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ON
  • daekim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 42
    •  
    • 295,795
    전체 글 목록

조국의 안정과 평화를 기원하며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괴군은 삼팔선을 넘어 불법 남침을 감행해왔다. 북괴가 도발하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노라고 큰 소리 치면서도 그들과 맞설 준비가 없었던 우리군은 개전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적에게 내어주고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유엔군의 참전에도 불구하고 전세는 기울기만 해서 낙동강에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한 나라의 운명은 글자 그대로 풍전등화였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9월 28일 중앙청에 태극기가 게양되었다. 그 기쁨과 감격의 날을 맞이하기까지 우리들이 당한 고통과 아픔, 공포와 두려움은 공산치하에서 살아보지 않은 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난 여덟 살이었다. 6월 27일 밤 점점 크게 귓전을 때리는 대포소리를 들으며 우리가족은 피난 짐을 싸 들고 집을 나섰다. 한강이 가까워지면서 피난행렬이 멈추어 지고, 다리가 끊어진 사실이 알려지자 아버지와 큰형만 어떻게 해서든지 강을 건너보겠다며 떠나갔고, 우리들은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이틀 후 동네 제일 높은 곳에 있던 나무 많은 우리 집에 들이닥친 인민군들이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다. 그들 중 하나가 내 가슴에 장총을 들이대고 “네 애비가 어디 있느냐?”고 소리치며 나를 노려보던 그 살기 어린 눈빛을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7월 16일에 미군이 용산 지역의 괴뢰군 군사시설을 폭격할 때 가슴에 파편을 맞아 인사불성이 된 둘째 형과 할머니를 신촌 고모 집에 남겨 놓고 우리는 덕소 근처에 있는 산골 마을로 피난을 갔다. 대추나무와 밤나무가 유난히 많았던 그 곳에서 우리는 70여 일 동안 굶주림을 참으며, 언제 붉은 완장을 차고 장총을 든 무리가 몰려와서 우리를 잡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한없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지내야 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버지와 큰형으로 인한 걱정과 어린 우리들에게 호박죽이나 옥수수라도 먹여야 하는 어머니의 고통스럽고 무거운 마음을 어린 나도 그 얼굴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는 미군함정에서 쏘아대는 대포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어둡기만 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나도 북괴군의 대포소리를 들을 때는 무섭고 떨렸는데, 미군의 함포사격소리를 들으면서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나중 알게 된 사실이지만 폭격에 파편을 맞은 둘째 형을 돌보며 신촌 고모 집에 계시던 할머니는 집 주위에서 포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 우리는 죽어도 좋으니 미군이 대포를 더 많이 쏘아 잔인무도한 공산군들을 몰아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다고 한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어린 아이였던 나도 공산치하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치르겠다는 점에 있어서는 완전히 같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해방군임을 자처한 공산군은 잔인하고, 악랄했던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서울을 탈환한 국군과 유엔군은 패주하는 괴뢰군을 추격하여 삼팔선을 돌파하고 평양을 점령한 후 압록강을 향해 진군했다. 민족의 염원이던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누가 예상했으랴! 개미떼같이 많은 중공군들이 꽹과리를 두드려대며 국경을 넘어와 북진하는 유엔군의 앞을 막아 설 것을. 


승승장구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폭설과 혹한 속에서 인해전술을 펼치는 중공군을 맞이해 악전고투하며 작전상 후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고, 1951년 1월 4일에 서울을 또다시 그들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남으로 뚫린 모든 길들은 피난민들로 메워졌다. 말로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라고 제법 설득력 있게 떠들어 댔지만 공산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들이 자행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직접 체험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가다가 죽더라도 그네들의 발길이 닿지 못하는 곳으로 피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피난민들이 얼어 죽고, 굶어 죽었으며, 화물열차 지붕에 올라타고 가다 떨어져서 목숨을 잃은 사람도 부지기 수였다. 남쪽의 큰 도시들 특히 부산은 이 같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모여든 피난민들로 발붙일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서러운 피난생활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빨갱이 공산당이 물러가고 우리의 소원인 통일의 그날이 올 것을 굳게 믿었다. 


나도 부산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월요일마다 초량동 산기슭에 전교생이 모여 조회를 할 때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 딸, 죽음으로서 나라를 지키자. 우리는 강철같이 단결하여 공산침략자를 쳐부수자. 우리는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날리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란 ‘우리의 소원’을 목청껏 외쳐대며 수류탄을 뽑아 들고 육중한 소련제 탱크에 뛰어오르던 용감한 국군 용사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백두산을 오르는 장면을 그리곤 했다. 


그러나 민족의 숙원인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1953년 7월 27일 오후 12시 3분에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됨으로 3년 간 한반도에 울려 퍼지던 전쟁의 포화는 멎었다. 


그로부터 6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한국전쟁이 안겨준 엄청난 피해와 씻기 힘든 아픔과 상처를 극복하고 일어섰다. 4.19 학생혁명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5.16 군사혁명으로 합법적인 민정이 군사정권으로 넘어가는 격동의 시기를 견디며 우리는 하나로 뭉쳐 대한민국을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다.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들던 우리들이 해외여행을 이웃집 가듯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부강해진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동안 백두산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통일의 날을 기다리던 숱한 실향민들이 한을 품은 채 눈을 감았고, 통일을 갈망하는 범국민적 염원도 식어가기 시작했음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북한정권은 휴전 이래 적화통일의 꿈을 저버린 적이 없다. 그들은 남한을 흡수할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빈틈없이 그리고 꾸준하게 추진해 왔다.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회담은 북한이 그간 공들여 써온 각본을 연출단계로 접어들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인 것 같다. 


그 회담을 예의 주시한 외교와 안보 전문가들이 그런 결론에 도달한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핵무기를 개발하여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세기의 독재자로 낙인 찍힌 김정은이 미국 대통령과 당당히 마주서서 악수를 나누었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김정은은 그의 계획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입지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북한의 즉각적인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포기”를 이끌어 내기 위한 자리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엉뚱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핵을 개발조차 하지 않은 대한민국에도 비핵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비핵화를 한다는 언급은 찾아볼 수도 없다. 


물론 회담 당사자들은 그런 세부적인 사항들은 향후 결정될 것이라 말하겠지만 유치한 말장난일 뿐이다. 때문에 이번 회담결과를 놓고 “연약한 여자가 폭력배에게 당하듯이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완전히 당한 미국외교의 치욕”이란 평가와 더불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미국의 항복문서”라는 극단의 비평까지 등장한 것이다. 


나는 이런 평가나 비평의 옳고 그름을 논할 식견이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 못지않기에 이번 회담에서 논의되고 합의된 사항들을 보며 슬픔과 분노를 참을 수 없노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뜻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고 있는 인물이다. 트럼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한 사업가이며,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여겨지는 일이라면 못할 것이 없는 현실주의자 이다. 어째서 이 같은 두 사람이 서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합의한 결의로 인해 내 조국의 운명이 좌우되어야 하느냐가 내가 분노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만년의 고난과 고통의 역사를 통해 숱한 외침을 받으면서도 지켜온 우리 대한민국이다. 우리민족의 혼을 말살시키기 위해 일제가 36년 간 온갖 악랄하고 비열한 수법을 동원했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동화되지 않고 민족의 정기를 지켰을 뿐 아니라 죽기를 각오하고 그들과 싸워 광복의 기틀까지 마련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로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되기까지 조국을 붉은 이리떼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으며” 뒤 따르는 전우들이 넘어야 할 또 다른 시체가 되면서 싸웠다. 


광주의 어느 산골짜기에서 시인 모윤숙이 발견한 스물다섯 젊은 소위의 시신은 그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오만이 넘는 미국 병사들도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본 일도 없는 사람들이 사는 한국에 와서 이름 모를 이국의 산과 들에서 숨져갔다. 


이렇게 지켜낸 조국 대한민국이 트럼프와 김정은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를 치켜 주며 서명한 한 장 종이 때문에 경제성장에 영향을 받으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 받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우리 모두 정신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며 현 시점에서 “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이다.


믿는 자들이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부짖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우리민족을 사용하셔서 그의 원대한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대한민국을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호해 주시며, 그의 역사 운영의 선두주자로 세우실 것을 확신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