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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mhail

    김하일 칼럼

    한국서 LG 근무
    1999년 캐나다이민
    벤처사업(FillStore.com), 편의점,
    현재 반(Vaughan) 지역에서 한국라면 전문점(Mo Ramyun) 운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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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과 불확실의 시기

 

아무도 믿지 못한다. 나 또한 아무에게도 믿음을 주지 못한다. 아침에 식재료가 필요해서 마트에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더러는 마스크, 장갑에, 눈을 가리는 플라스틱 챙이 있는 모자로 중무장을 했다. 어떤 남자가 카트를 끌고 가는 여성에게 다가가 이 상품 어디에 가면 있느냐고 묻는데 그 여성이 기겁을 하며 한발 물러선다. 


정말 웃프다(우스우면서 슬프다). 카트를 맨손으로 잡지 못하고 휴지로 손잡이를 싸서 밀고 있고, 카드로 지불을 할 땐, 손으로 버튼을 누르지 않고 카드 모서리로 꾹꾹 눌러 결재한다. 당장 혹시 사래가 들려 기침이라도 나올라치면 재빨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뛰어가 몰래 기침을 하고 나와야 한다.


가게에 출입하는 딜리버리 맨들의 화장실 출입을 금지시켰다. 처음엔 차마 막을 수 없어 그냥 이용하게 했으나 다른 집들은 모두 허용을 안 하는지 우리집 음식을 픽업하러 온 사람이 아님에도 수시로 들락거린다. 가만 생각하니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혹시 화장실 문이나 여러가지 기구에 바이러스를 묻혀 놓기라도 한다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직원, 내 가족, 직원의 가족… 


물론 확률은 거의 0퍼센트에 수렴하는 수준이겠지만 찜찜함은 금할 수 없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 그 사람의 인성이나 도덕성, 신용이 아니고 그 사람의 호흡, 손, 건네 주는 물건들을 믿을 수 없다. 남들에겐 내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런 불신이라니…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사재기 광풍 또한 시스템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정부는 여러가지 경제적 지원 대책을 쏟아내지만 디테일은 없다. 음식 딜리버리 서비스에 술을 포함해도 된다고 발표했으나 막상 온라인 메뉴에 술을 등록 하려하니 술 이름들이 금지어로 설정되어 있어 메뉴 등록이 불가능하다. 약간의 편법으로 등록은 해 두었으나 뭔가 좀 불안해 Sold out상태로 해 두었다.


미성년자에게 술 판매는 당연히 금지되는 것이 옳을진대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불분명하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Liquor Sales License Holder에게 책임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딜리버리 앱을 통해 주문을 받으면서 무슨 수로 주문자의 연령을 확인하라는 것인지, 술을 딜리버리 하는 사람은 술 취급 자격증인 스마트 서브(Smart Serve)를 보유해야 한다는데 그게 갑자기 가능한 일인지…


정부의 지원 대책 중에 4만불의 무이자 대출을 해주겠다는 것도 애매 모호하다. 대상이 어떻게 되는지, ‘Up to $10,000 of that amount will be forgivable...’은 일 만 달러는 원금조차 상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지,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은 여러 발표와 그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다르다.


식당을 하는 지인들로부터 여러 가지 문의를 받지만 그들이 아는 그 이상 아는 것도 없다. 해줄 수 있는 말은 그저,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 남아야지요’ 밖에 없다. 서둘러 뭔가 결정을 해버리는 것이 오히려 손해일 수 있다. 벌써 딜리버리와 테이크아웃 만으로는 견디지 못해 포기하고 문들 닫거나 아예 비즈니스를 접는 식당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은 지금 상황에서는 그저 허세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는 없을지라도 위기라고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다.

 


 

 

 

이 어렵고 암울한 시간, 그저 한숨쉬며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게 아니라 그간 시간에 쫓겨 미뤄두었던 일들을 찾아 좀더 생산적인 일에 몰두해 보면 어떨까?


메뉴를 한번 들여다보자. 틀림없이 내 맘에도 안 드는 메뉴가 한두가지는 있다. 그저 타성에 젖어 또는 시간이 없어 어찌하지 못하고 두었던 메뉴를 대체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보면 어떨까? 


또는 언젠간 손보려고 맘만 먹고 방치해 두었던, 고장 나거나 말썽을 일으키는 장비나 시설을 정비하기에도 지금이 아주 적절한 타이밍 아닐까? 사실 찾아보면 지금 아니면 다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일들이 분명 있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식당 창업 컨설턴트’의 꿈을 꾸고 있었다. 여러가지 공부를 하고, 실전을 경험하고 필요한 자격을 획득하는 등 시간 있을 때마다 조금씩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이제 시간이 좀 여유 있는 참에 이것들을 패키지화 하는 작업을 해볼까 한다.


구글 광고 전문가 과정 교육을 받았고 그 중 한가지 카테고리의 자격증을 획득했으나 다른 과정도 도전해 볼까 싶다. 읽었던 책도 다시 꺼내어 차분히 정독하고, 2년전에 만들어 두고 방치했던 레시피 북도 변동된 식자재 가격과 다소 바뀐 조리법을 업데이트하고 가게 오퍼레이션 매뉴얼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엑셀로 관리하는 장부와 페이롤 시스템도 좀더 효율적으로 다듬고 다른 식당에서도 쉽게 쓸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 해야겠다. 찾아보니 할 일이 너무 많다.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약은 아직 없다지만 우리 비즈니스의 예방주사를 맞기에는 지금이 가장 적기다. 


이 불신과 불확실의 시기에 확실해질 날을 미리 대비하고, 내가 고민하고 노력해서 되지 않을 일은 그저 시간에 맡기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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