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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상과부(靑孀寡婦)

     

‘청상과부 빈방 지켜 칠십토록 늙었거니/ 꽃같은 남자있다. 시집가라 권하건만/ 백발에 연지분 단장 낯 뜨거워 어이리(七十老孀婦. 寧不傀脂紛)’


 
 위의 시(詩)는 어우(於于) 유몽인이 인조반정 후 자기는 광해의 신하로서 두 임금(인조와 광해)은 섬기지 않겠다는 지조와 절개를 부르짖는 풍자시 '청상과부'다. 그는 국문을 당하는 마당에서도 위의 '청상과부'로 뜻을 보였으니 이것이 죄가 되어 죽이려면 죽여라고 버티다가 사형을 당했다.


 광해군은 반정 주역들에게는 없애야 할 인물이지만 백성들에게는 좋은 임금이었다. 반정 후 민심은 불안정했고 그를 다시 임금 자리에 앉히려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았다.

서인들은 들뜬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남인 이원익을 영의정으로 모셔왔다. 어우는 광해군이 쫓겨난 후 금강산 표훈사에 은거하다가 인조세력에 저항할 사람들을 모집할 계획을 했다. 그는 죽음에 임하여 고문을 많이 받지 않고도 모의사실을 거침없이 자복했으며 자신의 시(詩) '청상과부'를 내놓으며 광해군을 다시 임금 자리에 앉히려했다고 자백했다.


 심경호가 펴낸 책 '산문기행: 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를 보면 다음 이야기가 적혀있다. 즉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금강산에 은거하던 유몽인이 산을 내려오다가 철원에 있는 보개사에 들렸다. 스님들이 "새 정권에서 벼슬하는 것이 어떠냐?"고 묻자 위의 '청상과부' 시를 지어서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고 한다. 


 심경호는 어우가 모함에 걸려 들었다 했으나 이덕일은 조선왕들에 대한 역사평전에서 어우 부자가 인조에 저항해 거병하려 했다고 적었다. 둘 중 어느 주장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어우는 처형되기 바로 직전까지도 자기의 변함없는 충절을 씩씩하고 시원하게 털어놓고 별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인조는 부끄러울 정도로 덕망이나 관용 같은 것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의 반정모의가 어떻게 해서 광해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서 이덕일이 내놓은 재미있는,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없는 추측 하나가 나온다. 즉 인조의 아버지요, 선조의 이복동생인 당시 공공의 적(敵) 제1호였다. 그는 남의 집 하인을 죽도록 두들겨 패고, 유부녀와 첩을 빼앗고 남의 토지와 금품을 약탈하고 못된 짓은 하나도 빼놓지 않는 악질중의 악질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자기 집 노비를 장사꾼으로 속여 일본군과 내통, 이익을 취하다가 사헌부에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이 개망나니의 아들 능양군이 쿠데타의 주역이 될 줄은 광해군도 상상 못했을 것이고 그 이유로 경계를 소홀히 하여 반정이 성공한 것이라는 게 이덕일의 추측이다.


 인조는 광해의 반인륜적 행위에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이라는 것이 의심이 갈 정도로 그 자신이 반인륜적 행위를 마구 저질렀다. 인조는 사리 판단에 명민하지 못한 용렬하고 의심증 많은 임금. 그 예는 청나라에 볼모로 가 있는 소현세자가 청나라와 교류가 활발해지자 혹시 세자가 청의 힘을 빌려 인조 자신을 밀어내고 왕위에 오르지나 않을까 걱정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간신들의 부추김으로 이 걱정이 점점 깊어지자 세자는 인조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정적이 된다. 심양에 불모로 가 있던 8년 동안 새로운 국제정세와 사상, 과학문명에 눈을 뜬 세자는 아직도 명나라와 성리학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조선을 새로운 나라로 만들어보겠다는 가슴 벅찬 꿈을 안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버지 인조의 뜻밖의 냉대와 의심, 증오뿐이었다.


 고국에 돌아온 34살 건장한 체구의 소현세자는 두달 만에 학질에 걸려 사흘 동안 침(針)만 맞다가 죽었다. 공식 사인(死因)은 학질. 침을 놓은 어의 이형익을 둘러싼 의혹들, 소현세자의 장례와 어의에 대한 인조의 행동을 보면 인조가 세자를 죽였다는 말에 나로서는 확신이 가고도 남는다.


 세자를 죽인 칼날은 그의 부인 강빈과 아들들에 향했다. 강빈과 세 아들, 강빈의 친정어머니, 강빈 주위의 상궁과 궁녀들 모두를 수라상에 독을 넣었다는 죄목을 씌워 죽였다. 신하로서 임금을 내쫓고, 아버지로서 아들과 며느리는 물론 안사돈까지 죽이고, 할아버지로서 손자까지 죽인 인물에게 어질 인(仁)자 인조는 실로 부끄러운 이름이라는 게 이덕일의 탄식이다.


 앞서 인용한 어우의 시 '청상과부'의 말은 부드러우나 그 뜻은 매섭다. 요즘 세상에 어우 같은 지조를 가진 정치인이 한반도 안에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야당의 수장을 맡던 유명 정치인이 정권이 바뀌자 어느새 새정권의 요직을 꿰차고 있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흔하게 눈에 띄는 세상이다. 


 어우 같은 의리있고 강직한 선비가 한 둘만 있어도 지금의 정부는 좀 더 굳건한 기반 위에 선 정부가 되질 않겠는가? 지혜와 신의는 저리가고 잔꾀로 그때그때 이익이나 챙기며 살아가는 세상으로 바뀐지 오래인 것 같다. (201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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