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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초 이유식의 시 세상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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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나이지리아와 카메룬 여행기

 

군인들이 총알을 장진한 총을 가슴에 겨눈다. 아찔한 순간이다. “헤이 헤이 와이트 가이”를 부르며 총구가 가리키는 곳에 선다. 여권을 달라한다. 30분이 지나도 돌려주지 않는다.

나이지리아 사람이 아닌, 피부색깔이 검지 않으면 무조건 화이트이다. 흑백의 분리가 리트머스 시험지 위에 놓여 있다. 섭씨 38도의 더위와 높은 습도는 몸에 땀이 줄줄 흘러 옷을 입은 채 목욕을 한다.

여권을 가지고 간 군인에게 돌려달라 했더니 대답은 간단하다. 돈을 외친다. 아하 돈을 주면 여권을 주겠다는 것으로 알고 미국 돈 10불을 주었다. 더 달라며 짜증을 내어 10불을 더 주었더니 돌려준다. 3곳을 거치는 동안 이렇게 60불을 주었다.

때는 1990년대 중순 조국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시절, 세계화를 부르짖는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에 따라 조국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을 즈음이다. 나의 고등학교의 짝이던 친구가 사업확장을 하면서 끔직한 제의를 해왔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여행에 동반을 해달라 한다.

친구 왈, 제반 비용을 부담해줄 테니, 영어를 자기보다 낫게 할 테니 통역도 하고 같이 여행을 하는 즐거움을 찾아보자는 의견이다. 그 시절 나도 무역업을 하고 있을 때이니 이 기막힌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영국을 거처 라고스에 도착한 후 하루가 지나 김일성이 죽었다는 뉴스를 CNN으로 접했다. 이곳은 남북이 대사관을 운영하고 있기에 북한 대사관 직원들을 호텔 식당에서 먼 발치로 볼 수 있었다. 우리도 행여 전쟁이 발발할까 걱정 속에 한국 대사관과 캐나다 대사관에 우리를 알리고 보호를 요청했다.

1천5백만 인구가 살고 있는 라고스라는 도시가 밤이 되면 암흑 세계다. 원인은 변전소의 시설물을 매일 밤 국민들이 훔쳐가기 때문이란다. 빵 한 덩이가 1불에 판매 되는데 1불이면 4인 가족 하루의 식량이 해결된다니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용인즉 몇 년 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바방기다>라는 장성이 통치를 하다가 후임 <아파차>에게 정권을 물러준 상태였다. 부패는 극에 달했고, 군사정권에서는 정권 유지 차원에서 별 4개가 퇴역하면 크루드 오일 4백만 배럴, 별 3개가 퇴역을 하면 3백만 배럴, 별 2개가 퇴역을 하면 2백만 배럴 등 퇴직금을 현찰대신 오일로 준다.

산유국 중에서도 양질의 오일인 바니 라이트 크루드 오일을 생산하는 이 나라의 오일은 비행기 연료로 사용하기에 값이 비싸며 각 나라에서 이 오일을 비축하고자 경쟁이 치열한 상태였다.

서구식 호텔은 한 곳 쉐라톤 뿐이었다. 처음 2일간은 이 나라 사람들이 운영하는 호텔에 투숙을 했는데 불편함이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CNN 뉴스를 들을 수 있음은 행운이었다. 2일 밤을 묵고 쉐라톤 호텔로 옮겼다. 이 호텔에는 세계에서 모여든 오일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의 집합소인 것 같았다.

그 때 크루드 오일의 국제 가격은 19불에서 20불 사이였다. 하지만 장성들이 퇴직금으로 받은 현물이 쌓여있다. 이 퇴역 장성들이 현금화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저렴한 11불에서 12불 사이로 판매를 하고 있기에 국제적 브로커들이 저렴한 오일을 매입하고자 몰려들어 있음을 알았다. 나의 친구 역시 이 값싼 오일을 수입하기 위함에서 여기에 왔고 나도 친구 따라 강남을 왔던 것이다.

호텔에 투숙하는 동안 15세에서 20세 정도의 소녀들이 호텔 수영장에서 나체의 몸으로 수영도 하고 외국인 남성들을 유혹한다. 20불을 주면 호텔방으로 들어간다. 참 요지경이다. 못 볼 것을 본 것 같아 그 때의 모습이 아련히 나의 심장을 두드린다.

석유 수출은 이 정부 국영 석유회사 <NNPC>에서 관리를 하고 있었다. 배럴당 12불에 매입한다 해도 나이지리아 국영 석유회사에서 요구하는 각종 비용을 공제하면 배럴당 4, 5불의 마진인데 결과적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없는 사업으로 노력에 비하여 결과는 좋지 않음을 알고 친구에게 이 사업을 접으라 권유를 했다. 그 후 한번을 더 그곳을 찾았으나 나의 예측은 정확했기에 친구도 원유수입을 포기하게 되었다.

이 곳 방문 중 우리를 안내한 현지인이 국영 석유회사와 우리의 수입조건을 절충하는 동안 시간 여유가 있어 국경을 접한 카메룬이란 나라로 2박3일의 여행길에 올랐다. 이 곳에는 한인동포가 운영하는 식당이 한 곳 있었고, 동포는 한 가구뿐이었다.

가까운 야산에서 망고 과일을 주어와서 실컷 먹었고, 저녁식사는 이 댁에서 한식을 먹을 수 있었다. 카메룬에서는 트로피카나 호텔에 투숙을 했는데 아침식사는 거의 굶다시피 했다. 뷔페 식사가 준비되었는데 조금 늦게 도착하면 음식이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못 먹는 감은 쳐다보지 말라는 우리 속담과 과유불급은 금물임과 동시에 분수에 맞게 살아가야 함을 깨우쳤고, 친구 덕분에 지구상에 이렇게 살아가는 곳도 있구나 하는 가슴 아픈 추억만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보고 들은 받아드릴 수 없는 수 많은 부정과 불공정을 목격했음은 나의 삶에 큰 교훈을 각인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일확천금이 웬 말이더냐 인생사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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