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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꿀 발라 났드나?(1)

 

 “꿀 발라 났드나?”


 어떤 사람이 같이 있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자꾸 집에 가고 싶어하는 눈치를 보일 때 못 마땅해 하며 핀잔처럼 내뱉는 경상도사람들의 흔한 말버릇이다. 누가 어느 특정 장소를 뻔질나게 드나들 때도 이렇게 비꼬듯이 쏘아 붙이곤 한다. 


 인기 남성그룹 ‘장미여관’의 세태 풍자적이고 코믹한 노래 ‘봉숙이’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집에는 말라 드갈라고? 꿀 발라 났드나? 나도 함 묵어보자…” (집에는 뭐 하러 들어갈려고. 꿀 발라 놨어? 나도 한 번 먹어보자.) 약간 능글맞은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여자친구를 더 붙잡아 두려고 꼬드기는 장면을 보사노바풍의 이국적인 선율에 실어 노래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납득할 만한 뚜렷한 이유없이 마약중독자가 마약에 탐닉하듯이 어떤 것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자꾸 빨려드는 사람에게 하는 말로 이보다 더 재미있고 적절한 비유도 드물듯 싶다. 왜 그렇게 미련을 못 버리는 거야… “꿀 발라 났드나?”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탄핵정국과 관련하여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위군중속에는 온갖 구호를 적은 푯말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은 구호가 하나 있었다.


 “사회주의가 답이다.” 


 “문제는 자본주의다.”라는 구호와 나란히 흔들어대는 이 구호가 내 눈길을 끈 것은 흔히들 얘기하듯이 이런 구호가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는 게 놀랍다거나 또는 걱정이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르크스사상이 온 지구를 휩쓸고 지나간 뒤 지구촌의 절반을 차지했던 공산주의국가들이 거의 모두 그 체제의 모순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붕괴된 지도 수십년이 지났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지금까지도 자본주의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사회주의(옛 공산권 국가들에서도 이상하게 ‘공산주의’란 말 대신 ‘사회주의’를 선호했다.)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점점 더 그 지지층이 두터워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오래전부터 이 질문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답을 생각해 왔었는데, 저 구호가 적힌 푯말을 본 순간 그 답이 점점 더 명확하게 사실로 입증되는 듯한 불길한 느낌이 들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막스 베버는 그의 책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정신>에서 서구국가들 중 영국, 네덜란드, 미국 등에서 근대 자본주의가 다른 나라보다 먼저 꽃피기 시작한 바탕에는 칼뱅주의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도들의 직업 소명의식과 금욕주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치와 향락을 죄악으로 여기며 열심히 일해서 부를 축적하는 것은 도덕적일 뿐 아니라 신이 내린 소명이라고 여기는 청교도정신이 근대자본주의의 촉매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일제식민지에서 벗어나 근대적 국가를 형성한 이 후 세계역사상 유래가 없이 빠른 속도로 산업화를 이루면서 자본주의를 꽃 피웠다. 다른 나라들이 이런 경이로운 발전을 부러워하고 그 방법을 배우고 싶어 하지만, 정작 한국인 자신들은 이런 성취가 영 마뜩찮고 껄끄러워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듯이 불편해 하고 있다. 그래서 ‘헬조선’을 외치며 그 지옥에서 벗어나는 해결책으로 ‘사회주의가 답이다.’라는 처방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왜 그럴까? 정말 누가 사회주의에 꿀이라도 발라 놓은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우리 민족의 기질이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에 훨씬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기질이 그렇다 보니 독재정권의 강압에 이끌려 얼떨결에 초단시일내에 자본주의의 꽃을 피워 냈으면서도 늘 자본주의라는 옷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거의 모든 공산국가들이 붕괴되었음에도 북한이 아직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것도 같은 기질을 타고난 우리 민족성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자본주의는 한 마디로 ‘돈벌이’를 숭상하는 체제다. 그런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돈을 경멸하라고 가르친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이르신 어버이 뜻을 받들어…” 


 어릴 때 불렀던 ‘최영장군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는 공업과 상업은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사농공상’의 순위에 따라 최하위 계급으로 멸시하고 천대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무의식중에 부자는 나쁜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는 의식을 끊임없이 심어준다. 흥부전이 그렇고, 심청전에서도 그 옛날에 벌써 국제무역을 했던 돈 많은 상인들은 생사람을 수장시키는 나쁜 사람들이다. 


 어릴 때부터 무수한 선비들의 얘기를 들었지만 좋은 사람은 으레 ‘가난한 선비’였다. 벼슬하는 사람도 좋은 사람은 반드시 청빈, 즉 가난하다. 비록 그 사람이 임금 다음으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어도 훌륭한 재상은 늘 가난해야 한다. 옛날 선비들의 글에서도 언제나 ‘나물 먹고 물 마시며’ 쫄쫄 굶더라도 팔 걷어붙이고 열심히 일해서 악착같이 돈을 버는 건 천한 일로 되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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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6
농담이었어

 

 농담은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을 일컫는 말이다. 우스개라고도 하니 말그대로 별 뜻없이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를 말한다. 사람들은 농담속에 슬쩍 진심을 숨겨넣어 농담 반 진담 반의 ‘뼈 있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또 농담을 건네는 사람은 별다른 뜻없이 그야말로 웃자고 한 농담을 듣는 사람이 농담이 아닌 진담으로 받아들여서 난처한 상황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다 보니 실생활에서 하는 농담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 주고 대화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대화 분위기를 오히려 망쳐버리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이 던지는 농담이 단순한 우스개가 아닌 것으로 느껴질 때처럼 난감한 경우도 드물다. 화를 내자니 자칫 농담도 못 받아들이는 옹졸한 인간이 될 것 같고, 그냥 넘어가자니 기분 나쁘고 속이 뒤틀리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듣기 거북한 얘기를 잔뜩 늘어놓고는 마지막에 “농담이었어.”라고 눙치며 슬쩍 빠져버리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농담은 때와 장소를 가려서 상대방과 충분한 정서적 공감대가 이뤄졌을 때만 하는 게 안전하다.


 농담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작가 밀란 쿤데라가 발표한 첫 장편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루드비크는 여자친구에게 보낸 엽서에 담긴 짧은 농담 한마디로 말미암아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고 만다. 활기차게 학생모임에 참가하고 친구들과 짓궂은 짓도 잘하는 루드비크는 여자친구 마르케타와 사상적으로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그런데, 자기의 애타는 마음을 몰라주는 여자친구를 놀라게 하고, 충격을 줘서 혼란에 빠지게 할 심산으로 공산당 연수를 떠난 그녀에게 짧은 농담을 적은 엽서를 보냈다. 엽서에는 단 세 마디가 적혀 있었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에는 우둔의 악취가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1948년 체코 공산혁명 직후 혁명적 낙관주의가 강요되던 시기에 혁명의 낙천성을 비꼬는 농담을 하고, 스탈린이 해방시킨 체코에서 그의 최대 정적인 크로츠키 만세를 부르는 것은 북한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는 것과 같다. 그는 곧 정치국에 불려가 취조를 받았다.


 “그들은 내 엽서를 읽어 주었다… 동지들! 그건 다만 장난치려고 했던 것뿐이야,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믿지 않음을 느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당적을 박탈당하고,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수용소나 다름없는 군대로 끌려갔다.


 국가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직무를 몇 달째 정지시켜 놓은 채 온 나라를 극도의 혼란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는 ‘대통령탄핵’ 사태의 발단이 어쩌면 어느 시정잡배 한 사람과 그 일당이 사익을 챙기기 위해 사전에 교묘하게 꾸민 음모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들의 통화내용이 고스란히 담긴 녹취록에는 “내가 제일 좋은 그림은 뭐냐면… 이렇게 틀을 딱딱 몇 개 짜놓은 다음에 빵 터져서 날아가면 이게 다 우리 거니까 난 그 그림을 짜고 있는 거지.”라는 내용을 비롯해 그들이 사익을 챙기기 위해 사전에 모든 시나리오를 주도면밀하게 기획했다고 보기에 충분한 정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 당사자는 그 녹음파일에 대해 “사석에서 흔히 하는 농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몇 해 전 이석기 내란음모 및 내란선동혐의사건과 관련하여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이른바 경기동부연합 비밀혁명조직의 녹취록에 대해 변론을 맡은 한 진보정당 대표는 “130명 가운데 한 두 명이 총기탈취, 시설파괴 등을 말했을 뿐이고, 농담처럼 말하거나 누군가 말해도 웃어 넘겼다”고 말하면서 “압력밥솥 폭탄”과 같은 구체적인 언급에 대해서도 농담이었다고 태연하게 주장해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또 다른 진보정당 대표는 “그들이 비밀리에 활동해서 그런 사람들인 줄 몰랐다”고 하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아리송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가 보더라도 농담이 아닌 진지한 대화임이 분명한 말을 농담이라고 우겨대는 사회는 농담이었음이 분명한 말을 농담이 아닌 진담으로 둔갑시키는 사회만큼 끔찍하고 절망적인 사회이다.


 “내가 농담을 시작하자 온 세상이 울기 시작했어. 하지만 난 알지 못 했어. 그 농담이 바로 내 얘기란 걸. 아! 이 게 아닌데... 내가 울기 시작하자 온 세상이 웃기 시작했어. 아! 그 농담이 바로 내 얘기란 걸 알기만 했더라면…”

(Bee Gees의 노래 “I started a joke” 중에서)


 회한에 젖은 듯 절절하게 부르는 로빈 깁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자꾸만 내 귓전에 맴돌아 우울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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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서울내기 다마내기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


 그 날도 마지막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망치듯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응로의 뒤에는 어김없이 한 무리의 또래들이 따라가면서 장단에 맞춰 이렇게 놀려대고 있었다. 응로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내가 다니던 시골 초등학교로 전학 온 친구였다. 


 응로는 우리 시골 아이들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많이 달랐다. 우선 얼굴이 뿌윰하게 도시스럽게 생긴데다 오동통하게 살이 쪄서, 햇볕에 타 까무잡잡한 얼굴에 희끗희끗하게 마른버짐이 핀 우리들과는 때깔이 달랐다. 또 책과 공책, 연필통을 보자기에 둘둘 말아서 등에 메고 다니던 우리들과는 달리 번듯한 책가방을 들고 다녔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놀라게 한 건 응로의 말씨였다. 공부도 썩 잘하지 못하던 그 애가 늘 정확한 표준말을 또박또박 하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 때까지는 책에서만 봐 왔고, 기껏해야 가끔씩 들었던 라디오에서 아나운서들이나 하는 줄 알았던 표준말을 내 또래 아이가 일상적으로 하고 다니는 게 어찌나 신기했던지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생김새와 행동과 말씨가 다른 응로의 모습이 우리 촌놈들에겐 마치 구한말 어느 날 커다란 배를 타고 강화도에 들이닥친 요상하게 생긴 서양인들만큼이나 충격적이고 신기했다. 그러니 응로는 금세 전교생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그 관심은 곧 놀림으로 변하였다. 


 그 애만 보면 쓸 데 없는 말을 시키고, 그 말투를 흉내 내다가는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좋은 고래고기!”의 합창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응로가 울상이 되어 “얘들아, 그러지 마. 싫어!”라고 하면, 그 낯선 말투를 또 재미있어 하며 더욱 신이 나서 놀려대곤 했다. 다들 어슷비슷한 환경속에 고만고만한 일상을 살아가는 시골아이들 속에 어느 날 불쑥 나타난 이질적인 존재인 응로는 그렇게 혹독하게 놀림당하고 배척받았다.


 그 때 우리들은 나와 다른 이질적인 존재를 받아들일 만큼 세련되지 못한 철부지 촌놈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에겐 투박한 사투리가 ‘표준’이었고, 응로의 표준말은 우리와 다른 ‘서울내기의 말’일 뿐이었다.


 내가 종종 일을 도와주는 이태리식당에는 다양한 인종들이 일을 하고 있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스리랑카출신의 타밀족들이다. 링건과 세칼은 그 식당에서 일을 한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다. 타밀사람들은 인도 타밀나두주가 원래 고향이지만, 고대로부터 바다 건너 스리랑카의 동북부 지방에서도 살아 왔고 근대에 상당수 이민이 이어져 현재 약 3백만명이 그 곳에 살고 있다.


 그런데, 스리랑카는 국민의 90%가 불교도이며 힌두어를 쓰는 반면, 타밀족은 기독교와 힌두교도가 대부분이고 타밀어를 쓰고 있으니 늘 소수민족으로서 차별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기 나라에서도 주인 노릇을 못하고 따돌림 당하는 신세가 싫어서 이민을 오게 된 것이다. 


 비록 이 곳에서는 ‘링컨’, ‘시걸’이란 다소 어색한 이름으로 불리긴 하지만, 자기들과 비슷한 처지의 이라크, 이란, 쿠바, 우크라이나, 라트비아에서 온 다른 이민자들과 어울려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토론토지역에서는 160여개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이 식당에서만도 공용어인 영어외에 대여섯 가지 다른 언어들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모두가 소수다.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척하는 속성을 갖고 있는 듯하다. 최근 한국에서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장애인, 트랜스젠더 등 사회적 소수자 열명 중 여덟명이 온라인 뉴스기사나 영상의 댓글에서 혐오표현을 접했다고 한다. 온라인 카페나 커뮤니티 댓글(74%), 페이스북(73%), 블로그 댓글(60%), 트위터 댓글(49%) 등이 뒤따랐다. 장애인의 56%, 성적 소수자의 43%, 이주민의 43%가 이런 사회적인 차별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국정교과서의 집필이 완료되어 마침내 책이 나왔다. 그런데, 전국에서 새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를 신청했다가 마지막 남은 경북 지역 세 학교 중 두 학교가 외부 압박과 학내 사정으로 신청을 철회했거나 신청할 길이 막혔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전국 중 고등학교 5,566곳 가운데 새 교과서 연구 신청학교는 단 한 군데만 남았다고 한다. 야당이 끈질기게 반대하고, 좌파 교육감들이 신청서를 중간에서 막고, 전교조와 민노총 같은 단체가 앞장서서 막은 결과라고 한다. 


 정부가 역사과목에 국정교과서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가장 우려되는 점이 다양성을 상실한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역사관을 심어주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야당과 전교조를 중심으로 한 반대파들의 주장도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5,566학교중 단 두세 곳에서도 새 교과서를 채택할 수 없게 막음으로써,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획일적으로 좌편향적인 교과서를 가르치게 하는 것이 저들이 말하는 다양성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기독교가 유럽으로 전파된 뒤 중세이후까지 이어졌던 수많은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통해서 무수한 생명들이 단지 “다수인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죽어갔음을 역사기록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렇게 이성을 잃어버린 광란의 암흑기는 수백년 동안 이어지다가 차츰 시민의식이 싹트고 과학문명이 발달하면서 18세기 말엽이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다. 그런데, 21세기 이 문명시대에 역사를 가르치는 일에서조차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 함은 비극이다.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 중에 다수결의 원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소수에 대한 배려와 다양성의 존중이다. 소수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는 다수결은 전체주의적 독단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모든 면에서 다르게 태어나기 때문에 각자 행동과 생각과 추구하는 바가 다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는 곧 인간성을 말살하는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바라보노라면, 어린 시절 응로의 뒤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던 그 철부지아이들의 야만적인 악다구니가 귓전을 때리는 듯하여 자꾸 도리질을 하곤 한다.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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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2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대고 
하고픈 말들이 목구멍으로 차 올라 
펜을 들었다.

 

이 미친 세상에 무슨 말을 하랴?
이 미친 세상에 무슨 글을 쓰랴?

 

어제의 진실이 오늘은 거짓이 되고, 
오늘의 거짓이 내일은 진실이 되는 현실앞에


 
내 아둔한 머리로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아낼 길이 없건만,
진실이 드러났으니 탄핵하라 하고,
진실이 밝혀졌으니 탄핵하지 마라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저들의 단순함이 난 무섭다.
확신에 찬 저들의 모습이 난 두렵다.

 

진실이 실종되고 이성은 마비되어 버린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글을 쓴들 무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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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7
거짓말 공화국

 

 제1조 (1)ㅇㅇ민국은 거짓공화국이다. (2)ㅇㅇ민국의 주권은 광장에 있고, 모든 거짓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거짓말할 자유를 가진다. 제11조 모든 국민은 거짓말 앞에 평등하다. 


 제27조 (1)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 외에 민중과 떼법에 의해 재판을 받을 수 있다. 이 때 민중과 떼법은 모든 법에 우선한다. (4)모든 거짓말은 그 것이 진실이 아님이 명백히 밝혀질 때까지는 진실로 추정된다. 


 제45조 국회의원은 직무상 국회에서 행한 거짓말과 표결에 대해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제46조 국회의원은 자신과 소속당의 이익을 우선하여 거짓말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제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나 야당 또는 다수 국민의 미움을 샀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제103조 법관은 거짓과 여론에 의하여 자신의 이념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아직 씌여지지 않은 소설속에 나오는 거짓말공화국의 헌법 조항들이다.


 ㅇㅇ민국의 국민들은 거짓말에 관한한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가까운 이웃 나라와 비교한 통계치를 보면 이 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법적으로 범죄가 되는 거짓말에는 사기, 위증, 무고가 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어느 해에 ㅇㅇ민국에서 무고로 처벌받은 사람은 2,171명이었고, 위증이 1,544건, 사기사건이 20만5,140건이었다. 


 그 이웃나라의 경우에는 같은 해에 무고가 10명, 위증이 9명, 사기가 5,000여건이었다고 한다. 단순 비교를 하더라도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고, 두 배가 넘는 이웃나라의 인구를 감안한다면, 인구대비 거짓말 범죄비율이 수백배에 이르러 아예 비교를 할 수 없을 지경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와 같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심각성을 깨달아 깊이 고민하는 이는 없는 듯하다.


 ㅇㅇ민국에서는 평소에도 늘 거짓말이 일상화되어 있지만, 특히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선거철이 되면 온갖 거짓말들이 세상을 뒤덮곤 한다. “거짓말은 처음엔 부정되고, 그 다음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믿게 된다.” “거짓말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말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이왕 거짓말을 하려면 될 수 있는 한 크게 하라.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는 큰 거짓말을 더 잘 믿는다. 그리고…… 그것은 곧 진실이 된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에는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 “대중에게는 생각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생각이란 모두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승리한 자는 말의 진실 여부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거짓말과 대중선동에 관한 독일 나치 선전상 괴벨스의 저 명언들은 ㅇㅇ민국에서는 이미 모든 사람들이 체득하고 있어서 현실생활 중에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평소에 개인이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기 위해 크고 작은 거짓말을 수시로 하고, 마을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짓말을 하여 보험금을 타먹기도 한다. 선거철에 상대후보를 헐뜯기 위해 거짓말을 퍼뜨리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자기가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을 헐뜯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서슴없이 해댄다.


 어떤 사람이 테블릿PC를 쓸 줄 아는지와 같은 지극히 단순한 사실을 놓고도 어떤 이는 쓸 줄 모른다고 하고, 어떤 이는 늘 들고 다니면서 쓰는 걸 봤다고 증언한다. 객관적인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보도해야 할 언론에서도 매체마다 다른 얘기를 하고, 가장 엄정해야 할 검찰에서도 똑 부러진 진실을 밝히지 않고 횡설수설한다.


 그러니 평소에 개인적으로 그 사람을 잘 알지 못 하는 일반 국민들은 실체적 진실은 알 길이 없고,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는 게 틀림없다.”는 사실만 믿을 수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광장에 모이면 대충 몇 명이 모였는 지도 알 길이 없다. 얘기하는 사람마다 수십만 명씩 차이가 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 시대에 언론에서는 몇 년 전 사진을 버젓이 내보내며 독자들을 속인다. 평화적 집회를 자랑하면, 반대편에선 몇 년 전 사진을 어제 찍은 사진이라고 들이대며 폭력현장을 숨겼다고 사기 친다. 난 데 없이 몇 년 전 국제체육행사 때 국제관례에 따라 내걸었던 사진을 며칠 전 사진으로 둔갑시켜 인공기가 대낮에 버젓이 내걸렸다고 소문을 퍼뜨리기도 한다. 


 ㅇㅇ민국에선 남들에게만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예사로 하는 듯하다. 대통령 또는 고위 공직자 후보들은 거의 전부 병역기피에 위장전입을 했지만, 국회의원, 언론인, 일반국민들 중에 병역을 불법으로 면제받았거나 위장전입으로 부동산투기를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국민들 수준은 이미 선진국수준에 와 있는데, 정부와 정치는 아직 후진국 수준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모든 법률이나 제도는 이미 선진국 수준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오히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나 행동이 그걸 못 따라가서 구석구석에서 삐걱거리는데도 말이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그 잘 만들어 놓은 제도나 법은 안중에 없고 60, 70년대식으로 머리띠 두르고 거리로 나설 생각부터 한다. 그러면서 의식수준이 이미 선진국 수준에 와있다고 착각하며 스스로를 속인다. 


 오늘도 저 거짓말공화국에선 자기들이 쏟아낸 거짓말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도 모른 채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진실이라 믿으며 또 다른 거짓을 쏟아내기에 바쁜 모습들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저 모든 것들이 거짓말처럼 다 거짓이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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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1
그런 때가 있었지…

 

 1972년 10월 어느날 온 나라가 숨을 죽인 날이 있었다. 서슬이 퍼렇던 박정희정권은 3선개헌으로 권력을 계속 이어오던 중 그 해 10월 어느날 드디어 영구집권이나 다름없는 희한한 헌법을 내놓았다. 그 이름도 생소한 ‘10월유신’이었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공표된 유신헌법에 민주주의의 흔적은 많지 않았다. 이후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은 점점 더 높아갔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에 이어 조선일보 등 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고 나섰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독자들이 지면에서 느낄 만큼 자유언론을 실천한 언론은 동아일보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다. 다른 언론사의 기자들은 동아일보 기자들을 부러워했다.


 정부는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가해 광고게재를 막는 방법으로 언론사에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1973년 3월 조선일보의 광고주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조선일보의 경영진은 즉각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납작 엎드렸다. 이 후 정부정책에 대한 적극협조를 약속하고 위기를 모면했다. 국민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조선이 그렇게 태도를 바꾸자 동아일보의 정론보도는 더욱 두드러졌다. 그 암울했던 시기에 “동아일보 보는 맛에 산다”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그 신문의 인기는 날로 높아갔다. 당시 동아일보의 광고효과는 매우 좋아서 광고를 실으려면 현금을 주고도 며칠을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1974년 12월 16일 몇 몇 광고주가 자기 회사 광고 동판을 회수해 갔다. 이유는 묻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어서 다른 광고주들이 하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열흘만에 광고주의 98%가 그렇게 사라지자 12월 26일자 동아일보의 광고지면은 백지인 채로 나갔다.


 역사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신문 하단의 백지를 본 국민들의 얼굴은 백지처럼 하얗게 변했다. 그 동안 자매지의 책광고와 기존 광고주들의 광고를 앞당겨 싣는 방법으로 광고지면이 채워져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국민들은 경악했다. 경악은 이내 분노로 변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원로 언론인 홍종인이 12월 28일자 신문에 “언론자유와 기업의 자유”라는 제목의 의견광고를 게재했다. 이를 시작으로 각종 단체와 개인들의 격려광고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온갖 호소문, 격려문, 선언문이 실리기 시작했다. 어느 대학교수는 “나는 조용히 미쳐가고 있다”고 광고했고, 문인들은 전면광고 하나를 살 수도 없는 자신들의 주머니 사정을 안타까워하는 광고를 실었다. 


 “동아일보 배달원임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광고를 내기 위해 고철을 팔아 푼푼이 모은 돈을 기꺼이 내놓는 신문보급소 배달원들도 있었고, 배운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법대동기생들도 나왔다. 격무에 시달린 몸이 휴식을 취해야 할 황금같은 휴일에 신문팔이를 해서 모은 돈으로 격려광고를 내는 시내버스 안내양들도 있었고, “술 한잔 덜 먹고 여기에 내 마음을 담는다”는 운전기사도 있었다.


 어느 복덕방 주인은 “이겨라 동아”를 외쳤고, “왜 정부는 신문을 못살게 구나요?”라고 묻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서 운전사에게 동아일보에 격려광고 내러 간다고 했더니 운전사가 한사코 요금을 안 받더라며 광고를 접수시키다가 울음을 터뜨린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시민도 있었다.


 이렇게 쏟아져 들어온 광고들은 너무나 눈물겹고 감동적인 말의 향연이었다. 그 전까지 기사만 읽고 광고에는 눈길을 주지 않던 사람들이 기사보다 오히려 광고 읽는 재미에 빠질 정도였다. 


 박정희정권의 핵심인맥으로 일컬어지는 TK, 그 중에서도 핵심으로 알려진 한 고등학교의 동창회에서 시리즈로 실었던 광고를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첫 날엔 “와 이카노?”, 둘째 날엔 “이칼래?”, 셋째 날엔 “이 칼라 카나?”하는 식으로 이어진 그 광고들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이유는 우선 광고가 짧은데다 그 사투리에서 오는 투박하고 강렬한 울림 탓도 있겠지만, 그 광고주체가 박정권의 핵심인맥을 이루는 고등학교동창회라는 사실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다가 문득 기억 속에서 까마득히 사라졌던 수십년 전의 그 일들이 갑자기 떠오르는 이유는 뭔지? 비록 철은 없었지만 젊은 피가 끓던 그 시절의 그 일들을 이렇게 다시 떠올리며 적어나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에 이슬이 맺히는 이유는 뭔지? 그 때는, 그렇게 암울했던 그 때도 그런 언론이 있었고, 그런 국민들이 있었더랬는데… 그 후 동아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 후 결국 오래 버텨내지 못하고, 130여명의 기자를 무더기로 해고하면서 권력에 굴복하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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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5
딱한 당신들

 

 낯익은 얼굴들이 또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때가 되면 잊지 않고 찾아오는 계절풍처럼 한국사회에 주기적으로 불어 닥치는 정치의 소용돌이 바람이 몰아치면 어김없이 그 불똥이 튀어 한 바탕 몸살을 겪어야 하는 한국의 기업인들이 참 딱해 보인다. 그들의 고개 숙인 모습을 이처럼 주기적으로 봐야 하는 한국인들의 처지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경제활동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 사회, 문화 어떤 분야건 무슨 일을 벌이려면 필연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을 끌어오는 방법 중 가장 쉬운 방법이 돈을 많이 가진 기업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권력을 쥔 자의 눈에서 벗어나면 재계10위권 안에 드는 기업도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나라에서 권력자의 요구를 거절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나중에 또 다른 권력에 의해서 단죄되고 난도질당할 걸 뻔히 알면서도 당장 눈앞의 권력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게 한국 기업인들의 처지다. 


 그런데, 저들의 고개숙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그런 사람들의 멸시와 지탄을 또 감당해 내야하는 게 한국기업인들의 현실이다. 그래서 더욱 딱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돈을 많이 갖기를 원하면서도 왜 돈을 많이 가진 저들에게는 그토록 적대적인 반감을 갖는 걸까? 이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하려면 역사적인 사실에서부터 사회문화적 배경, 심리학적 분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들을 체계적으로 따지고 분석하는 논문이 적어도 수십편 필요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그냥 이 문제와 연관이 있는 몇 가지만 가볍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사람들이 대기업에 대해 반감을 갖는 이유를 들어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다. “온갖 편법과 탈법을 일삼는다.”, “편법상속으로 부를 대물림해서 사회정의를 해친다.”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대기업이 사람들의 멸시와 지탄을 받는 대표적인 이유는 결국 ‘편법’과 ‘탈법’과 ‘상속’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편법’의 사전적 의미는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은)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이다. ‘탈법’은 ‘법이나 법규를 지키지 않고 교묘히 뚫거나 벗어남’을 의미하고 ‘탈법행위’는 ‘강행 규정이 금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다른 적법 행위의 방식을 빌어 이를 면하고자 하는 행위’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그러니까 대기업들은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법이나 강행규정이 금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간편하고 손쉬운 적법행위의 방식을 빌어 그 법을 피해나가는 일을 자주 했다는 이유로 멸시와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편법과 탈법을 저지르는 가운데 더러는 ‘불법’도 저질러서 더욱 적대적인 감정을 불어 일으키는 측면이 있겠지만, 불법행위는 당연히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았을 테니 결국 ‘법이 정한 범위내에서 최대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는다는 얘기다. 그 행위가 그렇게 비난 받을 일이라면 아예 불법으로 정하면 될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점을 간과한 채. 


 근래 갑자기 한국에서 새로 생겨 유행하는 말중에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있다. 가진 부모를 타고난 사람들에 대한, 못 가진 부모를 타고난 사람들의 질시와 분노와 비난이 담긴 말이다. 이 말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속’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슷한 능력을 가진 젊은 사람이 그의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능력과 지위에 따라 심하게 차이가 나는 출발선에 서서 경쟁을 해야 한다면 분명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 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상속의 문제는 단순히 이러한 측면만 있는 게 아니라 훨씬 다양한 문제들이 얽혀 있는 복잡한 이슈이다. 부(富)의 불평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흔히 ‘부자로부터 더 걷어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기’식의 소득재분배정책을 시행하지만, 그 효과는 오히려 엉뚱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부자들에게 세금을 아주 높게 부과하고 상속세를 엄청나게 올려서 부의 대물림을 차단하자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잊고 있는 사실은 “그렇게 힘들게 자기가 모은 돈의 거의 전부를 결국 남에게 다 줘야한다면 과연 누가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해서 기업을 일으키고 고용을 하려고 하겠는가?”하는 점이다. 이런 복잡한 문제들 때문에 상속세는 나라마다 그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0%에서부터 70%이상까지 다양하게 정해놓고 있는 것이다.


 영화 ‘월 스트리트’에서 마이클 더글라스는 “탐욕은 좋은 거야 (Greed is good)”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맞는 말이다. 좀 더 편하게, 좀 더 빠르게, 좀 더 많이, 좀 더…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인간의 탐욕은 인류문명을 발전시키는 에너지의 근원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타고나는 이 ‘탐욕’이야말로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기인 것이다.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아무런 욕심이 없다고 상상해 보라. 과연 오늘날과 같은 눈부신 인류문명의 발달이 가능했겠는가?


 문제는 이 ‘탐욕’이 적절한 제어를 받지 않게 되면 서로의 탐욕들이 충돌하여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일으키게 되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터무니없이 커지게 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마치 성능 좋은 자동차와 같은 것이다. 좋은 운전자가 제대로 운전하고 제동장치가 잘 작동할 때는 더 할 수 없는 문명의 이기가 되어 우리 생활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해주지만, 난폭운전자를 만나 제멋대로 운전을 하고 제동장치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을 다치게 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하고 만다.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모든 사람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할 자유와 권리를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단지 그 사람이 이미 돈을 많이 가졌다는 이유로 그 권리를 제한해서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을 싫어하고 비난하는 바탕에는 논리적인 근거보다는 오히려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시기’와 ‘질투심’이 어느 정도 바탕에 깔려있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제발 “대기업들은 비단 ‘편법’이나 ‘탈법’ 또는 ‘상속’ 문제뿐이 아니라 그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비리를 저질렀으니 지탄을 받는 건데, 무슨 말장난 같은 얘기로 대기업을 옹호하고 나서느냐?”는 말은 나에게 안 했으면 좋겠다. 


 나는 정통파 ‘흙수저’ 출신이고, 대기업과는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을 뿐 아니라 거의 본능적으로 그들이 하는 짓들이 싫고 배가 아픈 사람 중의 하나다. 그런데도 남들처럼 내 기분대로 그들을 대놓고 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이성적, 논리적 이유를 찾지 못 해 나는 이중으로 배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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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9
낙인(烙印)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 15개 부처 중 11개 부처의 장관인선을 마쳤다. 그런데, 미국정치에 아주 관심이 많거나 잘 아는 사람이 아닌 일반인들 중에 누가 어느 장관에 내정되었는지 금방 기억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장관은 고사하고 부통령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국방장관에 누가 내정되었는지는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누구라고 이름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지 몰라도 ‘미친 개’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이 게 바로 ‘딱지붙이기’의 힘이다. 


 ‘미친 개’는 트럼프행정부의 첫 국방장관으로 내정된 제임스 매티스 해병대 대장의 별명중 하나다. 그는 1969년 해병대 사병으로 입대한 후 센트럴 워싱턴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1972년 학사장교로 임관해 4성장군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초에 걸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어 여러 전투에 참가했다. 


 그가 2005년 한 패널토의 중에 이슬람 극단주의자 탈레반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가면 얼굴가리개를 안 썼다고 여자들을 개 패듯이 하는 자들이 있어요. 그 놈들은 인간성이란 게 아예 없는 족속들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놈들을 쏴버리는 건 엄청 재밌어요. 그런 놈들과 싸우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라구요.”라고 해서 얻은 별명이 바로 ‘미친 개’이다. 이런 자극적이고 과격한 인상을 주는 그의 별명과 트럼프가 그동안 해온 돌출적이고 과격한 발언들이 겹쳐져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매티스장군은 그 외에도 “사람을 쏘기 위해서는 그들을 미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쏘는 게 우리의 일이다.”라고 하는 등 여러 어록을 남겼고, 그 중에는 듣기에 따라서 상당히 과격한 말들도 꽤 많이 있다. 그런데, 다른 한 편으로 그를 보면 그는 41년 동안 군생활을 하면서 6000권이상의 개인 장서를 가진 독서광으로 전쟁터에 나가면서도 로마의 황제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늘 지니고 다닌 인물이다. 결혼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얻은 또 다른 별명이 ‘전사수도사(戰士修道士)’이다. 


 그는 손자, 율리시스 그랜트, 셰익스피어, 죠지 패튼과 성경구절을 자유자재로 인용할 수 있을 만큼 박식한 인텔리로 군부 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다. 최근 트럼프가 그에게 “테러리스트에 대한 물고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게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내게 담배 한 갑과 맥주 몇 병을 주면 고문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트럼프 자신도 놀랐다고 한다. 


 이처럼 잘 알려진 그의 별명만 듣고 사람들이 얼핏 생각하기 쉬운 그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른 일면을 지닌 인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미친 개’의 이미지로 기억하고 판단할 것이다. 누군가 어떤 인물의 이름 뒤에 붙이는 ‘딱지’의 힘은 이처럼 크고 무섭다.


 한국에서 차기 대통령후보로 거론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도 늘 붙어 다니는 딱지가 있다. 그의 인물됨을 얘기할 때 거의 빠지지 않는 말이 ‘기름장어’라는 그의 별명이다. 그 분의 행동이나 말이 무슨 일에서나 요리조리 잘 빠져나간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일 게다.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그런 별명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말에서 풍기는 어감상 아무래도 부정적인 의도가 읽혀지는 별명이다. 


 그런데, 직업외교관이라는 그의 직업의 특성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별명은 그에게 최고의 찬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교관의 행동이나 언사는 늘 속내를 분명하게 밝히기 보다는 약간은 두루뭉술하게 여지를 남기면서 실리를 챙겨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 분의 그 ‘기름장어’같은 유연성은 외교관으로서 최고의 덕목이 아닐까? 그래서 외교관으로서 최고의 자리라 할 수 있는 유엔사무총장에까지 오른 게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 명재상으로 유명한 황희정승은 세종대왕 치세 기간 중 무려 18년간 영의정에 재임하면서 여러 일화를 남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얘기는 집안의 계집종 둘이 싸웠을 때 이 쪽도 옳고 저 쪽도 옳다고 했다가 옆에 있던 조카가 어찌 그리 판단이 흐릿하냐고 핀잔을 주며 이 쪽이 옳고 저 쪽이 그르다고 하니 그 말도 옳다고 했다는 일화이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음을 인정한 포용과 관용의 예로 흔히 인용하는 일화이지만, 만약 그가 요즘 한국에서 정치를 했다면 우유부단하고 무소신의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혀 ‘박쥐’나 ‘카멜레온’ 또는 ‘무뇌인간’이란 딱지를 붙이지 않았을까? 또 그는 사후에 청백리로 규정되어 널리 칭송을 받고 있지만, 뇌물수수, 간통, 부패 등 물의를 빚기도 해서 ‘청백리’ 이미지와는 다른 일면도 지닌 인물이다.


 딱지붙이기는 낙인찍기이다. 낙인은 원래 카우보이들이 목장에서 자기가 치는 가축의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해서 엉덩이에 인두로 지지는 불도장을 말한다. 한 번 나쁜 이름으로 낙인이 찍히면 살갗에 새긴 불도장처럼 아프게 박혀 그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흔히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적에게 나쁜 이미지의 낙인을 찍기를 좋아한다. 꼴통, 종북, 좌빨, 친일파, 독재자, … 이런 말들이 모두 그런 악의에 찬 낙인찍기의 산물이다.


 낙인찍기는 그 당사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의 원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러니 어떤 인물을 볼 때는 그에게 붙어있는 딱지에 현혹되지 말고 그 뒤에 가려져 있는 참 모습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친 개, 기름장어, 청백리와 같은 불도장 뒤에는 언제나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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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0
이 거 하나라도…

 

 한국사람들이 많이 가는 해외관광지에 있는 상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은 무얼까?

누군가가 체계적으로 조사한 걸 본 일은 없지만, 내가 지금껏 20여개국 이상을 다녀본 경험을 바탕으로 짐작컨대 아마도 “빨리! 빨리!”가 아닐까 싶다. 내가 갔던 외국의 여러 관광지에서 외국인 종업원들이 우리일행이 들어섰을 때 가장 많이 한 말은 “빨리! 빨리!”였다. 한국여행자들이 그 가게에 들어와서 공통적으로 가장 자주 한 말이었기에 그들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한국인들의 ‘빨리빨리정신’은 사회전반에 걸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현상으로 수많은 해외건설현장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공기단축의 신화를 남겼고, 한국경제가 최단기간 초고속 성장을 이룩하는데 한 몫을 하기도 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졸속과 날림의 원인이 되어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요즘 소위 최순실게이트로 뒤숭숭한 시국에 국가최고지도자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이 ’빨리빨리정신’이 또 한 번 예외 없이 발휘되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6차 촛불집회를 전후하여 실시한 대통령의 진퇴문제에 대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설문 답변자의 70.6%가 여러 가지 법에 정해진 절차를 밟아야 하는 ‘질서있는 퇴진’을 거부하고 ‘무조건 즉시 퇴진’을 찬성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법에는 대통령을 포함한 누구라도 법에 저촉되는 잘못을 저지르면 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국가최고지도자라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워낙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으니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이 지체하지 말고 “당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법에 정해놓은 절차를 밟을 시간이 없으니 “빨리빨리” 알아서 그만두라는 주문이다.


 “이게 나라냐?” 요즘 애나 어른이나 하는 소리다. 맞는 말이다. 볼수록... 처음엔 어리석은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인 줄 알았다. 다음엔 그를 둘러싼 청와대를 비롯한 일부 부도덕하고 무능한 공무원들의 문제인 줄 알았다. 거기에 기생해서 단물을 빨아먹은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문제인 줄 알았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언론의 문제인 줄 알았다. 


 이 어수선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가닥을 잡아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는 국회가 문제인 줄 알았다. 세계역사상 최단 기간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국민들의 의식은 저 멀리 앞에 가있는데 이를 쫓아가지 못하는 제도와 몰지각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일부 파렴치한 사람들만의 문제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제 보니 모두가 허상에 불과했다. 검찰은 비리수사를 한다면서 수사를 빨리 마무리하기 위해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피의자를 겁박할 목적으로 수사내용을 온 세상에 까발리고, 국회에서는 저들대로 따로 조사한다고 "특검법”을 만들고, 특검 조사가 시작도 되기 전에 "탄핵"을 발의하고, 국민들은 법절차고 뭐고 다 필요없고 그냥 당장 ‘빨리’ 그만 두라고 아우성치고, 언론들은 자극적이고 저질스런 내용을 까발리기 위해 조작과 왜곡을 서슴지 않으면서 저마다 검사, 판사가 되어 날마다 논고와 판결문을 쏟아 내놓고... 거기에 발 맞춰 온 나라가 마치 혼 없는 ‘좀비들’처럼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절망감을 느낀다. 이게 바로 한국인의 화장기 지운 민낯이었던가 하고. 


 특검할 건데 검찰은 왜 따로 조사를 하고 있으며, 조사도 해보지 않고 무슨 근거로 탄핵을 하며, 이미 탄핵을 결정해 놓고 뭐하러 특검조사를 하는지? 만약 탄핵을 의결한 후 나중에 특검 조사결과를 보니 탄핵을 할만한 사안이 아닌 걸로 밝혀지면 도대체 어찌할 건지? 대통령을 다시 제자리에 불러다 앉힐 건지?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의 비리를 보고 분하고 창피해서 “이게 나라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저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앞뒤 따져 볼 겨를도 없이 우선 사형선고부터 내려놓고, 사실관계는 나중에 확인하고, 재판절차는 천천히 밟자고 하는 “이게 제대로 된 나라냐?”고. “국민이 나라 아니냐?”고. 


 민주주의를 하자면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을 이렇게 쉽게 팽개치는 국민은 민주시민의 권리를 말할 자격이 없다. 특정인의 행위가 아무리 악랄하고 큰 잘못이더라도 그게 밉다고 법절차를 생략하고 감정대로 처리한다면 이는 이미 민주주의 이전에 문명사회가 아니다. 시위현장에서 각목을 휘두르고 돌멩이가 날아다니는 것만 폭력시위가 아니다. 때로는 말의 폭력이 더 폭력적일 수도 있다. 


 코에 물을 들이붓고 등을 인두로 지지는 것만 고문이 아니다.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으로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고문을 받지 않고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을 거부할 권리,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을 받지 않을 권리,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될 권리…이런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때때로 거추장스럽고, 답답하고, 느려 터졌고,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제도이다. 그게 싫어 일사불란하게, 효율적으로, 속전속결로, 속 시원하게 후다닥, 빨리빨리 처리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는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전두환식 독재를 하면 된다. 


 대한민국 헌법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고, 그 국민들이 위임한 권력이니 국민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무조건 거기에 따라야 한다고들 한다.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 스스로 법위에 군림하며 법절차를 거추장스러워하고 무시한다면 그건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라 “우중독재(愚衆獨裁)”에 불과하다. 


 나는 대통령의 어리석음과 그로 인해 저지른 모든 잘못을 두둔하거나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어처구니없고 분하고 창피하다. 한국인 모두가 부끄럽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대통령의 어리석음과 최순실일당의 비리보다 이를 처리해 가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훨씬 더 부끄럽고 창피하다. 


 모든 불법과 비리는 당연히 법에 따라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당장 한 어리석고 무능한 대통령을 하루 빨리 끌어내리는 일보다 지금껏 온갖 희생과 우여곡절을 거쳐서 어렵게 이뤄놓은 ‘민주주의의 틀과 원칙’을 지켜내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박대통령이 어떤 수모를 무릅쓰고라도 마지막으로 딱 한 가지만 해주고 떠났으면 좋겠다. 제발 우리나라 어느 법에도 없는 ‘하야’라는 ‘탈법’과 ‘불법’을 또 한 번 저지르는 선례를 남기지 말고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빨리’ 대통령직을 마무리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본 칼럼은 본보의 편집방향과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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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2
혁명의 두 얼굴

 

 우리 시대 마지막 혁명가이자 최장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가 세상을 떠났다. 카스트로는 1929년 8월 13일 스페인에서 쿠바로 이주한 농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바나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할 당시부터 학생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했고, 1957년 7월에는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친미 정부를 전복시킬 목적으로 몬카타 병영을 습격하였으나 실패로 끝나 15년형을 받았다.


 2년후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그는 멕시코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혁명동지 체게바라를 만나게 된다. 체게바라와 함께 혹독한 게릴라훈련을 받고 혁명군을 조직하여 1959년 1월1일 마침내 쿠바공산혁명을 완성했다. 이 후 거의 반세기에 걸쳐 쿠바를 통치해온 그가 지난 11월 25일 영원히 잠들었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대부분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거리에는 나다니는 사람들이 드물 정도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긴 모습이라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리 멀지 않은 바다 건너 미국땅 플로리다에서는 수많은 쿠바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춤을 추며 그의 죽음을 기뻐하는 축제 분위기에 젖어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쿠바인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카스트로가 통치하는 쿠바의 현실이 싫어서 떠난 사람들이니 그의 죽음을 환영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50여년간 일인(가족)독재공산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 그래서 흔히 북한과 가장 유사하고 또 가장 친한 나라로 알려진 쿠바라는 나라는 사실상 우리 한국인에게는 아직도 그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나라이다. 유사한 정치체제를 가진 북한에서 국가지도자가 죽었을 때 온 국민들이 지나칠 정도로 슬픔에 젖어 광적으로 애도하는 모습을 보았던 나로서는 지금 쿠바인들이 보여주는 국가적 애도의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지 다소 난감하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도 그의 동생이 권력을 쥐고 통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진정성을 의심해야 하는 건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평소 알고 지내는 쿠바출신 친구 넬슨에게 확인해 보기로 했다. 넬슨은 2007년 쿠바를 떠나 캐나다로 이주하여 현재 토론토에 살고 있는 흑인으로 나와 2년여 동안 같은 일터에서 일하여 가까이 지내는 친구이다. 그 동안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정치와 관련된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이것저것 쿠바 사정에 대해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쿠바를 이해하는데 다소 도움이 될까 해서 여기에 그와의 대화내용을 옮긴다.


 카스트로의 죽음이 전해진 다음날 아침 그를 만났다. 


 “안녕 넬슨, 어젯밤에 카스트로가 세상을 떠났다는데, 좋은 소식인 거냐? 나쁜 소식인 거냐?”


 그는 빙긋이 웃기만 했다. 나는 질문을 약간 바꿨다.


 “대부분 쿠바사람들은 카스트로를 어떻게 생각해?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


 “대부분이 좋아해.”


 “그래? 난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줄 알았는데… 뭣 때문에 좋아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먹고 사는데 걱정없이 해주고, 교육도 다 공짜로 시켜주고, 의료제도도 잘 돼 있고…”


 “무슨 소리야. 의료보험이야 지금 네가 살고 있는 캐나다가 늘 자랑하는 거잖아?”


 “캐나다는 비교가 안 돼. 지난주에 온타리오 보건부에서는 온타리오병원응급실 대기시간이 지난 7년 동안 38분이 줄어들어서 3시간으로 단축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잖아? 또, 가정의를 거쳐서 전문의진료를 받기 위해서 6개월 이상 기다리는 게 예사잖아? 쿠바에서는 응급실에 가서 10분 이상 기다리는 법이 없어. 전문의진료를 받는데도 길어야 한 달이면 돼. 치과도 공짜로 되고 의료진의 수준도 높아.”


 “근데,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잖아. 동물하고 달라서 ‘자유’가 필요하잖아. 쿠바에서 술집에서 친구들하고 술 마시면서 ‘카스트로 XX새끼’ 이런 말 막 해도 괜찮아? 잡혀가지 않아?”


 “괜찮아. 아무도 안 잡아가.”


 “집은 개인이 소유하는 거야? 이사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옛날에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집들이 개인 소유야. 이사는 물론 마음대로 갈 수 있고.”


 “해외여행은 어때? 여권은 쉽게 받을 수 있어?”


 “그럼 필요하면 언제든지 받을 수 있어.”


 “군대는 어때?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다 가는 거야?”


 “남자는 다 군대 가야 돼. 보통 2년 복무하는데, 나같이 대학을 나온 사람은 6개월 동안 장교로 근무하면 돼.”


 “근데, 쿠바는 400년 이상 스페인식민지였고 카스트로도 스페인계잖아. 지배계층이 스페인계인데 너 같은 흑인이나 원주민들은 인종차별을 많이 받지 않아?”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은 후로 ‘우리는 모두 똑같은 쿠바인’이라고 해서 그런 차별을 완전히 없앴어. 여기처럼 뻑 하면 경찰이 민간인을 쏴 죽이고 하는 그런 일은 전혀 없어.”


 “근데, 쿠바여행 다녀온 사람들 얘기로는 관광지만 벗어나면 사람들이 거지들 같이 막 달려들어서 뭘 달라고 한다고 그러던데, 홈리스부랑자가 많은 거 아냐?”


 “그렇지 않아.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 거리를 헤매고 다닐지는 몰라도 홈리스는 거의 없어. 거리에서 뭘 달라고 달려드는 사람도 어디나 그렇듯이 일부 있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많지 않아.”


 “들어 보니 쿠바가 아주 살기 좋은 곳인 거 같은데 너는 왜 캐나다로 온 거야?”


 “내가 학교 졸업하고 호텔에 근무할 때 거기서 캐나다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어서 캐나다에 온 거야. 몇 년 후에 이혼을 했지만… 쿠바에 전처소생의 22살 아들과 17살 딸이 있는데 캐나다로 데려올 생각이야. 그리고 나는 쿠바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고.“


 “쿠바가 좋다면서 얘들은 왜 여기 데려오려고 하는데? 너는 돌아간다면서.”


 “나는 돌아가지만 젊은 얘들에게는 아무래도 여기서 사는 게 더 기회가 많을 거 같아서.” 


 카스트로는 50여년간 쿠바를 통치하는 동안 수많은 정치범들을 수감하고 처형하였다. 정치범뿐 아니라 동성애자나 에이즈 환자들까지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등 쿠바인들의 인권을 심하게 유린한 ‘야만적인 독재자’인 동시에 한 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이상을 실현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위대한 혁명가’로 칭송하기도 한다. 


 카스트로는 생애동안 미국 중앙정보국의 638회에 걸친 암살시도에도 살아남았다. 그래서 “내 생애 최고의 업적은 수많은 암살시도에도 살아남은 것이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암살시도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쿠바국민들에게 누가 섣불리 “당신들이 공산치하에서 너무 오래 있으면서 세뇌되어서 그렇지 당신들이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도 그 세월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이념에 세뇌되어 있음을 자신있게 부인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대부분의 서방지도자들이 카스트로를 ‘야만적인 독재자’로 규정하는 가운데 캐나다의 튀르도수상은 그를 ‘영웅적 지도자’, ‘전설적인 혁명가이며 웅변가’라는 애도메시지를 내놓아 구설수에 올랐다. 나중에 기자들이 따지자 그가 ‘독재자’인 건 인정하면서도 자기가 했던 말을 취소하진 않았다.


 내가 보기에 카스트로는 사회주의이념 실현에 어느 정도는 성공한 ‘혁명가’인 동시에 ‘독재자’이기도 한 양면성이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흑백논리에 빠져서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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