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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0
거짓말 공화국

 

 제1조 (1)ㅇㅇ민국은 거짓공화국이다. (2)ㅇㅇ민국의 주권은 광장에 있고, 모든 거짓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거짓말할 자유를 가진다. 제11조 모든 국민은 거짓말 앞에 평등하다. 


 제27조 (1)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 외에 민중과 떼법에 의해 재판을 받을 수 있다. 이 때 민중과 떼법은 모든 법에 우선한다. (4)모든 거짓말은 그 것이 진실이 아님이 명백히 밝혀질 때까지는 진실로 추정된다. 


 제45조 국회의원은 직무상 국회에서 행한 거짓말과 표결에 대해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제46조 국회의원은 자신과 소속당의 이익을 우선하여 거짓말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제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나 야당 또는 다수 국민의 미움을 샀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제103조 법관은 거짓과 여론에 의하여 자신의 이념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아직 씌여지지 않은 소설속에 나오는 거짓말공화국의 헌법 조항들이다.


 ㅇㅇ민국의 국민들은 거짓말에 관한한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가까운 이웃 나라와 비교한 통계치를 보면 이 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법적으로 범죄가 되는 거짓말에는 사기, 위증, 무고가 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어느 해에 ㅇㅇ민국에서 무고로 처벌받은 사람은 2,171명이었고, 위증이 1,544건, 사기사건이 20만5,140건이었다. 


 그 이웃나라의 경우에는 같은 해에 무고가 10명, 위증이 9명, 사기가 5,000여건이었다고 한다. 단순 비교를 하더라도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고, 두 배가 넘는 이웃나라의 인구를 감안한다면, 인구대비 거짓말 범죄비율이 수백배에 이르러 아예 비교를 할 수 없을 지경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와 같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심각성을 깨달아 깊이 고민하는 이는 없는 듯하다.


 ㅇㅇ민국에서는 평소에도 늘 거짓말이 일상화되어 있지만, 특히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선거철이 되면 온갖 거짓말들이 세상을 뒤덮곤 한다. “거짓말은 처음엔 부정되고, 그 다음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믿게 된다.” “거짓말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말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이왕 거짓말을 하려면 될 수 있는 한 크게 하라.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는 큰 거짓말을 더 잘 믿는다. 그리고…… 그것은 곧 진실이 된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에는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 “대중에게는 생각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생각이란 모두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승리한 자는 말의 진실 여부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거짓말과 대중선동에 관한 독일 나치 선전상 괴벨스의 저 명언들은 ㅇㅇ민국에서는 이미 모든 사람들이 체득하고 있어서 현실생활 중에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평소에 개인이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기 위해 크고 작은 거짓말을 수시로 하고, 마을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짓말을 하여 보험금을 타먹기도 한다. 선거철에 상대후보를 헐뜯기 위해 거짓말을 퍼뜨리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자기가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을 헐뜯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서슴없이 해댄다.


 어떤 사람이 테블릿PC를 쓸 줄 아는지와 같은 지극히 단순한 사실을 놓고도 어떤 이는 쓸 줄 모른다고 하고, 어떤 이는 늘 들고 다니면서 쓰는 걸 봤다고 증언한다. 객관적인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보도해야 할 언론에서도 매체마다 다른 얘기를 하고, 가장 엄정해야 할 검찰에서도 똑 부러진 진실을 밝히지 않고 횡설수설한다.


 그러니 평소에 개인적으로 그 사람을 잘 알지 못 하는 일반 국민들은 실체적 진실은 알 길이 없고,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는 게 틀림없다.”는 사실만 믿을 수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광장에 모이면 대충 몇 명이 모였는 지도 알 길이 없다. 얘기하는 사람마다 수십만 명씩 차이가 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 시대에 언론에서는 몇 년 전 사진을 버젓이 내보내며 독자들을 속인다. 평화적 집회를 자랑하면, 반대편에선 몇 년 전 사진을 어제 찍은 사진이라고 들이대며 폭력현장을 숨겼다고 사기 친다. 난 데 없이 몇 년 전 국제체육행사 때 국제관례에 따라 내걸었던 사진을 며칠 전 사진으로 둔갑시켜 인공기가 대낮에 버젓이 내걸렸다고 소문을 퍼뜨리기도 한다. 


 ㅇㅇ민국에선 남들에게만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예사로 하는 듯하다. 대통령 또는 고위 공직자 후보들은 거의 전부 병역기피에 위장전입을 했지만, 국회의원, 언론인, 일반국민들 중에 병역을 불법으로 면제받았거나 위장전입으로 부동산투기를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국민들 수준은 이미 선진국수준에 와 있는데, 정부와 정치는 아직 후진국 수준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모든 법률이나 제도는 이미 선진국 수준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오히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나 행동이 그걸 못 따라가서 구석구석에서 삐걱거리는데도 말이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그 잘 만들어 놓은 제도나 법은 안중에 없고 60, 70년대식으로 머리띠 두르고 거리로 나설 생각부터 한다. 그러면서 의식수준이 이미 선진국 수준에 와있다고 착각하며 스스로를 속인다. 


 오늘도 저 거짓말공화국에선 자기들이 쏟아낸 거짓말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도 모른 채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진실이라 믿으며 또 다른 거짓을 쏟아내기에 바쁜 모습들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저 모든 것들이 거짓말처럼 다 거짓이었으면 좋으련만.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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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1
그런 때가 있었지…

 

 1972년 10월 어느날 온 나라가 숨을 죽인 날이 있었다. 서슬이 퍼렇던 박정희정권은 3선개헌으로 권력을 계속 이어오던 중 그 해 10월 어느날 드디어 영구집권이나 다름없는 희한한 헌법을 내놓았다. 그 이름도 생소한 ‘10월유신’이었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공표된 유신헌법에 민주주의의 흔적은 많지 않았다. 이후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은 점점 더 높아갔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에 이어 조선일보 등 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고 나섰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독자들이 지면에서 느낄 만큼 자유언론을 실천한 언론은 동아일보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다. 다른 언론사의 기자들은 동아일보 기자들을 부러워했다.


 정부는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가해 광고게재를 막는 방법으로 언론사에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1973년 3월 조선일보의 광고주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조선일보의 경영진은 즉각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납작 엎드렸다. 이 후 정부정책에 대한 적극협조를 약속하고 위기를 모면했다. 국민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조선이 그렇게 태도를 바꾸자 동아일보의 정론보도는 더욱 두드러졌다. 그 암울했던 시기에 “동아일보 보는 맛에 산다”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그 신문의 인기는 날로 높아갔다. 당시 동아일보의 광고효과는 매우 좋아서 광고를 실으려면 현금을 주고도 며칠을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1974년 12월 16일 몇 몇 광고주가 자기 회사 광고 동판을 회수해 갔다. 이유는 묻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어서 다른 광고주들이 하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열흘만에 광고주의 98%가 그렇게 사라지자 12월 26일자 동아일보의 광고지면은 백지인 채로 나갔다.


 역사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신문 하단의 백지를 본 국민들의 얼굴은 백지처럼 하얗게 변했다. 그 동안 자매지의 책광고와 기존 광고주들의 광고를 앞당겨 싣는 방법으로 광고지면이 채워져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국민들은 경악했다. 경악은 이내 분노로 변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원로 언론인 홍종인이 12월 28일자 신문에 “언론자유와 기업의 자유”라는 제목의 의견광고를 게재했다. 이를 시작으로 각종 단체와 개인들의 격려광고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온갖 호소문, 격려문, 선언문이 실리기 시작했다. 어느 대학교수는 “나는 조용히 미쳐가고 있다”고 광고했고, 문인들은 전면광고 하나를 살 수도 없는 자신들의 주머니 사정을 안타까워하는 광고를 실었다. 


 “동아일보 배달원임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광고를 내기 위해 고철을 팔아 푼푼이 모은 돈을 기꺼이 내놓는 신문보급소 배달원들도 있었고, 배운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법대동기생들도 나왔다. 격무에 시달린 몸이 휴식을 취해야 할 황금같은 휴일에 신문팔이를 해서 모은 돈으로 격려광고를 내는 시내버스 안내양들도 있었고, “술 한잔 덜 먹고 여기에 내 마음을 담는다”는 운전기사도 있었다.


 어느 복덕방 주인은 “이겨라 동아”를 외쳤고, “왜 정부는 신문을 못살게 구나요?”라고 묻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서 운전사에게 동아일보에 격려광고 내러 간다고 했더니 운전사가 한사코 요금을 안 받더라며 광고를 접수시키다가 울음을 터뜨린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시민도 있었다.


 이렇게 쏟아져 들어온 광고들은 너무나 눈물겹고 감동적인 말의 향연이었다. 그 전까지 기사만 읽고 광고에는 눈길을 주지 않던 사람들이 기사보다 오히려 광고 읽는 재미에 빠질 정도였다. 


 박정희정권의 핵심인맥으로 일컬어지는 TK, 그 중에서도 핵심으로 알려진 한 고등학교의 동창회에서 시리즈로 실었던 광고를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첫 날엔 “와 이카노?”, 둘째 날엔 “이칼래?”, 셋째 날엔 “이 칼라 카나?”하는 식으로 이어진 그 광고들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이유는 우선 광고가 짧은데다 그 사투리에서 오는 투박하고 강렬한 울림 탓도 있겠지만, 그 광고주체가 박정권의 핵심인맥을 이루는 고등학교동창회라는 사실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다가 문득 기억 속에서 까마득히 사라졌던 수십년 전의 그 일들이 갑자기 떠오르는 이유는 뭔지? 비록 철은 없었지만 젊은 피가 끓던 그 시절의 그 일들을 이렇게 다시 떠올리며 적어나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에 이슬이 맺히는 이유는 뭔지? 그 때는, 그렇게 암울했던 그 때도 그런 언론이 있었고, 그런 국민들이 있었더랬는데… 그 후 동아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 후 결국 오래 버텨내지 못하고, 130여명의 기자를 무더기로 해고하면서 권력에 굴복하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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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5
딱한 당신들

 

 낯익은 얼굴들이 또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때가 되면 잊지 않고 찾아오는 계절풍처럼 한국사회에 주기적으로 불어 닥치는 정치의 소용돌이 바람이 몰아치면 어김없이 그 불똥이 튀어 한 바탕 몸살을 겪어야 하는 한국의 기업인들이 참 딱해 보인다. 그들의 고개 숙인 모습을 이처럼 주기적으로 봐야 하는 한국인들의 처지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경제활동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 사회, 문화 어떤 분야건 무슨 일을 벌이려면 필연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을 끌어오는 방법 중 가장 쉬운 방법이 돈을 많이 가진 기업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권력을 쥔 자의 눈에서 벗어나면 재계10위권 안에 드는 기업도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나라에서 권력자의 요구를 거절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나중에 또 다른 권력에 의해서 단죄되고 난도질당할 걸 뻔히 알면서도 당장 눈앞의 권력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게 한국 기업인들의 처지다. 


 그런데, 저들의 고개숙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그런 사람들의 멸시와 지탄을 또 감당해 내야하는 게 한국기업인들의 현실이다. 그래서 더욱 딱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돈을 많이 갖기를 원하면서도 왜 돈을 많이 가진 저들에게는 그토록 적대적인 반감을 갖는 걸까? 이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하려면 역사적인 사실에서부터 사회문화적 배경, 심리학적 분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들을 체계적으로 따지고 분석하는 논문이 적어도 수십편 필요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그냥 이 문제와 연관이 있는 몇 가지만 가볍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사람들이 대기업에 대해 반감을 갖는 이유를 들어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다. “온갖 편법과 탈법을 일삼는다.”, “편법상속으로 부를 대물림해서 사회정의를 해친다.”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대기업이 사람들의 멸시와 지탄을 받는 대표적인 이유는 결국 ‘편법’과 ‘탈법’과 ‘상속’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편법’의 사전적 의미는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은)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이다. ‘탈법’은 ‘법이나 법규를 지키지 않고 교묘히 뚫거나 벗어남’을 의미하고 ‘탈법행위’는 ‘강행 규정이 금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다른 적법 행위의 방식을 빌어 이를 면하고자 하는 행위’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그러니까 대기업들은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법이나 강행규정이 금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간편하고 손쉬운 적법행위의 방식을 빌어 그 법을 피해나가는 일을 자주 했다는 이유로 멸시와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편법과 탈법을 저지르는 가운데 더러는 ‘불법’도 저질러서 더욱 적대적인 감정을 불어 일으키는 측면이 있겠지만, 불법행위는 당연히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았을 테니 결국 ‘법이 정한 범위내에서 최대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는다는 얘기다. 그 행위가 그렇게 비난 받을 일이라면 아예 불법으로 정하면 될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점을 간과한 채. 


 근래 갑자기 한국에서 새로 생겨 유행하는 말중에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있다. 가진 부모를 타고난 사람들에 대한, 못 가진 부모를 타고난 사람들의 질시와 분노와 비난이 담긴 말이다. 이 말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속’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슷한 능력을 가진 젊은 사람이 그의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능력과 지위에 따라 심하게 차이가 나는 출발선에 서서 경쟁을 해야 한다면 분명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 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상속의 문제는 단순히 이러한 측면만 있는 게 아니라 훨씬 다양한 문제들이 얽혀 있는 복잡한 이슈이다. 부(富)의 불평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흔히 ‘부자로부터 더 걷어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기’식의 소득재분배정책을 시행하지만, 그 효과는 오히려 엉뚱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부자들에게 세금을 아주 높게 부과하고 상속세를 엄청나게 올려서 부의 대물림을 차단하자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잊고 있는 사실은 “그렇게 힘들게 자기가 모은 돈의 거의 전부를 결국 남에게 다 줘야한다면 과연 누가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해서 기업을 일으키고 고용을 하려고 하겠는가?”하는 점이다. 이런 복잡한 문제들 때문에 상속세는 나라마다 그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0%에서부터 70%이상까지 다양하게 정해놓고 있는 것이다.


 영화 ‘월 스트리트’에서 마이클 더글라스는 “탐욕은 좋은 거야 (Greed is good)”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맞는 말이다. 좀 더 편하게, 좀 더 빠르게, 좀 더 많이, 좀 더…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인간의 탐욕은 인류문명을 발전시키는 에너지의 근원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타고나는 이 ‘탐욕’이야말로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기인 것이다.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아무런 욕심이 없다고 상상해 보라. 과연 오늘날과 같은 눈부신 인류문명의 발달이 가능했겠는가?


 문제는 이 ‘탐욕’이 적절한 제어를 받지 않게 되면 서로의 탐욕들이 충돌하여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일으키게 되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터무니없이 커지게 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마치 성능 좋은 자동차와 같은 것이다. 좋은 운전자가 제대로 운전하고 제동장치가 잘 작동할 때는 더 할 수 없는 문명의 이기가 되어 우리 생활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해주지만, 난폭운전자를 만나 제멋대로 운전을 하고 제동장치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을 다치게 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하고 만다.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모든 사람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할 자유와 권리를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단지 그 사람이 이미 돈을 많이 가졌다는 이유로 그 권리를 제한해서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을 싫어하고 비난하는 바탕에는 논리적인 근거보다는 오히려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시기’와 ‘질투심’이 어느 정도 바탕에 깔려있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제발 “대기업들은 비단 ‘편법’이나 ‘탈법’ 또는 ‘상속’ 문제뿐이 아니라 그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비리를 저질렀으니 지탄을 받는 건데, 무슨 말장난 같은 얘기로 대기업을 옹호하고 나서느냐?”는 말은 나에게 안 했으면 좋겠다. 


 나는 정통파 ‘흙수저’ 출신이고, 대기업과는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을 뿐 아니라 거의 본능적으로 그들이 하는 짓들이 싫고 배가 아픈 사람 중의 하나다. 그런데도 남들처럼 내 기분대로 그들을 대놓고 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이성적, 논리적 이유를 찾지 못 해 나는 이중으로 배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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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9
낙인(烙印)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 15개 부처 중 11개 부처의 장관인선을 마쳤다. 그런데, 미국정치에 아주 관심이 많거나 잘 아는 사람이 아닌 일반인들 중에 누가 어느 장관에 내정되었는지 금방 기억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장관은 고사하고 부통령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국방장관에 누가 내정되었는지는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누구라고 이름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지 몰라도 ‘미친 개’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이 게 바로 ‘딱지붙이기’의 힘이다. 


 ‘미친 개’는 트럼프행정부의 첫 국방장관으로 내정된 제임스 매티스 해병대 대장의 별명중 하나다. 그는 1969년 해병대 사병으로 입대한 후 센트럴 워싱턴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1972년 학사장교로 임관해 4성장군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초에 걸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어 여러 전투에 참가했다. 


 그가 2005년 한 패널토의 중에 이슬람 극단주의자 탈레반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가면 얼굴가리개를 안 썼다고 여자들을 개 패듯이 하는 자들이 있어요. 그 놈들은 인간성이란 게 아예 없는 족속들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놈들을 쏴버리는 건 엄청 재밌어요. 그런 놈들과 싸우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라구요.”라고 해서 얻은 별명이 바로 ‘미친 개’이다. 이런 자극적이고 과격한 인상을 주는 그의 별명과 트럼프가 그동안 해온 돌출적이고 과격한 발언들이 겹쳐져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매티스장군은 그 외에도 “사람을 쏘기 위해서는 그들을 미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쏘는 게 우리의 일이다.”라고 하는 등 여러 어록을 남겼고, 그 중에는 듣기에 따라서 상당히 과격한 말들도 꽤 많이 있다. 그런데, 다른 한 편으로 그를 보면 그는 41년 동안 군생활을 하면서 6000권이상의 개인 장서를 가진 독서광으로 전쟁터에 나가면서도 로마의 황제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늘 지니고 다닌 인물이다. 결혼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얻은 또 다른 별명이 ‘전사수도사(戰士修道士)’이다. 


 그는 손자, 율리시스 그랜트, 셰익스피어, 죠지 패튼과 성경구절을 자유자재로 인용할 수 있을 만큼 박식한 인텔리로 군부 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다. 최근 트럼프가 그에게 “테러리스트에 대한 물고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게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내게 담배 한 갑과 맥주 몇 병을 주면 고문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트럼프 자신도 놀랐다고 한다. 


 이처럼 잘 알려진 그의 별명만 듣고 사람들이 얼핏 생각하기 쉬운 그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른 일면을 지닌 인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미친 개’의 이미지로 기억하고 판단할 것이다. 누군가 어떤 인물의 이름 뒤에 붙이는 ‘딱지’의 힘은 이처럼 크고 무섭다.


 한국에서 차기 대통령후보로 거론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도 늘 붙어 다니는 딱지가 있다. 그의 인물됨을 얘기할 때 거의 빠지지 않는 말이 ‘기름장어’라는 그의 별명이다. 그 분의 행동이나 말이 무슨 일에서나 요리조리 잘 빠져나간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일 게다.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그런 별명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말에서 풍기는 어감상 아무래도 부정적인 의도가 읽혀지는 별명이다. 


 그런데, 직업외교관이라는 그의 직업의 특성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별명은 그에게 최고의 찬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교관의 행동이나 언사는 늘 속내를 분명하게 밝히기 보다는 약간은 두루뭉술하게 여지를 남기면서 실리를 챙겨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 분의 그 ‘기름장어’같은 유연성은 외교관으로서 최고의 덕목이 아닐까? 그래서 외교관으로서 최고의 자리라 할 수 있는 유엔사무총장에까지 오른 게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 명재상으로 유명한 황희정승은 세종대왕 치세 기간 중 무려 18년간 영의정에 재임하면서 여러 일화를 남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얘기는 집안의 계집종 둘이 싸웠을 때 이 쪽도 옳고 저 쪽도 옳다고 했다가 옆에 있던 조카가 어찌 그리 판단이 흐릿하냐고 핀잔을 주며 이 쪽이 옳고 저 쪽이 그르다고 하니 그 말도 옳다고 했다는 일화이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음을 인정한 포용과 관용의 예로 흔히 인용하는 일화이지만, 만약 그가 요즘 한국에서 정치를 했다면 우유부단하고 무소신의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혀 ‘박쥐’나 ‘카멜레온’ 또는 ‘무뇌인간’이란 딱지를 붙이지 않았을까? 또 그는 사후에 청백리로 규정되어 널리 칭송을 받고 있지만, 뇌물수수, 간통, 부패 등 물의를 빚기도 해서 ‘청백리’ 이미지와는 다른 일면도 지닌 인물이다.


 딱지붙이기는 낙인찍기이다. 낙인은 원래 카우보이들이 목장에서 자기가 치는 가축의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해서 엉덩이에 인두로 지지는 불도장을 말한다. 한 번 나쁜 이름으로 낙인이 찍히면 살갗에 새긴 불도장처럼 아프게 박혀 그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흔히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적에게 나쁜 이미지의 낙인을 찍기를 좋아한다. 꼴통, 종북, 좌빨, 친일파, 독재자, … 이런 말들이 모두 그런 악의에 찬 낙인찍기의 산물이다.


 낙인찍기는 그 당사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의 원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러니 어떤 인물을 볼 때는 그에게 붙어있는 딱지에 현혹되지 말고 그 뒤에 가려져 있는 참 모습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친 개, 기름장어, 청백리와 같은 불도장 뒤에는 언제나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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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0
이 거 하나라도…

 

 한국사람들이 많이 가는 해외관광지에 있는 상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은 무얼까?

누군가가 체계적으로 조사한 걸 본 일은 없지만, 내가 지금껏 20여개국 이상을 다녀본 경험을 바탕으로 짐작컨대 아마도 “빨리! 빨리!”가 아닐까 싶다. 내가 갔던 외국의 여러 관광지에서 외국인 종업원들이 우리일행이 들어섰을 때 가장 많이 한 말은 “빨리! 빨리!”였다. 한국여행자들이 그 가게에 들어와서 공통적으로 가장 자주 한 말이었기에 그들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한국인들의 ‘빨리빨리정신’은 사회전반에 걸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현상으로 수많은 해외건설현장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공기단축의 신화를 남겼고, 한국경제가 최단기간 초고속 성장을 이룩하는데 한 몫을 하기도 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졸속과 날림의 원인이 되어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요즘 소위 최순실게이트로 뒤숭숭한 시국에 국가최고지도자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이 ’빨리빨리정신’이 또 한 번 예외 없이 발휘되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6차 촛불집회를 전후하여 실시한 대통령의 진퇴문제에 대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설문 답변자의 70.6%가 여러 가지 법에 정해진 절차를 밟아야 하는 ‘질서있는 퇴진’을 거부하고 ‘무조건 즉시 퇴진’을 찬성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법에는 대통령을 포함한 누구라도 법에 저촉되는 잘못을 저지르면 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국가최고지도자라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워낙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으니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이 지체하지 말고 “당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법에 정해놓은 절차를 밟을 시간이 없으니 “빨리빨리” 알아서 그만두라는 주문이다.


 “이게 나라냐?” 요즘 애나 어른이나 하는 소리다. 맞는 말이다. 볼수록... 처음엔 어리석은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인 줄 알았다. 다음엔 그를 둘러싼 청와대를 비롯한 일부 부도덕하고 무능한 공무원들의 문제인 줄 알았다. 거기에 기생해서 단물을 빨아먹은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문제인 줄 알았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언론의 문제인 줄 알았다. 


 이 어수선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가닥을 잡아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는 국회가 문제인 줄 알았다. 세계역사상 최단 기간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국민들의 의식은 저 멀리 앞에 가있는데 이를 쫓아가지 못하는 제도와 몰지각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일부 파렴치한 사람들만의 문제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제 보니 모두가 허상에 불과했다. 검찰은 비리수사를 한다면서 수사를 빨리 마무리하기 위해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피의자를 겁박할 목적으로 수사내용을 온 세상에 까발리고, 국회에서는 저들대로 따로 조사한다고 "특검법”을 만들고, 특검 조사가 시작도 되기 전에 "탄핵"을 발의하고, 국민들은 법절차고 뭐고 다 필요없고 그냥 당장 ‘빨리’ 그만 두라고 아우성치고, 언론들은 자극적이고 저질스런 내용을 까발리기 위해 조작과 왜곡을 서슴지 않으면서 저마다 검사, 판사가 되어 날마다 논고와 판결문을 쏟아 내놓고... 거기에 발 맞춰 온 나라가 마치 혼 없는 ‘좀비들’처럼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절망감을 느낀다. 이게 바로 한국인의 화장기 지운 민낯이었던가 하고. 


 특검할 건데 검찰은 왜 따로 조사를 하고 있으며, 조사도 해보지 않고 무슨 근거로 탄핵을 하며, 이미 탄핵을 결정해 놓고 뭐하러 특검조사를 하는지? 만약 탄핵을 의결한 후 나중에 특검 조사결과를 보니 탄핵을 할만한 사안이 아닌 걸로 밝혀지면 도대체 어찌할 건지? 대통령을 다시 제자리에 불러다 앉힐 건지?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의 비리를 보고 분하고 창피해서 “이게 나라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저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앞뒤 따져 볼 겨를도 없이 우선 사형선고부터 내려놓고, 사실관계는 나중에 확인하고, 재판절차는 천천히 밟자고 하는 “이게 제대로 된 나라냐?”고. “국민이 나라 아니냐?”고. 


 민주주의를 하자면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을 이렇게 쉽게 팽개치는 국민은 민주시민의 권리를 말할 자격이 없다. 특정인의 행위가 아무리 악랄하고 큰 잘못이더라도 그게 밉다고 법절차를 생략하고 감정대로 처리한다면 이는 이미 민주주의 이전에 문명사회가 아니다. 시위현장에서 각목을 휘두르고 돌멩이가 날아다니는 것만 폭력시위가 아니다. 때로는 말의 폭력이 더 폭력적일 수도 있다. 


 코에 물을 들이붓고 등을 인두로 지지는 것만 고문이 아니다.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으로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고문을 받지 않고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을 거부할 권리,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을 받지 않을 권리,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될 권리…이런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때때로 거추장스럽고, 답답하고, 느려 터졌고,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제도이다. 그게 싫어 일사불란하게, 효율적으로, 속전속결로, 속 시원하게 후다닥, 빨리빨리 처리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는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전두환식 독재를 하면 된다. 


 대한민국 헌법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고, 그 국민들이 위임한 권력이니 국민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무조건 거기에 따라야 한다고들 한다.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 스스로 법위에 군림하며 법절차를 거추장스러워하고 무시한다면 그건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라 “우중독재(愚衆獨裁)”에 불과하다. 


 나는 대통령의 어리석음과 그로 인해 저지른 모든 잘못을 두둔하거나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어처구니없고 분하고 창피하다. 한국인 모두가 부끄럽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대통령의 어리석음과 최순실일당의 비리보다 이를 처리해 가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훨씬 더 부끄럽고 창피하다. 


 모든 불법과 비리는 당연히 법에 따라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당장 한 어리석고 무능한 대통령을 하루 빨리 끌어내리는 일보다 지금껏 온갖 희생과 우여곡절을 거쳐서 어렵게 이뤄놓은 ‘민주주의의 틀과 원칙’을 지켜내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박대통령이 어떤 수모를 무릅쓰고라도 마지막으로 딱 한 가지만 해주고 떠났으면 좋겠다. 제발 우리나라 어느 법에도 없는 ‘하야’라는 ‘탈법’과 ‘불법’을 또 한 번 저지르는 선례를 남기지 말고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빨리’ 대통령직을 마무리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본 칼럼은 본보의 편집방향과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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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2
혁명의 두 얼굴

 

 우리 시대 마지막 혁명가이자 최장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가 세상을 떠났다. 카스트로는 1929년 8월 13일 스페인에서 쿠바로 이주한 농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바나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할 당시부터 학생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했고, 1957년 7월에는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친미 정부를 전복시킬 목적으로 몬카타 병영을 습격하였으나 실패로 끝나 15년형을 받았다.


 2년후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그는 멕시코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혁명동지 체게바라를 만나게 된다. 체게바라와 함께 혹독한 게릴라훈련을 받고 혁명군을 조직하여 1959년 1월1일 마침내 쿠바공산혁명을 완성했다. 이 후 거의 반세기에 걸쳐 쿠바를 통치해온 그가 지난 11월 25일 영원히 잠들었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대부분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거리에는 나다니는 사람들이 드물 정도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긴 모습이라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리 멀지 않은 바다 건너 미국땅 플로리다에서는 수많은 쿠바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춤을 추며 그의 죽음을 기뻐하는 축제 분위기에 젖어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쿠바인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카스트로가 통치하는 쿠바의 현실이 싫어서 떠난 사람들이니 그의 죽음을 환영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50여년간 일인(가족)독재공산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 그래서 흔히 북한과 가장 유사하고 또 가장 친한 나라로 알려진 쿠바라는 나라는 사실상 우리 한국인에게는 아직도 그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나라이다. 유사한 정치체제를 가진 북한에서 국가지도자가 죽었을 때 온 국민들이 지나칠 정도로 슬픔에 젖어 광적으로 애도하는 모습을 보았던 나로서는 지금 쿠바인들이 보여주는 국가적 애도의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지 다소 난감하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도 그의 동생이 권력을 쥐고 통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진정성을 의심해야 하는 건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평소 알고 지내는 쿠바출신 친구 넬슨에게 확인해 보기로 했다. 넬슨은 2007년 쿠바를 떠나 캐나다로 이주하여 현재 토론토에 살고 있는 흑인으로 나와 2년여 동안 같은 일터에서 일하여 가까이 지내는 친구이다. 그 동안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정치와 관련된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이것저것 쿠바 사정에 대해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쿠바를 이해하는데 다소 도움이 될까 해서 여기에 그와의 대화내용을 옮긴다.


 카스트로의 죽음이 전해진 다음날 아침 그를 만났다. 


 “안녕 넬슨, 어젯밤에 카스트로가 세상을 떠났다는데, 좋은 소식인 거냐? 나쁜 소식인 거냐?”


 그는 빙긋이 웃기만 했다. 나는 질문을 약간 바꿨다.


 “대부분 쿠바사람들은 카스트로를 어떻게 생각해?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


 “대부분이 좋아해.”


 “그래? 난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줄 알았는데… 뭣 때문에 좋아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먹고 사는데 걱정없이 해주고, 교육도 다 공짜로 시켜주고, 의료제도도 잘 돼 있고…”


 “무슨 소리야. 의료보험이야 지금 네가 살고 있는 캐나다가 늘 자랑하는 거잖아?”


 “캐나다는 비교가 안 돼. 지난주에 온타리오 보건부에서는 온타리오병원응급실 대기시간이 지난 7년 동안 38분이 줄어들어서 3시간으로 단축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잖아? 또, 가정의를 거쳐서 전문의진료를 받기 위해서 6개월 이상 기다리는 게 예사잖아? 쿠바에서는 응급실에 가서 10분 이상 기다리는 법이 없어. 전문의진료를 받는데도 길어야 한 달이면 돼. 치과도 공짜로 되고 의료진의 수준도 높아.”


 “근데,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잖아. 동물하고 달라서 ‘자유’가 필요하잖아. 쿠바에서 술집에서 친구들하고 술 마시면서 ‘카스트로 XX새끼’ 이런 말 막 해도 괜찮아? 잡혀가지 않아?”


 “괜찮아. 아무도 안 잡아가.”


 “집은 개인이 소유하는 거야? 이사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옛날에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집들이 개인 소유야. 이사는 물론 마음대로 갈 수 있고.”


 “해외여행은 어때? 여권은 쉽게 받을 수 있어?”


 “그럼 필요하면 언제든지 받을 수 있어.”


 “군대는 어때?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다 가는 거야?”


 “남자는 다 군대 가야 돼. 보통 2년 복무하는데, 나같이 대학을 나온 사람은 6개월 동안 장교로 근무하면 돼.”


 “근데, 쿠바는 400년 이상 스페인식민지였고 카스트로도 스페인계잖아. 지배계층이 스페인계인데 너 같은 흑인이나 원주민들은 인종차별을 많이 받지 않아?”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은 후로 ‘우리는 모두 똑같은 쿠바인’이라고 해서 그런 차별을 완전히 없앴어. 여기처럼 뻑 하면 경찰이 민간인을 쏴 죽이고 하는 그런 일은 전혀 없어.”


 “근데, 쿠바여행 다녀온 사람들 얘기로는 관광지만 벗어나면 사람들이 거지들 같이 막 달려들어서 뭘 달라고 한다고 그러던데, 홈리스부랑자가 많은 거 아냐?”


 “그렇지 않아.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 거리를 헤매고 다닐지는 몰라도 홈리스는 거의 없어. 거리에서 뭘 달라고 달려드는 사람도 어디나 그렇듯이 일부 있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많지 않아.”


 “들어 보니 쿠바가 아주 살기 좋은 곳인 거 같은데 너는 왜 캐나다로 온 거야?”


 “내가 학교 졸업하고 호텔에 근무할 때 거기서 캐나다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어서 캐나다에 온 거야. 몇 년 후에 이혼을 했지만… 쿠바에 전처소생의 22살 아들과 17살 딸이 있는데 캐나다로 데려올 생각이야. 그리고 나는 쿠바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고.“


 “쿠바가 좋다면서 얘들은 왜 여기 데려오려고 하는데? 너는 돌아간다면서.”


 “나는 돌아가지만 젊은 얘들에게는 아무래도 여기서 사는 게 더 기회가 많을 거 같아서.” 


 카스트로는 50여년간 쿠바를 통치하는 동안 수많은 정치범들을 수감하고 처형하였다. 정치범뿐 아니라 동성애자나 에이즈 환자들까지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등 쿠바인들의 인권을 심하게 유린한 ‘야만적인 독재자’인 동시에 한 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이상을 실현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위대한 혁명가’로 칭송하기도 한다. 


 카스트로는 생애동안 미국 중앙정보국의 638회에 걸친 암살시도에도 살아남았다. 그래서 “내 생애 최고의 업적은 수많은 암살시도에도 살아남은 것이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암살시도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쿠바국민들에게 누가 섣불리 “당신들이 공산치하에서 너무 오래 있으면서 세뇌되어서 그렇지 당신들이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도 그 세월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이념에 세뇌되어 있음을 자신있게 부인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대부분의 서방지도자들이 카스트로를 ‘야만적인 독재자’로 규정하는 가운데 캐나다의 튀르도수상은 그를 ‘영웅적 지도자’, ‘전설적인 혁명가이며 웅변가’라는 애도메시지를 내놓아 구설수에 올랐다. 나중에 기자들이 따지자 그가 ‘독재자’인 건 인정하면서도 자기가 했던 말을 취소하진 않았다.


 내가 보기에 카스트로는 사회주의이념 실현에 어느 정도는 성공한 ‘혁명가’인 동시에 ‘독재자’이기도 한 양면성이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흑백논리에 빠져서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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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30
그 기자가 옳았던 것 같소

 

 K형, 늘 그래 왔듯이 어지러운 세상사엔 아랑곳없이 세월은 흘러 가을이 깊어가오. 그간 안녕하신지요? 언제부턴지 이렇게 평범한 인사말을 건네기도 어색해져 버린 얄궂은 시절을 우린 살고 있소. 계절 탓인지 나는 요즘 이런 저런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부쩍 늘었소. 오래전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어느 영국인이 했던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서 통 잠을 이룰 수가 없소.


 오래전 어느 영국인 기자가 그랬다고 들었소.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어린 시절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우리나라가 지구상에서 몇 번째로 가난한 나라라는 말보다도 몇 곱절 더 우리를 절망 속으로 밀어 넣었던 말이었소. 그래도 우리는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그 암울한 시절에도 민주주의를 배웠고, 목이 터져라 독재타도를 외치며 청춘을 보냈지요.


 대학을 들어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리로 뛰쳐나가 독재타도를 외쳤고,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해 교실은 군인들에게 점령당하고 말았었지요.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대학생활은 단 한 학기도 중단없이 정상적인 수업을 받지 못한 채 입학 때의 전공과는 상관없이 ‘데모’학점, ‘최루탄’학점만으로 졸업학점을 채워야 했었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암울했던 시절을 용케 이겨내고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거쳐 87년 어느 날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민주화’를 성취했지요. 그 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군부내 사조직이 해체되고… 몇 번씩 좌우를 오가며 정권이 교체되고... 이래저래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시끄럽고 휘청거리면서도 용케 잘 버티며 여기까지 왔지요. 


 누구나 무슨 말이든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마음대로 욕해도 되고 심지어 적국을 찬양하고 내통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만큼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 그래서 이젠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는 민주화된 나라라고 생각해 왔소. 민주주의사회란 원래 늘 그렇게 시끄럽고 어수선해 보이는 법이니까. 어느 국제기구에서 조사한 바로는 우리가 일본보다 더 민주화된 사회라고도 하고, 2차대전 후 식민지에서 벗어난 나라 중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나라라는 소리도 들리고. 


 그래서, 나는 저 영국기자가 누구였는지가 궁금해졌었소.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요. “자 보시오. 기자양반! 당신이 틀렸소. 우린 이렇게 해냈소. 한국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란 걸 당신이 몰랐던 거요.”라고. 내가 저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그 절망감은 어느새 뿌듯한 자부심으로 바뀌어 갔고, 그 때 그런 말을 해준 그가 고맙게 느껴지기까지 했소. “예전에 어느 영국기자가 그런 말을 했었던 나라를 우리가 이렇게 바꿔놨노라”고 자랑할 수 있게 해줘서 말이오. 


 그런데… 그런데 말이요. K형! 나는 요즘들어 자꾸 이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잠을 설치곤 하오. 아무래도 그 기자가 옳았던 거 같단 생각 말이요. 그 기자의 나라 영국에서도 최근에 ‘브랙시트’인지 뭔지로 나라가 어수선했었지요. 결국 국민투표까지 해서 유럽연합을 떠나기로 했다지요. 그런데,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직접 투표까지 해서 결정해준 사항을 가지고 영국법원은 “다시 의회의 승인절차를 거쳐서 시행하라”는 판결을 최근에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뒤통수를 한 대 호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소. 대의민주주의, 절차의 중요성, 법치주의, 삼권분립 이런 말들이 내 머리를 스쳐지나가면서 말이요. 그러면서 지금 어수선하게 돌아가는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았소.


 K형, 지금 대통령 때문에 나라가 이렇게 어수선하니 외국에 나와 사는 나같은 사람도 참 답답하고 속상한 건 물론이고, 혹시 누가 물어볼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하오. 자세한 내용은 잘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대통령이 여러 가지로 잘못한 부분이 많은 건 분명해 보이오. 그런데, 무슨 잘못을 했건 간에, 설사 대통령이 연쇄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죄는 법으로 다스리는 게 우리가 배웠던 민주주의가 아니었던가요? 


 내가 변호사가 아니니 법을 잘은 모르지만, 우리 헌법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차별을 받지 아니한다.(11조)”, “모든 국민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을 받지 아니한다.(12조)”,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12조)”,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27조)”, “대통령, 국무총리, ...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65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84조)” … 이런 훌륭한 우리의 헌법조문들은 지금 어디에서 낮잠을 자고 있나요? 


 K형! 국민에 의해 뽑힌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마저 적용받지 못하는 헌법을 우리는 왜 가지고 있는 거지요? 많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몰아붙이기만 하면, ‘적법한 절차에 의한 처벌’, ‘무죄추정의 원칙’,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불리한 진술 강요 금지’,… 이런 지극히 기본적인 권리마저 거리낌 없이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나라, 대통령의 인권도 하루아침에 이렇게 짓밟아버리는 나라에서 일반국민의 인권이 보호받기를 바라는 거야말로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자꾸 나를 괴롭혀 내 뱃속에 자꾸 알콜을 들이 붓게 되오.


 K형! 우리가 대학 다니던 시절 지적 허영심을 채우느라 폼 잡고 들고 다니며 건성으로 읽었던 미셸 푸코를 기억하오? 하도 골치 아픈 얘기들을 많이 써놓아서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지만, 요즘들어 불쑥 떠올라 비수처럼 내 가슴을 파고드는 한 마디가 있소. “진정한 해방은 권력으로부터 벗어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놓은 당신의 ‘생각’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가능하다.” 이 말이 새삼 내 가슴을 파고드는 건 지금 한국의 거리와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함성속에서 저 무시무시한 독재자의 분신들이 자꾸 어른거리기 때문이요. 


 “모든 잘못이 만천하에 드러난 마당에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해?”, “국정이 마비상태인데 한가하게 법 따지고 절차 밟을 시간이 어디 있어?”, ”당장 내려와!!!” 80년대 초 그 암울했던 시절에 사람들을 어디론가 자꾸 끌고 가면서 했던 저들의 말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몸서리가 쳐지오. 독재의 망령은 비단 저 군중 속에만 있는 게 아니었소. 위정자들의 머릿속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었소.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된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율'과 '자발'을 '강요'하며 국민들의 팔을 비틀었고, 지극히 비창조적이고 비혁신적인 방법으로 그들은 '창조'와 '혁신'을 꿈꾸고 있었소. 우리는 어느새 '개인'의 자유도 '집단'으로 누려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들이 되어 있었소. 난 푸코의 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 말이 저토록 무서운 말인 줄 미처 몰랐었소. 저들이 심어놓은 저 몹쓸 생각들이 손오공의 몸에서 뽑혀 나온 털들이 그 입김을 받아 수만 마리 분신으로 태어나듯 수십 수백만의 작은 독재자가 되어 이렇게 끈질기게 우릴 따라 따닐 줄은 미처 몰랐었소. 


 K형! 아무래도 그 때 기자가 옳았던 것 같소. 슬프게도.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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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7
21세기 독립운동

 

 대통령 때문에 온 세상이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또 이를 지켜보는 세계인들이 모두 대통령 얘기를 한 마디씩 거들며 혀를 찬다. 욕하고, 걱정하고, 조롱하고, 빈정대면서…


 “오 미국,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한때 위대했던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선거 다음날 아침 캐나다 최대 일간지 토론토스타의 일면에 실린 칼럼 제목이다. 자기 나라도 아닌 이웃나라의 대통령선거 결과를 두고 한 첫 마디로 보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도발적이고 무례한 언사이다. 


 “…미국이 미쳤다. 미국은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의 초석위에 세워진 나라. 비록 잘못을 저지를 때조차도 올바른 이유 때문에 그렇게 했던 나라… 그 나라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칼럼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아예 미국에게 사망선고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웃나라에서 법에 정해진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정당하게 뽑힌 그들의 지도자가 자기들이 예상했던, 아니 노골적으로 지원하고 바랐던 사람이 아니라고 이런 식으로 오만하고 무례하게 재단하고 반응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언론의 태도인가?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논조의 언론보도를 읽는 독자들 중에 “어! 이 거 좀 이상한데?”, “이래도 되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하는 점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실보도를 지향하는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오 언론들이여,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 “한 때 위대했던 미국의 언론들은 죽었다.” 이런 제목의 칼럼을 써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늘 그래 왔지만, 특히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는 미국의 언론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하게 일방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면서 편파적인 보도를 했다. 주류언론의 절대다수가 클린턴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면서 트럼프 후보를 집요하게 공격해댔다. 언론매체가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는 건 미국언론의 오랜 전통이니 이를 특별히 문제 삼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언론이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서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차원을 넘어서 모든 지면과 프로그램을 총동원해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보도를 끊임없이 쏟아냄으로써, 사람들을 호도하고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가 지금까지 언론보도를 통해서 알고 있는 도날드 트럼프의 이미지는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이슬람혐오주의자, 반이민주의자, 입만 열면 막말을 쏟아내는 막돼먹고 교양없는 저질… 이런 것들이다. 대통령은 고사하고 교양있는 일반시민이 될 자격도 없어 보이는 ‘미친 者’, ‘또라이’이다. 그렇다 보니 그가 대통령 당선은 고사하고 애초에 공화당후보로 지명되리라고 예상한 사람도 드물었다. 그런데, 그는 후보가 되었고, 대통령이 되었다.


 이 엄연한 사실을 접한 사람들은 놀라움을 넘어 요즘 유행하는 말로 ‘멘붕’에 빠져버렸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걸까? 미국인들이 집단으로 미쳐버린 걸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미친 건 미국인들이 아니라 미국언론들이다. 또 그 미국언론들의 미친 놀음에 같이 놀아난 세계의 언론들이다. 거대한 독재권력이 된 언론들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속여서 바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뉴스를 그토록 열심히 봐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이해할 수 없는 바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미국의 언론들은 일방적이고 악의적으로 트럼프를 악마의 이미지로 만들었고, 세계의 언론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서 재생산하기에 바빴다. 클린턴의 유세장에서는 늘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었지만, 트럼프의 유세장에선 잔뜩 화가 나서 찡그린 얼굴로 막말을 쏟아내는 트럼프의 인상 쓰는 얼굴만 보여주었다. 미국 유력언론 중 단 한 매체도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고 그의 당선 가능성을 얘기하지 않았다. 매체들은 스스로 자기최면에 빠져 거세게 일고 있는 ‘트럼프 현상’을 애써 외면하면서 사람들을 기만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정말 저렇게 저질이고 형편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미국 최고 명문 경영대학원을 나왔고, 거의 1년 가까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킨 책을 썼으며, 저렇게 거대한 기업을 일궈냈고, 공화당 후보에까지 올랐을까? 뭔가 좀 이상한데?” 이런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지난 1년간 꽤 많은 사람들과 미국대선 얘기를 나눴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는 좋든 싫든 언론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보탬도 뺌도 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해야 한다고 알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런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언론매체들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보도하는 시대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가 된지 오래다.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보도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전체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 보자. 한국에서 지금 나라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는 소위 ‘최순실 사태’의 수많은 보도 내용들 중에는 체육특기생인 그녀의 딸이 학교 수업에는 거의 들어가지도 않았고, 수준이 터무니없이 떨어지는 리포트를 제출하고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 학점을 땄다는 내용이 있다. 틀림없는 ‘사실’이겠지만, 이는 ‘전체사실’이 아니며, 따라서 ‘진실’을 보여준다고 보기 어렵다. 상식적으로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도 점수를 받아 학교를 졸업하는 건 이치에 맞지도 않고 지탄받을 일인 건 맞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닐 때도 체육특기생 동기들이 있었다. 그들은 최순실 같은 막강한 배후실세의 자제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교실에서 몇번 보지 못했다. 내가 알기로 대한민국에서 체육특기생이 수업에 꼬박꼬박 들어가면서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지금 언론들은 최순실의 딸만 유독 그랬던 것처럼 보도를 하고 있고,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그들의 장단에 놀아나고 있다. 이런 보도태도가 비단 이 사실에만 국한된 것일 리가 없다.


 오늘날 언론은 단순히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뉴스들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세상의 온갖 일들을 다루는 거대한 정보기관인 언론들은 어느새 거대한 독재권력이 되어 세상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고 지배하려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조종하고 세뇌시키고 있다. 웬만한 사람은 스스로 이런 사실을 알고 있고, 그래서 자기는 절대로 속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매체들 중 비교적 자기 생각과 같은 논조를 펴는 매체만을 주로 보고 그들의 보도는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들도 역시 자기편을 늘이기 위해서는 온갖 날조와 조작과 왜곡을 서슴지 않는 같은 족속들임을 망각한 채.


 “진정한 해방은 권력으로부터 벗어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놓은 당신의 ‘생각’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가능하다.” 철학자 미셸 푸코의 말이 새삼 무섭게 다가온다. 어쩌다가 우리는 끊임없이 두 눈을 부릅뜨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아야 겨우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는지. 요즘처럼 무서운 독재권력 언론으로부터 내 생각을 해방시키는 ‘독립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때도 없는 것 같다. 


(본 칼럼은 본보의 편집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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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6
그래도 ‘광장’은 아니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캐나다에도 있을 건 다 있다. 부정선거, 공약뒤집기, 정치인 부패, 비리, 공금유용, 측근 챙기기, 과잉진압, 국회의원 막말, 인재로 인한 사고… 이 세상에 아예 없었으면 좋을 이런 것들 말이다.
 2011년 캐나다 연방총선이 있은 직후 온타리오 주의 한 선거구에서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보수당선거사무실에서 조직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투표장소가 바뀌었다.”는 거짓말을 퍼뜨려 투표를 못 하게 막았다는 제보가 잇따랐다. 


 이런 선거불법행위는 컴퓨터 자동전화장치를 이용해 전국 200여 선거구에서 대대적으로 자행되었다는 제보가 이어졌다. 여론은 들끓었고 선거관리위원회와 연방경찰은 수사를 시작했다. 토론토시내를 비롯한 전국 여기저기서 시민들의 산발적인 시위가 있었으나, 거리를 가득 메우고 교통이 마비되는 대규모 집회는 없었다.


 2006년 보수당이 정권을 잡을 당시 스티븐 하퍼 후보는 무능하고 부패한 상원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궁극적으로는 아예 없애겠다고 하면서 그 일환으로 재임중 상원에 결원이 생기더라도 새로 임명을 하지 않음으로써 상원의원수를 줄여가겠다고 공약했다. 이 후 총리가 된 뒤에 실제로 한동안은 상원의 결원을 임명하지 않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꺼번에 무더기로 상원의원을 지명하여 상원을 장악하였다. 그런데, 상원 앞에서 핏대 올리는 이는 없었다.


 이 후 그가 임명한 상원의원들 중 일부가 공금을 유용하고 호화 해외여행을 하는가 하면, 막말과 마약에다 여성에게 폭력까지 휘둘러 구속되는 등 여러 가지 물의를 일으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그는 결국 당에서 제명되어 지금은 오타와의 어느 스티립바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2010년 캐나다에서 G-20정상회담이 열렸을 당시 토론토에서는 대규모 군중집회가 있었다. 일부 시위자들은 거리의 가게유리문을 부수고 경찰차를 공격하는 등 과격행위를 했고, 경찰은 이에 맞서서 무자비한 진압을 했다. 경찰의 구둣발아래 짓이겨지는 시위대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그런데, 시위대가 거리를 메우는 일도 파출소를 부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자유당 집권 말기에는 고위 정치인의 친구회사에 내용도 애매모호한 정부 용역을 맡겨 어마어마한 예산을 그냥 퍼다 준 일도 들통이 났다. 총리가 국회에서 야당의원에게 쌍시옷자 욕을 한 일도 있다. 야당에서 거세게 항의하자 자기는 욕을 하지 않았고 그냥 화가 나서 “니미기미..”라고 뜻없는 말을 했다며 얼버무렸고, 총리가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끝내 밝히지 못 한 채 넘어갔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총리가 뭐라고 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는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한 것이다.)


 2012년 6월 온타리오주의 작은 도시 엘리엇 레이크에 있는 쇼핑 몰의 지붕이 갑자기 무너진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2명이 죽고 22명이 다쳤다. 조사결과 사고의 원인은 관리부실 즉 인재로 밝혀졌다.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거 불법행위, 공약뒤집기, 측근부패와 비리, 저질막말, 폭행, 경찰의 과잉진압, 인재에 의한 사고. 우리 귀에 너무나 익숙한 말들이 아닌가?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이렇게 큼직한 정치적인 일들이 벌어져도 소수의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몇 시간 거리를 왔다갔다 하다가 마는 게 전부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이 사람들은 도대체 거리로, 광장으로 뛰쳐나가 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거리로 뛰쳐나가는 정치인도 없었고, “국민들이여 분노하라!”고 외치는 이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을 보고도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을까? 나 같은 이민자들이 많으니 사람들이 정치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건가? 참 대책없이 답답한 나라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 1년, 2년, 3년... 세월이 지나고 선거때가 되었다. 


 그 동안 집권보수당의 인기는 계속 떨어져 바닥을 기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야당인 자유당이나 신민당중 어느 당이 압도적인 인기를 모으지도 못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당이 되더라도 과반수를 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점쳤다. 그런데, 개표 결과 줄곧 지지도 3위에 머물렀던 자유당이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를 거두었고, 오만했던 보수당총리는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캐나다의 스타수상 쥐스탱 튀르도는 그렇게 탄생되었다. 조용히 있던 국민들이 손끝으로 말하는 투표장의 말없는 함성은 어느 광장의 목터지는 외침보다도 크고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출범한 튀르도 총리는 장관의 절반을 여성으로 임명하는 등 파격적이고 과감한 행보를 보였고, “어떻게 그렇게 파격적인 인사를 했는가?” 라는 질문에 “지금은 2016년이니까.”라고 쌈빡하게 대꾸하면서 국민들은 물론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하!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구나!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민주주의는 광장으로 끌고 나오는 순간 군중들의 발길에 짓밟혀 죽어버리고, 그 자리에서 집단주의로 부활한다는 걸.  廣場은 언제나 狂場이 되고 말아 이성(理性)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걸. 민주주의는 절차가 중요하다는 걸. 40여 년 전 내 나라에서 독재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성취하겠노라고 거리로 뛰쳐나갔던 나는 아직도 이렇게 민주주의를 낯설어 하면서 민주시민의 자세를 체득해 가고 있다.


 지금 온 나라가 뒤집어질 듯이 어지러운 이때에 한국인들도 좀 이랬으면 좋겠다. 가슴 터지는 분노는 조금만 참았다가 투표장에서 폭발시켰으면 좋겠다. 멀리도 아니고 내년이면 선거인데…간절한 소망을 담은 촛불은 각자 가슴속에 간직했다가 투표장에서 밝혔으면 좋겠다.


 촛불이 광장으로 모이면 민주주의를 밝히는 거대한 횃불이 될 것처럼 보이지만, 촛불은 들불이 되어 우리가 애써 마련한 민주의 자그만 초가삼간을 홀라당 태우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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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3
부끄럽다고?

 

 난리도 아니다. 갈수록 태산이다. 점입가경이다. 가관이다. 목불인견이다. 해도 해도 너무 했다. 부끄럽다. 창피하다. 유구무언. 할 말을 잃었다. 이럴 수가… 아무리 애를 써도 딱 떨어지는 한 마디를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내 가슴을 가장 답답하게 하고 암담한 기분이 들게 하는 건 최순실의 어처구니없는 국정개입도, 엄청난 축재도, 그 딸의 학사비리도 아니다. 누군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듯이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된 정운호 도박사건에서 출발해서 홍만표 롯데 우병우 넥슨?조선일보?청와대?미르재단?최순실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리를 통해 보여주는 고질적이고 광범위한 한국의 비리 부패구조도 아니다. 

 


 나를 가장 답답하고 참담한 기분이 들게 하는 건 박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순수한 마음에서 한 일…”이라는 그 한 마디이다. 여론의 엄청난 압력에 떠밀려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는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이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말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대통령을 직접 대면한 일은 없지만, 지금까지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닌 게 아니라 박대통령은 정말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일념으로 가득한 것 같다. 


 그래서 퇴근 후 저녁에도 회식을 하거나 누굴 만나는 일이 거의 없고 식사후 잠자리에 들 때까지 ‘보고서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얘길 들었다. 또 휴가도 청와대 경내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니 “더 꼼꼼하게 챙겨 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을 의심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순수한 마음에서 그랬다는 말속에서 “내가 무슨 사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위해 불철주야 걱정하면서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그랬는데 왜 이렇게 내 진심을 몰라주고 몰아붙이느냐?”고 하는 원망어린 마음을 읽었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콱 막혀오는 답답함을 느꼈고, 참담한 기분이 되었다.


 통상 어떤 정치적인 비리나 스캔들이 터질 경우 그 사건 자체의 내용 못지않게 그 이면의 의도가 중요하다. 그러나 박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지금껏 청와대주변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일들과 그 결정판이라 할만한 이 번 사태의 핵심은 그 내용이나 이면의 의도보다는 대통령의 상황인식의 문제라고 본다. 대통령의 그 말이 진심이 아니고 차라리 노회한 정치인의 교활한 술수요 말장난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대통령의 사과문에서 “잘못 됐다. 내가 상황판단을 잘 못 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메시지를 기대했다. 박대통령이 이 번 일을 계기로 자신의 그 ‘순수한 마음’ 뒤에 가려서 지금껏 미처 깨닫지 못 했던 자신의 “어리석은 마음”을 깨치기를 바랐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박대통령은 자신의 그 순수한 마음의 틀속에 갇혀서 그 뒤에 숨어 있는 자신의 “어리석은 마음”을 깨닫지 못 하고 있는 듯 하여 답답하고 암담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다.


 온 나라가 최순실로 들끓고 있는 가운데 국민들은 극도로 분열되고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여야, 좌우를 막론하고 내지르는 일치된 목소리가 있다. “부끄럽다.”고 한다. 국민도, 언론도, 정치하는 사람들도 완전 막장판으로 치달으며 차분함이나 이성적 대응의 기미는 나라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극도의 혼란속에서 신기하게도 너나없이 합의가 이뤄지는 의견은 ‘부끄럽다’이다.


 나라의 시스템이 붕괴되고 온통 비리와 비정상이 판을 치며 엉망으로 꼬여버린 자기나라의 속살을 들여다보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그 말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작 무엇에 분노하고 무얼 부끄러워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다.


 박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새로이 유행어가 된 말에 “유체이탈 화법”이란 게 있다. 사실 나도 이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이 말은 ‘자기 말을 꼭 남의 얘기하듯 하는 말투’를 이르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박대통령이 무슨 정치적인 발언을 할 때 늘 이런 화법을 써서 자기 책임을 회피한다면서 비판하고 조롱해왔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람들이 입을 모아 “부끄럽다.”고 하는 말을 자세히 들어 보면 바로 저 유체이탈화법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박대통령은 일본대통령도, 중국대통령도 아니다. 바로 한국국민들의 손으로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뽑은 한국의 대통령이다. 그 대통령이 뭔가를 잘 못 하고 있다면 “우리가”, “내가” 잘못 뽑은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을 향해 욕하고 조롱하며 “당신 때문에 부끄럽다.”, “당장 그만 두라”고 나라가 어찌 되든 화풀이하듯 열을 올릴 게 아니라 지도자를 잘못 뽑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나의 어리석음을 먼저 부끄러워 하고 반성해야 나라의 주인인 국민으로서의 제대로 된 태도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언론은 시시콜콜한 온갖 막장드라마 같은 쓰레기뉴스들을 파헤치고 조작하며 제 앞가림 하기에 바쁘고, 국민들은 거기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 형국이다.


 대통령은 ‘순수한 마음’의 틀에 갇혀 자기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고, 국민들은 또 그들대로 나라의 주인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자기나라 대통령을 ‘저들의 대통령’으로 인식하고 대접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앞날은 어둡다. 어리석은 국민이 어리석은 지도자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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