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 핏 공원(Christie Pit Park)의 폭동

 

1933년 8월16일, 현 코리아타운에 위치해 있는 크리스티 핏 공원에서 유태인으로 구성되어있는 “할볼드”(harbord)야구팀과 주로 이탈리아인으로 형성되어있는 "세인트 피터스" 팀과의 야구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경기가 끝나가고 있을 시점, 주로 영국계들로 구성된 젊은이들이 갈고리 십자장 모양의 "스와스티카"(Swastika) 기를 휘두르며 각목, 쇠 파이프, 벽돌 등으로 무장한 채 경기장에 난입하여 난동을 일으키게 된다. 그 난동은 폭동으로 번져 만 여명이 참가하게 되는 집단 폭동 거리 난투전으로 확대된다.

1933년, 당시 토론토시 인구는 82만명 가량이었고 그 중 80퍼센트가 백인들인 앵글로 캐나다인(Anglo Canadian)인이었다. 반-유태인 정서와 더불어 반-천주교(Anti-Catholic) 움직임이 있던 때였는데, 그 중심에는 나치성향인 일명 “스와스티카 클럽"이 있었다.

그 시점이 북미대륙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시작되던 시점으로 실업률이 35퍼센트까지 치솟고 있던 때였다. 당연히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불평할 대상이 필요하였고, 눈엣가시였던 유태인들이 희생양이 된 것이다. 이탈리아인과 우크라이나인 등 다른 민족의 이민자들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유태인들이 가장 큰 마이너리티 그룹이었다.

하지만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백인계 토론토인들에게는 이탈리아인을 포함한 유태인들은 2등 시민 이었다. 특히 유태인에 대한 노골적인 멸시가 있던 시대였다. 그 한 예로 온타리오 호수가 수영장에는 유태인들을 금지한다는 팻말이 있을 정도였다.

영국계 개신교(Anglo Saxon Protestants)와 친 나치계 주도에 의한 유태인 및 천주교인이 대부분인 이탈리아인에 대한 공격은 양측 많은 부상자를 내었으나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한다. 하나 그 난동은 당시 캐나다에 심각한 인종차별이 있었다는 산 증거였고, 그 당시 토론토 시장이었던 "윌리암스 스트와드"는 "스와스티카” 문장인 일명 나치기의 사용과 “인종 증오 스피치"(Hate speech)를 공식적으로 금지시켰다.

이 난동은 세간에 잊혀진 사건으로 남아 있었으나, 1987년 이 폭동에 관한 책이 출간 되면서 다시 주목을 끌게 되었다.

1933년은 독일의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반 유대인 정책을 선포하기 시작한 때였다. "스와스티카"는 그 당시 나치 히틀러 정권이 사용하던 가치이며 문장인데, 반드시 히틀러 추종자들만이 사용하는 심볼로만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현재도 극우성향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상정적인 표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 추종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난입 당시나, 작년 1월말 캐나다 서부 지역에서 시작된 프리덤 콘보이(Freedom Convoy)의 시위 때에도 어김없이 등장되었던 상징적인 단골 메뉴이다. (스와스티카의 본래 뜻은 행운 또는 복지를 나타내는 스바스티카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한다. 하늘을 통과하는 태양의 이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쓰였다 한다.)

지난 5월18일(목), 크리스티 핏 공원에선 8학년부터 10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크리스티 핏 공원의 난동"이라는 야외 연극이 상연 되었다. 이 야외연극에 스폰서 역할을 한 교육기관의 수장인 온주 교육장관 “스티븐 레체"에 의하면 일부 극우 세력의 증오 인종차별에 맞서 당시의 유대인들과 이탈리아인들은 당당히 맞서 투쟁 하였으며, 이를 거울삼아 모든 캐나다인은 인종차별에 결연히 대항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캐나다는 역사가 짧은 나라이다. 그러나 거대한 땅덩어리와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전세계를 위해 많은 공헌을 할 수 있는 나라이다. 이 나라가 1960년 중반부터 정식으로 이민을 받은 이후 많은 한국사람들도 정착하여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캐나다는 세계 유일이라 할 수 있는 모자이크 문화의 나라로 발전하며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캐나다 곳곳에서는, 특히 앨버타 등 서부지역에서는 미국의 트럼프 바람과 유사한 극우세력에 의한 "포퓰리즘”이 고개를 들어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려 한다. 프리덤 컨보이(Freedom Convoy)와 같은 극우세력의 저변에는 90년 전 크리스티 공원의 난동과 유사한 맥락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앞으로 진행되지만 뒤로 이해된다고 하였던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연된 그 연극이 지향하는 목적처럼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그 첫 번째 배워야 할 과제는 증오에 의한 인종차별의 항거이다. 그 길이 경제 균등과 빈부 차이의 조절, 노년연금, 건강보험, 교육비 지원 등 캐나다와 같은 사회보장제를 우선으로 하는 국가들이 초석으로 삼아 병행해나갈 길이다. (2023.5.22)

 

참고:1931년 캐나다 주요 도시 인구.

 토론토: 810,477명

 몬트리올:1,023,158명

 밴쿠버: 351,491명

 오타와: 175,98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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