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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숙 코너

    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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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패닉의 현장에서

수술이 취소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왼쪽 눈 수술한지 십 여일, 예정된 오른쪽 눈 수술 꼭 2주전이다. 이렇듯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악화된 원인이 무엇인지 놀라움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왔다. 처음 중국 우환에서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처리만 했더라면…


강한 비판이 뭉실 거리는 사이로 퍼뜩 떠오른 낱말이 생뚱맞은 ‘에누리’이다. 국어사전에는 ‘값을 더 얹어서 부르는 일’, ‘값을 깎는 일’이라 풀이되어 있다. 더 붙이기도, 깎기도 하는 일이니 ‘에누리 없다’는 말은 가감이 없다는 말이겠으나 상품의 정찰제가 고착되지 않았던 시절엔 주로 물건 값을 깎는 일로 흔히 쓰였다. 상인들이 부르는 물건 값이 신용이 없다는 사회상의 단면이기도 하다.


수년 전 멕시코 여행을 할 때이다. 관광객들은 챙이 넓은 밀짚모자나 알록달록한 구슬장식이 달린 원색의 마직 옷, 수공예품에 매료되어 가게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다. 나중에 비교해 보니 30달러 정가의 똑 같은 상품을 20달러, 10달러, 심지어 8달러 50전에 사온 사람도 있었다.


물건 값을 신용하지 않기는 우리민족 만이 아닌 것을 처음 알았다. 값을 깎으려는 행위가 공시된 수(數)치나 상황을 신용하지 못하는 군중심리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떠오른 것은 코로나19사태보도를 둘러싼 공포 심리의 조장과 사재기 열풍 때문일 것이다.


첫 번 눈 수술을 받을 당시 한국에서는 마스크대란이 일어났다. 한국과 북미주 대륙은 멀고 먼 곳이니 거리만큼 안전하다고 여겼다. 매스컴에선 연일 대중들을 안심시키려는 논평과 글로 가득 찼다. 수술 후 절대 청결해야 된다는 지시대로 서 너 가지 안약을 하루에 3, 4번 계속 투약하면서 두문불출 후속치료를 하는 중이었다.


휴지가 필요해서 검은 안경을 쓰고 처음으로 마켓에 나가 보았다. 텅 빈 선반, 가게 안을 몇 번이나 샅샅이 돌았지만 없었다. 다른 마켓에 가보니 역시 비어있었다. 자그마치 다섯 가게를 돌고서야 영문을 알게 되었고 결국 동네 편의점에서 미쳐 팔지 않은 휴지 몇 덩이를 살 수 있었다.


한국 식품점엔 쌀과 라면이 떨어졌다고 아우성이다. 트뤼도 수상 부인이 양성판정을 받았다더니 며칠 후에 나이아가라지역 세인 캐서린에서도 확진 자가 생겼다고 하였다. 수술 회의를 마친 큰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앞으로 2주간 환자들이 병원에 오지 못하도록 예약취소전화를 해 줄 것이며 수술도 트라우마, 응급환자 외엔 전부 취소하고 크로나 바이러스환자 치료에 전념하게 될 것이라 하였다.


필요한 식품, 일상용품 있으면 사서 배달해줄테니 절대 나가지 말고 아무도 접촉하지 않도록 조심하란다. 휴지 때문에 놀란 가슴이 공포심으로 조금씩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이 주일, 교회가 문을 닫았다. 오전에 출석하는 서양교회도, 오후에 예배 드리는 한국교회도 모두 영상 예배로 대치하였다. 그리고 월요일, 도서관 폐쇄를 알려왔다. 뒤따라 웰니스 센터의 프로그램 중단, 컴뮤니티 센터 일시 폐쇄를 알려 주었다. 다음 화요일, 강의하던 시니어대학에서 개학연기를 통보 받았다.


내 일상생활이 전부 뒤틀리고 옭매이는 듯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구가 갑자기 자전을 가속도로 하는 듯 어지러웠다. 국경이 봉쇄되고 학생들의 봄방학이 4월 5일까지 연장되었다.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하라는 직장이 늘었다. 식당, 편의점 모두 손님이 없어 타격 받고 국가와 세계적 대형경제체재도 크게 손실을 받고 있다. 맥도널드, 버거킹, 팀호튼스,.. 가끔 들르던 패스트푸드 식당은 전부 의자를 들어 올리고 테이크아웃만 주문을 받는다.


커피 한 잔 사기 위해 길게 줄 선 차들이 비상시를 실감시켜 주는 듯 긴장감까지 일으킨다. 면회가 금지되고 사회적 거리를 지켜야 하는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매일 한차례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드라이브 하는 일뿐이다. 한산하고 텅 빈 거리지만 우렁차게 쏟아지는 폭포를 마주하면 답답한 가슴이 그나마 후련하게 터지는 기분이다.


균형이 맞지 않아 쉬 피곤해지는 눈으로 신문들을 펼쳐 보았다. 3월 10일: 한국에 코로나19 확진자 7478명(사망54), 17일: 8236(81). 한 주 사이에 새 환자 758명(사망27)이다. 24일: 8652(111), 25일: 9037(125), 하루 사이 385(14)늘었다.


26일: 9037(125) 어제와 동일하다. 그런데 27일: 9241(136)이다. 밤새 새 환자 204명 사망자11명이다


캐나다는 3월10일 77명(0)으로 시작되어 26일 현재 3290(30). 같은 기간 미국은 582명(22)으로 시작, 6만50(807), 이태리는 7424(366)으로 시작 6만9,176(6820)이다.


‘오늘의 트윗‘엔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신문사 임직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뉴스제작에 나선다는 글이 떴다. ‘우리는 당신들을 위해 병원에 있을 터이니 당신들은 우리를 위해 집안에 있으시오‘ 의사들의 부탁이라 한다. 정부차원의 구조지원 정책도 발표되었다.


오늘 나이아가라 파크웨이를 달리노라니 식물원 앞 둔덕에 쪽빛 크로카스 한 무리가 눈에 띄었다. 에누리 없는 평강의 참 소식이 세상 가득 채울 날이 곧 오리라는 약속의 전령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한 열기가 스며들었다.

 

* 팬데믹 패닉(Pandemic Panic, 세계적 대유행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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