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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죽이’ 김희갑의 딸

 

 초등학교 친구 셋이 단톡방을 만들어 수다를 떠는 일이 잦다. 문명의 혜택(?) 덕분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소소한 일까지 공유하게 된다. 카톡방의 장점은 전화처럼 직접 통화를 안해도 되고, 서로 다른 일을 하면서 편한 시간에 문자로 소통할 수 있어 좋다. 두 친구는 미국 뉴저지와 뉴욕에 살고 있다. 같은 동네에서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으니 함께 나눌 이바구의 폭도 넓은데, 가끔 초등학교 때 기억을 불러온다.


 “혹시, 김계주 기억나니?” “갑자기 계주는 왜?” “아니, 인터넷에서 뭐 좀 찾다가 김계주가 교수가 됐다고…해서” …. 한참 뒤 … “아, 맞네. 옛 모습이 있네.” 그 사이에 인터넷으로 찾아본 모양이다. “혹시, 계주하고 과외공부 같이 했다고 안했나?” “난, 아니고. 같은 반에서 잠깐 짝궁을 했지.” 


 잠시 뒤에 뉴욕 친구가 들어와, “계주가 교수가 됐어? 걔네 집이 시구문시장에 있었잖아. 내가 같이 과외 공부를 했지. 그때는 그리 공부를 잘 하지 못했는데, 지혜숙하고 친했을 거야. 걔네 아버지 굉장히 엄했어”하며 아는 체를 한다. 


 김계주는 초등학교 시절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얼굴도 예쁘고 가냘픈 몸매에 부잣집 딸다운 귀티가 났다. 그것뿐만 아니라 계주 아버지가 유명한 연예인이었는데, 다름아닌 희극배우 김희갑이었다. 그래서 계주는 그 후광까지 합쳐 학교에서 모르는 학생이 없었다. 아마 그런 이유로 55년이 지난 지금도 “아, 계주!” 하며 기억하는 것이다.


 

▲1960년대 초의 신당동 광희문(시구문)의 모습. 성곽을 복원하기 전, 성문 앞에서 배추, 무, 파 등 각종 채소를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40분 정도 거리였다. 집으로 가는 길 중간에 계주네 집이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지금 뉴욕에 살고 있는 경우가 계주 뒤를 따라가자고 해서 주유소집 아들 태진이와 함께 쫓아간 기억이 있다. 


 신당동 시구문에서 동화극장 쪽으로 시구문시장을 지나다 보면 자그마한 언덕이 나오고, 왼쪽에 한옥들이 나란히 있는 골목이 나온다. 그 언저리에 계주의 집이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 배우집은 어떨까? 하는 흥미가 작용한 듯하다. 


 난 그랬지만, 이제 생각하니 집까지 쫓아가자고 했던 경우는 속마음이 좀 달랐던 것 같기도 하다. 문자에 “아버지가 굉장히 엄했다”는 것까지 기억하는 걸 보면,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계주는 인기만큼 놀림도 많았다. 당시 아버지의 별명이 ‘합죽이’였는데 “합죽이 딸”하며 놀리기도 했고, 만화 잘 그리는 민겸이가 아버지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려 친구들끼리 돌려 보며 시시덕거리면 속이 상해 울곤 했다. 다른 학년의 학생들도 쉬는 시간에 계주를 보러 몰려와 수근거리기도 했을 정도다. 

 


 

▲동북국민학교 4학년 때 한성균 담임선생과 함께. 우측 아래에서 위로 세번째 줄, 좌측 세번째가 필자이다. (1966년. 김태진 소장)

 


 계주 아버지, 김희갑은 함경남도 장진에서 태어나 회령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일본 메이지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고 43년에 귀국한다. 1945년 해방을 맞아 월남하여 대동신문 기자를 잠깐 하였다가 46년에 반도극단에 입단하여 영화 <장화홍련전>에 출연하면서 배우 생활을 시작한다. 


 그후 선무공작단으로 종군한 후 <청춘쌍곡선> <복도 많지 뭐요> <오부자>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등 7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자신의 독특한 위치를 구축했다. 


또한 쇼 무대나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여 성대 모사로 옛가요를 불러 인기를 모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실향민들의 한을 호소하는 의식 있는 연예인이었다. 서영춘, 양훈, 양석천, 곽규석, 구봉서 등과 희극 배우의 토대를 닦았고, 1993년 5월에 동맥경화증으로 투병하다 향년 71세로 고인이 된다.

 


 

▲원로 희극배우 김희갑

 

 

 ‘합죽이 딸’이라며 놀림받던 동창생이 인터넷에 이름을 치면 찾을 정도로 명사가 되었다는 것도 기쁘고, 카톡을 통해 무궁무진한 정보도 기억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힘든 일 많은 세상사지만, 가끔 옛추억을 꺼내보는 재미도 늘그막의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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