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nyoon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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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사랑의 결심표, 봄의 크루즈

 

 

나는 배를 타기만 하면 요나 생각이 난다. 작은 보트이든 대양을 가로지르는 유람선이든 폭풍을 만나 배가 뒤집히고 요나처럼 바다의 물고기 뱃속에 들어 앉게 되는 건 아닌가 하고. 선지자 요나가, 하느님의 니느웨 이방선교 명령에, ‘내가 왜?’하면서 니느웨와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달아나다가, 하느님의 진노로 폭풍이 그 배에 몰아치고, 요나는 바다의 고래 뱃속에서 어둔 밤 사흘을 지낸 다음 회개하고 살아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오웬 사운드에 살 때, 우리집 3층 창밖에 한 길 건너 보이는 죠지안 베이 나루터엔 겨우내 회색 어름판 위에서 잠 자다가, 4월 그믐날 아침에, 요란하게 기지개를 켜며 봄의 크루즈를 떠나는 하얀 큰 배가 있었다. 우리 부부는 이곳에 3년 동안 살면서 그 배를 꼭 타 보고 싶었다. 첫 해엔 몰라서, 두 번 째 해엔 한국방문으로 못 탔으나, 이번엔 남편이 내 생일을 축하하는 ‘사랑의 결심표’로 그 비싼 spring cruse 표를 한달 전부터 사놓고 기다렸다.

행복한 카누, Ms Chi-Cheemaun 이라는 귀여운 오지브웨이 인디안 이름이 붙은 이 배는, 죠지안베이의 물살을 가르기 시작한 1930년엔 조그만 통나무배였다. 이제는 5대 호수에서 가장 큰 페리로 성장했다. 해마다 5월1일부터 추수감사절까지 부루스반도 북쪽 끝의 토버모리에서 매너툴린 섬 남쪽 끝에 있는 사우드 베이마우즈로 출근하는 사람들과 자동차, 그리고 미국 디트로이드에서 오웬사운드를 항해하는 관광객들을 실어 나른다. 오웬사운드 운송회사가 이끄는 7500톤의 이 큰 배엔 6백 여명의 승객과 1백 여대의 자동차를 함께 실어준다.

사월 그믐 날, spring cruse 에 참가한 승객들은, 비록 오색 테잎을 날리진 않아도 소풍가는 학생들마냥 부푼 가슴을 안고 배에 오른다. 지금은 오웬사운드 미술관이 된 옛날 기차 정거장 앞 부두에서 떠나 나이아가라 폭포수가 흘러내려 병풍처럼 둘러쌓인 단층애를 끼고 토버모리를 향해 5시간 항해한 다음 내려준다. 그곳에 학교버스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오웬사운드로 다시 데려다 주는 하룻배 나들이다.

갑판에 있는 작은 방에, 옛날 선장 모자를 쓴 부부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들은 가톨릭교회의 하루 봉사자들로 커피와 와인, 그리고 그날의 인기종목인 복권을 파는 사람들이다. 복권 당첨자들이 차지할 선물들을 문 앞에 잔뜩 쌓아놓고 시선을 끈다. 그 수입은 이 배를 탄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 돕기 자선모금에 참여하므로써 이 배를 더욱 잊을 수 없는 캐나다 명물로 키워준다는 것.

 

겨우내 창밖으로 내다 본 이 배를 타고 우리 집 앞을 지날 때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뾰족탑 교회와 숲이 있는 언덕배기 아래 우리 집 빨간 대문과 작은 창문 세 개를 바라보며, 긴 겨울이 가고 드디어 봄비에 젖어드는 흥겨움이 일었다.

나이아가라에서 백 리 길이 넘는 부루스 트레일이 죠지안 베이와 만나는 곳에 빼어난 모습으로 높게 낮게 길게 누워있는 나이아가라 절벽. 빙하기 이전부터 나이아가라 강에서 흘러와 화강암과 이판암으로 층층이 쌓인 이 자연의 조각작품이 환상적으로 다가오면, 사람들이 모두 갑판으로 몰려나와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 기암절벽 아래 물가엔 천 년이 넘는다는 레바논의 하얀 삼나무가 생명의 나무로 자라고 있고, 높은 절벽 위엔 캐나다 7 아티스트의 한 사람인 톰 톰슨이 넓은 붓으로 휘갈겨 그린듯한 짙푸른 전나무들이 강물을 향해 목메인 부르짖음으로 바람 속에 서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생태보호지역 공원이 된 나이아가라 단층애 끝에 허허로운 밤 물길을 비춰주는 등대가 보인다. 밤길만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어두운 길을 지날 때도 밝게 비춰주겠다는 듯이 높이 지은 붉은 전망대가 아름다웠다. 외로운 등대지기의 노래가 내 입에서 흘러나오고, 이윽고 토버모리의 유명한 Flower Pot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이아가라 단층이 빚어낸 자연의 큰 바위조각상 같은Flower Pot은, 마치 “전능하신 우리 주님 얼마나 크시냐. 그 슬기 형용할 길 없구나.”노래 하는듯. 귓바퀴엔 귀한 종려수 가지를 꽂고 명상에 잠겨 있는데, 화분Flower pot이란 속물이름이 웬 말인가?

 

명상에 잠긴 이 바위조각상을 보자 내가 만든 나이아가라 시편달력이 생각났다. 그 달력의 5월 사진이 바로 이 생각에 잠긴 바위조각상, Flower Pot이기 때문이다. 이 멋지고 행복한 카누의 선장님에게 선물하려고 ‘나이아가라 시편달력’을 한 벌 가지고 왔기에 선장을 찾았다.

세 번이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 뛰어다닌 다음에야 그 아담스 선장을 붙잡을 수 있었다. 우리와 함께 사진도 찍고, 방금 지나온 Flower Pot이 든 달력을 선물하자 아주 좋아한다.

우리는 코리안 캐나디언이라고 말하자 다시 놀라며, 하노버에 있는 자기 옆집에 가구점을 하는 한국인이 산다고 해서, 언론인 출신인 위재광씨 아니냐고 하니까 더 반가워한다. 겨울이면 서로 눈도 치워주는 아주 친한 사이라고 한다. 우리는 아담스 선장이 두 번째 만나는 한국인들인 셈이다. 그의 아버지도 오대양 항해선의 선장이었고, 삼촌은 우리가 조금 전에 지나 온 이 지역의 등대지기였다고 자랑한다.

두 전속 선장의 한 사람인 그는 항해가 없는 겨울엔 북미지역에 잘 알려진 오웬사운드 Georgian College에서 해양과학, 레이다, 선박조정 등을 가르치는 교수로 일한다.

하얀 큰 배가 마지막 항로를 향해 S자로 멋지게 접어들자 부두에선 생선냄새 대신 향긋한 전나무 냄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는 듯 가까운 숲에서 풍겨온다. 종점인 토버모리 나루터에 이르자 다섯 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 지낸 Chi-cheemaun 의 뱃머리가 입을 좍 벌리고 우리들을 밀어낸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데 아쉬운 마음으로 뒤돌아본 Chi-cheemaun은 검은 고래가 아닌 하얀 상어가 거대한 입을 벌려 우리를 뭍으로 토해내고 있는 듯했다. 하긴 요나를 삼킨 바다의 물고기가 검은 고래가 아니라 하얀 백상어리라고 주장하는 생물학자도 있으니까…우리도 요나처럼 저 하얀 상어 같은 뱃속에서 우리 인생의 여정을 돌아보고 먼 수평선이 하늘과 만나는 무한대의 사랑을 다시 맛보게 해준 사랑의 크루즈에서, 오웬사운드로 돌아가는 버스에 가쁜한 마음으로 올라탔다.

다음엔 이 토버모리에서 정기 운행하는 Ms Chi-Cheemaun을 타고, 마니툴린에도 가보아야지. 8월 시빅 공휴일에 열리는 원주민 예술제, 파우 와우Pow-wow에서 원주민 소리꾼과 춤꾼들과 소고를 치며 한마당 끼여보리라. 그리고 토버모리의 Flower Pot 섬에 내려, 나이아가라 단층 벼랑에 새겨진 그림들을 다시 한번 잘 드려다 보고싶다. 그곳엔 북미 인디언 원주민들이 때도 없이 우렛소리와 벼락치는 소리를 지르는 두려운 나이아가라 폭포를 잠재운 태고적 비밀의식秘密儀式 그림들이 수두룩할 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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