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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춤을

 

 2017년 9월 어느 날, 뉴욕 허드슨 강에서 출발해 캐나다 동부 쪽으로 가는 크루즈 여행이었다. 세계 최고 최대의 도시 뉴욕의 장엄함이 작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떠나는 크루즈 안에서는 흥겨운 생음악이 충천하였다.


 이 크루즈는 승무원 1200명 정도에 승객 3천여 명이라고 하니 총 4200여 명이 탄 셈이다. 여러 번 타보는 크루즈지만, 이번에는 생각지 못했던 분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비만증인 분들이 내 짐작으로는 2천여 명 될 듯했다. 거기에 휠체어를 탄 분들과 장애인들과 장애인들을 돌보는 도우미들이 3-4백 명은 넘을 것으로 보였다. 보통 우리와 같은 사람이 비정상으로 보이는 아이러니한 일주일간의 세계였다. 

 

 

 


 어느 도우미들은 휠체어를 밀면서 휠체어에 탄 분들의 손을 잡아주고 서로의 얼굴을 대는 등 정성껏 돌보는 모습이 나이팅게일을 연상하게 했다. 식사 할 때도 장애자 휠체어를 앞세워 그들이 원하는 음식들을 먼저 접시에 담은 후 자리에 앉혀놓고 식사를 들게 한 다음, 자기들의 음식을 가지러 간다. 도우미들은 철저히 교육을 받았는지?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그러한 행동들이 자연스레 몸에 배어 있었다. 


비만증도 보통 비만이 아니다.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특히 정상적인 가족들과 함께 온 다운증후군 사람들도 여러 명이 보였다. 혹시라도 한국 분이 탔을까? 두리번거려 찾아 봐도 한국 분은 한 분도 만나질 못했다. 


 배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에는 보스턴에 정박했다. 휠체어에 탄 분들을 밀고 보스턴 구경을 나서는 도우미들은 정성을 다하여 장애자들 돕는 것을 보았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들은 배에서 내려 휠체어에 태우고 여기저기 구경들하고 다시 배에 올랐다. 


육지에서는 버스로, 물위로 가서는 배가 되는 수륙양용 버스를 타보는 그들은 너무도 신기하여 놀란 토끼눈들이 되어 돌아왔다. 


 크루즈 안에서는 초저녁부터 이어지는 라이브 뮤직, 노래하는 사람을 포함하여 7인조 밴드, 혹은 다른 곳에서는 5인조 밴드, 혹은 3인조 밴드가 한껏 흥을 돋운다. 


 휠체어에 탄 장애자들을 밀고 도우미들이 들어오고, 그 중에는 다운증후군으로 보이는 사람들 여럿이 앞으로 나아가 춤을 추는 것이었다. 몸이 정상이 아니니 춤추는 것도 이상하였다. 나는 그들이 저러다가 다칠까봐 사뭇 염려가 되었다. 그들과 함께 춤을 추고 싶은 정상적인 사람이 있을까? 가슴은 먹먹해져 왔다. 갑자기 남편은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나의 어깨를 탁! 치며 앞으로 나가더니 그들과 웃는 얼굴로 신나게 흔들어대는 것이 아닌가. 


그냥 앉아 있다가는 남편한테 다시 불려가게 될 것이 뻔했다. 조금 망설이다가 나도 일어나 그들 속에 뛰어 들어갔다. 함께 웃으며 춤을 추었다. 저쪽에서 남편도 나에게 손을 흔들며 그들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친구 부부도 합세하고 그 후 그들의 가족들로 보이는 분들도 나와서 함께 춤을 추었다.  


음악은 이어졌고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그들도 음악이 흥겨운 줄 알고 음악만 나오면 몸을 흔들어대는 것이었다. 크루즈 안의 여러 곳에서 생음악이 펼쳐졌고 의례히 그곳에는 장애자들이 있었다. 만나면 구면이라고 서로 눈빛으로 웃으면서 인사하고 손을 흔들었다. 매일 저녁이면 모여서 함께 어울리다 보니 춤추는 곳에서는 그들이 왔나 두리번거려졌다. 


 미국 북동부 끝자락에 위치한 메인주(State of Maine)의 가장 큰 도시는 포틀랜드인데, 랍스터( Lobster)와 싱싱한 굴(Oyster)로 유명하다. 비가 와서 그날 배에서 내리지 못해 싱싱한 굴을 먹고 오지 못함이 끝내 아쉬웠다. 장애인들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배 안에서 휠체어에 몸을 싣고 슬슬 돌아다니며 서로를 구경하고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이야기인데, 미국 쪽의 메인 끝과 캐나다의 뉴브런스윅의 국경선에 집 한 채가 걸쳐 있어, 집 반쪽은 미국, 반쪽은 캐나다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가보지 못했다. 


메인주에서 나오는 감자는 한국에서 나오는 감자처럼 동그랗고 흰색인데, 주로 요리하는데 많이 쓴다. 미국 아이다호 감자는 겉이 거무스름하고 길쭉한데, 주로 은박지에 싸서 구우면 포슬포슬하고 속에다 버터를 넣어 비벼서 스테이크와 함께 먹으면 몸에서는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 듯 그 맛 또한 기막히다. 추억의 감자, 우리의 주식이 아니었던가. 


이름도 모르는 그녀(다운증후군)는 저쪽에서 후렌치후라이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대며 가족들과 함께 앉아 스테이크와 구운 감자에 버터를 바르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다음, 그곳에서 일한 150여 명의 웨이터와 웨이츄레스들이 우리들과 마지막 날이라고 휘날레가 있었는데, 모두들 특이한 모습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신나게 부르는 것이 아닌가? 세계가 코리아를 모른다 해도 강남스타일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도 일어나 나와 눈을 마주치며 손을 흔들어 아는 체를 했다. 그녀도 강남 스타일 노래를 아는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일어서서 몸을 흔들며 신나게 강남스타일을 부르는 순간은 엔돌핀이 팍팍 나옴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코리언 케네디언이라서 더 그랬을까? 


 함께 어울리는 이것이 사랑을 주고받는 행위일까.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할 그들의 눈빛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함께 추었던 이번 춤들의 기억에서 그들이 위안을 얻고 삶의 활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나에게 이런 일이 또 있기를.


 내가 장애인이라면 그녀를 더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녀 부모의 마음을 내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장애인들과 상관없이 살아온 삶이 부끄럽게 생각 되면서 그들을 도우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한쪽 구석에서 움텄다. 내 삶의 세월 이쯤에서 그들을 위한 눈이 떠지다니. 오지 않은 시간들을 촉촉이 적셔내고 싶다. 


 한편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는 사회복지제도가 가장 잘 되어있는 대표적인 나라다. 특히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가 잘되어 있다.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어울려 아름답게 살아가는 캐나다를 생각하면, 그 이면에 많은 세금을 내야만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복지국가는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태풍 어마(Amar)가 빗겨가고 잔잔해진 허드슨 강으로 무사히 돌아오는 크루즈의 새벽 뱃고동 소리가, 맨해튼을 깨우며 들어가는 모습은 전쟁에서 이기고 들어가는 개선장군의 모습이었다. 


 떠오르는 태양아래 거대한 도시로 탈바꿈하는 맨해튼, 인간이 이루어 놓은 걸작품, 대단하다 못해 신기하고 신비로울 뿐이었다.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 채 토론토로 돌아오는 길은 새털처럼 따뜻하고 가벼운데, 그녀의 모습은 어느새 하늘이 되어 내게 한아름 별을 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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