어 황교수 노벨상 후원회까지 만든다 하니 그 열기가 짐작이 된다. 하긴 ‘노사모’의 요란에 의해 대통령까지도 만들어 낸 나라이니 ‘황사모’후원회에 의해 노벨상인들 못받을까 싶긴 하지만 좀은 차분해 주었으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노벨상은 ’구하라 얻을 것이다’라는 기도나 갈망으로 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상이란 타겠다는 목적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일을 성실히 감당하고 있는 과정의 부산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요란한 로비에 의해 욕심으로 얻어진 상보다는 실험실에 묻혀있는 한 무명의 과학도가 어느날 자고 일어나보니 노벨상이 주어지더라 라는 상이 그래서 더 값지고 빛나 보이는 것이다.


 신동, 천재라는 될성부른 유망주의 빛이 발하는 것을 원하다면 평범 속에 둘 일이다. 기대는 부담이 되고, 부담은 집이 될 뿐이다. 최선의 도움은 평상심으로 일하게 놔둘 일이다.


 포항공대 교정에는 갈릴레오, 뉴턴, 아인슈타인의 흉상이 만들어져 있고 그옆에 제 4의 천재 과학도의 탄생을 바라는 뜻으로 빈 받침대만 하나 더 만들어 놓았다는데, 학생들에게 욕심을 돋우는 부담만 줄 뿐이다. 목적 지향적 우리 교육의 치부를 드러내 보인 예라 하겠다.


 목적만을 위해 뛰는 사람들보다 과정에 충실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얼마나 보기에 아름다운가. 갖겠다는 충혈된 눈빛보다 하나하나 쌓아가는 즐거움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눈빛이 얼마나 순수한가. 순수함, 이보다 더 값진 보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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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2
쌀의 형이상학

 

 쌀에다 어려운 철학적 용어를 붙인 것은 멋 부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 쌀은 먹거리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뜻에서다.


 김일성 주석이 입버릇처럼 북한 인민에게 약속한 과업의 목표가 쌀밥과 고깃국에 기와집을 올리고 비단옷을 입히는 것이라 말했다는 데서도 잘 표출되어 있다. 


 이 꿈은 북한의 통치이념이기 전에 5천 년 우리 역사에서 한 번도 실현해보지 못한 나라 다스림의 숙원이기도 했다. 다행히 남한은 한 군사독재자에 의해 벌써 지난 세기 70년대 중반에 깔끔히 달성했지만, 불행하게도 북한은 김일성 생전에도 이루지 못했고 그의 아들 대로 넘어온 오늘까지도 진행형 유업으로 남아 있는데 상황은 더 악화하여 인민이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소문이다.


 "밥을 먹었느냐?"가 아침 인사말이 되리만큼 먹는 문제가 절박한 백성에겐 그래서 쌀밥이 정치의 목표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인간 기본 삶의 형태가 '의식주(衣食住)'라 하는데 우리 민족에게는 그중 식(食)이 이처럼 시급한 문제가 되어 있었다. 특히 쌀은 그 중심에 있었고, 우리 문화를 이끄는 상기둥 역할을 담당하게 되어 논과 밭은 곧 생명줄이라는 신앙적 대우로 토지라는 의미가 신성시되고 쌀은 하늘이 준 은총이었다.


 쌀이 재산의 기준이 되고, 돈이 되고, 세금이 되고, 품삯이 되고, 물건 값이 되는 쌀이 문화를 주도하는 쌀 문화 사회였다.


 이렇게 쌀은 우리의 생명줄이었고 근본이었다. 금본위가치가 아니라 쌀 본위가치 사회였다. 인부의 노임도 쌀이었고, 보부상의 물물교환 시의 기준도 쌀이었고, 거지 동냥도 쌀이나 밥이었고, 승려들도 집집을 돌며 동냥하듯 시주 쌀을 보시하러 다녔다.


 천석꾼, 만석꾼 볏섬 지기로 부를 가늠하는 농경사회의 자본개념으로서의 쌀은 절대적 기준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고판다는 통상의 우리말로는 쌀 거래에서만은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반대의 의미로 거래된다.


 쌀을 팔 때는 "쌀을 낸다"하고 쌀을 살 때는 "쌀을 산다"가 아니라 "쌀을 판다"고 말한다. 이때만은 화폐(돈)가 기준이 아니라 쌀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라는 의미를 알면 쌀에 대한 우리의 경외심을 읽을 수가 있다.


 시장에 가서 쌀 한 말을 분명히 샀는데 "쌀 한 말을 팔았다"니 희한한 어법이다. 그러나 간단하다. 쌀이 당당하게 화폐가치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쌀을 산 것이 아니라 돈이 쌀에 팔리고 쌀을 가지고 온 것이다. 쌀의 주인의식(자존심)을 지켜 주려는 마음씀이 어떤가를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그리고 우리가 통산 "너 밥 먹었느냐?"고 할 때의 밥은 한 그릇의 밥만이 아니라 부식까지 포함된 한 끼를 의미한다. 밥 한 그릇을 먹기 위해서는 분명히 김치, 국 같은 부식을 곁들여 먹었는데도 부식은 완전히 엑스트라로 취급당하고 만다. 말 그대로 찬밥 신세다. 그래서 우리식으로 부식이나 간식이 되는 빵 샌드위치 같은 것으로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끼니를 때운 기분이 안 든다고 하는 분들이 많다.


 해방 후 쌀 파동이 나자 하지 군정장관이 "왜 한국인은 쌀만 먹느냐? 고기도 먹고 국수도 먹고 하면 좀 좋으냐?"고 말했다는 웃기는 일화도 그래서 생길 만도 하다.


 서양의 식탁을 보면 모든 음식 하나하나가 독립된 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의 식탁에서는 밥만이 주인 역할이 되고 있으므로 식탁이 아니라 밥상이고, 그냥 숟갈이라 하지 않고 밥숟갈이라 하고, 그릇이면 될 것을 밥그릇이라 굳이 밥을 앞세운다. 서양 사람인 하지 중장의 말이 그래서 이해가 된다. 단 그 귀하고 비싼 고기를 예로 든 것이 바보스럽기는 하지만.


 이런 의미에서 "떡(빵)으로 살 것이 아니오"라는 성경 구절의 우리말 번역은 "밥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라 고쳐져야 맞다.


 그런데 큰 문제가 났다. 그것도 심각하다. 자유무역을 내세워 5천 년 의식을 바꾸라는 외부 압력에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이제 겨우 쌀밥과 고깃국 소원을 푼 지가 얼마인데 쌀농사를 한국 땅에서 안 해도 된다니 이 어인 일인가.


 하루에 쌀로 지은 세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사는 쌀 식성이 유별난 민족의 식탁을 남의 나라 땅에 의존하여 팔아(사)먹어야 하다니 아무래도 불안하고 기이하다.


 공산품 만들어 수출해서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수지타산 때문에 농부도 농부지만 말짱한 농토를 그냥 생으로 묵힌다는 것은 미래국토균형발전을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엄마 Korean은 왜, rice만 먹어야 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둘째가 밥을 먹다 말고 제 엄마에게 따지듯 묻는다. 
 옆에서 내가 "왜 밥이 맛이 없니?" 하고 묻자, 


 "그게 아니고 캐네디언들은 햄버거, 프렌치프라이, 고기, 사라다, something 다른 것 change 해서 먹는데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아침 점심 저녁, 밥 김치 국, 밥 김치 국, 그래! 아빠는 좋아?"


 작년에도 금년에도 어제도 오늘도 아침, 점심, 저녁, 변할 줄 모르는 단조로운 식탁메뉴가 어쩔 수 없이 길들어 먹으면서도 이곳 서양 친구 집의 다양한 메뉴가 부러운 반서양 아이인 딸에게 나는 엉뚱한 설명(변명)을 할 뻔했다.


 "이렇게 먹는 것도 큰 복이란다. 매일 흰 쌀밥을 그것도 하루 세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자이면 행복인 줄 아니? 아버지가 너만 할 때는 아침은 순 꽁보리밥에 점심으로 보리죽, 저녁은 운 좋으면 수제비.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그렇게 먹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단다. 때로는 그마저 없어 나무껍질을 벗겨 먹었고, 쑥을 뜯어 밀가루 묻혀 버무려 끼니를 때운, 단지 살기 위해 연명해야 하는 먹음만이 있었단다. 너희들은 고기 없는 밥상을 상상해본 일이 있느냐? 오늘은 무엇으로 허기진 배를 채울까가 아니라 어떤 맛있는 것으로 먹을 까가 너희들의 관심이지 않으냐?"고.


 그러나 나는 알아들을 수도 자랑일 수도 없는 과거 가난의 유산을 무슨 큰 훈장처럼 떠벌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과거(가난)와 오늘(풍요)과의 비유에서만 이해가 되는 상대적인 잣대인 것을 과거(가난)가 없는 아이들에게 이해시킨다는 것은 내가 희극배우가 되기(에) 십상이다.


 그렇다. 배고픔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고 자란 우리의 과거가 무슨 자랑이라고, 춘궁기니, 보릿고개니 하는 비참한 언어의 의미를 우리에게 물려 가르쳐준 것은 순전히 조상의 허물이라 탓할 진데, 우리가 우리의 2세들에게 탓함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1세의 도리를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하게 된다.


 남 잘 때 같이 자고, 남 놀 때 같이 놀 수는 없다. 남의 손이 깨끗할 때 내 손은 기름때가 묻어 있어야 하고, 남이 싫어 버린 일을 주어서 일을 해야 하는 이 처신이 결코 즐겁고 좋아서가 아니라 과거의 가난이 뼈저렸기에 감기는 눈을 비비며 새벽 일찍 가게 문을 열게 된다.


 "그러하오나 하늘이시여! 결코, 돈만 아는 돈벌레가 되지 않게 도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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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8
샌드위치 예찬

 

 50년 서양에 살며 느낀 이곳 문물 중에서 딱 하나를 고르라면 두 말 하지 않고 샌드위치를 꼽을 만큼 나는 샌드위치를 좋아한다. 순종 동양인이면서도 순종 서양 음식인 샌드위치를 즐겨 먹는다는 것, 참으로 희한한 먹성이다. 서양에 이민 와 살고 있는 처지에서 보면 이 얼마나 다행한 축복인지 모른다. 


 상상을 해보라. 서양에 와 살면서 샌드위치를 모래알 씹듯이 목청 너머로 넘기기를 힘들어 한다면 얼마나 이민생활이 불편하고 고달플까? 내 경험으로 미루어 동정이 가는데, 그런 분들이 내 주위엔 뜻밖에 많다.


 나는 오랜 이곳 생활에서 적어도 하루에 한끼는 샌드위치를, 그것도 즐겨 먹고 사니 이민살이를 그만큼 쉽게 해준 고마움으로 오늘은 샌드위치 예찬을 아낌없이 쏟아내 볼까 한다.


 십여 년 전 모국방문 때의 일이다. 비행기 옆 좌석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국인 부부가 함께 가고 있었다.

팝콘 먹는 재미로 영화관에 간다는 어느 어린이 만화 주인공처럼 나는 기내음식 먹는 재미로 비행기를 탄다고 하리만큼 항공사에서 정성으로 제공해주는 별미를 주는 족족 싹싹 핥아먹는데 내 옆좌석의 젊은 부부는 둘 다 이 세계적인 별미를 안 먹고(못 먹고) 봇짐에서 싸 온 김밥을 꺼내먹는다. 이런 고급 서양음식도 못 먹는다면 샌드위치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더욱 희한한 것은 부부가 약속이나 한 듯 못 먹는다니 이런 천생연분이 또 있나. 로마에 갔으면 스파게티쯤 맛있게 먹으면 얼마나 좋겠나만 생리적 형상이라 강제로 먹일 수도 없는 처지고 보니 그저 딱할 뿐이다.


 나는 이민 초기 공장에 다닐 때 이곳 공사판의 노동자들처럼 플라스틱 런치박스를 들고 다녔는데, 그 안에는 샌드위치 두 개, 바나나 하나, 사과 하나, 오렌지 하나에 보온병이 들어있고, 그리고 작은 문고판 책 한 권이 한쪽 공간을 차지한다.


 이런 런치박스 속의 메뉴는 가난했던 초등학교 시절 푸짐하게(?) 차려진 소풍 점심 도시락의 메뉴와 많이 닮아 있었다. 흰 쌀밥이 샌드위치로 고구마가 바나나로 바뀐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매일 소풍 가는 기분으로 런치박스를 들고 다닌 셈이 되고 소풍 때의 점심처럼 매일 푸짐한 점심을 먹은 셈이 된다.


 그 후 20여 년 넘게 편의점을 운영했는데, 가게에서의 샌드위치의 역할 또한 지대했다. 캐나다의 편의점 6~7할은 한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데 이곳 가게의 생리는 장시간 서서 손님을 쉼없이 상대해야 한다. 한국 음식은 개성이 강한 한국인을 닮아서인지 세계 어느 나라 음식보다 냄새가 독특하다. 상점에서 한국 음식 냄새를 풍기는 것은 들어오는 손님을 "나가시오" 하는 신호와 같다. 파산하겠다는 각오가 아니라면 한국 음식 먹는 것을 삼가야 한다. 그래서 샌드위치를 죽어도 못 먹겠다는 분들은 배고픔을 오래 참았다가 집에 들어가 배불리 먹곤 해서 위장병을 얻은 분들이 많다.


 나는 샌드위치를 아침에 많이 만들어 계산대 서랍에 넣어놓고 손님이 있거나 없거나 심지어 손님을 받으면서도 먹는다. 그러니 샌드위치는 나같이 가게 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음식이 아닌가 여겨질 만큼 고마운 음식이다.


 샌드위치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며, 옆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만들기 쉽고, 변질이 잘 안 되며, 종류 또한 다양해서 좋다. 전문가적 요리 솜씨가 없어도 누구나 쉬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인의 음식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초등학생이면 자기 샌드위치 쯤은 스스로 만들어 먹는 것이 이곳 가정이다.


 만드는 시간도 짧을 뿐 아니라 재료 또한 간단하다. 버터, 햄, 쨈, 피넛버터 같은 것을 종류도 다양한 빵에다 구미에 맞게 바르고 얹어 먹으면 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도서관에서도, 병원 대기실에서도, 공원에서도, 심지어 걸어가면서도 먹을 수 있어 좋다.


 무엇보다 샌드위치는 변질이 잘 안 되고, 보관과 지참이 편리해서 좋다. 왁스 종이로 싸거나 비닐봉지에 넣고 다니다 먹은 후 버리면 된다.


 더욱 샌드위치가 내 맘에 쏙 드는 기막힌 이유는 값이 엄청(나게) 싸게 먹힌다는 데 있다. 아니 더 큰 이유가 있다. 샌드위치는 소화가 잘된다는 장점이 있는데, 어릴 때부터 위장병에 시달리고 있는 내겐 참으로 구세주와도 같다.


 아니 진짜로 샌드위치의 효용적 가치에 감사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 곤히 잠들어 있는 아내의 새벽잠을 방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 기막힌 이유를 어찌 빼놓을 수 있단 말인가. 시어머니보다, 아이들보다, 남편보다 새벽 일찍 먼저 일어나 밥을 지어야 하는, 고추보다 더 맵다는 시집살이에서의 해방, 가히 혁명적이다. 이 혁명을 가능케 한 것은 순전히 이 샌드위치의 위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아버지는 물론 아이들도 제각기 조용히 일어나 제 샌드위치를 제 스스로 만들어 먹고 싸 가지고 출근을 하고, 학교에 간다.


 그러고 보니 오래된 신문기사 한 토막이 생각난다. 미국의 포드 부통령이 닉슨 대통령의 탄핵 하야로 대통령이 되어 아직 백악관으로 이사도 못하고 자택에서 첫 대통령직을 수행하러 가는 날 새벽 혼자 조용히 일어나 스스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출근했다는, 우리 동양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 따지고 보면 샌드위치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가히 샌드위치 당신은 여성해방을 가능케 한 1등 공신으로서, 특히 이곳 우리 한국의 여성으로부터 감사와 찬사를 받아 마땅한 충분한 자격과 이유가 있다.


 나는 지금 내가 만든 남 보기에는 별로 맛있어 보일 것 같지 않은 샌드위치 한쪽을 맛있게 먹으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성을 주신 하늘에 감사하는 맘으로 이 글을 쓴다.


 "샌드위치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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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0
비빔밥

 

 냉장고 문 열어 먹다 남은 것들 이것저것 넣고 고추장 한 숟갈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비비면 한 끼 훌륭한 비빔밥이 된다. 계란프라이 해서 얹으면 더 좋고.


 이곳 토론토는 이민 도시답게 각 민족고유 음식점 UN본부라 해도 가히 손색이 없다. 그런데 여러 가지를 섞어 볶거나 끓여 먹는 음식은 있으나 우리처럼 갖가지 무친 나물들을 섞어 비벼먹는 비빔밥은 아직 보지를 못했다. 


 우리나라 항공사들이 기내식 비빔밥을 개발해 내놓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인기라 한다. 하긴 이곳 태생인 우리 아이들도 한식 중 불갈비와 비빔밥을 최고로 친다.


 세계여행을 하다 보면 국경선을 넘을 때마다 말이 달라지고 음식이 달라진다. 그러면서도 음식은 이웃사촌답게 비슷하게 닮아 있는 것이 보통인데 한국 음식은 이웃 일본과도, 중국과도 확연히 다르다. 맛과 냄새와 색깔의 강렬함이 타민족들이 쉽게 접근이 안 된다. 쉽게 접근되는 일식, 중화식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음식과 민족성이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색깔과 맛에 쉽게 접근이 되는 일식처럼 그들은 상냥하게 보여 쉽게 호감이 가는데 반해 우리음식은 인상부터 강렬한 김치 고추장처럼 튀는 개성으로 호감은 들 갈는지 모르나 일단 그 맛에 절여들면 또 찾게 만드는 그 뭔가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강한 개성들의 돌출로 배가 산으로 가는가 싶다가도 어느 시기를 지나고 보면 가지런히 모양새를 내고 있는 것이 마치 비빔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먹거리 재료들을 섞어 볶거나 끓여 먹는 찌개류 음식은 각개 재료들이 다른 재료들과 섞이면서 자신의 고유 맛들이 서로 간에 스며들어 새로운 맛을 내는데 반해 비빔밥은 각개 나물들이 자기고유의 맛(개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다른 맛(개성)과 어우러져 내는 조화의 맛이 생명이다.


 찌개류가 유화라면 비빔밥은 모자이크화라 할까? 아니다 그보다는 오케스트라가 더 적절하다. 각 악기들의 독립적 고유 소리들이 서로간에 방해 받지 않으면서 내는 여러 악기소리의 조화, 너무도 비빔밥에 닮아 있지 않은가.


 나는 여러 민족들과 오래 더불어 살아본 결론은 우리민족성이 개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 개성들이 내는 강한 목소리들로 해서 때론 사회가 혼란스럽게 보여 우려되긴 해도 목적이 한 방향으로 같아지면 엄청난 힘으로 나타남을 보게 된다.


 일본의 정원엘 들어가 보면 나무 한그루, 돌멩이 하나도 우연히 거기에 있거나 자라고 있는 것이 없고 정원이라는 전체적조화(和)를 위해 인공적으로 옮겨지고 다듬어진, 전체를 위해 개성이 무시되고 있는데 반해 우리의 정통 정원인 비원에 들어가 보면 돌멩이 하나 나무 한그루도 사람의 손이 간 흔적이 보이지 않고 제멋대로 놓이고 자라고 있는 듯 한데도 전체적 어울림에는 아무런 흠이 없다. 되레 각 개성의 강렬함이 전체를 압도 하듯 하면서도 묘하게 전체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지극히 비빔밥 적이다.


 일본 음식엔 비빔밥 비슷한 것도 없다고 하는데, 그 민족성으로 봐 당연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집단을 위해 자기 개성을 죽이고 동화 되는 것을 화(和) 정신이라 해서 으뜸의식으로 치는데 반해 우리는 참을지언정 자기를 포기하려 들지 않는 개성을 중시한다. 전체보다 내가 중요한 콩가루 같아 불안하나 일부만을 보지 말고 비빔밥처럼 버물려 씹어봐야 한국 진 맛을 안다.


 임란 때 관군은 미약했으나 의병은 눈부셨고, 부패한 관리들에 의해 나라는 망했으나 독립투사들은 용감했다. 나라 다스림을 잘못하여 IMF를 당했으나 장롱 속의 금은붙이를 꺼내 구한 것은 소외되고 짓밟힌 민초들이었다. 월드컵 때의 그 함성도 만들어진 조직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생적 함성이었다. 일본은 월드컵 대회를 했다면 우리는 월드컵 잔치를 했다.


 물론 이제쯤은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성숙된 줄서기 문화, 그 질서의식까지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비빔밥문화 그 개성들의 조화에 의해 늘 밝은 쪽을 향해 정리되리라 나는 굳게 믿는다. 


 우리의 통일도 전쟁이라는 강압적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손에 손잡고 어울려내는 비빔밥 같은 평화의 모습으로 그렇게 오리라 희망하고 있다.


 이번의 광화문 백만 시민의 질서가 없는 듯 질서를 내는 함성의 힘도 같은 맥락의 코리언만이 해낼 수 있는 보기좋은 모습이다. 코리언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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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4
먹기 타령

 

 살고 있다 해서 생물이고 생물이기에 먹는다. 그리고 생물이기를 포기 당하는 날 먹기를 멈추고 어떤 형태로든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된다. 이는 한치 어긋남이 없는 자연의 순환질서인 운명적 과정이다. 


 생물이기에 먹어야 하는 이 삶의 과정은 기본적으로 성장(자람)과 번식(섹스)에 관여되어 있으며, 무의식 의지라는 끈질긴 본능적 활동 기간이다. 이 못 말리는 먹기와 성장과 번식활동이 이성적 의지가 아니라 본능적 의지라는 데서 문제는 간단치가 않다.


 다행스럽게도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식물에서는 이 못 말리는 본능이 무한 자유의지가 아니라 자연질서에 엄격히 통제된 데 반해, 인간이라는 생물만은 자연법 질서의 통제를 거부하는 몸짓을 보이면서 탈은 끝 간 데를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인간 스스로의 윤리라는 자제력 장치가 작동은 하고 있긴 하지만 너무도 미약하여 고삐 풀린 망아지 꼴이다. 때와 장소를 분간 못 한 욕망은 한계가 없다.


 동물은 발정기 때만이 교합이 가능하지만, 인간은 연중무휴 밥 먹듯이 한다. 동물은 배가 부르면 먹음직한 먹이가 있어도 잡아먹지도 저장하지도 않는데, 인간은 먹고 또 먹고, 훔쳐 먹고, 사기 처먹고, 곳간에 쌓고 또 쌓는다.


 가난할 때야 살기 위해 먹는 연명이었지만 살만해지자 골라 잡아 즐기는 먹기 행각 사치가 하늘 끝 간 데를 모른다. 시장이 반찬인데, 진수성찬에 길들면서 고깃국도 투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엇을 먹을까 보다 먹을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었는데 말이다.


 먹거리가 있고 그것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건강을 가진 것,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트림하고 팔을 베고 누운 팔자, 무엇을 더 바랄 행복이냐 했는데.


 나는 어릴 적부터 식탐이 많아 "먹돌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먹이에 대한 집착이 남달라 내게 주어진 하루 3끼는 하늘이 준 특권이라 여겨 끈질기게 챙겨 먹었었다. 어쩌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 끼를 건너 뛰어야 했을 때는 그것이 타의든 자의든 슬퍼했었다. 


 놓친 한 끼는 내 생에서 다시는 찾아 먹을 수 없는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서고, 건강이 나빠 못 먹으면 그래서 슬프고, 가난 때문이면 그 더욱 슬펐다. 만약 강제에 의해서라면 아마 나는 목숨 걸고 저항했을 것이다. 아니 저항할 것이다. 인권적 문제의식 이전에 생존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살겠다는 동물적 방어 의식이라 깔봐도 좋다. 이보다 더 절실한 저항의식이 어디 또 있겠는가. 그래서 감히 말한다. 어떤 물리력도, 그것이 인력이든 자연의 힘이든, 생물의 먹을 권리를 박탈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그것은 죄악 중의 죄악이요 폭력 중의 폭력이다. "먹을 때는 개도 안 때린다."는 우리 속담은 절대 진리다.
 정치의 기본 틀은 백성을 굶지 않게 하는 것이다. 3끼를 못 먹이는 정권이 있다면 그 정권은 다스리기를 실패한, 아니 포기한 정권이다.


 과거 우리에겐 쌀밥과 고깃국은 특식 중의 특식이었고, 가락국수 한 그릇, 만두 한 접시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아무리 고급음식도 그저 일상적 한끼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별미다운 별미의 맛을 잃었다는 건 풍요가 준 불행이라 해도 된다.


 아니다. 바른대로 말하자. 이보다 더 한 행복이 어디 있는가? 행복에 취한, 행복의 극치인지 모른다. 이때가 가장 위험한 때이지 싶다. 건강할 때 건강을 낭비하기 쉬운 것처럼 풍요의 낭비, 이것이 바로 타락의 초대장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배부를 때 배고픔을, 건강할 때 아픔을, 행복을 통해 불행을 알기는 바늘구멍에 낙타 지나기만큼 어려운 경지라는 것을. 이 어려운 경지를 터득하는 일이야말로 참 종교의 심성에 접근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나는 요즘 새삼 느끼고 있는 행복이 있다. 집에서 두세 가지 반찬으로 밥을 먹을 때인데, 입안에서 밥 특유의 달짝 고소한 맛을 느끼며 먹을 때의 그 감칠맛, 나는 이 맛을 지상 최상의 맛이라 명명(命名)하고 있다. 밥과 국 그리고 두세 가지 반찬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맛의 오케스트라 향연(饗宴), 가히 맛의 예술이다. 이는 대장금의 왕의 진수성찬 수라상에서는 결단코 맛볼 수 없는 맛이다.


 이 단출한, 그러나 환상적인 밥상을 매끼 먹을 수 있다는 풍요와 더욱이 건강을 허락받았다는 사실에 눈물겹도록 행복해한다. 아마 나는 죽는 그 날 마지막 아침 밥상도 맛있게 먹고 갈 것이다. 그리고 눈을 감으며 내일 아침 밥상을 더는 대할 수 없음을 많이 또 많이 서운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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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상차림(食卓) 혁명

 
 나처럼 남의 나라에 오래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그 나라 문물에 동화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 동화를 거부하는 질긴 쇠고집이 하나 있다. 먹는 습성이다. 언어의 고집도 만만찮지만, 종래는 굴복 당하고 주거, 의상, 음악, 종교, 명절, 생일, 결혼, 장례식 등등은 진작에 동화된 상태다. 그런데, 희한하지 않은가? 음식문화만이 1세는 물론 후세로 동화되지 않는 고집이.


 2세 아이들이 1세 부모들의 한국적 여러 습성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도 우리 음식문화에 대해서만은 꿀 먹은 벙어리다. 밥, 김치, 국의 메뉴는 왜 마르고 닳도록 변할 줄 모르고 매일 매끼 한결같으냐는 항의도, 서양에 왔으면 서양 음식을 왜 해 먹지 않느냐는 불평도 한마디 없이 순순히 따라준다.


 되려 학교여행이나 캠핑 등으로 며칠 집을 떠나있다 왔을 때 김치 불고기부터 찾는, 마치 태초로부터 한식을 운명적으로 먹게끔 되어 있는 듯 잘도 먹는다. 이런 먹성은 타민족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남의 나라 음식문화에 대해서만은 어설픈 비평을 삼간다.


 그런데 세계 여러 음식문화에 견주어 내린 결론은 우리의 음식문화 중 상차림 문화만은 변해야겠다는 것이다. 우리 한식 상차림은 구조적으로 쓰레기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문제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물론 음식문화의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내 모르는 건 아니나, 식탁문화만은 혁명하는 마음으로 다잡아 기필코 해내야 할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 싶어서다.


 실은 보릿고개의 유산을 운명처럼 이어받은 배고픈 백성들에겐 버릴 것이 없었다. 설혹 버릴 음식이 있다 해도 하늘이 두려워 쉽게 버리지 못하여 어쩌다 밥풀 몇 개 뜨는 구정물도 돼지에게 먹인 우리다.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떠나올 60년대까지만 해도 그랬던 상차림 풍속도였다.


 이제 좀 살만해지자 반찬의 수가 풍요로워지고, 건강 제일주의 풍조로 두었다 먹기보다 버리는 것이 버는 것이라 해서 쓰레기가 산을 이룬다.


 지난 세기, 90년대이지 싶다. 이곳 일간지 토론토 스타에서 한국이 음식 쓰레기 세계 1위 국이라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 많은 세계 제일 중에 하필 이런 못된 것만 왜 우리 몫인가?


 이 기사가 나오기 며칠 전에는 굶어 뼈만 앙상한 북한 어린이 사진이 1면에 실렸었다. South와 North만 빼면 Korea인데 한쪽이 저렇게 비참하게 굶어 죽어가는 데도 한쪽은 배불리 먹고 마구 버리느냐는 다분히 의도성 비아냥거림으로 들렸다.


 남쪽은 먹을 것이 남아돌아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북쪽은 먹을 것이 없어 산에 나무뿌리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극과 극의 소식에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먹을 만큼만 한 접시에 담아 먹는 서양의 상차림에 비해 그릇에 따로 담아 차리는 우리의 상차림에서 쓰레기 양산은 예상된 일이다. 가난할 때야 남길 것 없는 빈 그릇의 간편한 설거지라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나 오늘의 푸짐한 진수성찬은 자연 쓰레기 양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지금 식탁을 보면 배고픈 시절의 한풀이를 하는 모습 같아 미련스럽게 보인다.


 그러고 보면 그때의 청와대 칼국수는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아니라 그나마 칭찬받을 치적이다. 음식쓰레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그 많은 종류의 반찬이 없어도 무방한 국수나 비빔밥 같은 상차림은 장려할만한 우리의 대표적 먹거리가 아닌가 싶어서다.


 그렇다. 우리의 상차림 밥상에서 반찬의 종류를 줄이는 길만이 음식쓰레기 문제를 푸는 지름길이다. 이는 주부들이 앞장서서 식탁문화 개조운동을 벌이는 길밖에 없다. ‘밥+3가지 반찬’이라는 혁명을 하는 것이다. 쓰레기 줄여 좋고, 일손 줄여 좋고, 돈 줄여 좋고, 건강에 좋은 일석 사조다.


 이 기막히게 좋은 식탁 혁명운동이 해외동포까지 동참하여 가정, 식당, 잔치, 종교행사 등의 모든 상차림에서 혁명의 바람이 불어 일본인들처럼 3가지 이상의 반찬을 부끄러워하는 의식으로 굳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개꿈일까?


 세계의 상차림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한 접시에 담아 먹는 접시 문화로 주, 부식 개념이 없는데, 유독 한국과 일본만이 주, 부식 상차림으로 되어있어 음식쓰레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함을 지녔는데도 일본은 전통적으로 소식 민족(小食民族)이라서인지 왕실에서부터 일반 가정에까지 3가지 반찬으로 간소하게 차려 먹는다고 하는데, 우리의 부식 수는 부와 비례하여 끝 간 데를 모르니 어이한담. 


 상다리 휘청대게 차린 진수성찬은 건강 망치고, 나라 망치고, 지구촌 망치는 한민족의 부끄러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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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6
살맛

 
 이왕이면 살맛 나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이 모든 이의 꿈일 게다. 어떤 모양새로 사는가가 삶의 질이라면 무슨 느낌으로 사느냐가 곧 삶의 맛일 것이다. 물론 삶의 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삶의 맛에 더 비중이 실린다. 아무리 삶의 질이 좋다 해도 살맛이 없다면 행복은 질과 관계없이 물 건너간 셈이 된다. 행복은 느낌으로 오기 때문이다.


 나는 왜 사는 걸까를 물을 때가 가끔 있다. 주어졌으니 사는 것이라는 운명론적 대답은 너무 싱겁다. 쇠똥에 굴러도 이생이 좋다는 말 대로라면 산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 된다. 여기서 문제는 이왕이면 더 자극적 살맛을 맛보고 싶다는 욕심이 나게 되는데 대개가 본능적 욕구라는 데서 간단치가 않다. 살아야겠기에 먹어야 하고, 종족을 이어가야 하기에 사랑을 해야 하고, 남보다 잘나지고 싶어 하는 출세욕, 이런 본능이 행복의 조건에 관여되면서 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어떤 것에서보다도 먹는 행위에서 산다는 맛을 진하게 느낀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 먹기에 요란을 피우지 않고 주어진 음식에 만족하며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타고난 거지 먹성을 다행으로 여기며 행복해한다.


 나는 이번에 몹쓸 병에 걸려 7개월이라는 긴 치료 기간을 보낸 소위 투병생활을 했었다. 그 약물치료가 얼마나 지독했던지 입맛을 깡그리 앗아간 임산부가 입덧하듯 모든 음식 냄새까지도 구역질부터 나서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는 먹기 전쟁 7개월을 보냈었다. 병마의 고통보다 맛을 모른다는 사실에 더 절망감을 느꼈으니 나는 타고난 먹보임을 확인한 셈이다. 


 타고난 거지 먹성에다 즐기며 먹는 먹보인 내가 아무리 중병에 걸렸다손 진수성찬을 보고도 외면을 하다니 70평생 내 이력에서는 없었던 대이변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입맛 잃음에 살맛까지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먹기가 살맛의 근원임을 새삼 실감하며 나는 일용할 양식에 얼마나 고마움을 느꼈는지 모른다. 끼니를 거르지 않고 하루 3끼를 먹을 수 있다는 고마움, 이 3끼를 못 먹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삶의 고통이 불가에서는 생로병사(生老病死)에 있다고 말한다. 전적으로 그럴 것 같은데 이번에 내가 사경을 헤매면서 느낀 것은 좀 달랐다. 생로병사가 고(苦) 덩어리라기보다는 오히려 삶의 과정에서 함께 걸어가야 할 삶의 동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긴 하지만 낳음이 내 의지가 아니듯이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 또한 내 의지로 피해지지 않는 삶의 과정에서 치러야 할 시련이지, 몽땅 고통이라는 생각이 아니 들었다.


 생(生) 즉 탄생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며, 노(老) 즉 늙음은 추함이 아니라 순리이며, 병(病) 즉 아픔은 귀신(악마)의 장난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며, 사(死) 즉 죽음은 죗값이 아니라 우주적 질서 같으니 말이다. 이것들은 어떤 값으로도 결코 내려놓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삶의 짐인데,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무거워 오리도 모가 쓰러질 것이다.


 대신 그보다는 진실로 못 견딜 고통은 오히려 다음 3가지 쪽이 아닐까 여겨진다. 


 첫째 삶의 기본이 되는 먹이가 없을 때이고, 둘째 삶을 삶답게 하는 정을 주고받을 관계가 끊어졌을 때이고, 셋째는 내 존재 이유가 무참히 짓밟히는 인권이 무시당했을 때라는 생각이 든다. 즉 참으로 슬프고, 억울하고, 아픈 고통은 배고프고, 정이 끊어지고, 나 자신이 무시되었을 때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어떤 슬픔도 어찌 배고픔의 슬픔에 견줄 것이며, 병든 아픔이 어찌 사랑을 못 받는 아픔에 견줄 것이며, 늙어 죽는 절망이 어찌 인권이 짓밟히는 분함에 견주랴.


 먹을 것이 없어 속절없이 죽어가고, 이웃이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감시의 대상이 되고, 말할 자유, 거주의 자유, 선택의 자유가 박탈당하고 있는 그런 곳이야말로 참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지옥이 아니겠는가.


 나라가 왜 있으며 정치는 왜 하는가? 인민이 거지꼴로 60년을 다스려진 곳에 정치가 있다 할까? 다행스럽게도 그나마 한쪽이 잘산다 하니 잘 협상해서 서로 함께 잘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손만 내밀면 도와주겠다는 손이 거기에 있는데, 기본적으로 먹이만이라도 해결이 되어 반도 백성이 고루 살맛을 내는 날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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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9
버린 음식(음식 쓰레기)

 
 이곳 토론토 스타지(Dec 26-1996)에 먹다 남은 음식을 마구 버리는 한국의 음식문화에 대한 삐딱한 시각으로 다룬 기사가 실렸었다. 음식쓰레기 세계 1등국이라니? 이 기사가 20년 전이니 오늘의 사정이 가늠된다.
 

 무엇이나 세계 1등이면 되는지 모르나, 술주정 일등국, 골초 일등국, 자살률 일등국, 저출산율 일등국, 사교육비 일등국, 각종사고 일등국, 화풀이 불뚝 성질 일등국, 그도 모자라 음식 쓰레기 마구 버리기 일등국까지, 해도 너무했다.


 한국이 5천 년 한의 보릿고개를 넘긴 기적은 자랑이고 긍지이나, 걸귀신 먹듯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마구 먹고 버리기 일등국은 하늘 보기가 무섭다. 우리 어머님은 밥알 한 톨도 수채로 흘러들어 가는 걸 하늘이 내려보신다며 두려워하셨다.


 못살아 배고픈 것보다야 잘살아 먹다 버리는 것이 나은지 모르지만, 그 죗값은 몇천 배 더 클 것이다. 


 더욱이 대한민국 국민 반수 이상이 나처럼 5천 년 보릿고개라는 절대빈곤을 경험한 층일 텐데, 건망증도 이 정도면 의식의 수준을 걱정해야 한다.


 정력제라면 땅끝까지 찾아가 값의 고하를 따지지 않고 먹고, 마시고, 피우고 그리고는 마구 버리는 희한한 나라, 그래도 나라가 지탱될 뿐 아니라 잘산다니 기적이 따로 없다. 


 북한은 강냉이죽 두 끼도 못 먹여 인민이 아우성인데도 무너지지 않고 남한 불바다 만든다고 큰소리치고 있으니 이 또한 불가사의 한 일이다.


 남쪽은 먹을 것이 남아돌아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북쪽은 먹을 것이 없어 산에 나무뿌리가 남아나지 않는 극과 극의 생활이 세계의 뉴스를 타고 내 귀에 들리니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그저 멍하니 하늘을 볼 뿐이다. 


 
 한국이 아직은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있던 60년대에 나는 파독 3년 광부로 일했었다. 그때 나를 주말이면 자주 초대해 주시던 중류 독일 장로님 가정이 있었는데, 어느 주말 그분들로부터 고급식당으로 초대받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식사 후 독일 어머니(장로님 부인)께서 미리 준비해온 그릇에 먹다 남은 음식을 내가 먹다 남긴 것까지 깨끗이 쓸어 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난생처음 보는 장면이라 당황했다. 독일 사람들 짜다 하더니 외국인 보는 앞인데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내 쪽에서 되레 못 본 척 얼굴을 돌려야 했는데, 너무도 자연스러움에 엎드려 절이라도 해서 존경을 표하고 싶었다.


 당시 GNP 60불 최빈국에서 온 내 눈에 비친 독일은 가히 환상 그 자체였다. 어디에도 허술함이 없었고, 검소했고, 허영이 보이지 않았고, 순리에 맞게 법을 지키며 차분히 사는 모습은 보기 좋은 예술품 같았다.


 충분히 먹되 푸짐하지 않았고, 배움의 기회가 열려 있되 극성이 없었고, 충분히 치료받되 차별이 없었고, 법을 신호들을 지키듯 철저히 바보스럽게 지키고 감시하는 모습이 좀은 융통성이 없어 보였지만 나는 천국을 경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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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ny0801
jungnam Yim
2016-11-20
나를 돌아 보게 하는 좋은 말씀.고맙습니다
75823
yeodongwon
yeodongwon
75664
23140
2016-11-12
동무

  

 “동무” 어쩐지 운동권 냄새가 나는 것이 수상쩍고 낯설다. 말이 무슨 죄냐? 너야말로 분단비극의 첫 희생양이 된 비련의 단어가 아니더냐? 이젠 우리는 “친구”, “벗”에 익숙해 있지만, 본래는 “동무”였다. 솔직히 “친구”는 동심용(童心用)이라기에는 맛이 덜 나고, “벗”은 글에서만 쓰이니 “동무”, “어깨동무”야말로 죽마고우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이 제맛을 낸다.


 인간사에 정 나눔이 있다는 것, 이보다 더 귀함이 없다. 그런데 60억 인간 중에 동무라는 정 나눔 상대가 많을 것 같으나 다섯 손가락이 남을 만큼 귀하다. 이 운명적 정 나눔 관계에서 애정은 햇살처럼 뜨거움으로 몸에 불을 지피고, 우정은 달빛처럼 은은하게 가슴을 적시며 스며든다. 애정은 ‘스파크’처럼 순간으로도 가능하나, 우정은 세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이 들어 사귄 사이가 동무 되기 어렵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등학교 때 키순에 의해 둘씩 한 책상을 사용하게 된 인연으로 짝이 된 동무가 있을 것이다. 책상 가운데다가 금 그어놓고 싸움도 많이 한 짝꿍 동무 말이다. 잘났다, 못났다. 부자다, 가난하다. 따지기 전에 다투고 깔깔대며 우정을 키운 사이 말이다. 이해한다, 용서한다, 위로한다, 충고한다는 따위 작심을 해야 하는 장식의 마음이 아닌 동심 그대로의 동무, 나하고만 놀지 않아도 질투심이 나지 않은, 그러면서도 놀다 보면 언제나 같이하고 있는 동무, 터놓고 서로의 집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 동무, 이런 타산 없는 동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동무가 둘도 아닌 딱 하나가 있다. 우정을 확인한 일도, 아니 그런 절차 따위는 간지러워 못한 동무가 하나 있다. 상대가 좀 못마땅한 짓을 해도, 칭찬받을 일을 해도 우정에 별 관계 지어지지 않는, 통념적 선악 개념의 이분법적 잣대로 상대의 인격이 재어지지 않는, 아니 재는 일 따위를 넘어선 사이, “와 그랬노, 좀 잘하제” “하모 말이다.” 고작 이 정도다.


 속일 것도 숨길 것도 캘 것도 없는, 그래서 싸울 일도 섭섭하다고 할 일도 없는 사이. 피곤하게 상대의 속내를 읽으며 얼굴 표정 살피고 말실수 없나 조심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는 사이. 만날 때의 표정, 만나서 하는 대화가 서로의 전부이니 온종일, 아니 70년을 같이 해도 피곤을 모르는 편한 마음으로 있는 사이. 이런 우리도 두 번 싸운 일이 있다.


 한 번은 국민(초등)학교 때 책보를 운동장 구석에 팽개쳐 놓고 씩씩대며 뒹굴고 싸웠다. 그때의 이 한판 싸움이 나의 초등학생 때의 유일한 싸움이었는데 하필이면 가장 절친한 그와 왜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화해했는지 기억이 없다. 아마 화해 같은 절차는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싸움은 서울에 올라와 대학을 다닐 때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극구 말렸음에도 그가 강행군했을 때 그로 인해 한 2년 말도 하지 않고 지난 일이 있는데 얼마나 불편하고 어색했는지 모른다. 이때도 누가 먼저 손을 내밀었는지, 그가 나의 냉정함을 용서해서도, 내가 미안했노라 사과를 한 것도 아니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것이거니 칼로 물 베듯 일종의 해프닝이었다. 그러나 2년여의 냉정의 긴 세월이 필요로 했던 것으로 봐 앙금이 꽤 컸었나 보다.


 3번은 싸워야 참 동무가 된다는데, 한 번 더 싸울 행운(?)의 기회가 있을지? 그런데 우리 이제 너무 늙었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40년을 너무 멀리 너무 오래 떨어져 사니 싸울 기회가 있을 것 같지가 않다. 틀어지고 다투는 부딪힘의 정 나눔까지도 그리움이 된다.


 1년에 한 번 연하장 한 장으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그래도 평균 7~8년에 한 번씩은 만난 셈이 되는데, 그때마다 전화 한 통화 없이 “나 왔다.” 알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뜨겁지도 싱겁지도 않은, 더욱이 술 담배도 못하는 우린 아무 데서나 밥 사 먹고 그렇게 격식 없이 지내다 온다.


 그런 그가 비쭉 나를 찾아왔다. 그것도 단 하루. 그는 골프광이라 그 금싸라기 하루를 나와 골프 하기를 원했다. 어느 집에 처박혀 있는 골프채와 신발을 빌려 집에서 가까운 삼류 골프장으로 데리고 갔다. 내야 기껏 일 년에 너댓번 치는 초보 실력이라 그렇다 치고, 잘 친다는 그가 그만 내 앞에서 죽을 쑤어버렸으니 기분이 엄청나게 상한 눈치다. 


 신경이 둔한 나는 그가 떠나고 나서야 아차 했다.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라지만 나의 무례와 무신경은 도를 넘었구나! 후회했다. 골프 장비와 골프장이 고급화되어 있는 한국적 분위기에 익숙해 있는 그를 고물 장비에 허술한 골프장으로 끌고 간 나의 배려 없음에 생전 처음 그에게 큰 미안함을 느꼈고, 나의 짠돌이 짓에 처음 부끄러움을 느꼈다.


 “동원이 그놈 외국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제 버릇 개 못 준, 한심한 놈.” 했을까? 아닐 것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냥 그가 가는 곳에 내가 가고, 내가 가는 곳에 그는 바늘에 실 가듯 따라갔을 뿐일 것이다. 다음에 오면 삣까뻔쩍 데리고 가야지 까짓것.


 동무야! 그래서도 우리 오래 살아야제, 하모! 우리 비록 멀리 떨어져 이제 몇 번 만날까 싶지만, 이 지상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백만 대군보다 더 든든함이고 넉넉함인데, 우리 서로 새해에도 건강하재이!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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