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맡은 일과 나만이 존재하는 듯 설레발을 치던 일상에서 잠깐 숨을 고르게 한 것은 순전히 ‘발렌타인 데이(Valentine's Day)’ 덕분이다.
‘사랑해요’ 전화에 이어 'Be My Valentine!' 이라는 카드와 함께 화분이 배달되고, 초콜릿을 받게 되면 정말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주제넘은 생각까지 하게 된다.
기독교의 순교자 ‘발렌타인’의 축일이 ‘숨은 흠모자’(Secret Admirer)의 사랑의 표시일로 전해진 것은 그 사랑의 깊이가 유별하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 축제를 주제로 한 영화 ‘발렌티노’에서 여주인공은 해마다 발렌티노의 무덤에 장미꽃 한 송이를 바치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곤 하였다.
이제는 거의 내용도 다 잊었지만 한 여인이 40여 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해마다 발렌타인 카드를 받아왔다며 40여 장의 카드를 펼쳐 보이는 특별취재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50이 되었을까 그의 나이로 봐선 10대부터 누군가 보이지 않는 찬미자가 있어 왔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둥실하고 순박한 여인의 얼굴은 온통 기쁨으로 반짝였다. 어느 해는 여행 중이었는지 외국에서 보내온 것도 있는데 카드를 받고 처음에는 발신인을 수소문 해 보려는 노력도 했었으나 ‘아무면 어떠랴?’ 이제는 단념하였다고 하였다.
일평생 카드를 보낼 수 있는 누군가를 가졌으면 싶은 마음에 ‘롱펠로우’의 시가 떠올랐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항상 푸른 잎새로 살아가는 사람/...바람으로 스쳐 만나도 마음이 편안한 사람/...밤하늘의 별과 같은 사람/...흔들림 없이 묵묵히 걸어가는 의연한 사람/...거친 삶의 벌판에서..사슴 같은 사람/...화해와 평화스런 얼굴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가 카드를 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받을 수 있는 ‘누구’가 되기 위해서 ‘...사람이 되고 싶다.’로 고쳐가며 수도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읽곤 했다.
오늘 나이아가라합창단의 발렌타인 특별공연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장장 5시간의 싱-어-톤(Sing-A-Thon)이었다. 끝 무렵 순서에서 100여명의 합창단원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Somebody to love)를 부를 때였다. 한 청년이 소프라노와 테너가 한창 듀엣을 부르는 무대로 걸어 나오더니 테너의 마이크를 빼앗아 자기가 부르는 것이었다.
합창단원은 물론 지휘자도 청중도 ‘어!’ 하고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 청년이 테너파트를 아주 훌륭하게 부르는 데 놀랐고, 그의 노래가 소프라노에게 주는 사랑의 고백이라는데 더욱 놀라워한 청중들은 그가 무릎 꿇어 프로포즈하고 소프라노가 손들 들어 약혼반지를 보여줄 때에서야 박수갈채와 환호성을 쏟아내며 즐거워하였다.
엉겁결에 중단되었던 합창은 다시 시작되고 지휘자는 이 노래를 그들에게 선사하였다. 엄연히 공적인 행사를 훼방하였는데도 불평은커녕 축하하며 열광하는 이들을 보면서 내 마음엔 전율처럼 파장이 일며 깊은 상념에 빠져 들었다.
될수록 감추려하고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은밀한 사랑이라 믿는 우리는 사랑을 표현할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받는데도 서투른 것이 아닌가.
받는 ‘누구’가 되고 싶다는 바람(願)은 빛 잃은 계명처럼 흐려졌다. 되고 싶다’ 에서 ‘만나고 싶다’로 되돌아와 절망적으로 갈 길을 찾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서/나도 그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 온화한 미소로/ 마음이 편안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들어가고 싶은 마음, 편안하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보이지 않게 항상 나에게 사랑의 카드를 보내주는 사람. 삶의 현장에서 절망의 파도가 덮칠 때, 외로움과 고난의 회오리바람이 돌풍처럼 몰아칠 때 안길 수 있는 편안한 마음. 그 사람을 오늘 만나고 싶다.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거하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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