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오른 것은 ‘또 오 혜영’이란 드라마를 본 때문이다. 여학교 한 교실에 두 명의 오 혜영이 함께 공부하였다. 예쁘고 공부 잘하고 급우들 간에 인기 최고인 예쁜 오 혜영과 그 그늘에서 제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그냥 오 혜영이 있었다.
예쁜 오 혜영은 결혼식 날 신부 입장을 기다리는 신랑을 세워둔 채 말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냥 오 혜영은 결혼식 전날 느닷없는 파혼선언으로 결혼 준비에 한창 분주하던 부모, 친척, 이웃 간에 큰 조롱거리가 되고 좌절과 자포자기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또 다른 오 혜영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한 예쁜 오 혜영의 신랑(박 도경)이 그냥 오 혜영의 약혼자를 감옥에 가도록 보복을 한 것이었다. 드라마는 그냥 오 혜영이 박 도경이 사는 아파트 바로 벽 하나 사이 옆방으로 이사를 오면서 시작된다. 자신이 피해를 당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가해한 동기는 분명한 도경은 죄의식에 빠지게 된다.
외형적으로는 자신의 수준에 한없이 미달인 듯 보이던 그냥 오 혜영과 박도경의 진실한 사랑의 결합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리지만 이름이 같음으로 받게 되는 심신상의 중압감은 보는 내내 가슴을 조이게 하였다.
이름뿐 아니라 동성동본의 손 정숙은 나보다 훨씬 어린 동양 화가였다. 부군 정 인제 박사는 저명한 동양 철학자 서강대 교수이고 두 딸이 런던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 돌봐주고 있었다. 대만에 유학하여 중국어, 일어에 능통하였는데 영어실력을 더 향상시킬 목적으로 영어 학교 고급반에 나를 앞세우고 다녔다.
그의 손에 이끌리어 주저하던 수영을 배우고 동양화를 그렸다. 부지런하고 명랑하여 그가 나타나면 주위가 항상 생기로 넘치는 듯하였다. 바쁜 와중에도 화필은 쉬지 않아서 어느새 6척의 십장생 그림 두 폭을 그려주며 오래오래 건강하게 장수하라며 환하게 웃었다. 수필가와 화가 손 정숙의 우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3년 한국 인구센서스 기준 성(姓)씨 인구별 통계를 보면 외국인의 창씨개명 경우는 제외하고 현존 총 330의 성씨가 있다 한다. (김해김씨(金海金氏)가 420만 여명으로 가장 많고, 옥천 옹씨(玉川邕氏)가 772명으로 가장 적었다.) 백운산 작명가에 의하면 이름을 질 때 사주와 잘 맞으며 복 있고 대성할 수 있는 좋은 이름으로 지어준다고 한다.
4천만 인구 중에 같은 성씨와 이름을 갖게 된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아주 특별한 운명적인 연결고리를 느끼게 한다. 나에게 내려진 똑같은 축원의 수혜자라는 동류의식마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인간은 한 개인에게서, 심지어 나 자신에게서도 서로 다른 존재를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전혀 상반된 가치관과 감성에 따라 행동하는 동인이심(同人異心)에 당면하게 되면 진위를 가릴 수 없는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 스콧트랜드)은 인간에 내재하고 있는 선한 심성과 악한 심성을 따로 구분하여 극대화한 인간상(人間像)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발표하였다. 학식 높고 도덕심이 강한 의사 지킬 박사는 자기가 발명한 약을 먹고 하이드가 되어 무자비하고 악한 행위를 저지르다 다시 약을 먹고 지킬 박사로 돌아오는 삶을 즐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이드로 사는 삶이 길어지고 자기를 잠식하고 있는 하이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였다. 약효도 떨어지고 결국 시약 재료가 없는 시점에 이르러 지킬박사로 돌아오지 못하고 하이드 씨 상태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지금까지 나는 악한 성격을 숨기고 착한 성격만 나타내려고 노력했다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오래 전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날 때부터 선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본디 선한데 생육 과정에서 외재적인 상황에 의해 소멸될 수 있다고 하였다. 선한 마음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인(仁, 측은히 여기는 마음), 의(義, 부끄러워하는 마음), 예(禮, 공경하는 마음), 지(智, 시비를 가리는 마음)인데 선한 마음을 잃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교육제도와 교육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교육환경을 바꾸기 위해 3번이나 이사를 하였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유명하다.
지킬박사로 변신하는 자가제조약은 무엇일까. 때는 바야흐로 천고마비 사색의 계절이다. 새빨간 단풍잎 하나, 화가 손 정숙에게 띄워 보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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