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록
개미 한마리
수박씨 머리에 이고 싱크대 위를 지나간다
물소리에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새가슴이었을 것이다
불끈거리는 팔뚝을 이마에 얹고
그의 발은 함부로 땅을 딛지 못한 채
쌀 씻는 저녁을 향해 길을 내고 있다
콩닥거리는 손바닥 안에 밥알이 뜨거워질 때
두근거리는 심장에 배를 붙여 본 사람은
창틀 낭하를 기어 오르는
그의 가슴팍을 걷어차지 못할 것이다
묻지 않았지만, 이 저녁 난간 위를
겁없이 올라가야 할 연유가 그에게 있었으리
설거지 하던 손 멈추고
비탈에 몸 붙여 살아온 이민을 생각한다
낯선땅에 와서 누구든 한번쯤은
그런 날 있었으리라
제 몸에 부치는 수박씨를 보듬고
발밑 세상 속으로 걸어가야 했을
그의 길이 내 몸을 지나간다
절뚝이며 창을 넘는 그의 행진을
물의 가슴으로 지켜보며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여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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