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수기-뿌리 뽑힌 나무(49)

 

(가운데)

“…우리는 모두 소름이 끼쳤다. 그는 사실을 알고 말한 것처럼 정확했기 때문이다. 오른쪽 집은 아들이 둘인데 하나는 농약을 먹고 자살하여 40대 중반에 목숨을 끊었고, 또 다른 아들도 몇 년 후에 자살했다. 왼쪽 집은 아들 둘이 학교 졸업한 후부터 도시에 나가서 지금은 꽤 높은 자리를 꿰차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아주 신통방통 하지 않는가? 나는 내 사주를 물어볼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지난 호에 이어)

낡은 오토바이 한 대에 4명이 타고 속력으로 달리는 와중에 나는 조금만 잘못하면 굴러 떨어질 것 같아서 온갖 무서운 상상이 다 떠올랐지만 무사히 공장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남편은 당장 낼 아침부터 일을 할 수 있었지만 나는 아이 유치원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공장 안에 기숙사가 있었는데 모두가 농촌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나는 여자들만 있는 방에 들어갔다. 작은 안방 크기의 여자 숙소에는 침대가 3층으로 다닥다닥 설치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20명 정도의 여공들이 한 방에서 잔다. 그들은 음력 설을 쇠고 이제 막 농촌에서 일하러 돌아왔다.

 

내가 제일 늦게 도착해서 3층 침대에 올라가서 잘 수밖에 없었는데 쇠로 만든 1인용 침대에 아이를 안쪽에 눕히고 내가 바깥쪽에 누웠는데 자다가 굴러 떨어질까 봐 무서워서 밤을 거의 새웠다. 거기에다 밤에 아이가 소리를 낸다고 시끄럽다며 모두가 눈총을 주었다.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날이 밝아 아침이 되어오자 나는 여기저기 길을 물어서 유치원을 찾아갔다. 그 어디에서도 4살짜리는 받지 않는다며 1년 있다가 다시 오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동네에서 일당을 주고 아이를 봐줄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시골과 달리 이곳은 엄청난 외국투자 기업들이 몰려들어와 급작스럽게 일어난 경제적 부흥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까짓 남의 아이나 돌보면서 용돈을 버는 건 코웃음 칠 일이었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찾아 헤매다가 아이 맡길 곳을 끝내 찾을 수 없었던 나는 결심했다. 1년만 기다리자! 5년을 참았는데 1년을 더 못 참겠는가?

 

우리가 떠날 때 가지고 있던 세뱃돈 52위안 중에 버스와 오토바이 비용으로 다 쓰고 나니 한 끼에 1~2원짜리 음식으로 며칠 끼니를 때워야 했던 우리에게는 겨우 나 혼자 돌아갈 버스비만 달랑 남았다. 남편이 기숙사에서 자며 먹는 것은 월급에서 공제하니 돈 쓸 일은 없다. 그곳에서 3일간 지내면서 학교, 유치원,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얼마나 돈을 벌 수가 있는지 등등 주변의 공업단지를 대충 파악한 나는 새로운 자신감이 생겼다.

 

얼마든지 해볼 만하다. 아이만 유치원에 맡길 수 있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 배짱 하나만으로 집을 떠날 때만 해도 사실 불안하고 불확실했던 앞날에 대한 그림이 희미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2. 아카시아 나무

 

1년 후를 기약하며 다시 시골로 돌아온 나는 봄철이 다가오자 농사 준비를 시작했다. 그곳에는 해마다 4월쯤에 동네마다 병아리 팔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때마다 나는 아무리 돈이 없어도 10마리 정도는 꼭 샀는데 대부분 밤에 삵이나 여우한테 잡혀가고 겨우 5~6마리만 생존한다. 그 해도 어김없이 병아리 장사꾼이 마을에 나타났는데 좀 특이했다.

 

마을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100년도 넘은 커다란 돌로 된 망이 있었는데 당나귀에 멍에를 메우고 빙빙 돌면서 쌀이나 옥수수, 말린 고구마 등을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를 내거나 두부를 만드는 콩을 갈거나 각종 방앗간 역할을 한다.

 

그런데다가 마을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 여기는 거의 동네 모임 장소로 통했고 여름에는 마실 나온 사람들이 밤새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그래서 누구 집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누구 집은 딸이 태어나고 누구 집 아들은 북경 가서 돈을 얼마나 벌어오고 등등 정말 온갖 동네 뉴스를 다 접할 수가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열댓 명의 아낙네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바로 병아리 장사꾼이 이곳에 멈춰 서서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병아리 사세요! 새끼 병아리 팔아요! 신품종 병아리, 쑥쑥 3개월 만에 어미 닭으로 크는 새 품종 병아리 팝니다! 새끼 병아리 10마리 이상 사게 되면 무료로 사주와 풍수를 봐줍니다!”

 

공짜로 사주까지 봐준다고 하니 순식간에 동네 아줌마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나는 신품종 병아리를 판다는 소리에 구경이나 한번 하려고 가다가 소리에 공짜로 사주를 봐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이곳 시골에서 사주 보러 갈 데도 없고 봐주는 사람도 없었는데 이건 정말 나한테 기회였다. 사주를 공짜로 봐준다고 하니 사람들은 돌팔이 점쟁이가 무슨 병아리 팔아 먹으려고 별 거짓말을 한다며 그를 조롱했다.

 

“여보시오, 사주를 얼마나 잘 보는지 한번 증명해 보시오. 바로 뒷집 풍수를 말해 줄 수 있겠소?”

 

방앗간을 중심으로 두 집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두 집 풍수에 대해서 말해 보라는 것이다.

 

“음! 왼쪽 집은 터가 아주 좋네요. 자녀들은 일찍이 도시로 가서 성공하겠구먼. 그들은 절대 농사 지을 사람들이 아니오.”

 

“그럼 바로 그 옆집은요?”

 

“오른쪽 이 집은 아주 터가 흉하구먼, 이 집 자녀들은 제명에 다 못살 것이오. 그들은 이미 저 세상에 갔네요, 혹시 자살을 한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우리는 모두 소름이 끼쳤다. 그는 사실을 알고 말한 것처럼 정확했기 때문이다. 오른쪽 집은 아들이 둘인데 하나는 농약을 먹고 자살하여 40대 중반에 목숨을 끊었고, 또 다른 아들도 몇 년 후에 자살했다. 왼쪽 집은 아들 둘이 학교 졸업한 후부터 도시에 나가서 지금은 꽤 높은 자리를 꿰차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아주 신통방통 하지 않는가? 나는 내 사주를 물어볼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내 머릿속에는 무조건 병아리를 사고 사주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꽉 찼다. 사실 바로 며칠 전에 다른 병아리 장사꾼이 왔다 가서 대부분의 집들은 병아리를 이미 다 사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주저 없이 10마리를 더 사기로 결심했다.

 

공짜로 사주와 풍수도 봐준다는데 병아리 10마리 돈이 문제인가? 팔자 사납게 온갖 고생을 여태 해왔는데 앞으로 언제면 잘 살게 될지, 또 언제 이 지긋지긋한 가난이 끝나갈지 난 정말 내 운명에 대해 알고 싶었다.

 

다들 호기심은 있었지만 누구도 더 사려고 하지 않는 병아리를 나는 성큼 다가가서 10마리 사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 가서 집 풍수와 내 앞날에 대한 사주를 잘 봐달라고 했다.

 

사기꾼 같은 병아리 장사꾼 말을 믿느냐는 말 없는 아낙네들의 시선을 뒤로 하고 그를 우리 집에 데리고 가니 그는 집이 풍수가 아주 좋은 위치에 있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풍수가 좋은 곳에 위치했다는데 우리는 아직 돈도 없고 일도 너무 안 풀려 고생만 하는데요? 말이 안 맞네요.” 나는 사실 많이 실망했다.

 

“대문 오른쪽에 토종 아카시아 나무를 심으세요. 그러면 앞으로 일이 점점 잘 될 거예요. 걱정 마세요. 집을 정말 좋은 자리에 지었어요. 너무 조급해 말아요.”

 

사실 그는 딱히 좋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잘살고 싶다고, 그렇게 될 수 있냐고 물어도 그는 두리뭉실하게 잘 될 거라고만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사실 나는 동네 아낙네들 말처럼 괜히 병아리 값만 날린 게 아닌지 많이 실망했다. 내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는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뜬금없이 아카시아 나무를 심으라니? 참 어이가 없다.

 

그가 말하는 아카시아 나무로 말할 것 같으면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시아와는 사실 조금 다르다. 같은 아카시아 품종이지만 키가 좀 작고 더 단단하며 5~6월에 노란 꽃이 피며 꽃 향기는 아카시아와 다를 바 없고 크는 속도가 아주 느리다.

 

특히 꽃은 약초로 귀하게 쓰여 해마다 이 꽃을 수집하러 약초 꾼들이 시장에 몰려오는데 단가가 꽤 비쌌다.

 

꽃이 활짝 피기 전에 따서 가져다 팔 때 최고 값을 받는데 어떻게 약에 쓰이는지는 모른다. 나는 그런 나무를 사실 북한이나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어 아카시아와 똑같은 그 나무의 이름을 물어보니 토종 아카시아라고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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