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수기-뿌리 뽑힌 나무(63)

 

(지난 호에 이어)

나는 구청 홈페이지에 회원가입하고 민원을 넣었다. 겨울 보일러용 기름값이 월세의 2배만큼 더 비싸고 여름 전기세가 월세보다 훨씬 비싼 이런 무허가 건물에서 빗물이 새어 들고 여름 내내 축축한 방안에서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데 도저히 돈이 없어 이곳에서 살 수가 없으니 정부에서 이 건물을 철거해 달라고 긴 사연을 덧붙여 적었다. 그리고 내가 이곳의 마지막 세입자가 되기를,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정부에서 조치를 취해 달라고 말이다.

바로 다음날 구청직원의 전화가 왔다. 민원을 접수 받아서 조사를 해야 하니 우리 집에 찾아온다고 한다. 그렇게 이것저것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구청 직원은 불법건물이라 철거해야 하고, 주인 할머니가 벌금을 내야 하는 것도 맞지만 나는 법적인 계약을 했기 때문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 주변에 상가만 몇 개나 가지고 있는 주인 할머니한테 2달 월세 빼고 돈 180만원이 뭐가 그리 큰돈이라고 이러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갑자기 독기가 생겼다.

“그래요? 돈을 못 돌려받아도 괜찮으니 난 이 컨테이너가 철거될 때까지 민원을 넣을 거예요.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또다시 피해를 입으면 안 되죠. 돈이 없어서 옥탑방에서 사는 건데 전기세와 보일러 사용료가 월세의 2배를 내야 한다면 과연 누가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나요?”

그로부터 며칠 후 구청직원은 또 전화를 했다. 오늘은 할머니도 구청에 와야 하고 나도 와야 한다고 한다. 서로 합의를 할 수 있는지를 일단 얘기해보고 합의가 서로 안되면 법적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사실 나는 이미 이사를 한 상태였고 옥탑방은 비어 있었다. 새로 이사한 집주인 내외는 너무 좋은 어르신들이었는데 내가 보증금 200만원이 부족하다고 하니 돈 되는 대로 달라고 흔쾌히 허락했다. 정말 주인 할머니와는 많이 상반되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나는 더 이상 조급할 것 없었다.

“그냥 법대로 처리해 주세요. 저는 보증금을 이미 포기했어요. 그런 사람들은 법의 처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할머니 만나고 싶지 않아요. 전화로 수 차례 사정해보고 250만원 중에 180만원만 돌려달라고 사정해도 거절당했는데 이제 와서 합의를요?”

“두 분이 마지막으로 합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자 합니다.”

결국 나는 약속된 시간에 구청에 갔다. 주인 할머니와 딸이 먼저 와있었는데 나를 보자마자 주인 할머니가 대뜸 한다는 말이 “내 70 평생을 살면서, 수많은 세입자들을 들였지만 구청에 신고 당해서 불려오기는 처음일세”라고 하며 민원을 넣은 나를 원망하는 듯했다.

예상한대로 구청 직원은 민원을 일단 받았으니 주인 할머니는 700만원 정도의 벌금을 내야 하며 무허가 건물에 대해서는 서울시에 보고하고 결정이 내려오면 그대로 처리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의 계약금 문제는 오직 할머니와 나와의 문제이므로 자기들은 개입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만약 민원을 취소하면 아무 일도 없는 것으로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주인할머니가 180만원을 안 주려고 하다가 이제 와서 700만원 벌금을 물게 생긴 것이다.

나는 냉담하게 얘기했다.

“잘됐네요. 전 어떻게 서울시에서 저런 무허가 건물을 버젓이 세를 내주고 수익을 받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안 그러면 제가 그런 불법 건물에 계약을 할 일은 없었을 텐데요. 부동산업자 역시 그곳이 얼마나 살기가 불편한지, 불법 건물인지 알면서도 알려주지도 않고 중개비만 챙기고 나 몰라라 하고요. 200만원 계약금은 원래 나한테 없었던 걸로 생각할 겁니다. 구청에서 건물 철거가 안 된다면 전 서울시청에 민원을 넣어서 끝까지 갈 겁니다.”

사실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아 할 말을 얼른 끝내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불과 5분도 안 되어 내가 먼저 나가버리자 주인 할머니와 딸이 급히 따라 나오더니 내 팔을 잡았다. “아기엄마. 저기 커피숍에 가서 얘기 좀 나눠요.”

“전 커피 안 마셔요. 그리고 얘기는 아까 끝났는데요.” 상처를 받을 대로 받은 나에게는 그들의 위선적인 태도가 역겨웠다. 딸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내 앞을 가로막으며 간청했다.

“저 커피를 안 마신다니, 그럼 옥탑방에 가서 얘기 할까요? 아기 엄마 조건을 들어줄게요.”

“이제 와서 들어준다고요? 처음에 얼마나 사정했는데요? 옥탑방에서 산다고 사람을 너무 무시하네요.”

그리고 나는 걸음을 빨리 걸었다. 주인할머니와 딸도 얼른 내 뒤를 쫓아왔다. 열 걸음 정도 걸으면서 나는 구청 직원이 한 말을 떠올렸다.

“서울시청에 신고해도 철거가 이뤄지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몰라요. 또 철거가 안 될 수도 있고요, 웬만하게 합의를 해서 보증금이라도 챙기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나는 생각을 곱씹으며 에잇! 그냥 실속이라도 챙길까? 하는 흔들리는 마음을 안고 있었는데 주인 딸이 다시 한 번 날 멈췄다.

“아기엄마.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 저희 엄마가 연세가 있으셔서 고집불통이라 좀 과하신 것 같은데 제가 그 대신 사과 드릴게요.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옥탑방으로 가시죠?”

나에게 180만원은 정말 큰돈이라 나도 고집을 내려놓고 그만 못 이기는 척하고 그들과 함께 옥탑방에 갔다. 나는 텅 비어 있는 옥탑방 차가운 방바닥에 앉았다. 전기사용료를 빼고 나머지 보증금을 다 돌려준다고 한다.

전기사용료만 28만 원이 넘었다. 내가 그 집에서 아직도 살았으면 전기세와 보일러 기름값에 돈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남한에 막 첫발을 디딘 나에게 딱히 수입도 없고 일자리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 자리에서 바로 돈을 돌려받고 나서 나는 씁쓸한 마음을 안고 나와 버렸다.

나중에 한번 그곳을 지나가면서 들려보니 창문과 출입문을 모두 새로 갈고 물이 새지 않게 수리를 해놓은 것이 보였다. 누군가가 또 와서 살고 있었다.

 

5. 드디어 뿌리를 내리다.

 

남한에는 국제학교들도 있었고 화교학교들도 있었다. 남한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일단 국제학교에 찾아갔다. 외국에서 3년을 살거나 부모 중 한 명이 외국인이거나 외국에서 태어났거나 하면 국제학교 입학 조건이 충분하다.

욕심은 굴뚝같지만 등록금이 내 수준에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다. 사립학교라 입학금이 들지만 화교학교는 큰 부담이 되지 않아 그 학교 근처에 집을 잡아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를 주저 없이 아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떠날 결심을 하는데 큰 요인이었다. 그래서 나오자마자 화교 초등학교에 아들을 입학시켰고 아들은 처음부터 또래 애들과 이질감 없이 잘 어울려 놀았다.

일반 초등학교에 보냈더라면 왕따를 당해서 애가 얼마나 상처를 받으면서 살아야 할지 상상만 해도 속상했는데 내가 결정을 잘한 것 같다. 많은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낳은 자녀들을 데리고 남한에 왔는데 7살~12살 사이의 애들의 경우 시간이 갈수록 이미 알고 있는 중국어를 다 잊어버린다.

아들은 남한을 너무 좋아했다. 중국에서 맛볼 수 없었던 치킨과 피자, 자장면, 짬뽕도 아무 때나 배달시켜서 먹을 수 있었다. 아들은 특히 회를 너무 좋아했고 사우나도 좋아했다. 그리고 남한 말도 금방 배워서 애니메이션 영화도 즐겨봤다. 정말 이곳은 천국이었다.

 놀러 갈 데가 많고 차가 없어도 교통수단이 잘 되어 있었으며 음식문화는 세계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들이 영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남한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배우는데 아들은 처음 배우는 영어가 너무 생소하고 영어 선생의 한국어 설명이 다 이해가 되지 않아 영어를 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영어 학원에 보냈는데 한 달도 안 되어서 학원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00이가 집중을 전혀 안 해요. 설명을 하면 딴짓을 하고 있고 수업에 관심을 두지 않아요.”

학원에 보낸 지 2달 만에 시험지를 가지고 왔는데 점수가 36점이었다.

“왜 점수가 50점도 안 되니? 그렇게 영어 공부가 싫어? 그럼 영어학원에는 왜 가는 거야?”

“싫은데 엄마가 가라고 해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니, 더 할 말이 없었다. 엄마가 가라고 했으니 일단 가지만 배우기는 싫다는 거다. 나는 당장 영어학원을 그만두게 했다. 없는 돈을 써가며 배우기 싫은 영어학원에 보낼 필요가 있는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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