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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용기있는 결정, Oh! 캐나다(6)

 

 


 (지난 호에 이어)


2. 이민 답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


왜 이민 답사를 꼭 해야 합니까? 의무사항은 아니잖아요? 하면서 조금은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민자를 본적이 있다. 괜히 쓸데 없는 낭비가 아닌가 싶어 그럴 수 있지만, 첫 정착지의 선택은 너무 중요하므로 꼭 답사를 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우선 사전 정보를 최대한 모아서 마음이 가는1, 2곳을 선택해 직접 방문하여, 먼저 도착해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모습을 자신의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 또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방문한 이후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한 후에 오직 자신의 판단과 책임으로 정착지를 정하는 것이, 캐나다 이민의 성공을 드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캐나다는 어느 도시로 가더라도 만족할 만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생각된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자기가 정착한 도시가 좋지 않았다는 말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단지 새로 이사한 이유는, 자식이 선택한 대학이 이 도시에 있어서 또는 자신들 만의 특정 비즈니스를 찾거나 혹은 다른 개인적인 이유라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캐나다는 모든 도시가 제각기 아름답고 훌륭한 전통을 지니고 있기에 거의가 매력적인 곳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자녀 교육관련 불어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대도시 중 토론토, 밴쿠버, 캘거리 등을 택하거나 혹은 불어를 의식하는 경우 몬트리올, 오타와 등의 도시로 정착하는 방법도 좋다고 생각된다.


다만 본인의 경우는, 사전 답사를 통해서 직접 발로 뛰고 신경 씀으로써 뭔가 나에게 와 닿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었기에, 본인 판단으로 오타와를 선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누군가가 물으면, 아무래도 집값도 싸고 한인이 약간 적은 중소도시가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지금 살고 있는 킹스턴도 아주 아름답고 매력적인 곳이다.

 

 3. 출국 전, 가족과 함께한 시간-고향에서    


혹시 누가 물으면, 캐나다 영주권을 처음 받았을 때의 기분이 어땠냐고?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 마냥, 그 동안 메마르고 척박했던 마음의 대지를 기쁨으로 흠뻑 적셔준 희망의 메시지였고, 새 출발의 시작점 같은 것이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면 이랬던 것 같다. 어느 날 오후,  집으로 배달된 큼직한 봉투 하나, 뭔가 일반 우편물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나 싶어 조심스레 뜯어보니, 그토록 마음 졸이며 기다려 왔던 캐나다 영주권 서류가 아닌가, “드디어 왔구나” 이게 과연 현실인가 싶어 어찌할 바를 몰랐고 또한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된 것 같아서 너무 감사했었던 영주권 서류를 받던 날의 기억이다.


이젠 아련한 추억이 되었지만, 그 때는 정말 기쁜 일이었고, 다시 시작하면 뭔가 이룰 것 같은 새 희망의 발견이었다.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S를 그만두고 나와야 했던 그 쓰라린 기억의 반증이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캐나다 이민 용품을 준비해 가던 가운데, 가장 큰 아쉬움이 부모, 형제들과의 이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야말로 이젠 떠나야 하는구나 생각하니 금방이라도 뭉클하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하였다.


영주권을 받았을 때가 서울에 살 때인데, 서울 형님께는 인사를 드렸으나, 부산에 계신 장인, 장모님과의 이별은 아내나 아이들한테 큰 슬픔을 줄 것 같아서, 생각 끝에 출국 전 1년을 부산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 자식 된 도리인 듯 싶었다.


특히 아내가 첫 딸인 관계로 첫 외손녀/손자로 더욱 정이 깊은 이유이기도 했으며 이제 떠나면 한 동안은 만나기 어려운 바라, 이사를 감행했다. 우리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함께 놀이터에서, 축구도, 야구도 그리고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군것질도 해 봤다.


그런 추억은 두 번 다시 우리 아이들의 일생에 가져보기 힘든 시간일 것임으로 그것은 잘 한 결정이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비로소 재작년 9월, 이민 온지 처음으로 장인, 장모님이 캐나다에 오셨는데, 그 이민 오기 직전의 1년 동안에 함께 공유했던 추억을 참 많이도 기억해 내시곤 그때의 이야기를 죽 들려주시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도 그 동안 잊혀져 있었던 아파트 뒷동산에 올랐던 얘기, 동네 공중 목욕탕에서 턱걸이 하고 물장구 치며 놀다 야단맞았던 얘기 등 캐나다에선 전혀 경험 할 수 없는 옛 이야기들이었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얼마나 좋은 기억을 많이 간직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화의 깊이는 확연히 달라지는 것 같다. 이미 성년이 되어버린 우리 아이들에게 잊혀진 기억을 살려, 되돌려 준 외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좋은 추억 여행이 된 셈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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