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들은 얼굴의 주름이나 생긴 모습, 외형으로 평가기준을 삼는다. 난 무슨 계급쯤일까? 꾸밈이 필요 없다. 생긴 대로면 어떤가? 치장도 허세도 좋아하지 않는 성격, 아집도 내가 편하면 그만이다. 누구를 의식하지 않는다. 살아온 날이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많은데 앞으로 나는 무슨 계급을 달고 살 것인가?
아침에 눈뜨면서 주님에게 건강한 정신과 육신을 주신 것에 감사한다. 건전한 생각을 할 수 있으니 나는 매우 행복하다. 남편도 있고 신실한 신앙심과 변함없는 애정도 여전하다. 47년 함께 살아서 웬만하면 눈치로도 거의 짐작할 수 있으니까.
불평 한마디 없이 기도로 저희 가족을 지켜주니 더 많은 욕심은 분명 과욕이라 뉘우친다. 과묵이 지나쳐도 침묵은 금일 때도 있으니, 가끔 불만이나 짜증을 낼라치면 세상사는 만족이 없는 법이라고 다독인다. 할말이 있어도 한번쯤 참아주면 보약이다. 나를 감동시킬 적도 있다.
인생의 계급장. 스트레스가 적으면 만족이고 얼굴의 잔주름이 무슨 대수인가. 외형의 꾸밈보다 감사의 행복이 더욱 중요하다. 아들, 딸도 아버지를 존경하며 순종하는 이치를 실천하니 나의 불평도 감히 먹히질 않는다.
“우리 아빠같이 훌륭한 사람을 만난 엄마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며 다독이는 딸의 모습이 영락없는 부전여전의 이치를 깨닫는다. 얼굴은 그 사람의 인격이라면서 환한 엄마가 정말 좋다고 아들은 칭찬할 줄도 안다.
요즘 부쩍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기만 하다. 있을 때 잘해주라고 당부하신 올케 언니들. 늙어가면서 더욱 안쓰럽기만 하다. 매일이 기쁘고 감사하면 축복의 계급이다. Money is not everything, 이라고 며느리, 아들, 딸에게 강조한다. 돈이 다는 아니다. 마음이 부유하면 더욱 좋은 일이다.
저녁마다 산책길에서 지나온 우리의 계급을 반성한다. 보람되게 알차게 살고 싶을 뿐 별로 욕심 없다.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한다.
조국의 홍수, 어려운 소식에 맘이 쓰인다. 물이 넘치고 고생하는 고국의 동포들. 어서 정상으로 돌아오길 기원한다.
길을 따라 산책한다. 물소리, 새소리가 너무 평화로운 아침나절이다. 다음주엔 친 손주의 개학 날이다. 아들 집에 가보고 싶다. 학교 가방과 도시락 백에 물통까지 메고, 단정하고 예의 바른 손주의 환한 얼굴이 떠오르니 보고 싶구나.
“할머니, 안녕하세요” 예의 바른 손주가 많이 컸다. 올해는 여행을 많이 다녀 사진 속의 네 모습이 할머니를 기쁘게 한다. 나의 인생 계급장 속에 너의 몫이 대단하다. 주님이 허락하신 귀한 손주들. 다시 만날 때까지 기도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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