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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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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캐나다의 칼럼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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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f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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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9
겨울 산행

Webster Falls, Dundas Peak?

 

 

겨울 폭포

 

고향의 겨울은 포근하다.

장독대에 소복소복 쌓이는 눈, 혀를 내밀면 사르르 사라진다.

처마 끝에 고드름이 나란히 매달려 똑똑 떨어지는 수정 같은 물방울.

마른 나뭇가지에도 처녀의 버선발처럼 사뿐 내려앉는다.

 

캐나다의 겨울은 매섭다.

휘날리는 눈보라, 불투명한 얼음 빙판.

깊고 날 선 모래톱 같은 눈 산, 발목을 붙잡는다.

무장을 해도 뺨을 때리는 눈은 캐나다 인심처럼 춥고 혹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겨울 산행을 나선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기대하지 않았던 나만의 즐거움을 찾았다.

겨울 폭포 트렉킹, 폭포만을 찾아 눈길을 헤매는 산행이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바로 지척인데 무슨 폭포를 찾아다니나 반문하겠지만,

온타리오에는 수백 개의 자연폭포가 있다.

아담하고 친근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숨어 있다.

 

겨울에 보는 작은 폭포들은 신선한 기쁨을 준다.

개울을 따라 눈 덮인 오솔길을 걷다보면,

하얀 면사포를 내린 하얀 빙벽이 다소곳이 반긴다.

하얗게 얼어붙은 빙벽은 아름답고 예쁘기만 하다.

그 사이로 떨어지는 물줄기의 부끄러운 듯 새색시 소리를 낸다.

나는 흐름이 멈춘 시간을 본다. 폭포 속으로 들어간다.

  

 

 

 

 

해밀턴 주변의 작은 자연폭포들

 

 

토론토에서 한 시간 거리에만 백 개의 폭포가 있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다.

 

"Ontario Yours To Discover!"

 

 한겨울부터 시작해 눈이 녹을 때쯤 수량이 많아지면서 절정에 이른다.

특히 해밀턴 지역은 20여개의 폭포가 몰려 있고 진입이 쉬워 겨울폭포 산행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강추!

 

Balls Falls, Webster Falls, Tew‘s Falls, Tiffany Falls, Buttermilk Falls, Albion Falls, Devil's Punchbowl Falls, Sherman Falls, Decew Falls, 등등등.......

 

 

 

 wolf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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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2
The Vegetarian [채식주의자] 서평

THE VEGETARIAN 

 

HAN KANG

 

Translated by Deborah Smith

 

 

‘Before my wife turned vegetarian, I'd always thought of her as completely unremarkable in every way.’

평범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평범한 사람의 깊은 내면에 숨겨있는 심리가 어떻게 변하는가? 깊숙이 밑바닥까지 파고 든 작품이다.

폭력의 잔혹성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소름끼치도록 수려한 문장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섬뜩할 정도로 잔잔하게 그려냈다.

빠져들 수밖에 없는 흡입력은 한글로 표현할 수 없는-한국소설을 영역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마치 영어 원작소설을 읽는 듯 했다.

왜 번역자인 Deborah Smith에게 극도의 찬사를 한 이유를 공감하였다. 작가와 번역자의 영감의 교류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제목처럼 채식주의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Vegetarian은 이야기의 시작일 뿐 본질은 더 깊고 심오하다.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점점 숨통을 죄어 옴을 느낀다.

채식주의자로 변한 아내와 남편의 겉도는 무미건조한 관계, 몽고반점에 성적으로 집착하는 자기만의 예술세계에 사로잡힌 형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무로 변신하는 상상에 빠진 동생을 보살피며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언니의 자아 세계.

결국 우리는 채식주의자의 일부를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한 작품이기에 일부러 한글 원작을 읽기 전에 영역 본을 먼저 읽는 것을 선택했다.

읽으면서 한글 문장을 상상해보았지만, 어떻게 한글로 번역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어휘와 절묘한 문장에 감탄하곤 했다. 문체의 섬세함과 문장의 흐름에서 다분히 여성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흠이라면 흠일까? 아니면 작가와 번역자가 모두 여성이란 점에서 오는 선입견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제 한글 원본을 읽을 차례다. 한국에서 책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 문장 한 단어가 어떻게 번역되었고 어떤 느낌으로 다가 올지 사뭇 긴장되고 설렌다.

더불어 작가 한강의 작품세계가 더욱 궁금해진다.

 

일부 발췌한 부분을 옮겼다.

'The Vegetarian'은 제목에서 성격이나 본질을 오해할 수 있음이다. 절대로 가벼운 소설이 아니었음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Dark woods, No people. The sharp-pointed leaves on the trees, my torn feet. This place, almost remembered, but I'm lost now. Frightened. Cold. Across the frozen ravine, a red barn-like building. Straw matting flapping limp across the door. Roll it up and I'm inside, it's inside. A long bamboo stick strung with great blood-red gashes of meat, blood still dripping down. Try to push past but the meat, there's no end to the meat, and no exit. Blood in my mouth, blood-soaked clothes sticked onto my skin.

-THE VEGETARIAN

 

 

 

무엇보다도 Deborah Smith의 탁월한 번역능력에 감탄하고 혜안에 놀랍다. 한국문학에 희망의 빛을 밝혀준 것에 대단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우리들이 또는 한인 2세들이 하지 못한 일을 그녀가 해냈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그녀가 제시하였다. 한국문학을 보존 발전시키는 목표도 중요하지만 이민 1세대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령화되고 있다.

한글보다 영어가 원어가 되는 2세대 3세대의 문학을 위한 노력이나 계획은 언급조차 없는 형편이다. 한인 2세들의 문학도를 발굴하고 육성하고 후원해야 한다.

한국음식의 세계화를 주장하면서 한국문학은 세계화에는 관심조차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wolf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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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3
닭의 영웅 서사시

닭의 영웅 서사시

 

닭은 세계를 지배한다.

 

현재 실질적인 지구상의 닭의 숫자는?

육용계  400억 마리, 산란계  60억마리, 종축용 사육계 120억 마리.

총계 500억 마리 이상이다.

(2011년 UN's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에서 190억 마리라고 발표했다.)

세계 인구는 70억으로 추산된다.

 

닭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 인류는 어떻게 변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흔한 닭을 두고 뭘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느냐고 반문 할지 모르지만 닭이 인류와 함께 걸어 온 발자취를 살펴보면 실로 어마어마한 사실을 알게 된다.

 

원제는, 

How did the chicken cross the world? The epic saga of the bird that powers civilization이며

한국어 번역본은 [치킨로드: 문명에 힘을 실어준 닭의 영웅 서사시]이다.

 

 

 

 

책을 읽다보면 닭의 영웅적인 발자취를 깨닫게 해 준다.

우리가 점심때 먹고 버린 닭 뼈는 하찮은 것이지만 이 닭 뼈가 지난 6000년 전 고대문명의 발상과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자료가 되었다.

고대유적지에서 발굴한 닭 뼈가 인류를 따라 함께 움직였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의 적색야계가 닭의 조상으로 태평양을 건너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서쪽으로 페르샤제국을 거쳐 로마 이집트로 건너갔으며 스리랑카의 실론야계는 영국여왕의 정원으로 안주했고 마침내 대서양을 항해하여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상륙한다.

이렇게 지구를 이동한 적색야계는 교배되고 번식하여 다시 지구를 한 바퀴 돌게 된다.

 

우주로 간 닭-소련이 취초로 개를 우주선에 실어 보낼 때 NASA는 닭을 우주선에 보낼 계획을 세웠다. 실패로 끝난 이유는 간단했다 닭은 무중력상태에서 물을 삼키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닭은 우주에 갔다.

살아 있는 닭이 아닌 통조림에 든 닭고기수프로 우주로 날아갔다.

 

고대를 거쳐 중세까지 닭은 식용이 아니라 상징적인 동물로 대우받았었다.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부르는 신성한 동물로 신의 영물로 숭배하였으며 힘과 용기의 상징으로 페르샤 왕의 문장으로 사용하고 왕관을 만들었다. 로마병사의 투구가 닭의 볏을 상징한다. 바벨탑에도 닭을 그려 넣었고 바빌론시대에는 빛과 불의 상징으로 여겼다. 닭은 악에 대항하기 위하여 창조 되었다.

부활의 상징으로 신성시하여 교회 꼭대기에 오르기도 했다.

때로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피를 흘렸으며 깃털은 장식으로 뼈는 바늘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수탉은 엄청난 정력가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투계는 도박의 대상이었다.

닭은 다목적 치료약이었으며 실험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류역사에 따라 밀접한 관계를 이어 왔다.

 

찰스 다윈은 닭의 뼈를 연구하면서 종의 기원을 집필 했고. 파스퇴르는 달걀에서 인류 최초로 백신을 개발하는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

2400년 전, 소크라테스는 독배가 든 잔을 들고 예언했다.

"We owe a cock to asclepius" (Asclepi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학과 치료의 신이다)

 

수탉은 엄청난 정력과 번식을 자랑한다.

수탉은 한번에 80억개의 정자를 사정한다.

한 농장을 미국 30대 대통령 ‘칼빈 쿨리지’ 부부가 방문했다.

대통령 부인이 사육사에게 질문 했다.

“이 수탉은 하루에 몇 번 정도 암탉에게 구애를 합니까?”

사육사가 답하기를 “하루에도 몇 십 번이나 해요.”

“이 얘기를 우리 남편에게도 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지나갔다.

잠시 후 사육사가 그 얘기를 전해주자 대통령이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럼 수탉은 언제나 같은 닭에게 구애를 합니까?”

사육사는 “아니오. 매회 다른 암탉에게 합니다.”라고 답 했다.

대통령은 웃으면서 “그러면 이 얘기를 나의 부인에게 전해 주지 않겠소?”라고 말 하였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Cock'이라는 단어는 남성의 심볼을 상징하는 은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수탉의 음경은 퇴화되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교미 시간도 단 몇 초에 불과하다.

착각은 자유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거치는 동안 닭은 식용으로 사육되고 점점 대형화를 거듭하게 된다.

Chicken of Tomorrow를 계기로 지금의 부화시설이 기계화 되고 육용계 사육의 경제화가 급속히 발전했다.

달걀의 배아 육성이 용이한 점을 활용해서 닭은 동물이 아닌 공산품이 되었다.

가장 짧은 기간에 살이 찌며 최소한의 사료가 필요하며 쓸모없는 다리나 털 또는 부리는 사정없이 잘라내고 알을 낳지 못하는 수탉을 제한하기 위해 병아리 감별사를 양성해서 수평아리는 기계에 갈아버리는 아니 기계를 사용하는 경비도 아까워 부대자루에 담아 스스로의 무게에 압사시키는 경제원칙에 희생 된다.

병아리 감별사 임금도 절약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으로 암수를 미리 구별하는 방법까지 개발 했다.

병아리 종자는 이제 자동차 제조업체처럼 매년 번호까지 달아 생산해 낸다. 더 값싼 품종 더 빠르게 살찌는 품종, 바이러스에 강한 품종이 개발된다.

 

아메리카의 최대 닭고기 생산업체는 Tyson Food이다. 세계최대이다.

Tyson은 처음에는 닭을 실어 나르던 트럭운송업으로 시작했다.

(참고로 트럭 한 대는 5,400마리의 닭을 싣는다.)

Tyson은 부화 양계 도살 운송까지 한 체인으로 운영되는 거대회사이다. 회사 창업자 대표는 양계사업에 대해 아주 간단한 말을 했다

“Kill the chickens, sell'em, and make some money.”

맥도날드, 버거킹, 칙필에이, KFC, 루이지애나 치킨, 등 의 주 공급회사로 도물 보호주의자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고 있다.

양계업과 동물보호는 양날을 가진 칼이므로 언급하지 않겠다.

 

100년 전 닭 한 쌍이 19달러에 거래 되었다. 양계가 대형화하지 못했다면 우리가 즐기고 있는 치맥은 고사하고 닭튀김한쪽도 구경하지 못할 것이다.

환율이 오르고 시세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닭고기만 가격이 하락했다.

 

필리핀에서는 수백만 마리가 투계로 인해 죽는다.

잔인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필리핀인 다른 나라를 정복하거나 공격한 적이 없다.

투계는 미국의 풋볼게임이나 같다. 투계에 관련된 비즈니스는 어마어마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상당수의 투계종은 투계가 금지된 미국에서 사육되어 필리핀에 공급되고 있다.

 

닭의 해 정유년을 맞아 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다.

닭은 인류에게 신의 정령으로 남아 있다.

프랑스는 닭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문장에 봉황이 그려져 있다. 

봉황은 긴 꼬리 닭을 영물화 한 것이다.

긴 꼬리 닭에 관한 문언 연구서에 보면 꼬리가 5척에 달한다는 고증이 있다.

 

최근에는 깃털달린 공룡의 화석이 발견 되고 유전자 분석에 의해 닭에 치아의 흔적이 있음이 밝혀졌다.

닭과 공룡의 유전자가 일치하는 점을 발견했다.

결론은 닭이 공룡의 시조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공룡도 알을 낳는다고 하니 더욱 그럴듯하다.

 

새해는 닭의 기운을 받아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열고 동시에 현명하고 용감하고 정력도 세어지고 자손도 번창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닭의 해에 태어난 운이 좋은 남자니까.

 

 

 

wolf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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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9
미래의 충격

젊은 날의 방황

 

어린 시절은 아무 개념 없이, 목적이나 의식이 없는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3학년까지 구구단을 외우지 못할 정도로 공부에 관심 없었다.

아니면 두뇌가 그만큼 좋지 못했든지….

6학년 마지막 학기에 전학을 간 학교에서 이상한 걸 보았다.

학급친구들이 교과서에 밑줄을 치고 단어에 표시하고 괄호를 치고 중요표시를 한다.

더 놀란 것을 그것을 열심히 복기하며 암기하는 모습이었다.

책은 펴놓고 읽는 것인데, 왜 외우는 거지?

전통과 명문이 있는 학교 친구들의 공부하는 모습은 시골 촌뜨기에게 충격적이었다.

처음으로 꼴등이라는 것을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공부는 그냥 남도 하는 거니까 따라서 하는 것뿐,

열심히 하거나 공부가 재미있다거나 성적에 전혀 관심 없이 그야말로 아무 주제 파악조차 못하고 지나갔다.

꼴찌에서 두 번째도 해보고 20위권에도 들어 간 적도 있었다.

결론을 말하면 나의 학창시절은 공부한 기억이 없다. 시험공부를 하긴 했을 텐데 기억이 없다.

 

대입을 앞두고 아버지께서 공부 잘하는 친척이 있는 일가 집에 나를 하숙시켰다.

학교는 다르지만, 전교 1, 2등을 다투는 동급학생인데 그의 공부하는 모습은 나에게 생소했다.

그가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하면 나는 뭘 할지 몰라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시늉을 하며

이런저런 잡생각을 했다.

뚜렷한 취미도 없는 나는 소설책이나 뒤적거리거나 산이나 들판을 걷거나 소일을 하며 멋대가리

없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찌 어찌 들어간 대학생활도 별다르지 않았다. 다만 공부는 열심히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공부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어서 나도 한번 공부를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죽기 살기로 열심히 매달려 최고의 점수를 받아냈지만 보람은 없었다.

그렇게 스물이 넘어 청년이 되어도 목적 없이 방황하는 청춘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원을 다니던 친구가 어떤 책에 관해 열심히 토론하는 것을 보았다.

주제는 ‘미래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었다.

즉시 서점을 달려가 그 책을 샀다.

앨빈 토플러의 ‘미래의 충격’이란 책이다.

아무 의식 없이 되는대로 살던 나에게 미래라는 것을 깨닫고 생각하게 해준 최초의 책이다.

그 후 ‘제3의 물결’까지 목적 없이 방황하던 나의 청춘에 일깨움을 주는 신선함을 받은 기억이 새롭다.

미래를 예측하는 지혜는 얻지 못했어도 나름 사고하는 방식에 변화를 준책이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얼마 전, 저자 앨빈 토플러가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명복을 빈다.

창고 구석에 쌓인 오래된 상자들을 모두 끄집어내는 수고 끝에 드디어 찾았다.

 

 

 

?미래의 충격

1983년도 판 정가 4500원?

 

이민가방 한구석에 끼어 캐나다까지 짊어지고 온 책이다.

33년 만에 펴보는 책은 깨알 같은 글씨에 종이 색마저 누렇게 변했다.

그때 받은 미래의 충격을 이제야 몸으로 받게 되다니…….

 

 

wolf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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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3
아주 맛있는 비빔밥 같은 시트콤 드라마!

아주 맛있는 비빔밥 같은 시트콤 드라마!

 

The Best Korean Canadian Sitcom Drama Ever!

Kim's Convenience

 

북아메리카에 사는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보아야 하는 드라마,

믿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웃음을 주며 동시에 감동을 품고 있는 쇼!

 

캐나다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성공한 최인석 씨의 연극을 그대로 공영방송 드라마로 제작한 작품이다.

1980년대에 캐나다에 이민 온 부부가 토론토에서 컨비니언스를 운영하며 두 자녀와 함께 겪어 나가는 시트콤 드라마다.

아빠의 캐릭터는 직설적이고 막무가내식이지만 속으로 따뜻한 가부장적이고 엄마는 역시 부드럽고 자상하며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크리스천이며 1년 365일 일을 하는 평범한 부부이다.

아들 정은 고등학교 때 돈을 훔친 것이 발각되어 집에서 가출(쫓겨났는지? 극 중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은 몇 년 동안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하고 아버지와 관계가 멀어진다. 고등학교도 졸업 못 한 젊은이다.

딸 자넷은 칼리지에 다니며 사진학을 공부하는 사진작가 지망생으로 착하고 부지런하지만 역시 사사건건 부모와 사소한 의견충돌을 일으킨다.

가족 간에 좌충우돌 부딪치고, 웃고, 울고, 사랑과 갈등을 바탕으로 영어와 한국어 이중 언어의 말장난과 함께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극 중에서 자녀가 ‘아빠 APPA’ ‘엄마 UMMA’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집하고 똑같다.

어찌 호칭뿐인가?

이민 1세대와 2세대 간의 겪는 갈등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전에는 코너스토어라는 캐나다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지만, 요즘은 매주 화요일이 기다려진다.

본방사수를 고집한다.

 

일단 Season One 중, 제1화 Gay Discount에 대한 소개를 한다.

첫 방송의 에피소드 주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제목이었기에 자못 기대와 걱정이 앞섰다.

역시 이중 언어의 말장난이 많이 나온다.

You are, They are를 You is, They is로 말하는 것이 캐나다에 사는 교민들에게는 어색하고 억지스럽지만, 캐나다인들에게는 콩글리시의 일부로 인식하고 단순한 재미로 여기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또 homophobic을 homo…….로 얼버무리거나, homopebek, hohmopeebeek, homopobok등으로 발음하는 것은 말장난쯤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 밖에도 ‘We is korean’이라고 외치거나, gay와 radar의 합성어로 보이는 gaydar라는 표현도 나온다.

사윗감으로 'Cool Christian Korean Boy'라는 엄마의 표현은 절대적 공감을 느끼게 한다.

그에 대한 딸의 답변 또한 걸작이다.

'If they ‘re cool and Christian, they re not Korean.

If they re cool and Korean, they re not Christian.

If they re cool and Christian and Korean, then they re girl.'

정곡을 찌르면서도 재치 있는 대답이다.

이에 대한 엄마의 충고 한마디는 멋있는 라임이다.

“If you don't mingle, you stay single.”

딸 자넷은 연극 중에서는 흑인(아프리칸 아메리칸) 경찰과 데이트한다.

실제로 캐나다 교민 자녀들 중에는 다문화가정을 이루는 것이 최근 급증하고 있어서 진정으로 피부에 와 닿는 모녀의 대화이다.

 

게이문제를 다룬 내용에서도 재미있는 표현이 나온다.

“Sometimes gay take time.”

게이가 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인지, 커밍아웃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인지, 자신이 게이라고 깨닫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인지……. 이 모든 의미에 잘 어울리는 완벽한 말이다.

 

남자친구에게 광복절을 물어보고 딸과 데이트를 흔쾌히 승낙하는 아빠는 한국적인 쿨한 아빠다.

반일감정이나 콩글리시 영어 발음을 희화화 한 점에서 반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단지 드라마 속의 코미디일 뿐, 그냥 웃음코드로 이해하면 된다.

 

킴스 컨비니언스는 몇 년 전 연극으로 처음 관람했다.

캐나다에 사는 한국인 가정의 이야기로 80년대에 이민 온 부부가 컨비니언스를 운영하며 삶을 이끌어 가며 캐나다에서 자란 자식들과의 관계를 솔직하면서도 신선한 웃음을 주는 연극으로 대단한 호평과 인기를 얻어 장기공연을 한 우수한 작품이었다.

 

나는 연극작품을 평할 만큼 전문지식은 없으므로 특별히 할 말은 없지만, 아쉬운 것은 교민을 대표하는 언론사들의 무관심이고 이상하다고 느낄 만큼 반응이 없는 교민들이다.

캐나다 공영방송에서 한국인 가정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것은 대단 한 일이요

매주 에피소드가 방영될 때마다 교민 사이에서 또는 뉴스에서 소개되고 평이라도 나올 법한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매주 화요일 본방송만 시청은 못 할지라도 관심은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킴스컨비니안스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론토의 퀸 스트리트와 셔본 스트리트에 있는 미미 컨비니언스 스토어를 무대로 촬영하였고 지금도 킴스 컨비니언스 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다.

 

 

킴스 컨비니언스는 CBC에서 매주 화요일 방송 됩니다.

만약 보지 못하셨다면 바로 여기로 가시면 모든 에피소드를 볼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CBC에서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기------->

http://watch.cbc.ca/kims-convenience/season-1/feebd42e-998b-4745-9635-48e822c571c7

 

 

wolf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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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2
스마트폰

 

 

 스마트폰 없이 북미를 횡단하는 트럭커는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핸드폰이 없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소통이 어려운 사람일까? 정말 소외되고 고독한 사람일까?  


 휴대전화기를 마지막으로 가져본 것이 20년 전이다. 사교적이 아니고 조용하고 고독을 음미하는 성격 탓이겠지만 평소 전화통에 매달려 사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전화하다 보면 만나게 되고 만나다 보면 또 다음 약속을 잡게 되고…. 혼자만의 여유 있는 시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더 소중했다.


 그동안 세상은 무섭게 변했다. 소셜미디어가 삶 전부를 차지하는 시대에 스마트폰 없이 산다는 것은 불편보다도 조용한 삶을 영위하게 하고 행복했다. 


 퍼스널 컴퓨터를 처음 시작한 것은 AOL이었다. 그 후 채팅을 시작하고 메신저 등 기억도 나지 않는 수많은 사이트를 거쳐 오면서도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화에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20년 전부터 2개의 카페를 운영했고 현재도 개인 블로그도 가지고 있다.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왓스앱, 텍스트 플러스 행아웃 등 SNS 계정을 갖고 소통에 임하고 있지만 철저하게 가족 위주로만 하고 있다. 


 페이스북 친구라는 이름 하나로 친구의 친구라는 사람의 사생활을 엿보는 것도 싫고, 뜬금없는 신변잡기를 시도 때도 없이 올리는 관심병자들의 말장난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도 않다. 


 만난 기억도 없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생일축하 문자를 받는 황당함은 기분 나쁘다. 우리가 언제부터 남의 생일을 축하했지? 페이스북 친구를 수백 명 거느리고 있다면 매일 누군가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여러 개씩 보내고 있다. 진짜 할 일 없는 사람이다.


 댓글문화도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발전했다. 댓글을 꼬박꼬박 다는 사람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일까?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며 조회 수나 좋아요 갯수를 세는 것이 좋을까?  


 짧은 댓글을 달기 위해 걸리는 시간을 감당할 수 없어서 나는 댓글에 인색하다. 질문에도 거의 대답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는 것조차 귀찮아 한다. 즉문즉답을 원한다. 질문의 핵심도 없다.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 넘친다.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인간관계를 가진 자신이다. 스마트폰이 없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란히 앉아 각각 고개를 처박고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한 사람들 아닌가? 


 대화 도중에 탁자에 놓인 전화기를 수시로 점검하고 삑삑거리고 깨작깨작 하는 소리는 신경에 거슬린다. 스마트폰을 쥐고 사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었다.


 얼마 전 딸이 쓰고 있던 스마트폰을 나에게 선물했다. 20년 만에 휴대전화, 그것도 스마트폰이 생겼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전화 한통 받아보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문자만으로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한편으로 귀찮다. 손에 들고 다니기도 어색하고 마땅하게 넣을만한 주머니도 없고…. 스마트폰, 충전기….

때때로 확인해야 하며 배터리 파워가 행여 모자랄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불쌍하다 못해 불안장애 환자처럼 보인다.   


 문명의 이기는 나를 구속한다. 아내와 따뜻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면서 SNS 소통이 무슨 소용인가? 스마트폰을 서랍에 넣고 닫아버렸다.


(블로그: blog.daum.net/truckerhungryw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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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chiman
김치맨/임윤식
2016-08-31
김치맨도 Facebook 에 가입은 했지만! Friends(친구)는 몇명 안된다. '친구'는 서로 믿고 의지해야 되는 관계일터인데...친구의 친구라는 모르는 인물과 내가 친구 맺자 할 이유가 있을까? 페이스북에서의 친구는 우리들 삶 속에서의 친구와는 다른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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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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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4
별들이 사라졌다(5.끝)

 

  

 


 세상은 볼 것도 많고 할 일도 많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다.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는 나에게 여행의 의미를 꿈꾸게 하였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망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


나의 두 눈은 행복했다. 아침마다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호숫가에서 살았고,길만 나서면 어느 방향으로든지 오를 수 있는 산이 있었다. 만화와 무협지는 물론 닥치는 대로 소설을 읽었다. 수천의 영화를 보았고 주옥 같은 명장면들이 아직도 내 시야에 머물러 있다.


 마침내 북아메리카를 종횡무진 횡단하며 광활한 대륙을 볼 수 있는 트럭커로 10년을 일했다. 호수와 바다, 산과 강물, 그리고 광야와 사막을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보았다. 붉게 물들어 가는 석양을 바라본 것은 천 번도 넘는다. 정말 행운이었다.


 나는 지금 이상한 병에 걸려 있다. 그 동안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던 것들이 점점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한계가 점점 좁아진다. 보이던 산이 부분적으로 사라졌다. 


 거울 앞에 선 내 얼굴에서 눈을 보면 입이 보이지 않고 코를 보면 턱이 보이지 않는다. 있는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이며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초점이 움직이는 짧은 시간이 걸린다. 이상한 현상이다.
 

내가 보는 것은 오직 나 자신만의 눈으로 보는 것이며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이 나와 다르다. 내 눈에 안 보인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보인다고 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아주 다른 독특한 시야를 갖게 된 것이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말을 철저하게 믿었지만 이제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보이는 대로의 모습이 진실이 아니다. 보인다고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별이 아니고 별에서 나온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명제를 역으로 말하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시 역으로 뒤집으면 나는 내가 보고 싶은 허상을 볼 수 있다. 나는 나에게 보이는 만큼만 보며,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다.


 점점 좁아져 가는 시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세상을 넓게 보기 위하여 견문을 넓히는 이 시대에 거꾸로 좁아져가는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나는 어쩌면 행운아이다.


 그동안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시각장애자다. 나는 안 보이는 만큼 더 느낄 수 있다. 제3의 인생이 나에게 주어졌다. 나만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비정상인 사람을 정상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고 꿰어 맞추기보다는 비정상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상식과 고정 관념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창조를 하는 것은 오직 비정상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베토벤이 그랬다. 


 밤하늘에 별들이 사라지듯 트럭드라이버 헝그리 울프도 사라진다.

 

 


 트럭으로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께 건강과 행운을 빌며, 용기와 희망을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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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
2016-07-31
반갑습니다. 체험에서 나오는 삶의일기들이 항상 돌아보게합니다. 어느 외국인 친구와의 아메리카 기행 츠럭 트레이닝 기록들을 읽고 싶습니다,저도 이제 트럭의 길로 들어섯깅[ 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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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긍호
2016-08-01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선생님의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극복하기 어려운 시련을 제3의 인생의 시작으로 승화하신 임선생님의 의지에 격려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임선생님 만이 가질 수 있는 진솔한 글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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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4
밤하늘에 별들이 사라졌다(4)

 사람은 모두 불확실한 삶을 살고 있다. 쉰일곱해를 살아온 동안 매 순간들은 확실하지 않았다. 살아보고 나니 그렇더라 하고 깨닫지 않았던가? 앞으로 살아 갈 날은 더욱 더 불확실해졌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대로 시야가 좁아져서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냥 기다려야만 하는가? 아니면 모든 노력을 기울여 시야가 좁아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노력을 하고 투자를 해야 하는가?


 눈에 좋다는 비타민 A, 루테인 매일 10그램씩 먹고 오메가3 성분이 많다는 피쉬오일을 먹고, 블루베리만 골라먹고, 아사이 열매 추출액을 마시고, 결명자차만을 마시며 눈에 해로운 자외선을 피하고, 달걀을 주식으로 하고, 당근을 씹으며, 눈에 좋다는 쇠간을 먹고, 주위에서 추천하는 수백 가지의 민간요법을 하면서 오직 눈을 살리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할까?


 훌륭하다는 병원을 찾아 다니고, 실력 있는 의사를 만나고, 새로운 약과 신기술에 희망을 걸고, 가능하다면 안구기증을 받기 위하여 줄이라도 서야 하지 않겠는가? 과연 나의 두 눈은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나?


  그래도 실명을 피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빛을 잃고 난 후를 대비해서 혼자 살아가는 법을 미리 익혀야 하지 않나? 두 눈 없이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세상에는 시각장애를 가지고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충격과 시련이 있겠지만 절망과 희망을 거듭하면서 환경에 순응하고 적응하게 되겠지만 그 지점에 다다르기까지의 과정이 두렵다.


  인생은 산을 넘는 일이다. 정상에 오르면 더 멀리 볼 수 있을 것이고, 계곡을 따라 돌아가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산을 오르지도 않고 돌아가지도 않으면 산 전체를 볼 수 있다.


  인생에서 성공이나 실패는 의미 없는 구분에 불과하다. 성공한 사람도 인생을 살았고, 실패한 사람도 인생을 살았다. 그러므로 포기한 인생도 하나의 삶이다. 두 눈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과 시간을 포기하고, 대신 다른 삶을 얻을 수 있잖은가?


빛이 없는 세상은 영원한 암흑, 세상의 끝, 인생의 끝.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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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9
밤하늘에 별들이 사라졌다(3)

RP(Retinitis Pigmentosa) 망막색소변성증, 안과의사가 내린 병명이지만 나는 그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지 모른다.


30년전의 블록깨기 게임보다도 더 조잡하고 단순한 스크린 테스트를 통하여 프린트된 사진과 그래프만을 보고 의학서에 쓰여진 대로 말하였을 뿐이다.


이름도 생소한 병명은 인터넷을 찾아보지 않았다면 차라리 더 나았을 텐데 하고 나서 후회가 되었다.


“RP, 망막색소변성은 망막의 시각세포와 색소상피세포가 변성되는 가장 흔한 유전성 망막질환으로, 시각세포가 손상됨에 따라 초기에 야맹증이 나타나면서 점차적으로 시야가 좁아지고 결국 시력을 잃게 된다. 중심시력은 보통 이 질환의 늦게까지 유지됩니다.”


“망막색소병성증은 세계적으로4,000∼5,000명당 한 명의 비율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어둠이나 어두운 빛 장애, (즉 야맹증으로) 시작합니다. 갑자기 어두운 곳에 들어갔을 때 적응을 잘못하거나 저녁 해질 무렵 외출시 문제가 있거나 또는 어두운 실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지는 야맹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질환은 시각세포인 막대세포와 원뿔세포가 점차적으로 파괴되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증상이며, 막대세포가 원뿔세포보다 먼저 손상을 입습니다. 막대세포의 대부분이 파괴되면 시야의 바깥부분을 볼 수 없게 되어 시야가 좁아져 작은 망원경으로 보는 것처럼 보입니다(Tunnel vision: 터널시야). 시각세포의 파괴가 원뿔세포까지 진행되면 중심시야도 볼 수 없게 되면서 완전히 실명하게 됩니다.”


“망막전위도검사(Electroretinogram: ERG)는 망막색소병증을 진단하는데 가장 유용한 검사입니다. 이 검사는 망막에 빛으로 자극을 주어서 망막의 반응을 전기적으로 기록하는 것으로 망막의 막대세포와 원뿔세포상태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시력검사, 굴절률검사, 색맹검사, 세극등검사, 검안경검사, 망막촬영 등으로 망막색소 침착 정도와 시력의 손상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치료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진행속도를 늦추고 일상생활에 미치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방법으로 시력이 자외선에 의해 더 손상되지 않도록 선글라스를 착용하기도 하며, 좁아진 시야로 좀 더 잘 볼 수 있도록 교정안경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비타민A, 루테인 같은 카로티노이드 등 비타민과 항산화제(Antioxidant) 등이 망막변성의 진행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평생 저하된 시력을 가지고 살아야 하므로 망막색소변성의 치료에 경험이 많은 전문의에게 꾸준하게 관리를 받으며 저하된 시력으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망막세포이식이나 안구이식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현재 유전자치료가 연구 중이며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지고 있으나 현재 동물시험 중이라 실제치료에 적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망막색소병증을 진단 받게 되면 혼란과 공포로 분노와 우울함에 빠져 과도한 음주, 흡연, 스트레스로 질병의 경과를 가속화 할 수 있으므로 가족과 주위의 격려와 도움이 질병을 이해하고 극복하며, 생활에서 잘 대처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그냥 뭐 조금 불편할 뿐, 별 일 아니다.

운전을 하면 안된다고? 안 하면 되지, 곧 무인자동차도 나온다는데...

결국 시력을 잃게 됩니다. ...정말로 두려운 것은 시야가 좁아지다가 결국 실명할 수도 있는 사실이다. 과연 나는 실명하게 될까?


시야를 잃고 난 후의 내 자신의 모습은 어떨까?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내가 시각장애자로 되다니? 트럭운전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변할까?

나의 아내는? 딸들은?


두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보아 온 것들을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된다면...

절망과 두려움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1초, 2초, 흐르는 시간이 무섭다. 닥쳐올 운명이 두렵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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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1
밤 하늘에 별들이 사라졌다(2)

 별들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별 볼일 없는 일이다. 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은 어느새 감당할 수조차 없는 현실의 문제로 부닥쳐 왔다. 점점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아주 사소하지만 귀찮은 정도의 불편한 경험들이다.

 우선 손목시계가 어두운 곳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있다가 문득 시계가 야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야광이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곳에서는 야광처럼 희미한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상적인 불빛은 눈이 부시는 현상을 느꼈다.

 밤하늘에 별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며, 별똥별도 보지 못한다. 어느덧 야맹증은 이미 심각한 상태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아주 느리게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났으므로 나 자신이 느끼지 못했다. 나는 야간 운전을 미치도록 좋아했는데… 밤이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하였다.

 야맹증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유난히 눈부심이 심하고 번쩍이는 빛의 물결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고 괴롭힌다.

 포토포비아(Photophobia)라고 한다. 두 눈을 감고 있어도 빛의 물결은 그대로 남아 있다. 있지도 않는 허상이 보이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보이는 활자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영화관에서 스크린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보드블록의 턱에 걸려 넘어지거나 비슷한 색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떨어트린 동전을 찾는데 오래 걸렸다.

 나는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기 시작하였다.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라는 물리적인 감각에 익숙한 편견 때문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

 결국 작년부터 가정의를 만나고 안과전문병원을 찾아 갔다. 의사들은 마치 기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의사들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보는지 증상이 어떤지 관심 없이 이런저런 테스트만을 했고, 내가 납득할만한 설명조차 없이 두세 달 후로 다음 진료 날짜만을 지정해 주었다.

 2주 이상 북미를 돌아다니다가 겨우 한번 집에 돌아오는 트럭운전사로 약속 날짜를 맞추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 겁을 주고 있는 병원이다.

 그동안 수 차례에 걸쳐 검사를 하였을 뿐 안과의사로부터 무엇이 어떻더라는 검사결과를 듣거나 아무런 처방도 없어서 무척 답답하였다.

 결국 10개월이 지나서야 온타리오에서 유일하게 한 병원에서만 할 수 있다는 특수장비의 검사를 받고 나서 테크니션이 터널비젼(Tunnel Vision) 또는 스트로비전(Straw Vision)이라는 말을 했다.

 시야가 좁아져서 마치 망원경으로 사물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한다. 안과 병원을 다닌 지 1년이 흘렀고 그리고 한 달 열흘 후, 소위 망막전문이라는 스페셜 의사를 만났다.

 처음 만난 의사, 소위 망막전문의라는 사람은 1년 여를 끌어온 진단결과를 딱 두 마디말로 간단하게 끝냈다.

 “No cure! No driving!"(치료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운전을 할 수 없습니다.)

 청천벽력이란 말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10년 동안 백만 마일도 넘게 운전하였고, 바로 지난주만 해도 50시간 동안 운전하고 돌아온 트럭운전사에게 운전을 하지 말라고 하다니, 지금 나하고 농담하는 건가?

 황당한 전문의 녀석이라는 생각도 찰라였고, 두뇌의 회전은 번개처럼 빠르게 돌아갔지만 기억할 수 있는 단어는 두 개뿐이었다. 이 두 단어는 나를 깊은 바다의 암흑 속으로 침몰시켰다.

 'No Cure'

 'No Driving'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 앞으로 내가 알지 못했던, 느껴보지 못했던, 상상조차 못할 무시무시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불안감이 세포를 갉아먹는 벌레처럼 몸 속으로 파고들어 온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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