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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농축액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고도 하고 생각하는 갈대라고도 한다. 생각하는 갈대는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이지(理智)랄까 지성을 말하는 것이니 진정한 민주주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하나의 필수요소로 볼 수 있다. 제각기 서로 다른 집단이 서로 모여 살아가는 오늘날같이 복잡한 사회에서는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는 감성도 필요하지마는 합리적이랄까, 사리에 따라 행동하는 이성 혹은 지성도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물론 감성, 이성 이 두가지 특성의 상호비례는 사람마다 다르고 사회마다 다르다.


 이성과 감정을 칼로 두부판 가르듯 둘로 딱 갈라놓고 이것이 어떻다, 저것이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으나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이지보다는 감정이 더 우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한쪽이 우세한 사실 그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은 없다. 풍부한 감정은 우리 가슴을 훈훈하게 해주고 우리를 정열적이며 인정이 메마르지 않게 하고, 노래와 춤과 풍류를 즐기고 뛰어난 예술 감각을 가지게 함으로써 드높은 예술적 성취를 이룩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한편 이성은 우리가 세상일을 객관적이랄까 냉정한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사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해준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주로 이 이성이 있고 없음에 달린 것이니 이성이 발달했다는 말은 생각하는 힘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김태길 서울대학교 명예 철학 교수에 의하면, 지역적으로 좁은 범위 안에서 오랫동안 서로 얼굴을 맞대며 사는 농경사회에서는 주로 부드럽고 따뜻한 친화적 정서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나 산업사회로 불리는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는 그것이 도리어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감정은 때로 사람을 극단으로 몰고 갈 위험이 있다. 이 극단으로 흐르는 감정을 막는 것이 곧 사리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지이다.


 문제는 감정 내지 지성 둘 중의 조화 내지 균형이다. 감정, 지성 둘 중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우세하면 이 불균형은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요사이 언론과 방송을 메우는 대통령 탄핵을 보자. 탄핵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만약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으면 탄핵을 하고 말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사과란 잘못한 허물에 대해서 용서를 비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과하는 방법은 주로 언어적 요소와 문자적 요소로 구성된다. 그러니 대통령이 용서를 비는 몇 마디 말만 하면 탄핵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나라 행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을 탄핵하느냐 마느냐 같이 중대한 결정도 사과의 말 몇 마디, 글 몇 마디에 달려있다. 100% 감정의 농축액이다. 우리 감정의 불길이 이처럼 맹렬할 수가 있을까 몸이 오싹해올 정도로 두려운 생각이 든다. 아무리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지만 대통령 탄핵 여부가 사과의 말 몇 마디나 글 몇 줄에 달려있다 하니 이 얼마나 가벼운 일인가. 좀 과장해서 비유하면 무고한 사람을 죽인 살인범을 만일 그가 사과하면 살려줄 수도 있으나 만약 사과하지 않으면 사형에 처하겠다는 말이다. 말 바꾸기를 식은죽 먹듯 하는 국회의원들이 말 몇 마디나 글 몇 줄에 이처럼 큰 비중을 두는 것을 보니 경멸의 웃음을 참기가 어렵다.


 화목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감정과 이성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절실하다. 이성적 생각과 행동이 너무 약하면 우리가 꿈꾸는 민주주의의 실현은 그만큼 멀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리 생각과 행동에서 감정을 말끔히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그래서도 안 된다. 많은 인류의 역사적 큰 성취는 피 끓는 정열과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 않는가.


 애당초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무리한 절차로 억지 결정을 해놓고 "법으로 정한 일이니 마지막 심판이 나올 때까지 감정을 누르고 조용히 지켜보자"고 이성적 자세를 호소하니 아무리 이성적으로 행동하자고 해도 내 피는 벌써 거꾸로 흐르는 것 같다. 재산에 탐이 나서 자기의 부모를 살해하고 난 어느 패륜아가 재판정에 서서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불쌍한 고아이니 동정을 바란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감정의 맹렬한 불길 앞에서는 이성도 맥을 못 추는 것은 바로 이런 때이지 싶다. (200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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