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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쿠버의 세상살이와 비지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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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여성들’이 빚는 ‘냉면 한 그릇’

탈북여성인권협회 회원들이 토론토 한인 노인회 어르신들에게 냉면을 대접하고 있다.



탈북자의 삶은 참 피곤하다. 이민의 삶이 다 힘들다 하지만 특별히 탈북자는 기본적인 인권이 유린되고 경제적 피폐로 인해 살아갈 수 없는 북한땅을 탈출했기 때문에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으로 한이 맺혔고 현지적응도 한국 출신 이민자에 비해 훨씬 뒤쳐지는게 사실이다.

탈북여성인권협회(회장 이미연)를 통해 파악한 탈북자 현황의 대략은 이렇다. 탈북자의 상당수는 북한에서도 낙후된 지역인 동북 압록강, 두만강 지역 출신이다. 탈북여성인권협회에 매달 회비(10불)를 내고 등록한 회원(남녀구분 안함) 1백여 명, 회비를 못 내고 이름만 올린 회원이 2백여 명이다. 협회가 파악하고 있는 탈북자 전체 숫자는 광역토론토 7배여 명, 캐나다 전체 1천4백여 명이다. 생각보다 적지 않은 수의 탈북자가 우리 주변에 있는 셈이다.

그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살까? 딸린 식구가 많거나 65세 이상 노인이 식구중에 있다던가 하면 형편이 좀 괜찮지만 그런 대가족은 별로 없고 대부분이 독신이거나 2인 가족인 경우가 많다. 아이 하나 딸린 어른의 경우 1천1백불 정도 정부 보조금이 나온다. 이 중에서 렌트비 8백불 내고 나면 3백불 남게 된다. 여기서 교통비와 전화, 인터넷비용 빼면 거의 남는 것이 없다고 보면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에서 지급되는 보조금으로는 생계 자체가 불가능하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취업이 만만치 않다. 이민자의 공통된 문제점이기도 하지만, 특히 탈북자들에게는 언어장벽, 취업장벽이 유난히 높게 여겨진다. 생활력이 강한 일부 탈북자들은 힘을 모아 페인트칠, 카펫청소, 이삿짐센터 같은 자체 사업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 사업체 숫자도 10여개 정도에 불과하고 그마저 정식 사업체로 등록된 곳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일거리를 찾아 흘러 들어가는 곳은 식당 접시닦이, 두부공장, 김치공장, 닭공장, 오리공장, 타이어공장, 가구공장, 철강공장 같은 3-D 업종이다. 이것도 힘이 없으면 일자리 얻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먹고 사는 문제에 더하여 탈북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한인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다. 탈북자의 유입이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한인사회와의 갈등은 점점 늘어날 소지를 안고 있다. 보조금을 받는 탈북자에 비해 그렇지 못한 한인들이 느끼는 역차별의 문제, 탈북자에게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상대적 박탈감의 문제도 대두될 소지가 있다.

복 합문화 사회 캐나다에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소수민족 중 탈북자와 한인들은 오히려 남북통일 시대를 앞서 살아가는 선구자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남북이 하나가 되어 따뜻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 작은 모범이 있다. 탈북여성인권협회 회원들은 매달 둘째 주 금요일에 토론토 한국노인회 회관에서 노인들에게 자체적으로 준비한 냉면을 접대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입장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한인커뮤니티의 한 식구로서 봉사에 나서는 탈북 여성들의 모습이 색다르게 보인다.

한인들은 “억압과 결핍 속에 살다 온 탈북자들이 이곳에서 다소 요란한 옷차림과 최신 스마트폰으로 한인들을 놀라게 한다지만 (일부의 현상으로 인해) 탈북자가 비웃음과 조롱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들어온 이민의 땅. 한인 커뮤니티가 가야 할 길은 대립과 반목이 아니다. 탈북여성들이 한인 노인들에게 내놓는 냉면 한 그릇에는 시원한 화합과 질긴 동포사랑이 가득 담겨있다. (조성진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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