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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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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1
송박영신(送朴迎新)

 

 2016 병신년(붉은 원숭이띠)은 보신각 타종소리를 끝으로 어둠 저쪽으로 사라지고, 정유년(붉은 닭띠) 제야의 종소리가 새 나라의 광명의 빛을 발산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을 물러나라는 촛불은 횃불로, 횃불은 성화불로 소용돌이를 치며 노도와 같이 종로에서 광화문, 광화문에서 청기와 집을 바라보며 사대문 장안 천지를 강분으로 출렁거렸다.


 병신년은 오행에서 불과 금이 합하여 이루어진 해다. 여기서 병(丙)은 태양 불이고, 신(申)은 금속이다.  따라서 태양처럼 열정적이고 강철처럼 강렬한 힘찬 한해가 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병신(丙申)년이, 병신(病身)년으로 둔갑하여 지저분한 오물을 뿌리며 한해를 마감했으니 세상천지 이런 아이러니한 일도 또 있을까?


 2017 정유년은 붉은 닭을 상징하는 해다. 닭띠를 간지로 보면 정유, 을유, 기유, 신유, 계유년이라 한다. 새로 맞은 정유년은 지난 병신년을 거울삼아 우리국민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새로운 각오로 새 나라를 건설해야 되겠다.


 이름만 거창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2016년을 돌아보자.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정경유착, 부정부패, 소득불평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가계 및 기업부채와 실업률 증가를 불러오는 등 경제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특히, 가계담보대출과 채권매입 등 빚더미 살림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는 비판소리가 컸다. 양자 문제와 내수와 수출에서 각각 초이노믹스(최경환 경제정책)와 노동개혁 양적완화란 해결책을 제시하였으나 방향성이 모호하여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한 유명무실 빛 좋은 개살구란 악평을 받고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국가채무는 645조2000억 원이다. 올해 595조1000억 원에서 50조1000억 원 증가한 규모다. 줄곧 국가 채무비율을 30%대 중반 수준에서 관리하겠다고 했던 정부 공언이 허언이 되고 말은 것이다.  


 국민 1인당으로 환산하면 2017년 정부예산안의 1인당 국가채무는 1339만원, 1인당 적자성 채무는 780만원, 1인당 순 국가채무는 685만원으로 박근혜정부 임기 4년 동안 각각 453만원, 340만원, 336만원 늘었다. 노무현 정부는 1인당 국가채무가 335만원, 적자성채무는 172만원, 순 국가채무는 64만원이 늘었으며, 이명박 정부는 1인당 국가채무와 적자성채무, 순국가채무가 각각 207만원, 178만원, 195만원으로 집계됐다. 즉 이명박 정부 동안 증가액과 박근혜 정부 증가액을 비교하면 국가채무는 1.7배, 적자성채무는 1.9배, 순 국가채무는 1.7배 각각 늘었다. 


 이 모든 정황들을 보면 한국은 OECD 국가에서 꼴찌다. 이것이 이른바 박근혜대통령이 4년 동안에 이룩한 저 유명한 창조경제다. 나라 사정이 이런데도 아직 박사모(박근혜 사랑모임)들은 나라가 망하든 말든 해바라기 사랑을 하고 있으니 대책이 서질 않는다. 

 


박대통령 해외 순방 성과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9월까지 25차례 29개국을 방문했다. 해외순방에 575억 원이 지출됐지만, 내역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공개는 하지만 전시행정 짜 맞추는 데만 시간을 허비했다. 


 기업들이 해당 국가의 기업과 이미 체결하기로 했던 계약을 순방에 맞춰 발표하는 경우도 많았다. 개별 기업의 노력에서 얻은 성과를 마치 대통령 순방의 결과물로 둔갑시켜 기업들의 활동을 되레 방해한 것이다. 


 이를테면 정부와 연결된 사안이 아니고, 원래부터 해당국가와 기업 간에 별도 체결되어 있는 것을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연관시켜 그야말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꼴이고, 털도 안 뜯고 날고기를 먹으려는 졸속 행정이었다.


 새해 벽두부터 국가채무를 왜 논하느냐 하면, 광화문 세종대왕 앞에서 거의 일천만 명이 10회나 횃불을 들고 못살겠다고 아우성쳤다. 그들이 큰 부자를 만들어달라는 것도 아니다. 옛날같이 남들 놀이 갈 때 1~2번 가고, 밥 한 그릇, 커피한잔 따뜻하게 마음 놓고 먹고살 수 있게 해달라는 민초들의 작은 소망마저도 박근혜 정부는 종북빨갱이로 밀어붙였다. 


 연일 광화문에 나와 추운날씨에 어린 것을 등에 업고 촛불로 호소하는 가정주부들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이 정부가 과연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이민 올 때만 해도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거리마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상가들이 불야성을 이뤘고, 골목마다 거리마다 흥겨운 인파가 물결쳤는데, 지금은 어디서고 그런 축제는 찾을 수 없는 죽음의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박대통령이 탄핵에 이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라 굳이 재론하고 싶지 않다. 여러 가지 사건들이 복합되어있지만 외치, 내치 어느 구석에도 잘한 것이 없다. 그 결과 2016년 4.13 총선에서 야당은 박근혜정부에 대한 경제적 심판을 주문했고, 그 결과 새누리당을 참패시키는 데 성공함으로 우리국민들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여실이 보여줬다. 만약 4.13 총선에서 여당의 계획대로 200석을 만들었으면 ‘여당의 영구집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제는 친일파를 척결하고 숭미주의를 배척해야 한다. 일제 치하, 해방 후 6.25는 아버지 때 일이다. 머슴은 아버지 때에서 끝내고, 우리 힘으로 우리 강토를 지켜야 한다. 참여정부 때 추진하던 저 넓은 대륙을 관통하여 유라시아로, 러시아 송수관 연결하고, 끊겼던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발 하여야 한다.


 또한 김일성의 삼대세습을 척살하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후의 군사 반란 및 친일파 제거 등 수많은 난제들이 젊은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승만 정치 노선도 이름만 틀릴 뿐 북한 김일성 삼대세습이나 독재 성향은 똑같음) 


 정유년의 새해 아침 태양이 찬란히 한반도를 비춘다. 아자! 아자! 앞으로 가자. 저 넓은 만주벌이 우리를 기다린다. 통일열차를 타고 우리의 옛 고구려 땅을 신나게 달려가 보자. 


(본 칼럼은 본보의 편집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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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3
도덕불감증

 

 대한민국 사회는 괴상한 용어들로 도덕불감증에 걸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예로 옛날에는 간이 부었네, 하던 말이 요즘엔 한 술 더 떠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하는 속어들이다. 간이 부었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하는 말은 두 단어나 어근이 병렬관계, 곧 본래의 의미를 가지고 대등한 자격으로 연결되는 단어라 하겠다. 그런데 언제부터 아내들이 남편들 길들이는 무기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니! 저 양반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조선시대도 아니고? 아내의 말에 의미를, 가정(假定)해서 풀어보면, 늙은 주제에 힘도 못쓰면서 (남편의 심벌을 지칭 고개숙인 남자) 어디라고 감히 대어드느냐 뜻이다. ”난 앞으로 마이웨이 (my way) 내 갈길 갈테니까 관섭하지 말라“는 뜻도 함축되어 있어, 남정네들에게는 사형선고 같은 섬뜩한 기분도 든다.


 부연하자면, 이치에 닫지 않거나 무모한 말을 할 때 흔히들 사용한 저급한 속어들이 요즘에 와서는 신조어를 만들어 가정에서 부부간에 자존심 갈등을 빚기도 하는 것이다. 젊은 날 남편에 당하던 것이 늙어서 보자는 아내들의 복수심 발로라 할까? 남편들 입장에서 보면 가부장으로서 최면 손상, 시세풍락 아닐 수 없다.


 두말 할 나위없이 혜성과 같이 나타난 ‘카톡’이 주범이다. 카톡은 좋은 말 나쁜 말 온갖 잡동사니 말로 교양도 진실도 양보도 없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시도 때도 없이 울려 대 상대방을 당혹하게 하게 해, 오히려 인간이 카톡의 지배받는 정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카독의 등장으로 새로운 용어들이 등장하며 상대방이 말실수를 하면 그때부터 찰떡같은 사이들이 종당에는 불편한 사이가 되는 것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본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각 전문분야에 히틀러 점령군처럼 침투하여 작가, 음악, 피아니스트, 노래 등 전문분야 종사자들의 생계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수위치 돌리면 없는 게 없이 해결되는데 굳이 신문, TV에 의지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오죽하면 대학생들이 곱셈 나눗셈 하나 못하고 계산기에만 의지하여 창조, 창의력도 없는 머릿속이 공백상태가 되어버렸겠는가?


 그뿐만 아니다. 한국 사람만의 특성 때문이라 할까? 이 문명의 괴물은 사회 곳곳에 침투하여, 공연한 사람 중상모략 하여 궁지에 몰아넣기도 한다. 이 같이 도덕이 나태해지며 사회 구석에는 반 사기꾼들로 인해 온통 쓰레기통이 되어 버렸다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중 단연 재산 분배가 우선순위다. 재산으로 인해 형제간에 싸움이 되고 재판소까지 찾다, 끝내는 칼부림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가정도 부지기수다. 


 또한 남녀간 불륜관계, 치정문제도 골칫덩어리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자 마음이 나태해지며 잠깐의 외도가 치정에 얽히어 이혼하는 부부들 늘어났다는 얘기는 오래전, 이른바 부부꽃뱀에 유혹을 당해 금쪽같은 재산을 하루 아침에 잃고, 천하에 치한으로 몰려 인생을 망치는 예를 우리는 수도 없이 보아왔다. 


 이와 같은 현상은 대게 보험금을 타먹기 위해 부부들이 꾸민 사건들인데 그 수법이 지능적이어서 선량한 사람들까지 피해를 보는 것이다. 


 요즘 들어 그 수법이 날로 다양한데 남녀 간의 불륜이 발생하면 80%는 남자의 잘못이 되어버린다. 현실적으로 남녀 불륜관계를 보면 여성의 행위도 남자 못지않은데, 남성 거의가 범죄 선상 위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수컷이라는 동물적 선입감 때문이다.


 자고로 신은 남자를 위에서 군림하도록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아내들은 여성 상위시대를 부르짖으며 조물주의 지엄한 계시를 무시하고 오히려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 억지춘향이식으로 남자들에게 덤터기를 씌우는 것이다.


 요즘은 김영란법까지 생겨 쾌쾌 묶은 옛날 고려 짝 숨은 사건들이 튀오나와 가뜩이나 혼란한 난국에 불을 붙이는 꼴이다. 과거에 한때 즐기다 실증이나 헤어졌던 연인들이 급작스런 사회 변천으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고발 고소사건이 일어나는 가하면, 당시는 엄두도 못 내던 일들이 새 법이 생기면서 침소봉대하여 몇 배의 보상을 요구하는 사기에 가까운 사건들이 돌출하는 것이다.


 어떤 시대가 되었던 도덕이 해이해지면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고 상식을 잃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무너지고 마는데 그것이 혼란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을 모르는 계급은 썩고 타락한 계급이요, 계급을 잃은 사회는 모래를 흩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솔직히 난 인터넷에 떠도는 그 많은 명언, 좋은 말들 일일이 지킬 자신이 없고 관심도 없다. 천하에 죽을 짓을 안 했으면 귀 막고, 입 닫고, 물 흐르는 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다. 


 어느 유명 정치인처럼 청산 속 첩첩산중 토굴 속에서 “이런들 어떠랴 저런들 어떠하랴” 차라리 만수산 속에서 산신령이나 되어 볼까나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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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8
억새의 꽃

 
억새의 꽃

 

 

꽃샘추위 옷깃 속 파고드는 춘삼월
잔설 속 태동의 발아 지하에서 스멀대고
대지의 기상나팔 소리 산통‘産痛’을 알린다.

 

싱그러운 오~뉴월 초여름 문턱에 
알알이 몸 달구며 오만 내숭 떨어대다
구릿빛 그을린 얼굴엔 여름 흔적만 남았어라.

 

첫서리 내린 만산홍엽 벌판 위에
그림 속 동화 속에 수채화 그리다 
아련히 사라져가는 인고(忍苦)의 꽃이여.

 

흔적을 남기지 말라, 자취도 감추어라
대자연의 지엄한 섭리 금시에 잊었는가?
허 허 히 떠난 자리엔 고독만이 남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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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8
왕방울나무 아래서

 

왕방울나무 아래서


 

 

세월의 강 휘휘 돌아 찾아온 옛 교정
까까머리 동심들 모두 떠난 빈 자리엔 
노쇠한 왕방울 나무만 노시인을 반기고

 

아버지같이 든든한 언덕 같던 네가
어머니 가슴 속 같은 포근하던 네가
사악한 문명에 채어 몸살을 앓고 있구나

 

너의 그늘아래 둥근 원형 그려놓고
땅따먹기 승리에 도취된 어린 제자에 
환하게 웃어주시던 교장선생님 그립습니다

 

공활한 운동회날 청~백으로 갈리어 
앙칼진 두 눈 치켜 뜨고 승리한 기마전
천하를 다 얻은 듯이 호걸처럼 허허댔지

 

서슬퍼런 교감선생님 사친회비 재촉에
둥당이는 가슴 안고 너의 등에 숨으면 
참아라, 오늘은 쓰다만 훗날엔 약이니라

 

가훈 같은 명언을 고이고이 간직했다
반백에 찾은 교정엔 낙엽만이 뒹굴어
알싸한 추억들만이 상기 아니 어립니다 

 

<경기도 하남의 동부초등학교 운동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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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3
현해탄의 메아리(21)

 

(지난 호에 이어)
 전처소생인 성진은 천성이 착해 지금의 어머니를 친엄마 같이 따랐다. 그러다, 동생들이 태어나면서 사이가 벌어지다, 송구가 들어오고서부터 더 벌어진 것이다.


 부인의 입장에서는 전실 자식 성진이도 감당키 어려운데 송구까지 들어왔으니 내심 편치가 못한 것이다. 송구가 들어오는 날 남편과 갈등을 했던 것도 이런 이유였다.


 진사는 이런 환경 속에 성진을 두었다가는 불화만 더 날 것 같아 소학교를 마치자. 일찌감치 서울에 있는 막내 동생한테로 보내, 사뭇 거기서 학교를 마치게 하였다.


 대학을 졸업을 하고 동양척식회사에 입사를 하였는데, 뒤늦게 진사가 알고는 합격통지서를 찢어버려, 조선 사람이 다니는 철공소를 다니다, 해방을 맞이한 것이다. 결혼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독신으로 있는 것은 아직도 박흥렬 딸 정순이를 못 잊어서다.


 성진이가 어릴 때 새엄마(계모)의 꾸지람을 받곤, 가끔 친모 산소에 가서 우 는걸 진사가 보곤 모질게 야단을 쳤다.


 “네 어미가, 야단할만하니까 야단을 치는 것이지! 네가 잘했어도 야단을 하시겠니? 야단을 맞을 때마다 고깝다고 어미 무덤이나 찾아 징징거리면! 사내자식이 커서 무엇이 될 것이냐? 이 세상에 너의 엄마 같은 사람이 없느니라.”


 어린 마음에 엄마가 그리운 걸 진사가 왜 모르나, 겉으로는 야단을 치면서도 속으로 항상 괴로운 것이다. 이런 훈육 받아 심상소학교 때도 일본선생 앞에서 당당히 맞서는 강인함을 보였던 것이다.


 성민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라디오의 스위치를 켰다. [KBS.자유에 소리. 서울중앙 방송국, HLKA, SEOUL, KOREA] 이것이 그때 남산에 있던 중앙방송국 부호였다.


 그 시절엔 라디오 있는 집이 별로 없어 중요한 뉴스는 성민내 집으로 모여서 듣곤 하였다. 고작 있는 것이 귀에다 꽂고 듣는 광석 수화기였는데, 소리가 작고 잡음이 많아, 안테나 줄을 하늘 끝까지 매달아야 그나마 들을 수 있어 뒷동산에 노송은 늘 안테나 대용이었다.


 유성기 있는 집도 드물었다. 성민네는 외삼촌이 일본 유학당시 사온 것인데, 해방이 되고 육이오 직후라 일본 레코드판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이 시기에 유행가로는, 시나노 요로 支那の夜(시나노요루, 중국의 밤) - 美空ひばり (미소라히바리) 노래다.

 

시아노 요로 시아노(중국의 밤 중국의 밤이여)
야나니노 마오니 라으강으레데(버들 창에 랜턴 흔들리고)
아까니 도라까노 시나무쓰메(빨간 새장 중국 아가씨)
으~야꼐나이이 아이노우다(아아아 안타까운 사랑의 노래)
시나노 요루 유메노 요루(중국의 밤 꿈의 밤이여)
시나노요루 시나노 요루요(중국의 밤 중국의 밤이여)
기미마쯔 묘이와 오바시마노 아메니(님 기다리는 저녁은 난간의 비에)
하나 노찌 그 찌르 베니므치즈(꽃도 져요 져요 이 꽃도 져요)
으~와가씨오아스 다로까(아아아 헤어져도 잊을 수 있을까)
시나노 요루 유메노 요루(중국의 밤 꿈의 밤이여)

 


 
 마침 라디오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 삼팔선에서는 북한군이 산발적으로 총격을 가하고 있지만 우리의 용감한 국군들이 괴뢰군을 무찌르는 것은 시간문제이니,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요지였다.


 6.25발 당시 이승만이 서울 시민을 안심시켜 놓고 한강다리를 끊고 특별열차를 이용해 대전으로 피신하며 한 소리다.


 "서울 시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적은 패주하고 있습네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네다. 지금 이 순간도 국군의 총반격으로 적은 퇴각 중입네다. 우리 국군은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을 것입네다. 이 기회에 우리 국군은 적을 압록강까지 추격하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달성하고야 말것입네다.“


 이승만 박사는 일제 때는 ‘일진회’의 대표로, 대한제국을 부정하고 고종을 반대했으며 러일전쟁당시 일본의 승리를 갈망한다는 소리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되어있다.


 미국에 건너가서도 이승만은 독립 운동을 하지 않고, 독립자금 횡령하여 건물투기 하고 자기를 주석으로 추대 안하면 임시정부에 참여 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독립자금 빼돌려 하와이로 돌아가 호의호식한 인물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 저서도 이와 비슷하게 기재되어 있다.<국사편찬회 증언>


 긴장하던 일꾼들은 제각기 흩어지고 송구 내외만 짚을 추려 새끼를 꼬기 시작 하였다. 만삭인 송구의 아내는 여러 번 아기를 가졌지만 번번이 유산이 되어 어렵게 가진 애기가 또 유산 될까봐, 여간 주의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부인도 송구내외에게 야멸치게 해도 생명의 소중함만큼은 극진하여 산모에 대해서는 알뜰하게 보살펴 주었다.


 "송구야?“


 송구는 대답대신에 진사가 지나가기를 바라며 옆으로 길을 비켜선다. 그 버릇은 오래도록 진사댁에서 살아온 습관이다. 어릴 때는 어리광도 부리고 떼도 썼지만 철이 들고 자기의 신분을 알고부터는 송구의 행동은 딴사람이 되어있었다. 말수도 없고 묻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너 요즘 너의 집사람과 싸움이 잦은 거 같더구나?“


 진사의 물음에 송구는 역시 묵묵부답 고개만 숙이는 것이다. 그 무응답은 수긍한다는 뜻이다.


 "사람 좋아서 사는 사람 없느니라 살다보면 정이 들고 정이 들다보면 아이 낳고,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란다. 이제 와서 어찌 하겠느냐, 기왕에 엮여진 인연 잘살아 보도록 노력 하거라?“


 진사는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강제결혼을 시킨것이 늘 마음속으로 걸리는 것이다. 송구는 얼떨결에 동자와 결혼을 하였지만 날이 갈수록 정이 떨어지는 것이다. 인물도 그렇거니와 성품까지 억세서 헤어질 생각을 하지만 진사가 어려워 억지로 참고 사는 것이다.


 진사는 그런 송구의 마음을 알고 어깨를 툭툭 치며 일상 하던 버릇으로 돌아간다. 뒷짐을 지고 울안을 한 바퀴 도는 것은 사물을 허술히 보는 것 같지만 못 자국하나라도 세심히 살피는 것이 가부장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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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6
현해탄의 메아리

 

(지난 호에 이어)
 지주들은 땅 한 뼘이라도 찾아보려고 소작인들에게 사정을 하지만 어림없었다. 그중 되돌려 받은 사람도 몇 있기는 하지만 극히 일부였고, 그들이 들어주지 않으면, 도리 없이 뺏기고 말았다. 아니 새 법에 의해 분배된 것이다.


 "여보게, 아무리 새 법이 생겼기로서니, 이건 너무 한 것이 아닌가? 우리가 한솥밥을 먹고 살아 온지가 어제 오늘 일인가? 그동안 살아 온 우애를 생각해서라도 다시 한 번 생각해 주게나“


 그러나 그들은 이미 단단히 약속이 되어있는데 사정하는 지주들만 우습게 돼버렸다.


 "모릅니다. 저는 오로지 새 법에 따를 뿐입니다“ 소작인들은 무조건 모르쇠였다.


 "여보게 자네들이 어렵기 때문에 소작을 하지 않았나? 그 때를 생각해서라도 마음을 한 번 고쳐 주시게“


 지주들의 이 한 마디는 오히려 소작인의 비위를 더 건드려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옛정을 생각하여 망설이고 있는데 아픈 데를 찔렀으니 거부할 빌미만 더 준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할아버지 때부터 받아오던 굴종을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서는 그들이다.


 "이보세요? 댁의 일손이 부족하여 도와준 것이지! 우리가 없어서 일을 도왔다니! 그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도지로 다 빼앗아 같으면 염치가 있어야지! 아무튼 우린 세법대로 할 테니까, 그리 아시오?“


 콩 쪽 하나라도 나누어 먹고 살아오던 이웃사촌들이 아닌 밤중에 등장한 토지개혁으로 인심은 무섭게 변해버렸다. 그중에도 진사댁의 피해가 컸다. 그것은 진사댁의 액운을 알리는 신호였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면 그도 저도 몰랐을 텐데 풍요로운 생활에서 갑자기 궁핍한 생활로 환경이 바뀌자 진사댁 식구들이 현실에 적응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였다.


 경제적인 문제도 문제지만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했던가? 믿어왔던 소작인 들이 하루아침의 배신을 하자, 진사는 그것이 더 인내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진사는 평소에 친하던 김씨를 찾아가서 사정을 해본다. "김씨, 우리사이가 이런 사이었는가?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한 번 생각 하시게나?“

 

 진사는 김 씨가 부지런해서 평소 아끼고 그 집에 일이 생기면 열일 제치고 도와주던 사람이었다. 김 씨도 진사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평생 논 한 평 없이 살아온 생각을 하면 아까운 생각도 드는 것이다.


 강제로 빼앗은 것도 아니고 법에 의해서 얻은 것인데 마음한번 모질게 먹으면 내 것이 되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진사댁 은공을 생각하면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더욱이 어제 종수의 하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아저씨? 진사가 뭐라고 해도 절대 흔들리지 마세요? 어떻게 얻은 땅인데 돌려줘요! 땅 한 평 없이 설움 받던 생각을 해보세요?“ 김씨는 종수가 꾀는 바람에 점점 탐욕의 길을 가고 있었다.

 

 아아, 일제의 서자(庶子) 6.25여...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고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며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울분했던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던 적에 무릴 쫓고 또 쫓아 원수에 하나까지 쳐서 물리쳐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통한의 삼팔선은 이렇게 갈리었다.


 연녹색 초목들이 진초록으로 변해 눅눅한 열기를 발산하며 '주위의 경관을 나른하게 만드는 초여름, 멧골 골짜기에서 우는 뻐꾸기 울음소리도 오늘 따라 처량하게 들려온다.


 바로 그해 1950년 6월 25일 새벽, 쿵~쿠웅~쿵쿵~쿠웅, 대포소리가 때로는 멀리 때로는 가까이서 아까부터 북쪽 하늘에서 은은히 들려오고 있었다. 모심기에 정신이 없던 일꾼들은 호기심과 근심에 싸여 저녁참을 들며, 한마디씩 한다.


 막걸리 한 사발을 단숨에 마신, 태영 아버지가 큼지막한 풋고추 하나를 덥석 물고 어적어적 씹으며, 북쪽 하늘을 근심스럽게 바라본다. 원래 술을 못 먹는 사람인데 계속되는 댕구(대포) 소리에 불안한 마음 달래기 위해 마시는 것이다.


 "웬 댕구 소리지? 문정 굴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


 "아냐! 북쪽에서 나는 소리여!“


 “여태껏 여기 살아왔어도, 문정 굴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들었어도, 북쪽에서 나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소문으로만 떠들던 전쟁이 실제 터진 게 아닌감?”


 "그러게 말이여?“ 해방이 된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문정 굴은 지금의 송파구 문정동이다. 일제 때 군인들의 대포 연습장이었는데, 해방이 되고도 일제들이 두고 간 대포를 가지고 군인들이 사격 연습을 하는 것을 일꾼들은 그 소리로 오인을 하였던 것이다.


 상돈 씨도 태영이 아버지의 말을 받아 대답을 하면서도 연신 북쪽하늘을 바라본다. 둘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데 이종 동서지간이다. 사람들이 착해서 중매쟁이가 또 중매를 한 것이다.


 성민은 어른들의 걱정과는 상관없이 가뭄에 말라버린 못자리 바닥에 오물거리는 올챙이들을 양손 바닥으로 걷어 올리며 북쪽에서 들려오는 대포소리에 맞춰 쿵~웅 쿵쿵, 따라 흉내를 내고 있었다.


 일꾼들은 모포기를 하나라도 더 심으려고 손놀림이 바쁜데, 북쪽에서 대포소리가 점점 가까워 오자 모심기를 독려하던 진사는 논두렁을 바라보며 소리를 치신다.


 “이보게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으니 그만하고, 돌아가세?”


 일군들 역시 대포 소리가 전보다 확연히 커져오는 것을 보곤 주섬주섬 연장을 챙기고 있었다.


 뒷짐을 짓고 논두렁길을 내려오는 진사의 모습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먹구름이 도는 서~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내뿜는 한숨은, 상서롭지 못할 때만 생기는 진사의 습관이다.


 그동안 해방이 되고 몇 해가 지나면서 진사댁 식구들은 많이 늘었다. 지금 부인 속에서 나온 자식들이 모두 9남매인데 병으로 죽고 초산으로 죽고 해서 5남매만 살았으나, 전실 자식 성진과 개구멍바지 송구까지 합치면 6남매가 된다.


 성조는 연희 학교를 마치고 노량진 수도국에서 잠시근무하다, 거리가 멀어 사표를 내고 면서기가 되었고, 영순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고 성호는 4학년, 성민이는 1학년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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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3
소설 ‘현해탄의 메아리’에 대해

 

 일제의 만행이 최고조로 치닫던 대한제국 중엽, 어느 날 정진사댁엔 개구멍바지가 들어온다. 예견치 않은데서 핏덩이를 받은 부부는 의견이 엇갈렸다. 도덕을 중요시하는 진사는 기르자 하고, 도도하고 지적인 부인은 누구의 씨 인줄도 모르는데 기를 수 없다고 갈등의 골이 깊어만 간다.


 무언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부인은 결국 백기를 들고 남편의 의사에 따르지만, 아이가 성장 하면서 부인과의 자진 마찰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진사는 지혜롭게 순간을 넘기지만 첩첩산중은 항시 따라다녔다.


 이름은 개구멍바지라 해 개똥이라고 지었는데, 이름이 천박하여 송구라고 불렀다. 성격은 우직하고 성실한대 심통이 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몇 날을 뒹구는 것이 흠이다.


 당시 조선농민의 생활상은 엉망이었다. 조선 총독부 휘하의 고리대금업자들의 매관매직으로 농촌 실상은 날로 황폐해지고, 기아선상에 허덕이던 농민은 급기야 거리로 몰려나 투전꾼들이 늘어나고 가을에는 볏단을 훔치는 사건이 터진다. 정진사는 군청과 면소를 오가며 볏단 사건을 해결 하였지만, 조성구와 구장 박흥렬의 비협조로 애를 먹는다.


 더욱이 이장 박흥렬은 진사댁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철저히 정진사를 배신하고 있다. 정진사댁 배다른 속에서 나온 큰 아들 성진과 박흥렬 이장 딸 정순은 소꿉친구에서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순수한 사랑을 하고 있었다. 이것을 못마땅해 하는 박흥렬은 늘 아이들의 사이를 방해한다. 그야말로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은데서 송구의 신변이 밝혀진다. 전쟁 막바지에 이른 일제는 군사 물품이 딸리며 집집마다 군사 장비만 될 수 있는 거라면 모조리 수탈해갔다. 제사 때 쓰는 놋그릇, 사발, 주발, 심지어는 절에까지 침투해 촛대까지 도색해 같다. 먼발치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송구는 지개를 벗기가 무섭게 ‘오너경장’을 내동댕이친 것이 발단이 돼 송구의 출생이 밝혀진 것이다.


 실마리는 20년 전으로 올라간다. ‘은실’은 아버지가 외국 선교사들과 친분이 두터워 이화학당에 다니고 있었다. 그 후 3.1운동이 일어나자 잠시 고향에 내려와 은신중인데, 전부터 은실에 흑심을 품던 ‘가마모도가’ 삼일운동을 빙자해 성폭행을 하여 송구가 생긴 것이다. 이 여인이 바로 송구의 어머니 은실이다.


 애기를 받아들은 송구의 외조부는 송구를 가마모도에게 직접 주지 못하고 조성구를 통하여 주지만, 월례 천성의 잔인한 놈이라 자기 자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성구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 버릴 생각도 했지만, 송구의 처지가 자기와 비슷하여 차마 버리지를 못하고 진사댁으로 보내지며 거기서 송구가 성장했던 것이다.


 송구의 신변이 밝혀진 진사댁은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며 작은 아들 ‘성조’를 군에 보내려 한다. 하지만 부인의 반대로 송구를 대신 보내게 된다. 진사는 부인과의 약속을 어길 수가 없어 송구를 대신 보냈지만 양심의 가책으로 번민을 한다.


 힘이 장사인 송구는 ‘오따 병장’ 인솔에 군으로 끌려가다 지혜를 짜내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탈출하여 집에 왔지만 주재소에서 항시 송구의 뒤를 밟는다. 극도로 위험을 느낀 진사는 당시 왕손인 전주이씨 이계준씨에게 송구를 부탁하여 그를 구해준다.


 송구는 자기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는 술로 세월을 보낸다. 이를 보다 못한 진사는 송구를 정신대를 피하여 동네에 들어와 사는 처자와 짝을 맺어준다.


 이때부터 일본은 서서히 기울어 가기 시작했다. 전 아세 권을 석권하던 일제는 넓은 대륙을 통치의 한계로 결국 항복을 하고 만다. 여기에 미국이 의존한 이승만 정권은 남한 단독 한국정부를 수립하며 그가 첫 번째 단행한 것이 ‘토지개혁’이다.


 소작인들은 한 평 땅도 없다. 땅이 생기자 제 세상 만난 듯 길길이 날뛰었고, 반대로 진사댁은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만다. 진사는 반이라도 돌려받으려 소작인들에게 사정을 하지만 단단히 약속이 된 그들에게는 통하지가 않았다.


 이런 혼란한 시절이 계속 이어지다 해방의 기쁨도 가시기전에 6.25 내란이 터지고 만다. 인민군이 처내려오자 역으로 진사댁에 붙어살던 소작인 자식들이 붉은 완장을 차고 설쳐대며 송구까지도 그들과 동조하여 진사를 괴롭힌다.


 진사댁 입장으론, 송구의 행위가 길러준 공을 모르는 배은망덕이고, 송구에 입장에서는 부인 밑에서 구박을 맞으며 일만해온 것이 배신한 원인인데, 각기 아전인수 격이었다.


 여기까지 기록이 1/3분량이다. 앞으로 6.25가 끝나고, 2~3세들이 이북, 북간도, 중국 연변 차치구로 뿔뿔이 헤어져 살다가 캐나다로 이민와 상봉하면서 끝나는 장장 4대에 걸친 ‘스토리’다.


 못 보신 독자가 계시면 <한인뉴스 부동산캐나다> 웹사이트(budongsancanada.com)의 '칼럼니스트'를 통해 1회부터 보면 흥미가 더할 것 같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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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5
미들랜드 성지 순례

 

 

 연녹색 이파리가 검푸른 녹황색으로 번해 싱그러움을 장식하는 7월, 미들랜드 성지 순례를 다녀왔다. 예년에 비해 여름날씨가 서늘하고 청명했다. 늘 자가용으로 다닌 익숙한 길도 관광버스로 달릴 때는 새로운 정취가 느껴진다. 401 하이웨이를 서쪽으로 가다 400으로 진로가 바뀌면 더욱 기분이 상쾌했다. 주님의 기도를 올렸지만, 솔직히 바깥 풍광에 취해 건성이었다.


 매년 하던 관례대로 미들랜드 본당 신부님의 설교에 이어 최규식 신부님의 설교가 이어졌다. 바람, 새 한마리의 울음, 입새에 일렁이는 바람 한 점도, 발길에 채이는 돌맹이도 하느님의 은총이 배어있는 미들랜드 성지는, 어느 한곳 하느님의 손길이 안 간 곳이 없고, 발길마다 하느님의 은혜가 충만하다는 최 신부님의 설교는 자연에 취하듯 예년에 볼 수 없었던 의미 깊은 설교였다.


 12시 종소리가 엄숙하게 들린다. 노트르담의 꼽추(안소니퀸)가 짝사랑하던 에스메랄다를 구할 때 치던 그 소리가 연상되었다. 꼽추 콰지모도는 어렸을 때 거리에 버려져 있는 것을 성당에서 거두어준다. 출생의 비밀에 쌓인 채 버림받은 콰지모드는 노트르담 사원의 종지기가 되었다. 


 활기넘치는 청년으로 성장한 콰지모도는 클로로에 의해 인간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장행렬이 성대히 거행되는 만우절날 용기를 내어 축제에 참가했다가 아름다운 에스메랄다를 만난다.


 그러나 에스메랄다는 이미 그랭구아르 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녀의 미모에 반한 프롤로 주교는 에스메랄다를 소유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결국 에스메랄다는 프롤로 주교 근위대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고 만다. 콰지모도는 프롤로 주교에 원망하며 그를 죽이고 에스메랄다의 시신을 안고 은은한 종소리 속에 영원히 잠든다. 


 노트르담의 꼽추는 프랑스 15세기 노트르담 성당을 중심으로 위고의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영화 김진규 최은희 주연에 각광을 받던 “벙어리 삼용이”도 여기에서 모방된 것이다.


 식사를 마치니 글쟁이의 습성이 충동질을 한다. 울창한 숲속을 비집고 들어선다. 수려한 송림 사이로 창창히 하늘길이 열려 있다. 계단처럼 늘어져 있는 천해의 요새는 이름 모를 새들이 낮선 손님을 위해 코러스를 하며 반긴다.


 시원한 공기를 허파가 터지도록 들이마시면 그야말로 성수를 마신 듯 신비 속에 젖는다. 주위 경관 역시 하나도 훼손이 안된 태고의 신비가 고스란히 살아있어 하느님의 섭리가 아니고는 이런 원시림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 기적에 가까웠다.


 파리만한 모기가 발등에 앉아 넉살스럽게 피를 빤다. 본능적으로 손바닥이 모기한테 정조준 하려던 순간, 천상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안 된다. 너의 피가 곧 내가 준 보혈이니라. 네가 미들랜드 성지순례를 왜 왔느냐?”. 순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나도 모르게 성호가 그어졌다. 


 그렇다! 모기를 죽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들랜드 성지 순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일깨워준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이런 경이로운 장소를 제공해준 대가로 생각하고 넉넉히 먹으라고 내버려 두었다.


 자비의 문을 통과하고 십자가의 길을 따라 1처부터 14처까지 기도를 올렸다. 처소를 옮길 때마다 신자들의 기도는 순수하기만 했다. 그동안 지나오며 잘못된 일,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일 등 각기 다르겠지만, 거의 이런 심정으로 기도를 드렸으리라.


 거룩한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존귀한 믿음의 생명이 영원하리라고 하는 깨달음을 일깨워줌이 아니겠는가? 

 

 


 십자가의 길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김대건 최초 우리나라 신부님 상 앞에 기도를 드린다. 최 신부님이 김대건 신부님의 고통의 길을 자상히 설명할 때는 주위가 숙연해 지기도 했다.


 김대건 신부님은 온갖 고문과 배교의 유혹을 물리치고,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셨다가 경기도 안성에 있는 “은하수 성지”로 안장된 것으로 안다.

 

 


 노량진에 위치한 새남터는 세조 때 단종을 복위시키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육신(성삼문.박팽년.하위지.유응부.이개.유성원)들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기도 하여 김대건 신부님과 더불어 그들의 고난의 역사가 면면히 그려진다.


 사육신의 곧은 절개는 누구 하나 위 아래가 비교할 수 없지만, 특히 박팽년은 수양대군이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면 모든걸 용서하고 살려주겠다”고 하자, “나으리, 화롯불이 식었나이다. 인두를 더 달구옵소서!” 했다. 이에 성정이 머리끝까지 오른 수양대군은 거열형(車裂刑)을 시켜버렸다. (거열형은 옛 중국 전국시대 때부터 생겨난 처형 방법. 목과 사지를 밧줄에 묶어 소나 말의 힘으로 각각 반대방향으로 당겨 찢어 죽이는 끔찍한 방법)


 ‘둥둥둥 북소리는 목숨을 재촉하고/돌아서 바라보니 해는 서산에 지고 머나먼 황천길엔 주막도 없다는데/이 내 몸 오늘 밤엔 뉘 집에서 묵을 거나’


 단종의 복위 실패로 새남터로 끌려가다 노들다리를 지나며 지은 성삼문의 시조다.


 김대건 신부님과 사육신들의 (정치, 종교) 노선은 다르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한 희생정신은 한마음 한뜻이었다. 오늘도 새남터에서는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불꽃처럼 번지고 하늘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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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7
현해탄의 메아리(20)

 

(지난 호에 이어)
 조선총독부 관리들이나 쪽발이 들은 게다짝을 끌고 도망가다, 거리에서 개죽음을 당하고, 악덕 친일파는 개 끌리듯 끌려가다, 밟혀죽는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36년간 억눌려 있던 조선인들의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되는 환희의 만찬이었다. 이틈에 친일파들은 독립투사로 변신하여 잠적해버린다. 조성구 역시 잽싸게 미군부대 속으로 숨어버린 것이다.


 풍전등화가 되어버린 한반도는 마땅한 인물이 없었다. 극도로 인물난에 허덕이던 이승만은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여 온갖 술수를 짜냈다. 대통령이 되기가 무섭게 단행한 것이 친일을 했던 친북을 했던 쓸 만한 인재면 무조건 등용했다. 그 영향으로 오늘날까지 이념의 갈등은 보수와 진보가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만이 집권하면서 반민특위가 조성되며 친일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친일파의 공작으로 오늘날까지 유야무야 되어버린 것이다. 반대로 북한은 해방과 동시에 친일 흔적이 있던 사람이면 가차없이 숙청해 버린 것이 남한과 차이점이다.


 돌이켜 보면, 6.25는 일제가 조선을 침범하여 생긴 을사보호조약의 유산이다. 고로 육이오는 일본 천황과 이또오 히로부미 작품의 연장선이고, 한반도의 비극은 결국 일제가 조선을 침범한데서 생긴 동족상잔의 내란이다.


 눈치 빠른 구장 박홍렬은 일찌감치 북으로 넘어갈 계획을 세웠다. 북한을 가도 친일행적이 들어나면 뾰족한 수는 없지만 않아서 죽을 수는 없어 일단은 북한으로 넘어가 살아갈 구실을 찾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정순이도 식구들을 따라 월북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저녁 성진이네 담벼락에 검은 그림자가 달빛에 아른 거리고 있었다. 정순이었다.

마침 성진이가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정순이는 작은 돌을 들어 그에게 기색을 알린다.


 "성진 오빠, 나, 정순이야?“


 "정순이가?“


 성진은 깜짝 놀라 주위를 살피며 정순이를 헛간으로 잡아끈다.


 "오빠 내일 우리식구들이 이북으로 넘어가요!“


 성진은 놀라며, "아니 왜?“


 정순이는 성진이를 보자 말을 못하고 어깨만 들썩이고 있었다.


 그동안 성진이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고, 정순이는 이화여대 2학년으로 기숙사생활을 하다가 해방을 맞은 것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성진과 친일파의 딸로 태어난 정순이는 성장을 하면서 서로의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에 번민을 하면서도 어릴 때 순수했던 첫사랑을 못 잊고 속으로만 음모해 왔던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급변할 줄 알았으면 미리 언약이라도 했을 것을 둘이는 아쉬워했지만 때늦은 후회였다. 아무런 정표 하나 없이 손을 흔들며 남북으로 헤어지고 말았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 중국 등 이른바 카이로 회담 때 4국 정상들은 일본을 4등분하여 분할통치 할 것을 합의했다. 그런데 유독 장개석 총통만은 그들의 요구를 반대했다. 피해를 따져도 자기(대만) 나라가 제일 큰데 장 총통이 반대를 하였던 것이다.


 장개석의 속내는 모르겠으나 그의 반대에 부딪친 3국 정상들은 장개석의 주장대로 일본을 그대로 통일시키자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복구비 만큼은 대만에게 매년 2억 달러를 보상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폐허인 일제가 무슨 돈이 있겠는가? 고하 신분을 막론하고 공사판으로 전전하며 돈을 벌었고 고관대작까지 막노동을 했고, 심지어는 고관 부인들까지도 매춘행위를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벌어 장 총통을 불러와 돈을 지불하자, 장 총통은 한마디로 거절하며 당신 나라 복구비에 보태라면서 한 푼도 안 받아 같다.


 그 후 일본은 대만을 철저히 배신하였다. 당시 대만의 인구는 2천만, 중국의 인구는 10억. 볼펜 한 자루를 팔아도 중국에는 10억 개, 대만에는 2천만 개, 계산이 여기에 미치자 약삭빠른 일본은 은인의 나라 대만을 하루아침에 버리고 중국으로 붙어버린 것이다.


 일제는 이토록 열강들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데, 우리의 위정자들은 항복한 일본만도 못한 대접을 받았다. 아니 스스로 자초(自招)를 했다. 상해 임정 요원들은 열강의 눈치를 보느라 국가 존망이 걸려 있는데도, 의견서 하나 제출 하지 못하고 그들의 처분만 바라고 있었다.

고작 저회들끼리 논공행상이나 하며 분탕질하고 있었으니, 오죽했으면 김일성이 상해임시 요원들은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노인들이 작당이나 한 경노단체라고 하였겠는가?


 이 틈을 타, 트루먼과 스탈린은 물밑 사전 조율을 하여 북쪽은 소련으로 남쪽은 미국으로 갈라놓아 생긴것이 이른바 저 유명한 신탁통치였다. 이에 격분한 우리민족은 전국적으로 반대운동을 펼쳤으나 소련의 지령을 받은 북한의 비협조로 무산되고, 6•25전쟁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 이승만은 혼란시기를 틈타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첫 번째 단행한 것은 토지개혁이다. 북한보다 일 년 뒤에 제정 되었다. 이 제도는 지주들에게는 청천벽력이고, 소작인들에게는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


 소작인들은 땅 한 평 없이 남의 논밭이나 부쳐 먹다가 졸지에 땅이 생겼으니! 그 기쁨은 하늘을 찔렀다. 반면 지주들은 하루아침에 알거지 신세가 되어, 그야말로 음지가 양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종수와 명수는 소작하였을 때 한을 풀기라도 하듯 제 세상 만난 것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일찍이 진사는 명수와 종수네 에게 도지를 주었는데, 공연한 사람들을 주재소에 고발을 하여 진사가 회수를 하자, 그것이 더 앙심을 불러왔던 것이다. 차라리 일찍 회수했더라면 이런 치욕은 없었을 것을 하고 후회를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린 것이다. 땅 문제뿐만 아니었다.

근간이 되어오던 지주의 권위까지 상실해, 소작인들의 조소와 수모를 한 몸에 겪어야만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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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30
현해탄의 메아리

 

 진사는 송구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려고 장가를 들이려고 하는데 마침 동네에 흘러들어와 사는 돼지엄마에겐 과년한 딸을 있었다. 이름은 동자인데, 두루뭉술하고 밉상은 아닌데 타동을 타서 별로 사람들한테 호감을 얻지 못했다.


 부녀가 정신대를 피하여 도망 왔다는 것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또한, 그들의 행적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고, 관심도 갖지를 않았다. 별로 마땅한 규수감이 없어 진사는 이 처자를 송구와 짝을 맺어주려 생각한 것이다.


 "아주머니는 고향이 어딥니까?“


 “고향이 어디 있는 감유?”


 그녀는 희죽 웃는 것이 고작이다.


 "어떻게 여길 오게 되었소?“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 왔지유?“


 말하는 폼으로 보아 충청도가 틀림없는데 굳이 고향을 밝히려들지를 않는 것이다.


 "고향을 밝히고 싶지 않은 이유라도 있소?“


 진사가 다그치자 그제야 여인이 대답을 하는 것이다.


 “남편이 보국단으로 끌려가 생계가 어려운판에, 딸까지 정신대로 차줄됭 판이라 야반도주하듯 도망을 쳤시유?”


 "언제 순사들이 잡으러 올지 모르는데 고향을 밝혀서 잡아 가게유?“


 "아주머니, 내가 고향을 물은 것은 댁의 따님과 내 자식과 혼일은 시키고 싶어서 물었던 것이요?“


 진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인의 입가에는 엷은 웃음이 감돌고 있었다. 짐짝 같은 딸네미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을 하던 중이었는데 진사가 혼일을 청하자 큰 행운을 얻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체면치레는 다하고 있었다. "안 돼유, 하나도 내세울 것이 없는 저희들이 언감생심 어떻게 진사님 댁과 사돈을 맺어유?“


 “여러 말 필요없소? 이것도 다 인연이고 팔자요?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깐 아주머니는 그냥 나만 따라 하세요?”


 진사의 강요에 여인은 못이기는 체 허락을 했지만, 송구입장에서는 하나도 반갑지가 않다. 마음에 없는 여자를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진사 마음대로 정해버린 것이 불만인 것이다. 핏줄이라도 이랬을까, 거절할 생각도 해보았지만 어느 앞이라 거역하겠는가?


 잔칫날이 돌아왔다. 동네 아이들이 제 꾸러미를 한다고 야단이다. 뒷간에다 모아 논 재에다 오줌을 섞어 주먹만 하게 해 신랑이 결혼식을 하러 들러갈 때 사모관대에 던지는 것이다. 옥이야 금이야 키워 논 금쪽같은 처녀를 뺏겼다는 동네 총각들이 아쉬운 마음에서 행하는 조선시대 풍습이다.


 초래청에 서있는 송구 얼굴에는 기쁜 빛이 전혀없다. 신랑이 그러니까, 동자도 마찬가지였다. 송구야 강제로 맺어지는 결혼이라 그렇다 치지만 동자는 신랑 될 사람이 그러니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모르고 신랑이 하는 대로 몸을 움직일 뿐, 혼인이 끝날 때까지 묵묵부답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이런날 친부모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하필이면 일본사람의 피를 받았을까, 친자식이면 이런 형편없는 여자와 결혼을 시켰을까!


 송구는 자신을 낳은 아버지와 핏덩어리를 버린 엄마가 원망이 가다가도, 한편 어디서 사는지 새록새록 그리워지는 것이다. 훗날 자리가 잡히면 아버지도 찾고 외가댁을 찼겠다고 신부의 손을 불끈 잡는다.


 폐백식이 무르익으며 진사 어른은 현구례(見舅禮)의 결혼생활 행동규범을 신랑 신부에게 당부하였다.


 부부의 사랑은 기러기(나무로 만든 기러기)가 날개가 나서 날아갈 때까지 변치 말 것이며, 부부의 정은 닭(폐백닭)이 홰를 치며 날아갈 때까지 변치 말라고 주례의 말씀을 하신다. 


 나무로 만든 기러기가 어떻게 날것이며, 죽은 닭이 어떻게 날겠냐만 이미 정해진 인연, 부부는 일심동체니까 죽을 때까지 변치말고 살라는 의미가 깊은 주례사였다.


 공초 당초 맵다 한들 시집살이만큼 매울쏘냐. 그저 귀 막고 입 막고 눈 막고 시부모 말씀에 순종하며 검은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살라고 당부하시며 부연해서 말씀을 이어가신다.


 “여자가 출가하면 친정과는 남이니라. 시집을 왔으면 시집 법도를 따라야 하고, 죽을 때까지 시집귀신이 되어야 하느니라.” 하시면서 밤과 대추를 듬뿍 던지며 “더도 덜도 말고 아들딸 7남매만 낳아라”고 흐뭇한 덕담을 한다.


 식이 끝나고 신혼방에 들어가는 송구의 발걸음은 천근이었다. 신랑 색시 첫날밤 신방을 엿보는 것도 조선시대의 풍속이었다.


 "신랑! 색시를 족두리 씌어 놓고 밤새도록 있을 거여? 첫날밤에 색시를 그냥두면 평생 정이 없다는데 어서 색시 족두리를 벗기라고!“


 아주머니들이 손가락에 침을 칠해 문창호지를 뚫고 안을 들려다보며 시시덕거려도 송구는 들은 척도 안하고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술만 퍼마시며 첫날밤을 그대로 보냈다. 소쩍새만 긴긴밤을 소쩍, 소쩍하며 새 부부의 앞날의 불행을 알리기라도 하듯 고즈넉이 울어대고 있었다.


 하얗게 날밤을 새운 다음날 청춘남녀의 행복을 축복하듯 저 멀리 말미산 너머에서는 뻐꾸기가 청아하게 울고, 이에 질세라 대추나무 상상봉우리에는 까치 무리가 자지러지게 깍깍 거린다. 이런 대자연의 축복을 받으며 송구는 점점 단란한 신혼생활로 접어들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 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날은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그동안 간간히 들려오는 뉴스로는 일제가 항복을 할거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일제가 진주만을 폭격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미국의 보복이 시작된 것이다. 그야말로 잠자는 사자 수염을 건드린 꼴이다.


 그때까지도 일본은 미국의 비행기가 많은 줄만 알고, 거기에 대비해 비행기 만드는 데만 주력하다, 뒤늦게 미국기들이 컴퓨터에 의해 작동한다는 것을 포착했을 땐 일제는 이미 모든 전리(戰利)를 상실하고 있었다.


 기껏 조선학생들을 강제로 끌고 가 비행기 조종하는 기술을 가르쳐 미 항공모함에 돌진해 자폭을 시키는 것이 최후 전술이었다. 일본이 끝까지 버티며 반항하자 결국 미국은 B29에 원자탄 두 방을 탑재하여 45년 8월에 이틀 동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 하므로, 발악을 하던 일제는 항복을 하고, 천황의 울음석인 목소리가 삼천리 방방곡곡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마치 지옥에서 울리는 귀곡성처럼 들렸다.


 통일을 염원하던 우리겨레는 감격에 넘쳐 거리로 뛰쳐나와 대한 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친일하던 관리 및 순경들의 가옥들은 몇날 며칠을 뚜드리고 부셔 난장판을 만들어 버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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