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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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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에로스와 프시케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을 쓸 무렵부터 루가노의 몬타뇰에 눌러앉아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40세 중반에 부인 마리가 정신병을 앓게 돼 가정파탄이 오고 그 자신도 정신병을 앓게 된다.

 스위스 심리학자 융의 제자인 랑 박사에게서 심리치료의 하나인 미술치료(art therapy)를 받으며 자신의 기쁨과 안정을 위해 만년까지 몇 천 장의 수채화를 그린다. 그 틈틈이 '싯다르타'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유리알유희' 등의 주옥같은 작품을 빚어냈다.

 루가노 호텔은 헤세가 그린 '포도나무가 있는 정원계단 위의 망루'와 닮은꼴. 거기서 50차 국제펜대회가 열렸다. 행사에 묶여 그가 시화를 남겼던 몬타뇰엔 가볼 기회가 없었다. 대회가 끝나고 이틀 동안 '펜의 여행'이 있어서 엥거딘 골짜기에 있는 니체의 집과 코모호반의 샬롯데 빌라를 구경할 수 있었다. 

 코모(Como)를 향해가는 도중 텔레지오에 있는 고딕양식의 옛날교회와 베스타궁에 들어가 15세기의 벽화가 가득 차있는 미술관을 둘러보았다. 돌로 쌓아올린 베스타궁 외벽을 거닐 때 불가리아 대표 소피아에게 서울 덕수궁 돌담길의 낭만을 들려주기도 했다. 

베스타궁을 지키는 깔끔하게 생긴 노부인과 우리의 인도자인 스위스 펜회장이 다정한 작별의 키스를 나누는 것이 창밖으로 눈에 띄어 미소를 보내고 우리는 마지막 코스인 코모의 샬롯데 빌라를 향했다.

 코모는 스위스의 루가노에서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로 가야 한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밀라노가 나온다. 코모는 밀라노처럼 예술과 산업이 함께 숨쉬는 곳. 탈리아의 실크공장이 이곳에 모여 있고 실크와 수제날염기술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산업도시임에도 공장에서 내뿜는 공해를 찾아볼 수 없게 호수가 맑다. 지금은 밀라노의 주민들이 주말에 찾는 별장지대가 되었지만 옛날엔 이곳의 주택이 거의 별장들이어서 집이나 호텔 벽엔 VILLA(빌라)란 글자가 아직도 남아있다. 

 우리가 찾아간 빌라 샬롯데(Villa Charlotte. 1843년 건축. ‘빌라 칼롯데’라고도 함)는 그중 가장 큰 별장이다. '코모호의 진주라는 아름다운 벨라지오 마을이 앞에 펼쳐있고 멀리 알프스산의 롬바르도 꼭대기에 백운석 대리석이 나는 그리그나스산이 한눈에 보인다. 호두나무와 올리브나무가 울타리처럼 별장을 둘러싸고 있다. 

 이 별장은 원래 비아 레지아라는 좁고 긴 오솔길에 위치해 사냥꾼과 낚시꾼만이 찾는 카데나비아 여관이었다. 1843년에 알베르또의 러시아 출신 왕비가 낫사우의 마리안느 공주에게, 공주는 그의 딸 샬롯데가 색스마이닝건의 왕자와 결혼할 때 별장으로 고쳐 선물로 준 이래 샬롯데 별장이 된 것. 

 정원엔 체르치 시대 모양을 낸 분수와 집안으로 들어가는 지그재그형의 높은 층계를 따라 덩굴진 들장미가 우리를 반겼다. 뒤뜰엔 미라모양의 코르크나무, 상록수, 바나나, 재스민티나무, 레몬나무들, 서늘한 바람소리를 내는 대나무숲 사이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연분홍 진달래, 진분홍 철쭉, 하얀 철쭉꽃들이 마치 지리산의 철쭉제에 온 것 같다. 이 철쭉도 150여 종이란다.

 1927년경 별장지 시절이 끝나고 지금은 빌라 칼롯데 재단이 생겨 많은 예술가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고 식물학자들의 연구자료를 풍성하게 제공해주고 있다.

 

 미술관이 된 별장 안채엔 헤이즈(Heize)의 유화•조각작품들이 진열돼 있다. 이 별장의 전성기인 쏘마리바스 시절에 연회에 초대받은 손님들이 답례로 들고온 미술품들이란다.

 이탈리아 화풍의 유명한 그림들보다 더 내 눈을 끈 것은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 1757~1822)의 흰 대리석 조각작품 ‘에로스와 프시케(Eros and Psyche)'!  

에로스의 품에 안긴 프시케가 두 팔을 들어올려 에로스의 머리 위에 살짝 얹은 모습은 마르쿠제가 말한 '문명사회를 위해 펼치는 억압받는 에로스와 미학의 개념을 떠나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그 영원함’이었다. 에로스가 프시케를 품에 안은 순간 '인간의 영혼과' 신의 사랑이 결합하여 그들은 결코 다시 헤어질 수 없었기에.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신의 딸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에 해당)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이다. 항상 케스토그라는 띠를 허리에 두르고 다녔는데 그것은 연애감정을 일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 여신과 아레스 사이에 낳은 아들이 에로스다. 에로스는 프시케를 사랑하지만 어머니의 엄명으로 어둠속에 갇혀 살았으므로 억압된 환경과 어둠속에서만 그녀를 바라볼 운명이었다. 

프시케는 램프를 들고 에로스가 잠자는 방에 들어가 그의 얼굴을 보려고 불을 켠다. 그 순간 프시케는 목소리만 듣던 에로스의 남성미에 놀라고 사랑에 빠진다. 

램프의 기름 한 방울이 에로스의 이마 위에 떨어지자 그는 홀연 자취를 감추지만 프시케가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며 끝까지 쫓아가 둘의 사랑이 성취된다는 이야기다.

 프시케는 영혼과 정신의 사랑을 상징하며 인격화된 미의 상징이다. 육체는 프시케를 가두는 무덤이듯 감옥인 육체가 멸해서 없어질 때 진정한 정신의 해방이 온다는 그리스의 이원론적 영혼관이 이때 탄생한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도 에로스와 프시케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있고 많은 작가들이 이 주제로 소설을 쓰기도 했다. 에로스를 억압한 것은 실제로 그의 어머니가 며느리인 프시케를 질투한 데서 온 감정이었다. 이 고부간의 갈등은 동양인의 풍습에도 낯설지 않다.

 너무나 희어서 창백하기조차 한 이 ‘에로스와 프시케’를 나는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프시케와 입맞춤으로써 새로운 정신세계가 펼쳐지고 그 세계로 날아가는 에로스! 일치와 결합을 열망하는 저 환상적인 모습! 별장 밖으로 나가 언덕배기에 서서 멀리 어둑해진 코모호수를 내려다보면서 인간의 정신과 영혼의 숨결, 그 갈망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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