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독립전쟁 배경영화-'보리밭을 흔드는 바람'(5·끝)

 

(지난 호에 이어)

 어느 날 지하활동을 하던 데미언과 댄은 정부군의 무기를 탈취하다가 댄은 사살되고 데미언은 생포되어, 전에 영국군이 가두었던 바로 그 감방에 수감된다.

 

 형 테디는 동생 데미언을 죽이고 싶지 않아서 정말 끈질기게 설득한다. "너같은 애는 이런 데서 죽으면 안 돼… 부탁이니 집에 돌아가서 시네이드랑 사랑하고 아들 딸 낳고 그냥 네 인생 살아라…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늘 바랬던 대로 내일 당장 병원, 학교에서 가르치며 살아라."고 말하는 테디. 이어서 "나도 이 군복 벗고 평화롭게 살기 원해. 데미언, 내 평생에 남에게 이렇게 애원해 본 적 없었어. 하지만 지금 네게 애원할게. 내 영혼과 마음을 다해서!"

 

 이에 대해 계속 눈을 내리깔고 있던 데미언이 "뭘 바라냐?"고 똑바로 쳐다보며 묻는다. 형 테디는 "전향하고 로리를 비롯한 동료들 및 무기은닉처를 밝히면 사면해 주겠다."고 설득하지만 데미언은 "내가 크리스 레일리의 심장을 쐈어. 왜 그랬는지 형도 알잖아?"라는 말로 이를 거부한다.

 

 자신의 전부를 건 선택인 만큼 데미언에게 있어 아일랜드의 자유와 독립은 절체절명의 목표이었기에 동료를 팔아넘기지 않는다. 

 

 말 하지 않으면 내일 새벽에 처형된다며 눈물로 감방을 떠나는 테디! 이념과 형제애 사이에서의 심적 갈등! 참 애잔한 부분이다.

 

 데미언은 시네이드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다. "나는 이 전쟁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그렇게 됐지. 이젠 벗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 우린 참 이상한 존재야. 우리 자신에게조차 말이야. 널 가슴에 소중히 간직할게. 너의 몸과 마음을 마지막 순간까지 말야. 언젠가 넌 태어날 자식들이 자유를 만끽하기를 바랬지. 그날 이후로 나도 기도했어. 하지만 그날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릴 것 같아 걱정이야…."

 

 그리고 자기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댄의 말을 인용한다. "무엇에 반대하기는 쉽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신념을 알고 있으며 그걸 위해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며 끝으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전하면서, 내면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 형 테디를 잘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한다.

 

 다음날 새벽, 처형장에 끌려나온 데미언. 테디가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하자 "내가? 아님 형이?"라고 되묻는 데미언. 눈물을 삼키는 테디에게 부관이 자기가 대신 명령하겠다고 하지만 거절하고 직접 처형을 명하는 테디.

 

 데미언은 이렇게 처절한 죽음을 맞고, 형 테디는 오열하며 그의 묶인 손을 풀면서 손에 꼭 쥐고 있는 메달을 발견하고 간직한다.

 

 테디는 동생의 연인인 시네이드에게 그의 편지와 메달을 전달한다. 그녀는 절망하고 비탄에 잠겨 테디를 공격하고 자기 땅에서 꺼지라고 하면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긴다.

 

 이는 데미언이 크리스를 죽인 뒤 크리스의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과 똑같은 구도를 이루며 슬픔을 배가시킨다. 아일랜드 노래가 흐르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며 영화는 끝난다.

 

 독립운동을 위해 서로 의지하며 싸워온 두 형제, 데미언과 테디는 영국이라는 목표물에만 전념해 왔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은 다른 길을 선택하고 서로를 적수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들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켄 로치(Ken Loach·86) 감독은 두 형제 중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고 냉정한 중립적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영화의 사회적 리얼리즘을 전달하기 위해 아일랜드 출신 배우들을 기용해 그들이 실제로 겪는 일상의 삶을 세세하게 묘사하여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탁월한 연출력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속 캐릭터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래서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진실되며 마음의 경적을 울리는 힘이 느껴진다. 

 

 켄 로치 감독은 2006년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에서 "아일랜드의 상황은 지금의 이라크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라크를 탄압하는 미국과 영국의 구도는 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태도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이러한 모순들을 비판하고 싶었다."며 이 작품을 통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혔다.

 

 켄 로치 감독은 2016년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로 두 번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보리밭을…'을 보면서 1920년대의 아일랜드의 독립 투쟁과 내전은 아일랜드만의 특수한 사건이 아니고, 인류 역사상 독립전쟁이 일어났을 때 거의 반드시 제기되었던 식민제국주의의 수법, 즉 '분할정복법(Divide and Conquer)'의 근본적인 문제이며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보편성을 갖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일본제국주의 시대 때 우리의 독립투사들은 중국으로 건너가 남의 나라의 역사의 흐름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처지 때문에 쑨원(孫文),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또는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에 합류했다. 드넓은 중국 대륙에서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끝없는 위기 속에서 언제일지 모르지만 이들은 독립운동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좌우도 모르고 일신의 영달을 마다하고 싸웠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좁은 땅의 조국에 돌아온 선열들은 공동의 목표가 없어지니 묻혀있던 이념들이 고개를 들면서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고 서로를 적수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에서처럼 정치적인 비난의 화살과 사회주의적 이상(理想)의 포기는 식민제국주의의 '파괴의 씨앗'을 불러오는 결과를 초래했지 싶다.

 

 물론 한국 현대사가 임시정부, 무장독립운동, 재미독립운동 세력 등으로 복잡하게 분할되어 있었고, 궁극적으로 비극적인 한국전쟁의 시초가 됐다지만 영화에서처럼 정작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 비극적 동족상잔인 한국전쟁의 원인이었으리라.

 

 역사란 살아 있는 시간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단서일진대 아직도 이념 때문에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마음 고생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그런 역사의 굴레를 본모습 그대로 보여줘 후세들이 역사를 바로 인식하게 해야 할 것이다.

 

 데미언 역의 킬리언 머피(Cillian Murphy·46)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 '콜드 마운틴(2003)' '선샤인(2007)' 등으로 우리와도 안면을 튼 파란눈의 아이리시 배우. 최근작은 '앤트로포이드(Anthropoid·2016)'.

 

 댄 역의 리암 커닝엄(Liam Cunningham·61)은 HBO 시리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서 전직 밀수꾼 다보스 시워쓰 역으로 더 유명세를 탄 배우. (끝)

 

▲ 영국과 아일랜드 간에 정전 협정이 체결되고 그들의 자치를 허용한다는 소식에 마을에는 축제가 열리는데… (이때 연주되는 곡이 'The Doon Reel'이라는 아이리시 전통 민요이다)

 

▲ 데미언(킬리언 머피)은 영국과의 평화조약을 받아들이자는 형 테디(페드레익 딜레이니)를 이해하지만 그에게 동의할 수는 없다. 

이념의 대립으로 형제는 이제 서로 다른 선택을 하기에 이르는데…

 

▲ 형 테디(페드레익 딜레이니)는 동생 데미언(킬리언 머피)을 죽이고 싶지 않아서 정말 끈질기게 설득하는데…

 

▲ 새벽 처형장에 끌려나온 데미언. 테디(맨 오른쪽)가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하자 "나를 위해 또는 형을 위해?"라고 되묻는 데미언. 테디는 눈물을 삼키며 직접 처형을 명한다.

 

▲ 데미언의 편지와 메달을 전달받은 시네이드(올라 피츠제럴드)는 절망과 비탄에 잠겨 테디에게 "다시는 당신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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