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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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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 '더블린의 제임스 조이스

 

“위풍당당하게 뚱보 벅 멀리건은 거울과 면도를 십자로 엇갈리게 얹은 면도거품대접을 들고 나선형 층계 꼭대기에서 밖으로 나왔다. 노란 실내가운을 입고, 부드러운 아침바람에 허리띠는 풀린 채, 그는 면도대접을 높이 쳐들고 읊조리기 시작했다. 나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가리로다. ”

 이것은 20세기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Ulysses)'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런던 유스턴 역에서 기차를 탔다. 홀리헤드 항구에 내려 아일랜드로 가는 배 ‘B(ritish)&I(reland)’에 올랐다. 풍랑에 3시간 반을 시달리며 닿은 곳이 더블린. 아일랜드의 수도이자 항구도시다.

 

 

제임스조이스박물관이 된 마텔로 탑에 들어가 나선형 층계를 한참 빙빙 돌아 올라가 밖으로 나오면 둥근 포대가 나타난다. 방금 건너 온 넓은 해협의 일렁이는 파도를 내려다보며, 벅 멀리건이 가짜 신부 노릇을 하며 읊조리던 풍자적인 모습을 떠올린다.

 더블린 거리엔 아직도 스산한 비가 내리고 있다. 우리 부부는 비를 맞으며 이 골목 저 골목 조이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아담한 칼튼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 여섯 시, 맑게 갠 하늘 위로 꿈속인 듯 성당의 종소리가 울렸다. 알고 보니 어젯밤 우리가 무작정 걷다가 들어선 이 집이 조이스가 즐겨 산책하던 가디너 스트릿에 있는 것이다. 이 길은 중앙우체국이 있는 오코넬 중심가에서 한 불록 뒤에 있다. 종소리가 들려온 교회는 바로 율리시즈의 주인공인 블룸의 집 근처에 있는 세인트조지 성당이었다.
 조이스가, 더블린이라는 도시가 이 지상에서 사라져도 자신의 율리시즈(마치 더블린 지도 같은)를 보고 다시 재건할 수 있다고 말했듯이, 이 도시는 온통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한 소설가의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더블린에서 태어난 제임스 조이스(1882~1932)는 청년기에 ‘Chamber Music’이라는 아름다운 노래가 담긴 시집을 냈고, 입센의 영향을 받은 희곡집 ‘Exiles’가 있다. 그리고 ‘Dubliners’ ‘A Portrait of the Artist as Young Man’ ‘Ulysses’ ‘Finnegan's Wake’ 등 네 편의 소설을 썼다. ‘Dubliners’는 그의 고향인 더블린에서 출간을 거절당하고 영국에서 출간하는 비애를 맛보며 더블린을 떠나는 계기가 된다. 그는 이탈리아, 스위스, 파리 등지에서 반생을 보내며 각국의 문체에 통달한다.

 

 

특히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Young Man)’과 ‘율리시즈(Ulysses)’ 등의 작품 속에 심리묘사의 수법으로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을 쓴 것이 유명하다. 이 ‘의식의 흐름’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 인간의 무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마음속에 흐르는 이야기를 쓰는 수법이다.

호머가 쓴 ‘오디세우스’의 십 년과 ‘율리시즈’에 나오는 더블린의 하루를 몽타주한 이야기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예술작품을 만들어낸 것. 십여 개의 언어와 새로운 문체의 시도, 신화와 상징 등 외면에 나타난 사건보다 영혼이 감지하는 내면의 아리송한 이야기들을 엮은 난해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율리시즈 서문에 쓴 것처럼 율리시즈엔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가 감추어져 있어, 앞으로 수 세기 동안 대학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기에 바쁘리라. 이것이 내 자신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장담하는 그의 짓궂은 외 알 안경이 떠오른다.
 율리시스 제1부에 크리스토모스(황금의 입, 그리스 웅변가이며 신부인 'St. Christomos'를 상징)라는 단속문체(ellipsis style)로 시작하는 의식의 거대한 흐름은 마지막 제18부 끝의 낱말 ‘yes'로 끝난다. 

 

 

이튿날 비가 그치자 짙푸른 수평선이 보이는 바닷가에 더블린 시의원 윌러비가 조이스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세운 나무와 율리시즈 기념비 앞을 지나 노란 다트 레일을 타고 더블린 시내로 다시 돌아왔다. 여러 번의 전화 끝에 제임스조이스문화센터의 켄 모나함(Ken Monagham) 원장을 만났다.

조이스 누나의 아들인 그는 우리를 “처음 만나는 한국인”이라며 반겼다. 그는 이 센터의 내력과 조이스에 관한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더블린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그 열기가 대단해지자, 제임스조이스센터를 세워야겠다는 열성을 가진 친지들이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에게 원장을 맡긴 것.

그때 데니스 마기니씨가 이 3층 건물을 센터로 희사했다. 그는 율리시즈에 나오는 멋쟁이 댄스교사인 데니스 마기니와 같은 인물이다. 이 집은 원래 식당이었고 데니스는 1층 무도회장에서 밴드마스터로 있을 때 조이스와 친한 사이였다는 것. 자기 자신이 친구의 걸작품 속에 등장한 보상이기도 하겠지만, 그는 조이스와 함께 영원히 그의 이름을 남기는 멋있는 사람이다.
 이 집은 250년 된 낡은 집이어서 당장에 개축해야 하며 센터의 면모를 갖추려면 100만 파운드나 든다고 한다. E.C.커뮤니티의 한 독지가가 이미 50만 파운드를 내기로 약속했으며 나머지는 조이스와 관련된 친지들이 모금에 나섰다고 한다.

남길 역사적 안목이 있는 멋쟁이 친구임에 틀림이 없다. 삐거덕 거리는 층계가 불안해 보이는 250년 된 이 고옥은 당장 개축 공사에 들어가며, E.C.Community의 한 독지가를 비롯해서 죠이스와 관련된 친지들이 모금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개축이 완성 되는 내년 6월 17일 Blooms Day(Ulysses의 주인공 Bloom의 이름을 따서 해마다 이날을 기념해왔다.)에 개원축제와 James Joyce 탄일백주년 기념행사를 연다면서 그때 우리도 꼭 참석해 달라고 말했다.

건축가인 나의 남편과 데니스가 건물의 구석구석을 조사하듯 살피면서 서로 의견을 나누는 동안 나는 필요한 자료들을 사진으로 담고 있었다. 서울에서 가지고 간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화” 한국번역본(한국의James Joyce학회장 김종건 교수 옮김)을 건네주자 깜짝 놀라면서 고마워 했고, 번역문학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조이스의 서한집에 관심이 있고, 그것을 번역하고 싶다고 했더니, 기회가 생기면 알리겠다고 하면서 우선 구스타프 융의 편지를 보여주었다.


 

 

융은 율리시즈에 관한 논문을 학회지에 발표하고, 조이스에게 율리시즈에 대한 의견을 편지로 보냈다. 율리시즈가 심리학적인 세계를 보여준 데 대한 인사, 율리시즈를 읽고 마음에 새기는 데 3년이 걸렸다는 이야기, 그리고 “율리시즈를 읽으며 나는 얼마나 진저리를 쳤으며, 얼마나 투덜거렸으며, 얼마나 찬탄해 마지않았는지 모릅니다. 40페이지나 되는 쉼표 없는 마지막 장은, 참으로 진실한 심리학적 열매를 열게 하는 문자의 행렬이었고요. 마귀할멈도 여성의 심리를 그렇게 잘 알 수는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도 몰랐으니까요."

 나는 모나함 원장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제임스 조이스가 ‘프로이디언(Freudian)’인가 ‘융기언(Jungian)’인가? 조이스는 ‘Jungian’이었다고 그는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이성과 합리주의 편에서 무의식의 충동을 위험시했던 프로이드 쪽보다는 그 무의식을 존중하여 자기실현의 역사로 끌어내고, 창조의 기능을 발휘하여 종교적인 심성과 원형을 찾는 개성화 과정을 돕는 융 쪽을 더 좋아하는 듯 했다. 나도 융 쪽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조이스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이제 더블린 거리는 나의 무의식이 실현되고, 의식이 합성되어 가는 낯설지 않고 더욱 다정한 거리가 되었다. 모든 이의 사랑을 받으며 더블린 도심을 흐르는 리피강 물처럼, 내 마음속 깊이 조이스와 그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정이 흘렀다.  

특히 유명한 아버지를 둔 조이스의 딸이 유명한 애인 극작가 새뮤얼 베켓(Samuel Becket)에게 구혼을 거절당하자, 정서불안과 마음의 병을 얻어 사십 년이나 런던의 한 정신병동에서 말년을 지낸 일, 고모인 모나함씨의 어머니와 서신 왕래를 하며 고독을 달랬다는 이야기에 내 마음마저 아파왔다. 조이스의 아들은 파리에서 관광사업을 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제임스 조이스 기념박물관이 된 마텔로 탑은 율리시즈의 산실이다. 조이스는 어렸을 때 이 근처의 마텔로 테라스 1번지에 살았다. 그의 집 맞은편 험한 바위 위에 우뚝 서 있는 성채 같은 마텔로 탑이 그의 어린 마음에 오디세우스 장군 같은 모험심을 키워주어 현대적인 신화의 인물인 율리시즈를 낳았는지도 모른다.

 율리시즈는 역사, 신학, 철학, 과학, 문학, 미술을 합성해 놓은 20세기의 해설자다. 오디세우스 장군의 통찰력을 지팡이 삼아 인간의 내면의 흐름을 따라 여행한 순례자의 기록이기도 하다.
 조이스는 실제로 1904년 9월에 이 탑을 빌려 쓰고 있던 친구 올리버 고가티(Oliver Gogarty)의 초대를 받아 이곳에 머문 적이 있다. 고가티는 작품 제1부에 나오는 벅 멀리건 이며 스티븐 데달러스는 조이스의 대역이다. 사도시대의 순교자 스테반의 이름을 붙인 것은 자신이 더블린 시대의 순교자라는 뜻이리라. 율리시즈는 1904년 6월16일 하루 동안에 일어나는 이야기다.

더블린 사람들은 해마다 이날을 주인공 블룸의 이름을 따서 ‘Bloomsday’라고 부르며 블룸이 걸어간 길을 따라 행진하며 축제를 벌인다. ‘J&J산업’이나 ‘Bloomsday’ 가게가 날로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맑았던 하늘이 다시 비를 뿌린다. 우리는 제임스 조이스 라운지(James Joyce Lounge)에 들어가 이 해협을 다시 건네줄 B&I호를 기다리며 따끈하게 콕 쏘는 아이리시 커피를 두 잔씩이나 마셨다. 율리시즈가 사랑을 가늠해 보며 읊었던 사랑의 독백이 커피 향처럼 스민다.
 “사랑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그러나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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