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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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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밤의 요단강과 대낮의 사해

윤경남

 

 

 요단강을 생각하면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함께 하셨던 일과 세례식에 쓰이는 맑은 물이 떠오른다. 또한 묵시록에 나오는 '생명의 강'도 이 요단강을 연상시킨다. 요단강의 강둑에 앉아서 그 생명의 강가에 늘어서 있는 '생명의 나무들'을 찾아보리라는 계획까지 세웠었는데 그 계획은 빗나갔다. 갈릴리에서 늦게 떠난 데다 웨스트뱅크의 검문소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정규도로를 폐쇄하고 군사도로만 이용하게 했기 때문이다. 

 일반차량은 하나도 안 보이고 우리가 탄 차와 그 뒤를 따르는 큰 군용 트럭들만 함께 달렸다. 그것도 요르단과 국경을 이루는 철조망을 왼편에 두고, 마치 일선 취재하러 나온 신문기자처럼 스릴있게 달리다가 요단강 입구의 알렌비 다리에 내려서야 한숨을 돌렸다. 후세인 왕의 다리라고도 하는 이 다리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과 예루살렘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이다.

 

 

 아무튼 이곳도 요단강임에 틀림이 없었다. 다리 근처에 다 부서져가는 조그만 기념성당이 있는데 인적이 없이 깜깜하여 들어갈 수 없었다. 간신히 철조망 너머로 어두운 요단강을 내려다보았다. 맑은 샘 같은 요단강 물은 간 곳이 없고, 진흙탕만 아니면 다행일 정도로 짙푸른 강물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나마 가로등이 강물 위에 비치면서 강가의 버드나무 줄기가 강물 위로 늘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와 외딴 길에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요단강 가의 이 버드나무(Willows of Brook)와 위성류(Tamarisk)가 요단강 물줄기에 그 뿌리를 내리고,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지금도 풍성한 수확을 감사하는 성막축제 때 이스라엘 민족은 '네 가지 식물인 훌륭한 과일과 종려나무 가지, 무성한 나뭇가지와 개울 버드나무를 꺾어 들고(레위기23:40)' 예루살렘 서편 벽을 향해 행진한다. 축제 때 이 가지를 들고 있다가 기도할 때는 높이 들고 흔든다. 시냇가의 버드나무는 종려수와 함께 신성한 나무로 여긴다. 어두운 강가에서도 기름한 버들잎이 파랗게 빛을 내어 적막감마저 들었다.

 

 

바빌론으로 끌려간 한 히브리 시인의 노래를 베르디가 작곡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눈물을 흘리는 듯 흐느적이는 버들잎에 실려 들려오는 듯 했다. 바빌론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네.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우리의 수금 걸어 놓고서. 우리를 잡아온 그 사람들이 그곳에서 노래하라 청하였지만, 우리를 끌어온 그 사람들이 기뻐하라고 졸라대면서 '한 가락 시온 노래 불러라'고 하였지만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야훼의 노래를 부르랴! (시편137) 

 풀피리를 불만큼만 붙어있는 버들잎 가지이긴 했지만,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아름답고 소중하기에 이 어두운 요단 강물을 내려다보는 일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다음날 가본 환하고 새파란 사해바다와는 아주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사해는 갈릴리에서 요단강으로 흘러들어 오는 물의 종착점인데도 물은 불지 않는다.


  

 

마치 잔잔한 바닷가 피서지 같다. 바다 수면보다 낮은 사해, 계속 증발되어 보통 바다보다 염도가 7배 높아 소금 덩어리가 솜구름처럼 엉켜있는 신비로운 바다이다. 물고기는 살지 못해도 사람들의 피부병을 낫게 해주는 이 바다에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수영복만 입고 들어가면 둥둥 뜬다. 젊은 연인들이 해변처럼 바다위에 누워서 노는 모습을 한가롭게 봤다. 멀리 하얀 소금 기둥들이 파도위의 물보라처럼 눈이 부시다. 

 이렇게 환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사해바다가 끝나는 곳에 이르자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지옥을 연상시키는 유황냄새였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던 소돔이 그들의 죄로 인해 하느님의 벌을 받아 유황불에 타 버릴 때 의인 롯은 그의 아내와 함께 소돔을 빠져나왔다. 

 그 때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고 한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타는 소돔을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곳. 그 곳에 긴 겉옷을 걸쳐 입은 한 여인이 뒤돌아보면서도 슬픔과 연민에 쌓여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다. 실은 비슷한 소금기둥이 많았지만 언덕받이 끝에 롯의 아내와 아주 비슷해 보이는 하느님의 조각작품을 찾을 수 있었다. 

 롯의 아내가 돌아다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두고온 보석들일까? 친구들일까? 결국은 모두 없어질 것들에 미련을 둔 여인이 더 중요한 것을 놓친 벌을 지금까지 그곳에 서고 있었다. 사해에 함유된 유황과 염화 등의 광물질은 소돔의 유황불 심판 때 흘러들어 온 것이라고 하는데 그 유황성분은 지진을 예고하는 화약고 같아서 이 아름다운 사해가 언제 소돔같이 유황불의 비를 터뜨릴지는 하느님만이 아시리라.
 


어두운 요단강에서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샘을, 환한 사해 끝에서는 인간의 '죄와 벌'을 연상시키는 소금기둥과 유황 냄새를 맡게 된 어제와 오늘의 대조적인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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