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마트 안으로 들어가려다 멈칫 그 자리에 섰다. 웅성거리고 서 있는 사람들이 실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서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스크를 하고 장갑을 낀 사람들이 제법 싸늘한 날씨에 어깨를 움츠리고 서 있었다.
앞 사람 과의 거리는 2미터 정도, 한 사람 나오면 한 사람 들어간다. 마트 직원 둘이서 손님이 쓰고 돌려온 카트를 소독 비누로 싹싹 닦아 놓고, 줄서기와 장보기 안내를 하느라 바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앞에 여섯 사람이 있으니 적어도 반시간 이상은 서 있어야 될 모양이다. 쌀을 사기 위해 줄을 서야 되는 황당한 상황에 여러 가지 상념이 오락가락하였다.
한국식품은 한 달에 한두 번, 2시간 거리의 토론토지역 한국마트에서 대량구입을 하였다. 쌀처럼 오래 간수할 수 있는 식품은 일 년치를 사기도 하였다.
3월말에 눈 수술이 예약되어있어서 4월말 경에나 장보러 가리라 예정하였는데 3월 초순에 불어 닥친 팬데믹 패닉으로 사재기 열풍이 일어나 벌써부터 쌀이 떨어졌다고 아우성이었다. 2주면 끝나겠지 하던 기대가 4주, 한 달로 연장되고 외출금지령에 교회, 학교, 식당, 모든 공공장소의 집회가 금지되고 사람과의 접촉을 견제하는 명령이 계속 강도를 높여갔다.
휴지를 사러 갔다 텅 빈 선반에 놀라 대 여섯 상점을 뒤지며 곤욕을 치렀던 공포가 슬금슬금 되살아나 바닥에 깔린 쌀독이 은근히 걱정되었다. 빵도 많고 국수의 종류도 다양한데 아무러면 설마 굶기야 하려고..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신토불이(身土不二) 한국 사람은 하루 세끼 한 달 내내 빵으로만 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어떻게 쌀을 구할 것인가. 궁리를 해보지만 누군가가 사주는 데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전해주는 일이 더 큰 문제였다. 외출금지가 내려진 엄격한 시점에 이곳까지 쌀을 배달해 달라고 청할 염치는 없었다. 더구나 너도 나도 코로나바이러스로 조심하는 이때에 와 주겠다는 특별한 친지가 있더라도 극구 말려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흔들게 하였다.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가서 사오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는데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휴지 때처럼 마트에 쌀이 없으면 어쩌나. 먼 곳에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 한국 신문광고를 보다가 번개처럼 묘안이 떠올랐다. 한국식품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먼 거리를 참작해서 쌀 한 포대만 보관해 주면 우리가 가서 픽업해 오겠다고 부탁하였다. 물량은 넉넉하다는 선선한 답변에 만사 제치고 달려온 길이었다.
대학시절 부산에서 온 친구는 ‘쌀’이라 못하고 항상 ‘살’이라 하였다. 하얀 살 밥, 살 장사라 하여 주위를 웃겼다. 서정범 교수의 국어어원사전에 따르면 15세기 ‘쌀’(米)의 고음(古音)표기는 ‘살’이었다고 한다. 일본음식점에서 ‘사리’는 흰쌀밥이라고 하는데 경상도에서 전래되었을 것으로 유추한다. 몽골어에서 쌀(米)은 ‘사리’(sali)이다. 살이라면 몸의 뼈와 피를 담고 내 신경과 영혼을 담는 그릇 즉 내 형상을 만들어주는 체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살’은 또한 ‘살이’(生) ‘..살어리 살어리랏다.., 시집살이, 머슴살이처럼 삶, 생명(生命)의 뜻을 지니게 되어 ‘살’의 어간은 동의어가 된다고 한다. 쌀(米)로서 밥을 짓고 밥은 생명을 이어주는 기본 요소이며 삶의 총체적 원동력으로 연결된다.
쌀을 얻기 위해 스스로 얼마나 노력하며 살아 왔는지 지난 삶을 돌아본다. 공기를 마시듯 저절로 아니면 마땅히 구비되어 있는 조건쯤으로 대하지는 않았는지.. 도자기를 빚어내듯 내 주위에 맴돌던 인연들을 귀히 여기지 못하고 주어지는 대로 무계획적이고 기계적인 삶을 이끌어 온 듯 자괴감이 엄습해왔다.
입을 가리고 거리를 두고 쌀을 사기 위해 함께 서있는 이들이 새삼스레 내 삶의 동행자라는 친근감이 솟아오른다.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렸지만 쌀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은 새 삶을 통째로 지고 오는 듯 마음이 넉넉하고 편안하였다.
마스크는 남을 나에게서 보호하기 위하여, 장갑은 나를 남에게서 보호하기 위하여, 그리고 거리두기는 남과 나를 동시에 보호하기 위하여 착용하는 것이라 한다.
영상으로 예배 드리고, 운동도 하고, 시니어 대학은 영상개학을 하였다. 서로 협조하며 지혜롭게 불편하고 고통스런 삶을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분명 위기는 기회를 불러온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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