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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하심정(抑何心情)

 

 

 해마다 이맘때면 울긋불긋 단장하느라 분주해진 숲속은 만산홍엽(滿山紅葉)이다. 무성하게 자라던 풀잎들은 허리를 바짝 수그렸다. 토론토 근교(近郊)에 자리한 ‘Pick your own’과수원에서 잘 익은 햇사과를 골라 바구니에 담는 재미도 새로웠지만 한입 베어 문 새콤달콤한 그 맛이 참 좋았다. 세상사 ‘어’ 다르고 ‘아’ 다르다(於異阿異) 하지만, 자연은 계절 따라 경외심(敬畏心)을 느끼게 해준 주말나들이였다.


 세계 경제를 견인해 온 미국과 유럽의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제조업 체감경기는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동안 어렴풋이 제기됐던 위기의 징후들이 경제지표로 확인되면서 지난 10월2일 뉴욕증시의 주요 3대 주가지수(다우존스30•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나스닥)는 이틀 새 급락했다.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에 먹구름을 드리운 주요 원인으로 ‘R의 공포’를 손꼽는데 주저하질 않는다.


 중국과 일본의 경제도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중국은 올해 6%대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한국도 마땅한 ‘출구’가 없다고 한다. 일본의 대형 제조업 체감경기 지표는 6년 만에 최저를 기록한데다 소비세 인상까지 겹쳐서 경기침체가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S&P는 지난 1일 석 달 만에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1.8%로 재조정했다. 미•중 무역 분쟁으로 수출 성장세가 둔화돼 전망이 어둡다는 언급이다. 이밖에 다른 주요기관들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연초 대비 2% 초•중반에서 1%후반까지 자꾸 낮추는 분위기다.


 가축전염병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해 방역당국은 눈코 뜰 새 없을 테다. 양돈농가는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아야겠다. 어느 누군가는 살(殺)처분 현장에 뛰어들어야하는 걸 알고 있지만, 현장에서 일어나는 광경과 상황은 눈 감으면 돼지 비명소리와 몸부림치는 그 모습이 잊히지 않고 뒤숭숭한 악몽으로 남아 고통스럽게 할는지 모른다. 


 관리가 어려운 야생 멧돼지(Wild Boar)에 바이러스가 만연해질 경우 토착화(土着化) 우려도 커지는 만큼 강력한 예방대책이 필요하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했다.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더 심한 가운데 겪어야하는 어려움은 전문가 아니더라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강물의 맑고 흐림을 어찌 참견(參見)하랴마는 솔바람소리 들으며 허유(許由)를 비웃었다는 옛 시인의 심정을 떠올려봄직도 하다. 북풍한설(北風寒雪)에 움츠려가며 옷깃을 치켜세워야 마땅하겠지만, 사람들은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다가설 것을 믿어마지 않는다.


 지혜로운 농부는 고추밭 곁에 고구마를 심으면 알찬 수확을 기대할 수 없음을 알고 있듯이 일반국민들이 누려야 마땅할 자유는 그저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순국(殉國)하신 선열(先烈)에게 부끄러운 후손이어선 아니 될 일이다. 


 혹세무민(惑世誣民),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자유를 잃고 난 뒤 맛보기로 조금 달라고 해봤댔자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쟁취(爭取)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누리고 유지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로움이다.


 일반시민들은 지지집회와 반대집회가 번갈아 열리는 모습을 보며 현 상황을 지지층 결집에 활용하는 정치권의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비춰진다. ‘도대체 무슨 심정으로 그러하는지 알 수 없음’을 두고 우리들은 억하심정(抑何心情)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집회주최측은 연인원 기준 최대 인파가 운집했다는 주장을 하고, 의견을 달리하는 또 다른 촛불집회에서도 구름처럼 인파가 몰렸다고 자기 진영논리와 지지(支持)세력을 과시하려든다.


 무릇 세상일이란 원인에 결과가 따르는 것인 줄로 안다. 집회에 몇 명이 모였는지는 별다른 의미 없는 숫자 싸움뿐일 터에 여야(與野)는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부각시키기 바쁘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외친 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검찰 개혁’이었고, 다른 한편은 ‘옳고 그름의 선택을 위한 주장’인데 정치권의 태도는 사안(事案)의 본질을 흐리고 왜곡(歪曲)시켜 현재와 같은 이전투구(泥田鬪狗)와 국론분열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지적하고 싶다.


‘우리 가문은 공융(孔融)의 집안이 아니거늘, 어찌 자리에 손님이 가득하겠는가. 정자(亭子) 이름 솔음(率飮)이라 붙였는데, 이웃 마을 사람들이 날마다 들른다네.’ (“吾門非北海 安得客滿坐 有亭名率飮 隣里日相過”) [왕십붕(王十朋)/南宋, <솔음정십절(率飮亭十絶) (其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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