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배경 영화(III)-'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1)

 

 1928년 개관하여 미국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테네시 주 멤피스의 명소 오피엄 극장(Orpheum Theatre)은 1984년부터 여름 특선 영화제에서 헐리우드 고전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GWTW)'를 매년 상영해온 것으로 유명한데, 지난 34년간의 전통을 깨고 2018년부터 여름특선작 목록에서 GWTW를 퇴출시켰다.

 

 그리고 2020년 5월 25일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대한 시위 확산 영향으로 GWTW가 미국 스트리밍서비스 HBO맥스의 방영 목록에서도 삭제되었다.

 

 “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은 아니었다”로 시작해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로 끝나는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 1900~1949)의 1936년 동명의 장편소설을 바탕으로 1939년 제작된 GWTW는 남북전쟁 기간 중 조지아 주 애틀랜타 목화농장을 배경으로 농장주 딸인 스칼렛 오하라가 겪는 인생역정을 담고 있다. 미첼이 35세 때 쓴 이 책은 그의 유일한 소설로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현재도 매년 전 세계에서 5만여 권이 팔리는 성경 바로 다음의 베스트셀러다.

 

 스칼렛 역에는 베티 데이비스, 캐서린 헵번, 마거릿 설리번, 라나 터너, 노마 시어러, 수전 헤이워드 등 당대 내로라하는 32명의 헐리우드 스타들이 경합을 벌여 결국 비비안 리가 선정됨으로써 남북전쟁과 재건시대, 인간의 사랑과 야망을 탁월하게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으며 아카데미상 13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 등 10개 부문(정기상 8개, 명예상 1개, 기술상 1개)을 휩쓸었다. [註: 이 작품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다는 사실이 시상식에서 발표도 되기 전에 신문사가 발표해 버리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그때까지 수상 결과를 미리 신문사에 알려주었던 관행이 사라지고 수상 결과는 시상식에서 발표자가 호명할 때까지 엄중하게 관리하게 되었다.]

 

 1939년 개봉 이후 4년 동안 당시 미국 인구의 절반가량인 6천만 명이 관람함으로써 국내 흥행수입도 당초 제작비의 100배가 넘는 3억9천만 달러(현재가치 약 16억달러)라는 헐리우드 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 기네스북에 의하면 2012년에 GWTW의 총수입은 44억135만8,555달러. 개봉 후 50년간 총 관객 12억명을 달성한 명작 중의 명작. GWTW의 뛰어난 장엄성을 가리키는 말로 "미국 영화는 단 2편뿐으로 하나는 ‘GWTW’요 다른 하나는 나머지 모든 다른 영화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흑인노예에 대한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을 고착화하고 백인 노예주를 영웅적으로 묘사할 뿐만 아니라 백인우월주의단체 '쿠클럭스클랜(KKK)'을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각색 과정에서 노골적인 묘사나 차별요소 부분은 거의 삭제하고 등장 인물에 대해서도 일부 흑인 노예를 생략하였다. 그러나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주제가 '바람과 함께 사라진 미국 남부의 문명, 남부 사회에 대한 향수'를 그리고 있고, 따라서 '미국 남부 사회의 가치관과 전통을 위협하는 것' 등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현대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남부의 전근대적 낭만주의와 귀족주의보다 북부의 근대적 합리주의와 평등주의가 훨씬 정당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반면, "영화는 영화일 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당대 사회에 대한 풍속화 같은 작품이고, 변화하는 사회상을 보여준다"며 "시대적 분위기에 따른 또다른 예술 검열"이라는 지적도 있다.

 

 1939년 Loew's사 배급(MGM의 모회사).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와 셀즈닉 프로덕션이 제작한 총천연색 영화의 서사시적인 대작 드라마로, 제작비와 광고비에 거액을 쏟은 효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 빅터 플레밍(제작자 셀즈닉이 동성애자였던 조지 쿠커 감독을 교체했다).

 

 이 영화는 빅터 플레밍이 감독했지만 진짜 창조자는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David O. Selznick, 1902~1965)이다. 그의 원 맨 쇼와도 같은 것으로 셀즈닉은 엑스트라 배우에서 감독과 주연배우들에 이르기까지 총 1만2천여 명의 인원을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일사불란하게 조종, 위대한 작품을 완성했다.

 

 음악감독은 맥스 스타이너로 당시 거의 세 시간에 달하는 가장 긴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음악은 감상적일 만큼 서정적이면서도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도도한데, 음악 주제가는 ‘My Own True Love’(www.youtube.com/watch?v=DTsruEkaKHA)라는 노래로도 만들어졌다.

 

 출연 비비안 리, 클라크 게이블, 레슬리 하워드,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토머스 미첼, 해티 맥데니얼 등. 러닝타임 238분(서곡, 인터미션, 마지막 음악을 제외하면 222분).

 

 우리나라에서는 1957년 수도극장에서 최초 상영되어 8만5천 명의 관객을 모았다. 1972년 중앙극장에서 재개봉하였다. [註: 수도극장은 1935년 서울 중구 충무로 29에 약초좌(若草座)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1946년 수도극장으로 재개관하였고, 1962년 스카라극장으로 바뀌었다가 2005년 건물 철거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도 유명하고 방대한 작품이라 이야기를 다 하자면 끝이 없다. 여기서는 '나무위키'에서 잘 요약한 줄거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오픈크레디트에 주제곡이 흐르는 가운데,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사는 '타라농장(Tara Plantation)', 애슐리 윌크스가 사는 '열두 참나무(Twelve Oaks) 농장' 그리고 '애틀랜타'로 나눠 캐스팅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막이 뜬다. "남북 전쟁 전의 미국 남부. 그 곳은 신사도와 목화밭으로 상징되는 곳이었다. 이 아름다운 지방은 기사도가 살아있는 마지막 땅으로 용감한 기사와 우아한 귀부인 그리고 지주와 노예가 함께 존재하는 곳. 책 속에서나 있음직하고 꿈처럼 기억되는 과거가 오늘로 살아있는 곳. 문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1939)'. 1967년 70mm 재개봉 영화포스터
 


▲ 아버지 제럴드 오하라(토머스 미첼)는 "일하고 싸우고 죽을 가치가 있는 건 오직 땅뿐이다!"며 딸 스칼렛(비비안 리)을 다독이는데…
 


▲ 유모(해티 맥대니얼)가 꼭 붙잡고 배를 당기라며 스칼렛의 콜셋을 도와주고 있다. 이 콜셋은 18인치(46cm)로 유명하다.

▲ 애슐리 윌크스(레슬리 하워드)가 결혼할 사촌 멜라니 해밀턴(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을 소개받는 스칼렛.
 


▲ 윌크스집 바베큐 파티에 참석한 16살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는 예쁜 얼굴과 매력을 능수능란하게 휘둘러 남자들의 관심과 인기를 한몸에 모으는데…
 


▲ 스칼렛과 여동생 수엘렌(에벌린 키이스)이 남자들에 대해 언쟁하자 "파티에 나올 나이를 먹었으면 조신하게 처신 해야죠"라며 나무라는 유모(해티 맥대니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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