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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쇼와 연극을 관람하고

 

서독의 간호사 시절, 그때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정신과 병원에서 근무할 당시에 한국 및 유럽의 동료들까지 버스를 전세해서 인근 도시의 오페라 극장에 일 년이면 2~3번 멋있게 단장도 하고 유명하다던 가곡의 밤을 관람했다.


웅장하고 성스럽던 젊었을 때, 40년 전의 그 당시와 비교해서는 안 되지만 지난 여름에 구해놨던 티켓의 유효기간 1주일 남아 오늘은 꼭 가보기로 했다. 20분 정도 한적한 길을 달린다. 주말이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극장 앞에 주차를 하고, 그야말로 농장 안의 소극장에 들어왔다.


야, 웬일인가? 우리 또래의 할멈들이 웅성웅성 12시에 점심 뷔페 전에 칵테일과 샐러드, 수프에다 진수성찬이다. 우린 줄을 서서 질서 있게 식성에 맞는 음식을 골고루 담는다. 야! 이 촌놈 할망구야, 할 정도로 오이와 삶은 달걀, 감자 샐러드부터 챙겼다. 종류도 다양한 파스타는 별로이다.


모두 백인 아니면 유럽인 노인들이다. 남자는 거의 없고, 유색인종도 아주 드물다. 유일한 동양인인 나는 정말 신기한 존재였다. 물론 우리 동네의 관람 장소였으니까 예약할 당시에도 미리 알았지만… 왁자지껄하면서도 질서정연한 노년의 친구들이다. 옆 테이블의 여자 손님이 자기네 일행은 킹스턴과 벨빌 도시의 구성원으로 단체관람을 왔다고 설명한다.


점심이 훌륭하다. 로스트 비프와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식을 즐기지 않는 나는 야채만 챙긴다. 밥과 감자와 호박 찐 요리, 영양도 만점이다.


오후 2시에 쇼가 시작됐다. 제목은 ‘Bedside Story’. 웃기는 코미디다. 등장인물도 다양하다. 각양각색의 연기를 능숙하게, 자기 맡은 몫을 충실하게 소화해낸다. 서양 할멈들은 배꼽을 쥐면서 킬킬대고 박장대소한다. 난 속으로 웃으면서 별것도 아닌 걸 소란이야, 한다. 


중간 휴식시간에 주스와 쿠키로 고객을 챙긴다. 좁은 의자에 2시간 이상 앉아서 돈 주고 고생하니 다리가 힘들어진다. 공간이 좁으니까 옆자리에 나와서 수다들도 즐긴다. 관람이 어떠냐는 옆자리 관객의 질문에 “너무 흔한 소재를 연극으로 보여줘서 그냥 한번 웃고 말 정도”라고 대답했다.


웬 격식인지 자주 음료수 마시는 모습이 등장한다. 위스키와 코냑? 자주 마시는 시늉의 배우들, 차라리 우리 말로 된 연극이었다면 상상의 나래를 펼치련만… 그래도 70불이 넘는 디너쇼였으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주연이었던 Bob은 50대의 중년 남자로 노련한 연기다. 한 달 동안 1주일에 3번 이상 연기를 해야 하니 대사며 몸짓이 능숙하다. 이민 온 뒤 처음 연극관람이었는데… 젊었던 날엔 영화도 많이 봤는데 이젠 모든 것이 허상같다. 어둠이 빨리 오니 기분도 우중충하다. 햇살이 많았던 여름이 너무 생각난다.


지난 주말에 온 가족이 모여서 손주의 10살 생일을 축하했으니 그때의 기쁨으로 생각을 바꾼다. 아들은 동남아 출장으로 2주간 집을 떠나 있고, 멀어서 자주 못 가보는 아들네는 며느리가 손주랑 직장과 학교와 과외 수업 장으로 수고가 많으니 안쓰럽고 딱하다.


‘God bless you’만 응답기에 남겨둔 채로 연극을 보고 왔어도 옛날의 그런 느낌과 설렘은 어디로 간 것인가? 내가 감정이 무딘 탓인가? 


아! 다시 올 수 없는 젊음의 낭만이 자꾸 생각난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야 옛날이 그립구나. 힘내자. 내일은 또 귀한 외출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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