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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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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가나의 혼인잔치와 포도나무

 

나사렛 마을에서 20리가 넘는 가나라는 마을에 혼인잔치가 열렸다. 그 잔치 자리에 어머니 마리아와 아들 예수도 초대받아 함께 그 곳에 머문다. 그 당시 혼인잔치는 온 동네가 일주일을 두고 열리는 축제이기도 하다. 잔치가 무르익어 갈 무렵, 마리아는 친척집 잔치에 아무래도 포도주가 동이 날 것 같다는 걱정을 하며 큰 포도주 항아리를 들여다본다. 포도주가 거의 바닥이 났다. 그는 아들 예수 옆으로 다가와 속삭인다.

 "얘야,이 잔치 집에 포도주가 다 떨어져가는구나." 그러자 예수는 어머니 귀에 대고 가만히 말한다. "어머니,그것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시나요? 어머니, 아직 저의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마리아는 더욱 자신을 얻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하인들에게 이른다. "얘들아, 예수가 시키는 대로만 하거라(요한복음 2:1-11)" 이것은 예수의 공생애에서 이적의 서막이 열리는 장면이다. 

 새 포도주 항아리를 받아든 잔칫집 손님들은 주인에게 감탄하며 말한다. "누구든지 좋은 포도주는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다음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 법인데 이 좋은 포도주가 아직도 있으니 웬일이오!"

 이 자리는 예수가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성령의 은총을 입은 후 첫 이적을 보여 준 예수의 '때'와, 모든 어머니의 상징인 마리아의 '때'가 시작됨을 보여준 곳이기도 하다.

 신학자 존 티머는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다른 공관복음서의 저자들과는 달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의 이적'을 앞부분에 다룸으로써 예수님의 이적의 효시를 삼았다고 말한다.

 ‘성경의 기적(Miracle of the Bible)’을 쓴 래리 리찰즈는 이렇게 말한다. 계시록 19장 9절에 나오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초대 받은 사람은 행복하다"는 구절은 바로 가나의 혼인잔치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갈릴리의 가나 기념성전에 젊은 유다계 그리스도인 신혼부부들이 결혼의 특별한 의미를 준 이곳에서 혼인식을 올리려고 찾아온다.

 이스라엘에서 포도는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보리, 밀 등과 함께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7대 식물의 하나이다. 포도는 기쁨과 풍요로운 잔치를 상징하고 있으므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동이 난 포도주를 예수가 새 포도주로 창조하고 채워준 일은 아주 뜻 깊은 일이다.

 

 

 

그 당시의 가나라고 생각되는 나사렛 북쪽으로 10km쯤 떨어져 있는 카프르 칸나에는 희랍정교회 소속 가나기념성전과 프란체스코회 소속 기념성전이 있다. 웅장하게 지은 프란체스코회 성전의 겉모습과는 달리, 토벽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지하실엔 큰 벽돌색 물항아리가 가나 혼인잔치에 쓰였던 것으로 보존되어 있다. 선반에는 그 당시 여섯 개의 물항아리를 상징하는 작은 도자기 물동이 네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다녀온 기분이 채 가시지 않은 다음날, 장신대 예루살렘 성지연구소장으로 계신 정연호 목사님께서 예루살렘의 성지를 순례할 때 만날 수 없었던 성서의 식물들이 모여 있는 쉐펠라 지역의 식물원을 구경시켜 주셨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에인케렘 기념성당을 지나게 돼, 성당 외벽에 성모 마리아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모자이크 벽화를 눈부시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쉐펠라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던 포도밭을 '포도원의 샘'이라는 뜻을 가진 이 에인케렘 마을에서 만난 일이었다. 

 축복 받은 포도나무, 맹물 같은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의 사랑이 채워주는 풍요로움으로 탈바꿈하는 기적의 포도나무를 사진에 담을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 막 열매를 열기 시작한 포도송이들이 또 하나의 이적을 낳을 듯이 싱그럽게 다가왔다. 비록 가나의 혼인잔치에 쓴 포도나무는 아니지만 아직 여린 청포도가 그의 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만 보아도 예수님의 사랑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나의 삶의 모습 같았다. 

  

 

포도나무와 그 가지는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라는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으로 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한 어거스틴 성인의 말이 생각날 만큼, 포도와 잎새와 가지가 하나로 뒤엉켜 있는 에인케렘의 청포도밭을 한참 드려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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