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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숙 코너

    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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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19)

 

 (지난 호에 이어)
 그러는데 앞 쪽에서 얼굴이 동그스름하니 예쁜 여대생이 걸어오고 있었다.


“저기 우리 조카애가 오는데 같이 가서 뭐가 어디 있나 좀 가르쳐 달래서 장 봐 가지 구 나오세요.” 그러면서 조카애를 딸려 보냈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걷지 않게 된 것만 천만다행이라 싶어 군말 없이 조카애를 따라갔다.


 “엄마는 피곤할 테니까 저기서 슬슬 구경이나 하고 있어 내가 필요한 것 대강 집어가지 구 빨리 나올 게.” 


 그러지 않아도 도대체 뭐가 어디에 있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형형색색의 포장 속에 들어 있는 상품들이 다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터라 그저 조카애가 끄는 대로 따라다니며 구경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국수, 쌀 같은 곡물, 여긴 빵, 과자, 그리고 저기엔 비누 같은 거 있어요.”


 조카애는 열심히 설명해 주었지만 그저 눈앞이 어질어질하기만 했다. 


 “자 이제 고만 가요.” 쇼핑카트에 무얼 잔뜩 담은 ‘훈’이 ‘영’의 손을 잡으며 나가자고 하였다. 닥터 ‘황’네 세 식구는 차 속에 앉아서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 미안합니다. 빨리 나온다는 게 이렇게 늦었어요.”


 “뭘요. 아주 빨리 나 오셨는데요. 우린 한번 저 속에만 들어가면 으레 한 시간은 넘게 있다 나오니까 장보는 사이에 고만 지쳐서 피곤해져요.” 닥터 ‘황’이 얼른 짐을 받아 차 트렁크에 실어 주었다. 


 “어디요? 아파트가.” 미시스 ‘황’이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웃으며 물었다. 


 “‘나이아가라 불 봐 드’로 들어서면 왼쪽 첫 번째 꺾어지는 길이 ‘알렌허스트’입니다. 584번지가 우리 아파트입니다.” 


 “그럼 우리 집 하고 아주 가깝군 그래. 우린 그 ‘불 봐 드’에서 오른쪽으로 꺾이는 길 얼마 안가서 있어요.” 닥터 ‘황’이 아주 좋아하며 말하였다. 


 “그럼 매주 토요일 우리가 데리러 가지요. 식료품 장보러 같이 가도록 합시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몇 번이나 눈물을 찔끔거리던 ‘숙’이 지금까지 듣던 말 중 가장 시원하고 반가운 말이었다. 그렇게나마 발을 떼어 놓기가 자유스러워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고맙기 한이 없었다.


 “내일은 일요일인데 우리가 하루 피크닉에 모시지요. 별로 바쁜 일 없으면 같이 가도록 하세요.” 미시스 ‘황’이 돌아보며 제안을 하였다. 낮은 음성에 점잖은 품위를 지닌 이분은 꼭 자상한 큰언니 같은 인상이었다. 


 “네? 피크닉까지요.” 


 “그럼 내일 아침 11시경에 데리러 올께요. 안녕!”


 장본 것들을 냉장고에 주섬주섬 넣은 ‘훈’은 넓적한 고기 두 쪽을 꺼내서 오븐에다 굽더니 소금과 후추 가루를 툭툭 쳐서 스테이크를 만들어 놓고, 상추, 토마토, 오이를 썽둥 썽둥 썰어서 큰 그릇에 담더니 샐러드드레싱을 한 술 푹 떠서 저어가지고 그 위에 부어 놓았다. 그 다음에 국수깡통을 하나 따서 냄비에 쏟아가지고 데워서 세 그릇에 적당히 나누어 놓고 저녁을 먹자고 불렀다. 


 “아니. 언제 그런 것 다 배웠어요.” 


 얼마나 쉽게 쓱쓱 해치우는지 그저 웃음만 나왔다. 인스턴트 국수 한 접시에 고기 몇 쪽을 썰어 ‘영’에게 얹어 주고 ‘숙’에게도 덜어주며 맛있게 먹기 시작하였다. 


 난생 처음 남편이 차려주는 양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먹긴 먹었는데 배만 부르고 뭔가 허전한 것 같았다. 하루 종일 피곤했던지 ‘영’은 수저를 놓자 의자에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층에 올려다 누이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어느새 깨끗이 설거지까지 마쳐놓았다.


 “가만있자.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그런 걸 다 하니.”


 “어차피 해는 서 쪽에서 뜨는 걸.” 모처럼 만에 둘이는 큰 소리로 한참 웃었다. 


 “내일은 ‘게일’이 리빙룸에 깔 양탄자를 가져다 준 댔어. 그리고 학교에 있는 한 친구가 긴 소파를 준 댔는데 닥터 ‘정’께 부탁해서 싣고 와야겠어. 그 댁 차는 크니까 들어갈 거야”


 앉을 데라곤 식탁의자 밖에 없으니 자연 이야기는 여기 앉아서 하게 마련이었다.


 “아유. 그렇게 많이 그저 받기만 해두 괜찮아요?” 정말 알 수 없다는 듯 반문을 했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그만 가지고 오랬는데, 너 두, 나 두 무얼 자꾸 가지고 오지 않아. 나중에 우리가 새 것을 장만할 때까지는 그대로 써도 괜찮을 거야.”


 “여하튼 참 고마운 사람들이에요. 아무 걸 갖다 주던 생각해 주는 정성이 고맙지 않아요?” 


 둘이는 한동안 말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반쯤 열린 식당 창문으로 저녁바람이 시원스레 불어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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