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간간이 진솔한 내 마음이 되어간다. 오늘도 백용빈 동우님의 영결 예배에 남편과 동행한다. 젊은 날엔 파독 광부로 꿈도 많고 멋지고 유머러스 하더니, 친구인 B 여사가 생각이 자주 나고 남편의 간호에 수고가 정말 많다. 허전한 마음에 위로가 턱없이 부족할 텐데 조의를 표합니다.
얼마 전에도 H 여사의 이별 소식도, 이민 초기의 열심이었던 친구 남편과 두 따님을 두고 그렇게 떠나고 말았구나. 애석하다. 생로병사,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자. 봄이 왔다고? 풀잎들은 올라오고 나무에 물이 오르는 모습이지만 우리네 인생길 허무하고 허탈하니 우리가 모두 최선으로 하루를 값지고 알차게 보람되게 살자.
60년대 고국을 떠나서 이민의 땅에서 우린 정말 고생만 했다. 그래도 자녀들과 가족들을 위한 일이면 충실한 이민자로 열심히 했던 이민 1세대인데 이제 살만하니 노쇠하고 병이 찾아오고, 인생의 과정이려니 하다가도 섭섭하다.
지금도 병환 중에서 고통 받는 수많은 동포 가족 여러분들 괜찮아요? 그래도 힘내고 이만한 것도 다행이라고 위로하고 자연의 섭리대로 충실한 하루하루가 되라고 기도합니다.
시골집의 할머니께서 어릴 적 가르쳐주신 교훈이 생각난다.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는 복된 이별, 단잠을 자다가 다시는 못 깨어나도 잠든 모습처럼 평안한 죽음이 최고의 복이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일손을 부지런히 하면서 고통 없이 가야 한다. 손녀야,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라. 뇌를 자꾸 움직여라.”
책을 많이 읽으라던 백발의 할머니가 98세에 세상을 떠나시고, 하얀 모시 적삼에 긴 담뱃대를 가지고 “나는 전주이씨 가문에 왕손”이라고 했다. 8남매 중 막내 딸인 나에게 이제 아버지도 엄마도 세상에서 떠나고 오빠들 4명도 나의 외국 생활 50년 동안에 이별했다.
나의 분신이신 큰언니 동순 언니(점순), 작은언니 동춘 언니, 나(동란) 셋만이 이 세상에 남아있다. 언제나 뵐 수 있을까요? 한번 왔다가 떠나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정말 허탈하네요.
우리네도 칠십을 넘긴 나이에다 남편들은 팔십을 사시는 분들이요. 선배님 중에 90도 넘기신 분들은 참 존경한다. 기나긴 인생 여정에서 성공적으로 삶을 살아오신 노력에 대해 엊그제 읽은 카톡 내용 중 어느 교수의 말씀이 감동적이었다. 나에게도 조국이 있고, 고향이 있고, 가족이 있는 것을 감사한다.
한 줌 흙으로 묻힐 우리네 인생들. 서로 사랑하고 얼싸안고 위로와 격려와 다독임이 필요한데, L 사장의 말대로 우리의 뒷모습 말고 거짓 없이 우리를 나타낼 우리들의 모습. 자녀들과 이웃들에게 모범은 되었나?
한번은 가고 말아야 하는 고별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어르신 말이 생각나는 아침나절이다. 어느 집안이든지 어르신이 없으면 돈을 주고라도 사야 한다고. 경험과 연륜으로 인생의 항로를 순항하신 존경할 만한 어르신.
조금 있으면 도서관에서 매주 모이는 시니어 클래스에 참석한다. 말과 문화는 달라도 삶의 지혜나 이치는 똑같으니 40여 명 다양한 곳에서 온 노인들이 모인다. 교제나 도미노 게임으로 유익한 시간이다. 직원인 제시카가 커피와 차와 간식거리를 담은 카트를 몰고 온다.
“Hi, Hanna, Welcome to class” 하며 반기고, 두 시간 동안 우리들은 노년의 가치를 체험 학습하면서 오늘도 무사함을 감사한다. ‘주님 오늘 백 선생 영결식을 축복하시고 가족들을 위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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