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한국에 제 20대 대선이 있었다. 대체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의 양강 대결로 시종한 선거였다. 안철수 후보가 “끝까지 완주한다.”라고 공언했으나, 그는 투표 3일 전에 시시한 이유를 대며 윤 후보에 귀순했다. 이름 대로 또 ‘철수’를 한 것이다.
사실 그가 당선될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없었다. 다음번 대선에 기대되는 소중한 국민적 자산이라고 여긴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미니 당 후보로서의 무력감이 서러워서, 엊그제의 언약을 엎어야 할 만큼 절박한 위기에 처했던가? 아니다. 100여 명의 국회의원을 거느린 제1야당의 군집세(群集勢)가 탐이 났던 것이다.
정치는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야 하지만, 이상을 바라보며 국민과 함께 미지의 앞길을 열어가야 하는 성질이 다른 두 가지 과업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 동작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수구꼴통’ 소릴 들을 것이요, 아님 ‘빨갱이’란 억울한 악평을 덮어쓰게도 된다. 수구꼴통은 보수적 가치만을 집요하게 고수하는 고루한 부류를 비아냥대는 말이요, 빨갱이는 70여 년 전 공산도배의 기습 남침으로 수백 만의 민족이 죽고 다친 전쟁 체험이 아직도 생생한 한국에서 잘 먹혀드는 강한 표현이다.
그러나 ‘늑대 소년’의 거짓말처럼 이를 남용해서는 아니 될 말이다. 그런 표현을 남용하는 이들은 정치 현안에 대한 설득 논리가 궁하니까 감정적으로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빨갱이가 온다 해도 우리가 정의롭고 평등한, 그래서 굳건히 단결된 사회를 유지한다면 두려울 게 없다. 상대편 후보를 쓰레기 같은 말로써 예의 없이 폄훼하는 그 자신은, 사회의 공동선의 확충을 위해 뭘 했는가를 자문해 보라.
좌니 우니 하며 극단적으로 욕하기는 쉬워도, 건전하고 포용적인 중도적 사상과 세력을 키우는 과업이 매우 어렵지만, 우리에겐 꼭 필요하다. 그래야 다가올 통일 시대를 열 명분과 힘이 생긴다. 좌우를 극단적으로 주장하여 감정만으로 만사를 도배하면 상식과 합리가 자리할 공간이 없어진다. 당신은 무슨 마음에서 남에게 그런 무식쟁이 주장을 퍼붓는가? 여러 곳에 많이 사 놓은 땅을 오래오래 내 것으로 지키기 위해서? 숨기고 싶은 탈세 문제나 세금 때문에? 학연이나 지연 때문에? 자신의 격한 성벽을 자제할 수가 없어서?
윤 후보는 0.7%의 차이로 겨우 이겼다. 그가 선거 막바지에 날마다 공약을 남발하던데, 그중 절반이라도 실행하려면 더불어민주당의 협조를 얻어야만 한다. 대통령의 행정 명령으로 시행할 작은 일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회의 의결이 있어야 시행할 수 있고, 예산을 집행할 수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검사 출신이라 해도, 이것은 그가 입버릇처럼 되뇌던 헌법적 질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규정이다. 죄인 잡아다 놓고 취조하듯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야당에 굽히고, 설득하고, 하나씩 주고받으면서 말로써 협의해야 하는 절차는 그가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경지의 일이다.
그의 부인이나 선거 스텝들은 지금쯤 이겼다고 희희낙락할는지 모르겠으나, 윤석열의 고생문이 활짝 열린 것을 누가 위로하리오. 선거 직후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그런 점을 짧게 언급한 보도를 보았다.
윤 후보를 당선시킨 주요 공신들이 누구일까? 첫 번째는 문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구겨진 채로 살던 윤 검사를 5계단이나 특진 시켜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을 시켰다. 문 대통령은 인사에 젬병으로서, 그의 인사는 자주 역효과를 냈다.
윤 검사는 대통령의 시정 방침에 자주 거역하였고, 그럴수록 야당의 응원을 받으면서 정부 안에 내분을 일으켰다. 조국 장관의 가족을 무참하게 파괴하면서도, 스스로는 피해자 시늉을 하며 야당의 대선 후보로까지 나아가던 과정은 온 국민이 보았다.
문 대통령이 말년에 부동산 관련한 세금 문제를 고집스럽게 처리하여, 윤 후보에게 공격 거리를 갖다 바친 것은 대통령의 자충수요 큰 실책이었다. 문 대통령이 이재명 후보를 떨어뜨린 셈이다.
두 번째 공신은 한국의 언론사들이다. 그들은 이재명 쪽의 실수를 늘 침소봉대하였고, 여론조사내용은 언제나 윤석열보다 5~10%쯤 떨어진 것으로 보도했다. 결국 윤 후보가 0.7% 앞선 것이 밝혀졌는데, 이때도 그간에 국민을 오도한 잘못을 자백한 언론사가 없다는 것은, 그런 보도가 의도한 것임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이런 언론이 활개치는 것은 국민에게 불행하다. 그들은 언론인이 지킬 양식과 신조를 모두 시궁창에 버린 것인가? 사법계 엘리트들이 땅투기꾼으로 변신하여 수억 원 수십억 원의 가공할 특혜를 뻔뻔스럽게 누리는 것은 흐지부지하면서, 이재명 부인이 공금 2백만 원을 잘못 처리한 점은 계속 나팔을 불어 이미지를 구기게 한 수법도 마찬가지였다. 일의 선후경중이나 가치 판단을 따질 줄도 모르는 무대포들 같았다.
언론사들이 윤 후보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애쓴 것은 필경 기득권 세력으로서 서로의 약점을 덮어주며 상부상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더불어민주당을 ‘촛불 세력’ ‘운동권 집단’이라고 빨간 명찰 붙이기에 충실했는데, 0.7%의 미세한 차이로 패배한 집단에서 “재검표하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더불어민주당이 참 순한 사람들이구나 싶다. 세상에 이렇게 순한 빨갱이 집단도 있었던가? 만약 국힘당이 그런 처지라면 어떤 주장이 나왔을지 궁금하다.
국회의 여소야대 현상은 윤 당선인의 정치적 입장이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선거 막판에 본 것처럼 그가 무례하고 거친 언사를 남발한다면 국정은 당장 마비되기 십상이다. 전임 박근혜, 문재인처럼 윤 당선인도 심한 눌변이다. 그러니까 더욱더 거대 야당에 자신을 낮추고 인내하면서 풀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국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에서, 윤 당선인이 치적을 남기기를 빈다. (2022.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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