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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자(Whistle Blower)

 

 얼마 전에 대한민국 검찰청 사이트에 ‘제주지방검찰청 A검사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그 사실을 보도한 한국의 언론들이 권력의 눈치를 살피기 바쁜 언론들이라서 신문기사에 익명 처리했겠지만! 그 원문에는 A검사가 아니라 그 글을 쓴 검사의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제주지검에 근무하는 42세 여검사가 몇이나 되겠는가? 검찰관계자들과 제주도민들의 상당수는 그 ‘A검사’가 누구인지 모두들 알고 있을 게 아닌가? 썩어빠진 언론들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이라고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을게다. 


 그 제주지검 여검사는 자신이 수사 중인 사기사건 피의자에 대해 법원에 접수된 영장청구서를 상급자인 차장검사가 지검장의 지시를 받고 담당검사 몰래 법원에서 회수한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그리고 그 여검사가 그 사실을 대검찰청에 감찰을 요구했는데도 한달반이 지나도록 대검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그런데 일부 정론직필과는 거리가 먼 곡학아세하는 돼먹지 못한 언론들에서는 검찰내부에서 발생한 검찰지휘부의 비리연루의혹과 조직적인 은폐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낸 A검사의 고발을 '항명(抗命) 사건'이라고 매도했다. 이건 항명사건이 아니다. 부패와 비리로 얼룩져있다고 의심받는 검찰이 개혁돼야만 하며, 일부 부패 고위직 검사들을 향해 울리는 내부고발이며 경종(Whistle)이다. 


 어느 조직이나 기구 내의 불법행위나 부도덕한 행위들을 온 세상에 알리는 그 용기있는 구성원을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라 한다. Whistle은 호르라기이다. 내부고발자는 세상의 이목을 끌고자 호르라기를 힘차게 불어(Blow the whistle) 자신에게 돌아올지도 모르는 박해와 불이익을 각오하고 나선다. 


 최근 김치맨은 존 그리샴(John Grisham)의 신작소설 The Whistler를 읽었다. Whistler는 Whistle blower와 같은 의미이다. 그 소설은 플로리다의 주정부 사법윤리위원회(Board of Judicial Conduct)에서 범죄조직인 마피아(Coast Mafia)와 결탁해서 뇌물을 받고 비리를 저지르는 판사(Judge)의 비리행위를 캐내는 과정을 스릴있게 써낸 것이다. 


 그 줄거리는 가상의 인디언(American Indian) 부족이 마피아조직과 손잡고 카지노를 개설하고 운영하면서 막대한 돈을 빼돌리면서 그 중 일부를 법원의 판사에게 상납한다. 그 카지노 개설과정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억울한 사람이 살인범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아 사형집행 당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막대한 돈에 팔려 마피아의 하수인이 돼서 범죄집단의 이익을 위해 법을 악용하여 편파적인 판결을 내리고 치부하는 판사를 단죄하려 나선다. 여기에 내부고발자가 등장한다. 그 고발자가 아니었더라면 15년 동안이나 꼬리가 잡히지 않고 지속돼오던 그 횡령과 뇌물수수 및 탈세범죄가 영원히 발각되지 않았을 터이다. 


 작년 10월에 나온 The Whistler는 아직까지는 한국어 번역판이 출판되지 않았다. 머지않아 한글번역본이 나올 터인데 그 한글제목을 무어라 할까 궁금하다. 존 그리샴의 열성 애독자인 김치맨은 솔직히 번역본 제목들을 매우 못마땅해 한다. 그의 소설들 중 ‘타임 투 킬(A Time to Kill, 1989)’, ‘펠리컨 브리프(The Pelican Brief, 1992)‘, 레인메이커(The Rainmaker, 1995)’, ‘파트너(The Partner, 1997)’ 브로커(The Broker, 2005)’ 등은 원제 그대로를 한글로 썼다. 


 한글번역본들의 책이름이 원제를 직역했다거나 또는 전혀 엉뚱하게 번역된 경우도 있다. 때문에 한글 책 이름만 보아서는 존 그리샴의 어느 소설인 줄을 알기가 쉽지 않다. 그 중에서도 기상천외하게 붙여진 이름은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이다. 영어로는 That Is Why They Have Gone To Sea 쯤 이겠다. 이는 1991년 작 The Firm의 한글이름이다. 그런데 그 소설에서의 The Firm은 법률회사를 뜻한다. 바다로 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톱니바퀴(The Brethren, 2000), ‘속죄나무(Sycamore Row, 2013)’와 ‘잿빛 음모(Grey Mountain, 2014)’ 역시 번역작가와 출판사에서 자기네 수준에 걸맞게 제멋대로 작명한 것이라 본다. 존 그리샴씨가 한글을 모르기 망정이지 만약 그가 그렇게 원제와 동떨어진 책 이름으로 출판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노발대발할 게 분명치 않는가? 


 소설 ‘The Whistler’가 한국에서 번역 출판될 때 책이름을 어떻게 지어 붙일 지 매우 궁금하다. 설마하니 원제를 직역해서 ‘호르라기를 부는 자’ 또는 ‘경종을 울리는 사람’으로 붙이지는 않겠지? 만일 번역작가가 그 따위 짓 하기라도 하면 김치맨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휘슬러 The Whistler’로 하기를 바라며 권유한다. 


 영어 붐 탓으로 어지간한 단어는 아예 일상생활에서 우리말처럼 쓰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번역가들과 도서출판계에서는 그 따위 억지 춘향식의 번역으로 독자들을 우롱해서는 안된다. 이는 내부고발자가 아니라 자칭 외부고발자(Outsider Whistler) 김치맨의 경고이다. (2017.08.08) 

 


 

▲부패한 법원 판사와 마피아를 적발하는 내용의 스릴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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