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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봉 칼럼

    캐나다 加人 강신봉
    전 캐나다한인총연합회장, 전 토론토한인회장, 요크한국인학교 설립교장, 김치캐나다사장, 전 스코필드박사동상건립위원장,전 무궁화사랑모임창립회장, 토론토흥사단창립지부장, 대한민국국민훈장목련장, 역사문화원장

    캐나다 문협회원.현 GTA한카노인대학장
    http://skang3441.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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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해설(31)

 

 

맺는 말 


 
 지금까지 총 30회에 걸쳐 <손자병법>을 해설하였다. 자세하게 풀이를 하자면 100회가 넘어도 모자라겠지만 그저 대략적으로는 훑어보았다고 생각된다. 먼저 저의 해설을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손자병법>은 싸움의 기술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가르침의 밑바닥에는, 경쟁자를 파괴의 존재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의 동반자로 인정을 하는 기본 철학 위에서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에는 상대방을 이기기 위하여 ‘속임 수’를 써야 하는 내용도 있고, 상대방을 모두 죽여야 한다는 불가분의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손자병법>이 제시하는 싸움의 목적은 나만 살고 상대방을 없앤다는 것이 아니라, 나도 살고 너도 살아야 한다는 바탕에서 싸우는 기술을 서술한 것이다. 


<손자병법>이 2500년 전 춘추전국 시대에서부터 그 긴 세월을 흘러 흘러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군인 뿐만이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넓게 읽혀져 내려온 이유에는 두 가지 까닭이 있다. 하나는 전쟁을 일으키는 데에 맞상대를 하는 적군 이외에 제3세력을 염두에 두고 3각 내지 4각의 관계를 그리면서 싸움의 철학을 전개하였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전쟁을 벌이는 상대 세력이나 국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끌어 안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을 하고, 싸움의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이다. 대개의 다른 병법서는 1 : 1의 전투를 바탕으로 하여 쓰여진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서구의 병법서들은 오로지 너와 나 사이의 교전을 가정해서 쓰였기 때문에 완전 궤멸, 완전 살상을 전제로 하여 싸움의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나라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싸움을 벌였지만, 어떻게 해서인지 명목상 같은 황제를 모신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은 국력을 키워 새로운 왕조를 연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단순히 패권자가 된다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나라는 멸망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존재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공존을 하다 보니 언제 어떤 힘에 의해 뒤통수를 맞을지 알 수가 없었다. 힘이 없다면 제3자를 끌어들여 동맹관계를 맺고 교전 상대국을 오히려 우세한 실력으로 대적할 수도 있었다. 


또한 전쟁에서 승리의 목적은 패자에게서 수탈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하고 지배를 한다는 힘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싸울 때는 적군이지마는 이기고 나면 그 사람들이 내 백성이 된다는 개념 때문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신념이 확고했던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이 세상은, 매일 어느 곳에서나 경쟁과 투쟁으로 얽혀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경쟁하고 있는 오늘의 사회는 2500년 전의 춘추전국시대를 많이 닮았다. 


나 혼자서 수 많은 사람들을 상대할 수는 없다. 누군가와 손을 잡고 협력의 길을 가야 한다. 동시에 누군가의 배신도 잊으면 안 된다. 더욱이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 경쟁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도 나와 함께 이 땅덩어리 위의 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는 것이다. 


때로는 내가 이기기 위해 경쟁자를 무너뜨리느라 전력을 다하지만 그들도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다. 


현대사의 한 장면을 돌이켜 보자. 전쟁에서 느낀 아픔과 고통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우리 선인들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후손들의 미래를 보장해 주기 위해서, 1953년에 미국과 동맹을 맺었다. 그 동안 그 동맹을 우리는 잘 지켜 온 셈이다.


세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전쟁으로부터의 피해의식이 흐려지고, 동맹의 필요성도 희미하게 멀어져 가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왜 이럴까? 염려되는 나이 든 세대들에게는 근심이 날로 깊어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을 보수라고 한다. 젊은이들은 그러한 아픔의 경험이 없기에 모든 일을 현실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역사의식이 부족하고 안이한 삶을 추구하려는 속성 때문이다. 


바야흐로 우리는 남북이 갈리어 전쟁하며 70년간 서로 투쟁하는 역사를 이어 왔다. 같은 민족, 같은 언어, 같은 가족 친척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멀게 슬픈 역사를 이어왔다. 


지금도 우리의 머리 속에는 어떻게든 북한을 이겨서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 하고, 북한은 남한을 핵폭탄으로 쓸어 죽이겠다고 설쳐대고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념이 피보다 더 진하다는 어리석은 철학에 휘말려 스스로를 매도하는 길을 걸어왔다. 


독일 민족은 제2차 대전에서 패배한 이후에 연방국들이 국토를 갈기갈기 6쪽으로 찢어 놓았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묶어 놓았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그 줄을 풀고 헤쳐 나와 통일 국가를 이룩하고 다시 일어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이 시간에도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의 포승을 더 굳게 묶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 민족이 우리와 다른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우리 민족은 독일 민족의 그 하나되는, 피는 물보다 짙다는 근본적인 철학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 철두철미하게 공부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 한민족(韓民族)이 하나 될 수 있는 통일의 길이다. 내가 나 스스로의 위치와 분수를 모른다면 아무 것도 성취할 수가 없는 것이다. 힘으로만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손자병법이 제시하는 공존의 철학, 그것이 우리 민족에게 제시하는 철학이다. 남과 북이 서로 죽여야 한다는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악몽의 이념에서 해방이 되어야 한다. 단군왕검의 홍익인간 이념 하에 반만년을 살아온 우리 민족이 아니었나? 


내가 내 식구들을 다 죽이고 나 홀로 일어서서 잘살아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혹독하고 무자비한 죄악인가? 왜 남북의 위정자들이 그렇게만 생각을 하는 것인가?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가슴이 아프다. 


힘으로만 이기려 하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깨끗한 양심으로 내 스스로를 지키는 한민족이 되기를 소망한다. 반만년을 지켜온 이 땅 위에 하나님이 자비를 내려주실 것을 두 손 모아 기도 드린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편에 서 계심을 믿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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