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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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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폴리캅 주교의 서머나교회

 

 

옛 도시 스미르나. 지금은 이즈미르(Izmir)라고 하는 이 도시는 터키에서 이스탄불과 앙카라에 이어 세 번째로 큰 해안도시이다. 묵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7교회 중에 유일하게 남아있다. 세계적인 서사시인 호머(Homer)의 고향이며, 그의 작품 오디세이에 나오는 트로이의 목마가 있는 곳. 

또한 목화밭이 즐비하고, 길 양편에 늘어선 큰 야자나무 밑으로 봄이면 오렌지꽃 향기가 바람에 날려 나그네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 마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두 연인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 감미로운 거리이다. 

 그 길에서 도심으로 들어서면 오페라의 장면이 바뀌 듯, 순교자 성 폴리캅 기념 서머나 교회가 큰 나무그늘 아래 조용하게 서있는 것이 눈에 띈다. 

사도요한이 빌라델비아 교회와 더불어 칭찬한 소아시아의 두 번째 교회이다. 유대인 개종자들이 대부분이었던 서머나교회는 에베소에서 온 한 전도자가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폴리캅은 이 교회의 초기회원이며 사도요한의 수제자로서 AD 115년부터 156년 사이에 서머나의 주교로 활약한다. 

기독교 박해가 심해지면서 총독 스타티우스 쿠아트라투스가 주관하는 축제 중에 빌라델비아에서 온 11명의 그리스도인이 처형 되었는데, 이를 말리던 폴리캅 주교도 체포되어 군중 앞에 끌려온다. 폴리캅을 잘 알고 있고 어려서부터 친구였던 총독이 그의 기독교 신앙을 부인하면 풀어주겠다고 말했으나 폴리캅 주교는 이를 거절하고 단호하게 이렇게 말한다. “지난 86년 동안 나는 하느님을 섬겼으며,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버린 일이 없었소.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해주신 나의 왕 되신 하느님을 모독할 수가 있겠소?” 

 

이 교회에 들어서면 교회 내부가 성화로 도배한 듯 찬란한 그림들에 눈이 부시다. 성모의 영보 장면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그린 성화들. 그리고 폴리캅 주교의 행적과 그가 순교 후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있는 그림을 그려놓았다. 

이 성화들은 19세기 말 교회를 다시 보수할 때 프랑스 화가 레이몽 페레가 그린 것이다. 그 중에도 폴리캅 주교의 순교장면은 너무나 가슴 아프다. 그는 스테반처럼 끝까지 주님을 증거하며 화형 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타오르는 장작불 위에서도 죽지 않은 그를 칼로 목을 베었을 때에야 불에 타고 만다. 불길 속에 서있는 그에게 칼까지 들이대는 망나니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자기를 맞아 주실 하늘나라를 그리듯이 서있는 모습. 

 

 

그 망나니 뒤에 폴리캅 다음의 순교자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자신인 페레라는 말을 듣고 우리 일행의 입에선 신음 같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지진이 가끔 오는 탓인지 아니면 실내 장식의 무게 때문인지 계속해서 보수 중인 듯 모든 아치마다 가롯대를 질러 놓아 사진 찍기가 불편했다. 폴리캅 주교는 순교자로서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복음의 전통과 순수성을 정확하게 전달한 교회 지도자였다. 

“네가 장차 당할 고통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라. 이제 악마가 너희를 시험하기 위하여 너희 중 몇 사람을 감옥에 가두려하고 있다…그러나 너는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월계관을 너에게 씌워주겠다…승리하는 자는 결코 두 번째 죽음의 화를 입지 않을 것이라(묵시록 2:8)”고 서머나 교회에 보낸 사도요한의 이 묵시편지보다 약 60년이 지난 다음, 폴리캅은 ‘생명의 월계관’을 쓰게 된다. 

 

 

우리 일행은 승리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름다운 월계관을 쓰고, ‘두 번째의 죽음’을 당하지 않게 된 폴리캅 주교의 숭고한 영혼을 위해 기도한 다음, 세 번째 묵시의 교회인 버가모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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