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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순자 수필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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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마노구(色魔老狗)(1)

 

 여러 해 전 도넛가게에서 일할 때 에티오피아에서 온 30대 후반의 남자와 얘기를 하게 되었다. 키는 170을 좀 넘을까 싶고 얼굴은 검고 안경을 쓰고 남자답게 생기긴 했으나 많이 배운 것 같지도 않고 어딘가 조금은 모자란다 싶게 어눌하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결혼을 했느냐, 시간이 좀 있느냐는 식의 말을 걸기에 그냥 무시해 버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나보고 ‘안트’라고 부르기도, ‘시스터’라 부르며 “나이스 레디”, “굿 레디”, “럭키 레디”라고 하기에 “아이 엠 굿 레디”, “아이 엠 럭키 우먼”이라고 응수를 했다. 


 그가 내게 럭키 우먼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엔 내가 25살 정도로 보이더라는 것이다. 차츰 보니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해도 역시 젊어 보이며, 손님 누구도 내게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래저래 나를 봐서라도 가게에 더 오게 된다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손님들을 좋아하며 그들이 나의 친구이며 내가 블랙 가이들의 시스터라고 말해 주었다. 


 그 후 내게 가족관계를 묻기에 남편과 두 딸이 있다고 했더니, 남편을 한국에서 만났느냐, 캐나다에서 만났느냐 묻기에 한국에서 만나 결혼을 했으며, 한 번 밖에 하지 않았다고 했더니, ‘유아 굿’이란 표현을 몇 번 하더니, 이곳에서는 너무 쉽게 만나고 또 쉽게 헤어지고 해서 그런 것들이 싫다며 자기는 한 여자와 결혼을 해서 오래도록 같이 살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어디에서 태어났느냐고 물으니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나서 이태리에 가서 4년쯤 살다가 캐나다에 온지는 14년째라고 했다. 


 그 얼마 전에도 인도 태생의 탄틴이란 우리 딸아이 또래의 젊은이가 이 사회의 성문화가 너무 문란해서 온통 크레이지라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을 보았으나, 구체적으로 물어 볼 수도 없고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아 듣고 그냥 흘러 넘겼었다. 물론 영어를 잘 할 수 있어 물어 보고 싶은 것, 또 그가 하는 얘기를 잘 알아들을 정도라면 좀 더 자세하게 얘기를 들어 보기도 했겠지만. 


 이 사회의 성문화야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마는, 최소한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얘기나 TV에서 볼 수 있는 정도라고 해도, 내가 부부생활을 하며 얼마나 그들을 닮아갈 수 있으며 흉내라도 내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남편과 나의 그 동안 성생활이나 성격에서 크게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성이 부부 사이에서 본능이나 애정 이상의 행위는 혐오감부터 인다. 그러고 보면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성을 하나의 쾌락의 도구로 삼는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개인마다 좀 다르긴 하겠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처럼 성이 노골화 되지 않은 사회에서 숨겨진 성문화와 개방된, 열려 있는 사회에서의 성에 대한 인식은 얼마만큼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한 번 이혼한 것쯤은 담담하게 얘기하고 털어 놓을 정도가 되었다고 본다면, 이곳에서는 두 번, 세 번, 그 이상 만나고, 헤어지고, 결혼하고, 한 것도 한국 사회만큼 부끄럽게 생각한다거나 자신의 치부를 들어내는 것 같아 조금은 조심스러워 하는 그런 기색이 덜하다. 첫 번째 남편, 몇 번씩 결혼하고 헤어진 것도 자연스럽게 털어놓는다. 


 가게에 자주 오던 손님 중에 불가리아에서 온 사십 대 중반의 남자가 있었다. 그가 언젠가는 한국 아가씨를 소개해 달라고 해서 그의 신상에 관해서 알게 되었는데 이태리 여자와 결혼을 해서 딸을 하나 낳고 헤어져 독신으로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한국 아가씨를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 그들은 말이 너무 통하지 않아 몇 번 만나고 말았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후 알고 보니 그의 두 번째 와이프가 한국 여자 이었으며, 그녀와 6년간 살다가 헤어졌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랍기도 하였다. 그것도 본인 입을 통해서 안 사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게 알려줘 알게 되었다. 


 다시 또 그 후 얼마 지나서 그가 한국 여자와 결혼을 해서 아들까지 하나 낳았다며 사진까지 보여주기에 그 사이 언제 그렇게 만나 아이까지 낳을 수 있었는지 그야말로 재주도 좋네 싶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자기 와이프 자랑을 하며 교편생활을 했으며 상당히 스마트하다면서 언젠가 내게 소개해 주겠다고 하기에 어떤 여자인가 궁금했었다. 


 그 남자가 그런 얘기를 할 때는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그때는 한국에 가있다고 하더니, 어느 날은 와이프가 돌아왔다고 하기에 첫 번째 내 책이 나왔을 때여서 책 한 권을 주며 그녀에게 주라고 했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 그녀가 가게엘 왔다. 그녀는 이미 내 책을 읽어보았기에 나를 얼마만큼 안다 싶었는지 처음부터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녀의 얘기는 남편과 헤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데야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까지 있는데 어떻게 그리 쉽게 얘기를 하며, 아이는 왜 낳았느냐고 반문했더니, 아이에게는 알 수 없는 애착이 가더라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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