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ON
  • kimbokyung

    김보경 칼럼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mail protected]

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36)-“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17)

 

 

 (지난 호에 이어)
태초에 아담이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며 또한 하나님이 아담의 코 안에 자신의 숨을 불어 넣으심으로 생기를 얻게 하였다고 하는 것이나 사람의 몸이 곧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하는 것이나 성도를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하나님의 외아들인 예수의 몸에 붙은 지체라고 하는 표현은 공통적으로, 인간은 본래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소유하시고 계신 일체지,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유산으로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만물 안에서 바로 그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를 유산으로 받았다고 하는 것은 곧 인간이 그 안에서 자유자재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과 다르지 않은,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유산으로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외아들로 오신 예수님도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거나 병든 사람을 고치거나 떡 두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몇 천 명을 배불리 먹게 하기도 했으며 또한 죽은 나사로를 살게도 하시고 예수님 자신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는 능력과 지혜도 보이셨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 그리고 예수님의 몸에 붙어있는 지체로서의 인간 역시 예수님이 보이신 것과 동일한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 현실적으로 그런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서 성서는, 아담과 이브가 보여준 것과 같은 인간의 어리석은 생각이 곧 창조주 하나님이 본래 인간에게 넣어 준 일체지 또는 근본지 또는 ‘성령의 지혜’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禪)에서는 일체유심조라 한다. 마음 하나에 따라 자신이 사는 이곳이 지옥도 되고 천당도 된다는 뜻이다. 아담과 이브가 낙원을 잃어버리게 된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간이 잃어버린 낙원을 다시 찾는 방법도 “일체유심조”에 달려있다. 인간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게 된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보여 주신 모든 이적과 기적은 누가 그것을 보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도마처럼 부활한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믿지 못하겠다면 보지 못하게 될 것이고 믿으면 보게 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고, 믿고자 하는 것만 믿게 되어 있다. 그것이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생긴 인간의 마음, 망심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룻유다는 예수님을 돈을 받고 팔았고,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만 해도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다.


바울 사도는 사도가 되기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재판에 넘기고 핍박하는 우두머리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망심을 벗어난 본심으로 예수를 보게 되었다. 그는 그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선악이라는 지식의 열매를 따먹고 눈이 밝아진, 아담의 망심으로부터 벗어나 “선악”이나 “생사”나 “유무”나 “자타”나 “내외”나 ”성범“이라는 세상에서 배운 어떤 분별도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된 것이다.


그에게는 이제, 예수님의 기사나 이적이 예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도 지음을 받은 인간 누구나 본심으로 가진 지혜이며 능력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예수님과 자신이 한 몸에 붙어 있는 지체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21세기,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달된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보여 주신 것과 동일한 기적(?)을 매 순간 보고 경험하며 살고 있다. 과학기술의 근원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의 본심에서 나온다. 어떤 과학기술이라도 창조주의 지혜, 자연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는 성취할 수 없다.


누구나 이제 알게 된 것이지만, 아담의 망심으로 이해할 수도 창조할 수도 없는 것을 아담의 본심에 의존하면 깨닫게 될 수도 또한 창조할 수 있다. 그 실례를 우린 과학기술에서 본다. 과학기술은 인간이 우주에 속한 일부이며, 우주에 의하여 인간 역시 일거수일투족 통제된다는 사실의 깨달음에서 발달되었다.


천지만물이 “말씀”으로 지어졌으며 인간 역시 그 “말씀”이 육체를 이룬 것이다. 우주는 영이신 하나님의 성령으로 채워져 있고, 천지만물들은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고 있고, 또한 성령을 숨 쉬며 생기를 얻고 있다. 인간의 망심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이 보다 더 뚜렷한 실제는 없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