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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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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십자가의 의의(意義)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던 그분께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그분께서, 바로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육신이 되시어 몸소 세상을 지으신 그분께서 자기 땅에 오셨으나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하였고 사람 가운데 거하셨으나 그분의 백성들은 그분을 배척하였다. 마침내 십자가상에서 극도의 고통과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셨다.


 인간의 죄값을 치를만한 이가 아무도 없기에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가 친히 자신을 대속 제물로 드리셨던 것이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음에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 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빌 2:8).


 죄인들을 구원할 구주, 불의한 자들을 대신하여 의를 세워야 할 구주,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으셔야 할 구주로 세우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태초부터 작정하셨던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께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요 10:17-18). 


 죽음이란 자신의 죄 값으로 받게 되는 형벌이다. 그러나 주님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으시며 타락한 인성을 취하지도 아니하셨을 뿐 아니라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도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거짓도 없으시며 (벧전 2:22),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셨다. 이점에서 거룩하신 주님 흠 없고 점 없는 분 (벧전 1:19)의 죽으심은 부당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죄성을 갖고 태어난 죄인으로 모두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상의 제물로 피를 흘리며 죽음을 맞이하셨던 것이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으리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피는 생명의 대속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모두 알아야 할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들은 죄인들 이여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갈 수가 없는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훌륭한 성품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불쌍한 사람을 위한 구제사업 또는 자선사업을 하며 좋은 일을 위하여 사회에 거액을 기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우리의 영혼 사이에 죄의 담이 가로막혀 있는 한 헛수고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지은바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눈보다 희게 씻기어지기 전에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죄 사함 받고 의로워지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길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하늘과 땅 온 세상이 하나님의 것이며 세상만물과 세상화복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께서 독생자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사악하고 무능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처참히 돌아가시다니! 그의 사랑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단지 은혜라고 표현할 수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시면서 하신 일곱 말씀을 음미하면서 예수님께서 신성과 인성 사이를 오고 가시면서 받으신 고뇌와 고통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사명을 완수하시고는 승리와 만족을 보여주신 주님을 생각할 때 영혼 구원은 물론 이 세상 사는 동안 어떠한 경우에도 극복하며 승리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의 죄가 얼마나 끔직하고 큰 것인가를 알지 못하고 영광의 주님인 그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도 모르면서 계속 죄를 짓고 살아가는 이 엄청난 비극이 아직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서글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고 계시면서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다는 재림의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 이니라” (롬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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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6
금송아지 숭배

 

 토론토 영락교회는 재적 교인 수가 4천5백여 명으로 정확한 교회출석 인원은 알 수 없지만 해외 한인교형 교회이다. 송민호 담임 목사님은 매년 성경일독 표에 의해 성경을 읽도록 권장하고 계시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매년 성경을 완독하고 상품까지 받고 있다. 목사님도 성경 읽기에 동참하여 읽어가는 성경 내용 중에서 매주 설교제목을 정하여 설교함으로써 능률적으로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한다. 


 또한 성경대학이란 과정을 설치하여 평일에는 부목사님들과 함께 성경의 이사야서와 같은 전문 분야별로 교인들을 인도하고 있어 교회의 사명을 다 하고 있다. 년 초에 창세기가 끝나고 출애굽기를 읽고 있는 중에 금송아지 숭배라는 제목의 글을 쓰기로 작심 하였는데 어느 날 목사님의 설교제목이 금송아지 사건으로 설교를 하시기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출애굽기에는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이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은 사역자들의 놀라운 내용이 많은데 목사님과 나의 제목이 동일할까? 느끼기도 하였다. 목사님은 평생 목회자로 신학을 전공한 신학박사로써의 말씀이기에 신앙의 차이가 엄청나게 다르지만 평신도로 느낀 감회를 모든 주석가들의 내용을 포함하여 솔직히 피력하고자 한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 하시기를 이방에서 4백여 년간 종살이 노예생활로부터 너의 후손들을 해방시키어 가나안 땅으로 구출하신다고 언약 하셨다.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 모세와 형 아론을 쓰셔서 유대민족을 구출하는 과정이 성경에 출애굽기의 내용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유대민족을 구출하는데 말 잘한다는 형 아론과 가기 싫어하는 동생 모세를 불러 쓰셨는가? 왜 아론은 출애굽 과정에서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여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순종 했는데 어떻게 금송아지를 직접 만들고 제단까지 쌓으면서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 이라고까지 공포할 수가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바로 왕을 강퍅하게 하시고 모세와 아론과의 담판에서 10번의 마지막 이적인 어린양의 피로 인한 유월절 사건을 통해 유대민족을 광야까지 탈출시킨 하나님께서 끔직한 금송아지 숭배사건이 발생될 것을 모르셨단 말인가? 끝까지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거역한 백성을 3천명이나 죽이면서 왜 아론은 죽이지 않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백성을 모두 죽이기로 결심 하셨으나 과연 모세의 중보기도로 포기 하셨는가? 


 위와 같이 5가지의 금송아지 숭배에 따른 의문을 갖게 된 것은 나의 믿음에 따른 좁은 견해이다. 따라서 여러 주석가들의 해석을 살펴보면 만일 아론이 백성들이 요구하는 금송아지 제작을 거부할 시는 돌에 맞아 죽을 것을 두려워하였다는 설, 또한 백성들에게 모든 금붙이를 가져오라고 하면 백성들은 금붙이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금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 하였다는 설, 또한 만일 금송아지 제작을 거부한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을 예방 하였다는 설, 또한 위기를 당할 때는 믿음을 떠나 육신적인 욕망으로 돌아가 믿음이 퇴보되어 우상까지 숭배하게 된다는 설이 있다.


 나의 믿음의 수준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를 아니하여 금송아지 사건은 이미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을 창조 하시고 관리 지도하시기 때문에 이에 모든 피조물들을 쓰고 계시다. 사람을 쓰실 때에는 의인이거나 의인이 아니거나, 선인이거나 악인이거나, 진실한자이거나 위선자이거나, 신자이거나 불신자이거나 구분없이 사용 하신다. 심지어는 사탄까지 쓰고 계시다.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유대민족을 탈출시키기 위해 모세와 아론을 쓰신 것이다.


 예로써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온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씀하신 욥을 사탄을 사용하여 확인토록 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 가롯 유다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아시면서 제자를 삼으셨으며, 또한 예수님이 믿었던 제자 베드로가 세 번이나 주님을 배반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의 수제자 “이그나티우수”는 나이 80세를 지나 순교 당할 때 재판관이 “네가 예수를 배반 하라” 하니 대답하기를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믿었는데 그는 한 번도 나를 배반하지 않으셨는데 어찌 내가 그를 배반 하겠는가? 마침내 “사자여 빨리 내 허벅다리를 깨물어라. 그리고 내 갈비뼈를 파헤쳐라, 허파를 끌어내고 심장을 끌어내라. 속히 내 사랑하는 예수님 앞으로 보내다오” 하면서 한 번도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고 순교했다는 기록을 인용 하였다.


 하물며 하나님의 거대한 출애굽 사건에 쓰임 받은 아론이 백성으로부터 돌에 맞아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감히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 의사에 따라 금송아지 우상숭배를 자행 하였을까? 생각 하였다. 이는 나만이 느낀 생각일 뿐임을 분명히 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과정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통해 인간의 생사를 주관 하시는 심판자이시며 구원자이심을 온 세상에 만민에게 보여 주셨다. 또한 광야에서 금송아지 사건을 통해 끝까지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을 즉시 전멸시키시려고 하셨지마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한 유대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 하신다는 언약을 지키시기 위하여 가나안 땅에 거의 이르러서 백성들을 모두 죽이시고 그들의 후손들만이 가나안 땅으로 인도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언약을 지키시며 죄지은 자들은 반드시 심판 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다. 따라서 우리 믿는 자들은 항상 겸손하게 순종하며 구원으로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단4: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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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4
요셉의 지혜

 
 

 육의 사람은 육의 생각을 하고 영의 사람은 영의 생각을 하게 된다. 육의 생각은 육적인 지식을 얻게 되고 영의 생각은 영적인 지혜를 얻게 된다. 또한 육의 사람은 대체로 악의 영에 의해 지배를 받지만 영의 사람은 온전한 성령의 영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된다. 


 성경을 통해 이에 따른 요셉의 경우를 보면 요셉은 매우 영적인 지혜자이다. 살펴보면 요셉의 부친 야곱은 자기 외삼촌 라반의 둘째 딸 라헬에 반하여 결혼하고 두 아들을 두었으니 요셉과 베냐민이다. 야곱의 아들 순으로는 요셉이 열 한 번째이고 베냐민이 막내가 된다. 야곱이 라헬을 매우 사랑하였으므로 두 아들 역시 사랑을 받고 살았다. 


 야곱의 편애에 따라 형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로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었다. 이유인즉 요셉이 17세 때 순진해서 부모와 형들 앞에서 꿈꾼 내용을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 했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해와 달은 부모를, 열한 별은 형제들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요셉을 큰 지혜의 지도자로 쓰실 것을 예시한 것이다.


 요셉에 대한 형들의 미움은 꿈보다는 야곱이 요셉 형제에 대한 편애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벤자민은 어머니 라헬의 난산으로 죽고 어머니도 없이 자라났기 때문에 더 편애를 받았을 것이다. 이로 인해 형들은 요셉을 마침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은 20에 팔았고 상인들은 애굽의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다. 


 결국은 야곱의 편애로 요셉이 애굽에 거주하게 된 동기가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조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에게 축복을 내려 후손이 번성되나 네 자손이 이방에 객이 되어 괴로움을 받겠으나 그 후 네 자손이 섬기던 나라를 내가 징벌 하고 네 자손이 돌아온다고 예언 하셨기 때문에 이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 요셉을 먼저 이방 애굽으로 보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영감(靈感)과 영력(靈力)이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 요셉은 어려운 역경에 처할 때마다 영의 지혜로 극복하기만 하면 더욱 더 형통 하였다. 소년시절부터 요셉은 증조부 아브라함, 조부 이삭, 그리고 아버지 야곱으로 이어온 하나님과 함께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역사 하시는 것을 몸소 느끼며 성장하였기에 훌륭한 영의 지혜자가 되었다.


 돈으로 요셉을 종으로 삼은 보디발은 요셉과 함께 하면서 가정이 형통하여 감으로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 모든 소유를 위탁까지 하였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유혹하고 동침을 요구하나 이를 뿌리친 요셉을 오히려 모략하여 요셉은 죄인으로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옥에 투옥 되게 되었다. 


 그러나 요셉은 주인 아내의 모략에 대해 일체 변명 없이 이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실 것을 믿고 인내하며 현재 자기가 처한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였다. 2년 후 바로가 꿈을 꾸었으나 해몽할 자가 없어 근심 중에 감옥의 히브리 청년이 해몽을 잘한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을 불러 명확한 해몽을 들은 왕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임명 하였다. 


 요셉은 자기의 해몽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대답한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성경에서 요셉이 하나님에 대한 첫 번째 신앙심의 표현이라고 볼 수가 있다. 요셉이 총리가 된 후 애굽에는 7년간 풍년이 들고 그 후 7년의 흉년이 들것을 왕의 꿈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로 알고 풍년 때 엄청난 곡식을 저장하여 흉년에 대비한 것이 애굽과 조국인 가나안은 물론 인접 국가까지 모든 백성이 아사 직전에 생명을 지켜왔던 것이다.


 따라서 야곱도 요셉의 형들을 애굽에 보내어 곡식을 사오라고 애굽으로 보내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마음의 감동의 눈물 없이는 느낄 수 없는 요셉의 영적 지혜에 감회를 느꼈다.


 요셉은 곡식을 사러 온 형들을 알고 있으나 모르는 척하고 어디서 왔느냐? 물으니 형제들은 가나안에서 왔다고 대답하니 요셉은 아니다 너희는 정탐꾼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다고 반박 하였다. 이는 그 동안의 고향부모, 동복인 동생 베냐민 등 모든 가족의 형편을 알려는 계획적인 것이었다. 


 그 후에 너희 막내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들은 여기서 돌아가지 못 한다고 하면서 형제들을 3일간 가두었다. 3일 후 너희 한 사람만 옥에 가두고 너희들은 곡식을 가지고 가서 집안에 굶주림을 구하고 막내아들을 데려 오라고 하였다. 요셉은 형들에게서 잠시 떠나 슬피 울고 시므온 한 명을 옥에 가두고 가나안으로 보냈다.


 돌아온 형들이 아버지 야곱에게 애굽에서 일어난 현황을 보고하는 가운데 너희 막내를 데리고 오면 너희는 정탐꾼이 아니니 이 나라와 계속 무역한다는 말을 듣고 야곱은 슬퍼한 가운데 ”막내는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는데 만일 막내까지 죽게 되면 너희들이 내 흰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는 것이다”라고 매우 한탄 하였다. 


 그럼에도 가나안 땅의 기근이 심하니 하는 수 없이 야곱은 하나님께 형제들과 베냐민을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허락 하였다. 마침내 돌아온 형들이 베냐민을 데리고 요셉 앞에 서니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종들에게 나의 집에서 모두 함께 정오에 함께 먹는다고 지시 하였다. 


 요셉이 집에 오니 형들이 땅에 엎드려 절하니 요셉이 너희 아버지도 안녕 하시냐? 아직도 생존해 계시냐고 물었다. 그 후 그의 청지기에게 명하여 형제들 중 베냐민 양식자루 속에 은잔을 넣고 돌려보내게 하고 멀리 떠난 후 청지기에게 이들을 잡고 조사하게 하였다. 


 어찌하여 너희가 선을 악으로 갚느냐? 주인의 은잔을 왜 도둑질 하였느냐? 문책하니 형들은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고 하면서 자루마다 조사하여 만일 은잔이 나오는 자는 죽이고 우리들은 내 주인의 종이 된다고 말하였다. 은잔이 베냐민 자루에서 발견되니 요셉은 잔이 발견된 자만이 나의 종이 되고 너희들만 너희 아버지께 돌아가라. 형제들은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묶여 있거늘 이제 우리들만 돌아가면 아버지께서 죽게 되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아이는 보내고 대신 우리들 중에서 종이 되겠노라고 간청 하였다. 


 여기서 요셉의 지혜를 보면 본인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살 때에 형들의 미움을 받은 것을 회상 하면서 반드시 자기 동생도 똑같이 형들에게서 미움을 받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고, 또한 동생에 대한 형들의 의리를 보고자 하였다. 


 은잔이 발견되면 죽이라고 약속한 은잔이 동생에게서 발견 되었는데도 죽이기를 거부하고 대신 종이 되기를 요구하며 동생의 생명을 구하는 형제간의 우의와 아버지에 대한 효심을 발견한 후에야 요셉이 형들에게 자기를 밝히는데 이르렀다.


 이에 형들은 반가운 것보다는 요셉이 자기들에 대한 복수의 두려움이 앞섰다. 이를 알고 요셉은 나를 이리로 보내신 것은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전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영적인 지혜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말 할 수가 없다. 매우 감격적이다. 이후 요셉이 아버지를 위시하여 형제가족들 66명을 애굽으로 초청하였으니 요셉 식구 4명을 합하여 70명의 후손이 430년간 애굽에서 살면서 근 2백만 명의 이스라엘 민족으로 번성 하였다.


 하나님께서 최초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네 씨가 이방에서 400년간 노예로 살고 가나안 땅으로 다시 데리고 오겠다는 말씀이 모세의 지도자를 사용 하셔서 이루게 된 것이다. 이 민족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선민으로 삼으셔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계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각각의 재능을 주어 만드셨으나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피조물들을 총 동원 하셔서 역사하고 계시다. 그 중 인간들을 사용하시는 경우를 보면 야곱처럼 모태의 잉태 전부터 사용하시기로 계획 하셨고 태어난 사람 중에는 요셉처럼 선택되어 단련시키어 사용 하셨음을 본다. 


 쓰임을 받는 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쓰임 받은 자들은 그의 재능이나 능력에 따른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택 받아 쓰임을 받는 자들은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한 명의 영적 지도자일지라도 국가와 민족 그리고 온 세계의 안녕과 평화가 이루어질 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서 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인내하고 순종하여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의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내려 주신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니라” (롬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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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8
성경에서 느낀 감회

 

 매년 성경을 읽고 있지마는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회가 다르다. 2017년 읽기 시작한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에 관한 내용에서 느낀 감회를 피력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불러 쓰시기 위해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말씀 하셨다. 거기서 너에게 복을 주어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하게 하신다고 약속 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내 사라와 조카 롯과 함께 75세 때 하란을 떠나 가나안 족속이 사는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가나안 땅에 도착하자마자 그 땅을 네 자손에게 주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과정을 인간들이 알 수는 없지만 왜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하는 족속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조차 모르는 아브람을 부르셔서 축복 하셨는가? 이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제일 사랑 하셨으나 사탄의 유혹으로 인간이 죄를 짓고 죄로 인한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대 역사에 쓰시기 위해 부르셨을 것이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갈대인의 우르에서 이끌어낸 후 가나안 땅의 소유자로 만드시고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터이니 이후로는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하고 또한 아내 사래에게는 아들을 낳아주게 하여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할 터이니 그의 이름을 사라 라고 말씀 하셨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에게 축복을 내려 후손이 번성되나 네 자손이 이방에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며 그들은 4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겠고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하겠으며 그 후 네 자손이 돌아온다고 예언 하셨다. 


 이 때에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사용 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리라. 하나님께서 수차에 걸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이 100세 때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이삭 이라 하였다. 이삭만이 하나님의 씨로 후손이 번성하여 기업을 이어 받을 자라고 말씀 하셨다.


 아들 이삭이 장성하매 아브라함은 이삭의 결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들은 자식들의 결혼에 마음을 쓰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최초 인간 아담을 만드시고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돕는 배필로 여자 하와를 만드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그러나 오히려 여자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가정이 와해되고 세상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내용인즉 남편을 도우라는 배필 하와가 하나님께서 동산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 정녕코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이를 남편 아담에게 까지 거역하게 하였다. 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로 가정을 만들어 주셨는가? 아담의 가정이 죄를 짓고 세상으로 보내신 후 아담의 후손들도 땅에 충만하게 번성하게 하신 것은 당초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 피조물들이 땅에 충만케 하리라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로 가정을 만들어 주셨는가? 이는 사랑하는 인간들만이 죄를 짓고 죽을 수밖에 없음으로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이시다.


 우리 인간들도 자녀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녀들이 결혼 후 가정이 파기 된다면 결혼에 주저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가정이 와해될 것을 아시고 아담과 하와를 결합하여 가정을 이루시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기에 아담의 가정의 와해로 인간이 영생할 수 있는 길을 만드심으로 선을 이루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들의 결혼 후 이혼율이 늘어나고 황혼이혼까지 증가하고 있고 아예 독신자가 늘어나 윤리 도덕상 사회와 국가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허망의 욕심에서 결혼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결혼의 관심과 우리 평민들의 자녀결혼의 관심을 비교해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씨인 이삭에서 후손이 번성하여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이룰 자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는 것이나 우리 평민들의 자녀결혼의 관심은 먼저 행복한 가정을 누리며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가나안 땅을 저주 하고 그 땅의 거주족속을 추방하여 너의 씨에게 기업으로 주어 너의 씨가 번성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라함은 늘 상기하며 며느리를 가나안의 거주하는 족속에서 구하지 아니하기로 결심했다. 


 자기 늙은 종을 불러 씨가 번성한다는 관습에 따라 자기 허벅지에 손을 넣게 하고 너는 내 고향 내 족속에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지시하니 종이 매우 무거운 부담을 느끼고 걱정하는 모습에서 만일 고향의 여자가 결혼은 하되 신랑이 이곳에 와서 살라고 하면 어떻게 하리까? 주인께 여쭈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에서 떠나라고 하셨는데 그럴 수는 없으니 없는 일로 하라.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역사 하셔서 이미 하나님의 천사를 그곳에 보내서 며느리를 택하도록 하셨음을 알고 있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하고 계심을 알 수가 있다.


 고향에서 며느리 리부가를 택하고 아브라함이 죽으니 이삭에서 에서와 야곱 쌍둥이가 태어났다. 리브가가 잉태 중에서부터 서로 싸우는지라. 여호와께 여쭈니 두 국민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 하셨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태속부터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다 하고 태어난 후에는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 하였다고 언급 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의 편애요 이삭과 리브가의 편애라고 할 수가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에서와 야곱이 잉태 전부터 각각의 재능을 주시고 이미 야곱을 택하여 쓰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편애로 표현하고 이삭과 리브가의 편애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영적 지혜의 행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편애 하겠는가? 일반 부모도 효도하는 자녀에게 고마움이 있고 불효 자녀에게는 섭섭한 마음은 있을망정 미워할 수가 있겠는가? 어느 손가락이라도 다치면 온 몸이 아픈 것을 느끼는 것 같이 자녀들을 모두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권을 위임 받고 야곱에게 축복하여야 하는데 형 에서 앞에서 동생에게 축복 할 수도 없고 하여 에서를 사냥을 보내고 야곱에게 축복을 하였다. 하나님과 영감을 함께하는 이삭이 영감의 지혜를 부자간, 형제간, 부부간의 관계를 원만히 하고 야곱에게 축복하고 야곱을 조부와 어머니의 고향으로 보내어 두 형제를 헤어지게 하였다. 


 이것이 모두가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라고 본인은 생각 하였다. 왜냐하면 이삭은 사냥한 것의 별미를 먹고 싶다고 에서를 사냥을 보내고 돌아오는 대로 에서를 축복 하겠다고 말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리브가가 가축의 염소로 별미를 만들고 털 많은 에서와 같게 염소의 털을 야곱에게 붙이고 에서의 옷을 입혀 야곱이 축복을 받게 하였다.


 하나님과 영감을 함께하는 이삭이 모르고 행한 일이라고 볼 수가 없다. 사냥해서 얻은 염소의 별미의 맛은 가축의 염소의 진미와는 비교가 될 수 없도록 맛이 있다. 그래서 이삭이 자주 에서에게 사냥을 하라고 권했던 것이다.


 이를 모를 이가 없고 염소의 털과 에서의 털을 어떻게 분간을 못하며 자기자식의 음성과 숨소리와 냄새를 맡고도 알 수가 있는데 이는 이삭이 에서는 동생에게 가뜩이나 장자 권을 무의식 속에 빼앗긴 분노가 있고 동생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는 것이 저주를 받을 것 같은 입장인데 형제를 놓고 동생을 축복 할 수가 있는가? 만일 형제 앞에서 동생에게 축복 한다면 에서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매우 곤란한 입장이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의한 이삭의 지혜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두 민족을 형성 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몸종 하갈로부터 이스마엘이 태어나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리라고 말씀 하셨다. 


 이 민족이 오늘날 아랍 국가 들이다. 그러나 너의 아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약속의 민족이 된다고 하셨다. 축복 받은 야곱은 간교하기가 그지없다. 야곱을 하란 외삼촌 라반에게 보내어 2십여 년간 연단을 시키셨다. 거기서 야곱은 고난의 시기를 보내면서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걸어온 야곱을 하나님께서 크게 쓰셨다.


 외삼촌 라반의 두 딸과 두 딸의 몸종으로부터 즉 4명의 여자에게서 12지파의 민족이 오늘날의 이스라엘 국가이다. 세상 종말에는 이 두 민족에 의해 온 세상 민족들이 좌우되어 현 세상을 끝나는데 활용 될 것이다. 


 마침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유다 지파에서 주 예수그리스도가 태어나 이 세상에 오시셔서 십자가 상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 하신 후 승천 하셨으나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구세주로 다시 세상에 재림 하셔서 새 하늘 새 땅의 영원한 하늘나라를 세우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대 역사의 막을 내리시리라. 이는 오직 나만의 환상의 감회임을 분명히 한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 보다 좋으니라.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시119: 7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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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6
지도자의 사명과 역할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시고 위대 하시기에 그 큰 우주를 만드셨는가? 하나님께서 얼마나 전능 하시기에 그 많은 천지만물을 만드시면서 종류마다 그 하나하나의 창조하신 이유와 목적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창조 시부터 오늘날까지 관리 지배하고 계시는가?


 창조물마다 재능과 기능을 주셨다. 인간에게는 재능을, 기타 창조물에게는 기능을 주시고는 온 만물이 재능과 기능이 연합한 유기적인 조직체를 만드시고 우주만물의 지도자가 되셨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인간만을 자기 형상대로 만드시고 자신의 영을 호흡으로 불어 넣으시어 영원히 함께 하시면서 인간으로부터 경배와 찬양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반면 인간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셨다. 특별히 인간에게만 부여하신 각자의 재능을 통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니라”(롬8: 28). 하나님께서는 최초인간 아담과 배필자 하와를 만드시고 최초 가정을 형성하게 하시고 아담을 최초 인간의 지도자로 세우셨다. 여기서 배필이란 서로 협력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써 지도자의 사명과 역할을 다 하지 못하여 가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와해됨으로써 에덴동산에서 세상으로 쫓겨났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 중 인간이 제일 사악한 것을 알고 계시지만 그래도 제일 사랑하셔서 이 사악한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살이 찢기며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신 십자가 사건은 창세전부터 계획 하시고 실천에 옮기신 것이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영과 함께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사람들은 육신이 되어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고 말씀 하셨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 사악해져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그들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기만 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 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까지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도 그리 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 함이라 하시니라”(창6- 6-7)라고 성경은 언급하고 있다. 


 마침내 노아의 가족을 제외하고 홍수로 모든 피조물들을 쓸어 버리셨다. 그 후 노아의 후손들이 번성하여 족속을 이루어 땅의 각 백성들로 나뉘어 족장의 지도자를 세워 살게 되었다. 그럼에도 족장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도전하기 위한 바벨탑 사건으로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알아듣지도 못하게 하시고는 온 지면에 흩어져 살게 하셨다. 온 인류를 세상에 흩으신 하나님께서는 우상족속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아브람을 새 지도자로 세우시기 위해 고향 하란 에서 가나안 땅으로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축복하셔서 후손들이 번성하여 그 뿌리에서 유대민족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그 후 400년간 애굽에서 노예로 종살이 하게 만드시고 이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셨다.


 출애굽 과정에서 이적과 기적을 보이시며 특히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인간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심으로써 인간들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심판자이시며 구원자이심을 온 세상 만민에게 알리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예증이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통치하는 지도자로써 하나님의 권위는 의로우시며 공평하고 거짓이 없으신 분이시다.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지도자로써의 권위와 사명의 목적과 역할을 비교해 보면 하나님은 자기를 희생 하시면서까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영적 세상에 사명의 목적이 있으나 인간의 지도자들은 하나님과 같은 의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세상에서 사명의 목적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역할을 보면 세상의 모든 지도자들을 세우시되 악인이나 선인이나 위선자나 죄인이나 사탄까지도 불문하고 구별없이 지도자를 세우셔서 지배 하시며 통치하고 계시다. 예로 사탄마귀로 하여금 인간에게 죄를 짓게 하고 그로 인해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셔서 인간을 구원하게 하셨다. 완악한 바로 왕을 강퍅하게 하시고 이적과 기적을 통한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보여 주시면서 유대민족을 구원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의 지도자를 하나님이 세워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든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른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른 자들은 심판을 자초 하리라”(롬13: 1-2)라고 까지 언급 하였다.


 이를 살펴보면 좋은 지도자라면 순종하지 않을 아무런 이유가 없으나 그러나 세상에 가득 차있는 잘못된 권위의 지도자들 즉 권위주의자, 위선자, 독재자, 불의한 지도자들에게도 순종하라는 것은 역설적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가 선하든 악하든 불문하고 지도자의 권위와 질서가 무너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상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의 권위, 아버지의 권위, 선생의 권위, 정치인의 권위, 종교지도자의 권위가 못 마땅해서 거부한다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일국의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국가의 지도자가 없어 통제가 되지 않는다면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대통령의 잘못이 있으면 법에 따라 차기 대통령이 탄생할 때까지 기다린 후에 처벌하면 되는 것이다. 영적 세계에서도 동일하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 권위와 성경에 대한 절대 권위가 무너지면 우리의 신앙은 송두리째 무너진다. 


 자연과학의 세계를 보면 은하계와 우주계와 태양계가 자연의 질서와 원리가 없다면 언제 어느 때 위성이 충돌할지 모른다. 그러나 창조 이래로 한 번도 우주계는 사고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통치의 질서 때문이다. 최종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세계와 우주를 다스리시는 지도자이시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을 창조 하시고 지배 하시는 전지전능 하시고 무소 부재하신 공의로운 분이시다.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교육과 훈련 및 책망으로 인도 하시면서 자비와 긍휼로 오래 참으시며 인도하고 계시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인간들에게는 죄와 지옥과 형벌과 심판으로 통치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신 공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지만 반면 불의에는 매우 무서운 분이시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 하시고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항상 모든 지도자를 세우시고 통치하고 계심을 알 수가 있다.


 첫 인간 아담으로 육체적 생명인 산 영의 지도자로 세우시고 마지막 예수그리스도(마지막 아담)로 생명을 주는 영의 지도자로 세우셨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의 순종 여부에 따라 죄로 인한 죽음으로 끝나느냐 아니면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아 영생하느냐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의 진리를 발견 할 수가 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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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하나님의 말씀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독생자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또한 하나님이시다. 독생자 예수님은 본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생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십자가 상에서 죽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 상에서 죽이시고 3일만에 부활시키시어 승천케 하신 십자가 사건을 믿기만 하면 지은 죄를 사함 받고 우리들도 예수님과 같이 죽은 후 다시 살아나서 하늘에 올라가 예수님과 함께 영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함으로써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확실히 알게 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계획과 내용을 단계적 수준에 따라 시대적으로, 순서적으로, 체계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을 통해 인간들에게 가르쳐 주고 계시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이 아니시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스스로 있는자”라고 말씀 하셨다. 언제부터 스스로 계셨는지? 그 시기는 피조물들로써는 어느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시간적인 관념에서도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천 년을 하루같이 여기시지만 인간들은 하루를 천년 같이 보내고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초월 하셨지만 인간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짓고 하나님과 헤어져 사탄 마귀의 종으로 사망의 공포와 험한 세상에서 고통과 고난으로 불안하게 두려운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하루가 천년 같이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수천 년부터 곧 세상에 다시 오시겠다는 예수님의 재림이 오늘날까지 오시지 않고 계시니 인간들로서 얼마나 지루한가?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시다가 어느 때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세상만물을 만드셨는데 그 만물들이 무엇이며 각각 얼마나 되는지? 인간들은 알 수가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만물 하나하나마다 종류대로 만드신 이유와 목적 그리고 운용하실 계획까지 이미 다 세우시고 순서에 따라 역사하고 계시다. 따라서 십자가 상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도 모두 계획하고 계셨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고 계시는 모든 일들을 계속 인간들에게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된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백성들에게 교육과 훈련 및 책망을 통해서 온전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함으로써 최종적으로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한 구원을 이루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 16-17).


 하나님께서 천지만물들을 창조 하시는 역사가운데 사람을 창조 하시는 과정을 살펴보면 인간들에게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영을 호흡으로 불어 넣어 주셨다. 이는 인간과 함께 영원히 함께 하시면서 인간으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고 반면에 인간을 하나님의 유일한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들을 인간으로 하여금 대리 관리 지배케 하셨으니 이는 또한 하나님에게 순종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피조물들을 지배관리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육과 영을 강건하게 유지하여야 하기 때문에 성경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뜻은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육을 지배하여 죄짓지 말고 항상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천사를 창조하신 경우를 보면 천사는 하늘에 있는 영적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에 (시148: 2,5 참조) 몸과 영혼을 가진 사람과는 달리 사람보다 높은 수준이다 (히2: 7). 하나님께서 천사는 하나님을 경배 찬양하며 사자(使者) 인종으로, 인간들은 피조물 중 제일 사랑하는 대상으로 삼으시고 최 측근으로 함께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천사와 인간이 제일 먼저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하였으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따라서 천사는 타락하여 사탄마귀가 되고 인간은 타락하여 죄인이 되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사탄은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하는 영적 전쟁을 위해서 인간들을 유혹하여 죄인으로 타락시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는 회개의 구원은 물론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영원한 불 연못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이미 결정하시고 인간에게는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여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구원을 끝까지 거부하는 인간들은 사탄마귀와 함께 영원한 불 연못 지옥에 갈 것이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되어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구원을 예언 하셨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완성 하셨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죄 짓고 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모아 놓은 책으로 그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구원의 길로 완성 시키셨으므로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에 항상 깨어 있어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죄 지은 인간들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루 속히 죄 속에서 빠져 나와야 하나님께 구원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죄와 지옥과 형벌과 심판에 관계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순종하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유월절에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죽음에서 면하였던 것과 같이 십자가 상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흘린 피로 죄를 씻고 사망에서 영생으로 구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에게 부활 하시고 승천 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또 다시 이 세상으로 속히 보내 주시옵소서 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 하리라”(요8: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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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9
믿음 속의 소망

 

 믿음 속에 소망이 있고 소망 속에 믿음이 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소망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은 불신과 절망, 거짓과 위선, 불법과 불의로 인해서 진실과 저의, 겸손과 신뢰, 용서와 사랑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눈이 있어도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님이 낫고, 귀가 있어 들어서는 안될 것을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귀머거리가 낫고, 입이 있어 말해서는 안될 것을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벙어리가 오히려 나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도록 만드셨기에 인간들이 이를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이 점점 거짓과 위선으로 인간이 인간을 경계하며 사랑하고 신뢰 할 수 없는 불신의 관계로 인간들이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한서에 “호랑이를 그리데 가죽은 그릴 수 있어도 뼈는 그릴수가 없고, 사람을 알데 얼굴은 알 수 있어도 마음은 알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畵虎畵皮 難畵骨, 知人知面 不知心: 화호화피 난화골이요, 지인지면 불지심 이로다). 얼굴만 알고 그의 마음속을 알 수가 없으니 서로가 보고 듣고 말한 것을 믿고 진실을 논할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가만히 지내는 것이 나은 줄 알고 있으나 이것 또한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나무가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부모에게 봉양 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樹慾靜而 風不止, 子慾養而 親不待: 수욕정이 풍부지하고, 자욕양이 친부대 이니라)라는 말도 있다. 이는 세상을 편안하게 살고자 하나 세상의 험한 풍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편안한 세상을 만들어 부모와 형제 그리고 이웃 모두가 부모들에게 봉양하고 형제간 우애롭게 지내며 이웃간에는 서로가 화평하게 살고자 노력하고 노력 하였으나 세상이 점점 악해져서 모두가 죽고, 또 한 세대가 죽고 하니, 이 어찌 하랴! 라는 한탄의 시이다.


 이 모든 것이 인간으로는 해결 할 수 없기에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음을 알고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유대민족과 대한민국의 한민족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계시지 않는가?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두 나라는 국토가 매우 작은 약소국으로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인 적대성 국가들이 인접하고 있어 침략을 당해 속국이 되었으며 또한 남북으로 분단되어 동족간에 동족상잔의 전쟁이 빈번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미 수천년전에 이미 일어났던 상태이나 우리나라는 현재 휴전상태로 세상에서 오직 유일한 분단국으로 적대관계에 있으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유대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민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구약성경의 모세 5경으로 이야기 하지만 구약성경 전체와 그들 자신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탈무드를 만들어 함께 유대인들의 생활양식과 기독교의 관계, 지적 재산과 정신적 자양분으로 인간의 존엄성, 행복과 사랑 또는 율법적인 법정규정이나 판례법까지 포함되어 이를 따르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유교문화의 유교정신과 같다.


 근대에 와서 하나님께서는 세계의 흩어진 유대민족을 함께 모으시고 영국의 위임 통치하에서 벗어나 1948년 5월 15일 국호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건립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아직도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있지마는 하나님의 은혜로 언젠가는 복음이 받아들여질 것이다.


 우리민족의 경우 고려시대에 불교가 들어와 석가의 자비적인 문화와 이씨조선 5백년의 공맹사상으로 인간의 윤리도덕, 예의범절, 효도사상 등의 유교문화권에서 살아왔다. 


 한서에 소학, 대학(小學, 大學) 이란 책이 있다. 소학은 남녀불문하고 태어난지 8세가 되면 반드시 소학을 이수 해야만 된다. 인간의 윤리, 도덕, 예절, 경로사상, 겸손 등의 초등 학문이다. 반면 대학은 정신적, 영적인 고등 학문으로 인간관계에 있어 심령이 맑은 상태에서 덕을 베풀고 서로 사랑으로 친교하며 새로워지면서 최후 서로 선하게 되어 최고의 선을 베푸는 지선(至善)에 이르게 하는 고등 학문이다. 


 그 후 기독교가 들어와 많은 국민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근대에 와서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고, 6.25 남북전쟁을 거친 후 1948년 2월 26일 UN 소총회의에서 남한만의 정부수립 찬성으로 1948년 5월 10일 최초의 남한 총선거를 실시하고 1948년 5월 31일 198명의 국회가 구성 되었으며, 1948년 7월 17일 국회에서 헌법이 공포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이 선포되고 크리스천인 장로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아직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전 국민으로 전파되지 않았지만 동양의 복음전파의 나라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


 결론적으로 유대민족과 우리민족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민족으로 선택되어 역사하실 것을 확신한다.

유대민족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4백년간 애굽의 노예생활과 40년의 출애굽 과정에서도 애굽신을 믿는 우상숭배 등 하나님을 거역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기성세대들을 모두 죽이시고 후손들만 가나안 땅으로 인도 하셨으나 이들 역시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우상을 숭배하니 북 사마리아와 남 유다 국으로 분리시키시고 동족간 남북전쟁을 계속하게 하시고는 마침내 앗수루와 바빌론의 침공을 받아 다시 노예생활이 시작 되었다.


 하나님께서 노예생활에서 또 다시 구원 하셨으나 너무나 사악한 민족으로 서로가 질투와 시기 모함 등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거역함으로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을 세계로 흩으시고 국가조차 없이 유랑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민족을 또한 사랑 하셔서 신비적 (神秘的) 문화를 함께하는 불교 및 유교문화권의 약소국임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을 보내주셔서 국민의 30%이상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동양에서 유일한 기독교 국가를 만드셨다. 우리민족도 유대민족과 같이 목이 곧은 사악한 민족으로 우상숭배는 물론 그리스도를 박해도 하고 위선적인 믿음과 본인들만의 이익과 권세 명예만을 위해 국가가 쇠약해져서 중국 일본 등의 침략을 당하여 36년간 일본의 식민지 속국에서 해방되었으나 북한과 남한으로 분리되어 동족상잔의 6.25전쟁으로 국토가 초토화되고 경제의 어려움으로 국민들이 굶어 죽게까지 이르렀다.


 이를 긍휼이 여기신 하나님께서 훌륭한 민족 지도자를 주셔서 짧은 기간에 세계에서 10대 경제대국을 만드심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셨다. 그러나 사악한 민족성으로 인해 국가를 생각하지 않고 황금만능주위 속에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거짓과 모략 위선 등으로 경제가 또다시 붕괴직전인 빈민국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가 붕괴되고 약소국으로 변한다면 후손들은 수십 년 아니면 백 년의 고통과 고난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 두 민족을 사랑 하셔서 혹독한 심판을 하셨지마는 주님의 재림 전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부모들도 자식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항상 자식들을 관찰하고 훈계하며 만일 자식들이 이를 거절하고 잘못하면 혹독한 매를 가하여 끝까지 인도한다. 


 하나님께서 두 민족을 사랑하시는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이 1948년 5월 15일이 건국일로 된 것처럼 대한민국도 같은 해 3개월이 늦은 8월 15일이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대한민국 건국일로 선포된 것은 놀라운 섭리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선조 선배들의 간곡한 기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단4: 35).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이루어지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이루어집니다” (When a person meets another person, history takes place; but when a person meets God, A miracle happens.)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님의 2016년도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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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4
송구영신에 대한 묵상

 

 연말연시를 맞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년에는 많은 사건이 일어났고 많은 어려움이 발생한 다사다난(多事多難) 해였다고 말하면서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고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하며 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2016년도에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모든 나라가 천재지변과 인재지변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다사다난한 해였다. 이 모든 상황을 볼 때 주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끼곤 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만사 모든 일은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능력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을 갈망하며 송구영신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송구영신하면 한 해가 가고 새 해가 오는 것으로 “옛 것은 보내고 새것을 맞이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기독교 자료에 의하면 송구영신의 뜻에는 종교인은 물론 온 인류가 깨달아야 할 깊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예로 유대종교를 보면 2천 년 전 유대지도자들은 돈과 명예와 권력의 노예가 되어 당시에 최고로 부패하고 타락하였다고 한다. 그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유대 땅에 구원자로 오셨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의 혈통, 육정 또는 사람의 뜻으로 이루어진 구약의 율법시대인 육적 이스라엘시대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얻게 되는 권세를 얻게 되는 영적 이스라엘 시대가 되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다”(요1: 12-13). 여기에는 예수님의 육적 시대에서 영적 시대로, 또한 예수님의 재림으로 현세상 종말에서 하나님의 왕국과 새 하늘 새 땅의 천국이 건설되기 때문에 부패한 이전시대를 보내고 찾아온 새 시대는 반드시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이 숙명임을 송구영신으로 여기고 있는바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는 바가 매우 크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경우를 보면 새 해가 되기 전 12월 31일 밤에 교회에 모여 송구영신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는 기독 교리에 의한 것은 아니고 한국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전통이다. 새벽기도 역시 우리나라만이 잇는 전통이다. 


 송구영신이란 단어는 우리나라의 경우 1년을 기준으로 음력 섣달그믐 밤에 묵은해를 보내고 신년에 운수대통을 기원하던 무속적인 행사에 사용된 한국의 고유전통으로 사용된 용어라고 한다. “향토문화대전”에 의하면 송구영신은 이날 전국 각 곳에서 한 해의 마지막 날이므로 새벽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즉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하여 밤을 새우면서 새 해를 맞이한다고 표현되어 있다. 


 또한 “동국세시기” 라는 책에는 섣달 그믐날(12월 31일) 송구영신의 의미로 이날 사람들은 집안을 환하게 밝히고 정성스럽게 제사상을 차려 놓고 밤 잠을 자지 않고 신령(神靈)을 기다리기만 하면 신령은 불 밝히진 집을 찾아 들어온다고 하여 들어온 신령에게 소원을 빌기만 하면 일 년 동안 운수대통 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모두가 무속신앙과 관련이 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의 송구영신 예배는 1887년 12월 31일에 한국에 온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선교사가 교회를 세우고 사역하던 당시 정동교회와 세문안교회가 합동으로 최초 송구영신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비록 송구영신예배가 기독교의 절기는 아니지만 한 해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는데 뜻이 있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한 해를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더욱 성숙한 신앙과 믿음으로 온전한 구원을 이루며 살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간으로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한민족의 송구영신은 무속신앙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연말연시를 맞이하면서 신년에는 각자 자기 마음속의 신령에게 복을 내려 달라는 기복신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우리나라의 모든 종교가 천지만물을 창조 하시고 운행 하시는 영이신 하나님이 아닌 자기들 종교만의 신령에 따라 태동되었기 때문에 샤머니즘의 미신이나’ 유교는 조상을 신격화한 조상의 신으로, 불교는 석가의 득도로 인해 신격화하는 불신의 신 등으로 종교 활동을 하였음을 본다. 


 무신론자들의 대부분은 신년 첫날 산과 바다에 모여 막 떠오르는 해를 향하여 눈을 감고 두 손 모아 새해의 복 받기를 기원하며 깊은 산속 괴상한 바위 위에 촛불을 켜고 축복을 빌기도 한다. 또한 농촌에서는 부잣집은 10월 상달에 무당을 불러 귀신에게 복을 비는 굿을 하고 많은 곡식을 무당에게 지불한다.


 가난한 집은 굿은 못하더라도 가족이 아프면 하는 수 없이 무당을 불러 귀신에게 병을 낫게 해달라고 푸닥거리를 하거나 아니면 직접 시루떡을 앞에 놓고 본인이 고사를 하곤 한다. 현재로써는 모두가 이해 할 수 없는 미신행위에 지니지 않는다.


 기복신앙에는 많은 물질과 돈이 소요 된다. 왜냐하면 많은 재물을 신에게 바치면 많은 복을 받는다는 인간들의 욕심의 관성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난한자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농경시대는 농산물로 현재에는 현금으로 한다. 


 기독교가 들어온 후로는 이 미신의 기복신앙이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는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세운 정동 제일 감리교회와 새문안 장로교화가 합동으로 최초로 송구영신예배를 드린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본인의 생각에는 송구영신예배만은 신년에는 순수한 신앙생활을 다짐하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 전통적인 송구영신의 기복신앙에서의 불미한 무속신앙의 전통의 개념을 불식시킨다는 의미에서 헌금 없는 송구영신의 예배가 이루어졌으면 어떠할까? 나의 생각을 해 보았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있지 않더라”(계2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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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9
고난 속의 믿음

 
 믿음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회개를 통하여 죄 사함 받고, 주님의 삶을 본받아 영생의 구원의 길을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모든 죄 사함 받고 주님과 동행하니, 어디에나 하늘나라” 라고 찬송한다. 주님의 삶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파란만장한 그리고 험난한 고난의 길 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점의 죄도 없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기까지 하셨는데 죄의 몸에서 태어난 죄인인 우리들은 주님보다 더한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만 되지 않겠는가? 아니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고난을 받으셨으니 우리들의 믿음의 길은 고난의 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단정할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기 전 태어나서부터 고난을 받으셨다.


 우선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예수님은 구유에서 태어나자마자 유대 왕이 탄생했다고 하여 정치인인 헤롯왕의 암살음모와 종교인들의 기득권 보호로 인한 박해 등 인간으로부터 고난을 받으셨고, 또한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사탄마귀로부터 고난을 받으셨으며 더욱이 십자가상에서는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을 받으셨다.


 급기야 십자가의 극형으로 처형당하심으로써 생을 마치셨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 하시고 이를 섭리하시는 권세와 사망권세에서 승리하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권능을 가지신 분께서 이렇게 고난의 삶을 사셨을까! 매우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나 이는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구원의 길을 마련하여 주셨으니 천지지간에 이보다도 더 큰 영광이 있겠는가? 고난 후에 영광이리라. 따라서 믿음생활은 고난 속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지니라”(롬 8:17) 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다. 


 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험난한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가? 이세상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살아가려는 죄성 있는 인간의 본질에 따라 하나님 중심의 사상은 이 세상에는 정 반대되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으로 이 세상에 살고자하는 자 즉 예수님을 본받아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핍박받고 고난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뿐인가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믿는 자를 미혹하여 실족시켜서 사탄의 종으로 만들기 위해 항상 고난과 유혹을 계속하고 있다. 말세지 말에는 먼저 거짓선지자 및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믿는 자들을 괴롭힐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믿음의 길은 부모와 자녀들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다”(마10: 37-38 참조) 라고 하셨다. 이는 예수님에게 최우선적으로 무조건적 헌신할 만큼의 나의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가? 즉 내가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진 것 같이 너희들도 너의 십자가의 고난을 질 수 있겠는가? 라고 말씀하신 것은 믿음의 길이 얼마나 고난의 길임을 알게 하심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 따르기를 원하여 주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 가겠다고 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새도 등지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라고 말씀 하셨다. 즉 너는 정말로 나와 같은 삶을 기꺼이 살 수 있을 만큼 나를 따르기를 원하는가? 즉 모든 고생과 고난을 감수하겠는가? 하신 것이다(눅 9:57-58).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켜왔던 젊은 부자 관원이 예수님에게 묻기를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하니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너는 와서 나를 쫓으라." 라고 답하셨다(마 19:16-22). 청년은 근심을 띠고 돌아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얼마나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길이 어려운가를 알 수가 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 하듯이,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 하리라”(마 6:24). 오늘날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많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자기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히 이용하며 심지어는 교회 기득권 다툼으로 폭력이 난무하고 외형적인 교회성장으로 세습화하며 교회직분으로 교파간, 성도간 서로가 배타적이며, 선교와 구제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은 불의에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 말에 "기독교는 자칭 그리스도인으로 인하여 전도와 선교가 아니 된다" 고들 한다. 또한 불쌍하고 가난한자를 구제한다고 하면서, 우상을 숭배하는 가난한 자에게도 하나님의 거룩한 헌금을 낭비하며 하나님의 진리의 사랑을 전도하는 경우를 본다. 오직 사탄과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마 7:6). 라고 예수님께서도 말씀 하셨다. 믿음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성경을 통해 믿음의 조상들을 보면 대표적으로 구약시대에 하나님과 함께하였다는 아브라함, 야곱 등도 험난한 역경을 보냈으며 신약 시대에는 세례 요한, 12제자, 사도 바울 등 거의가 순교까지 하면서 믿음의 길을 걸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즉 박해를 견디다 못해 예수님을 부인하면 그 생명은 보존할 것이나 그러나 그리스도께 헌신하여 그 목숨을 잃은 사람은 그의 영혼이 영원토록 구원을 받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고난의 십자가를 각각 지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삶을 본 받아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 우리들의 빛이 세상을 비치게 하고 썩어가는 세상에서 방부제인 소금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세상 사람들로 우리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주님을 영접하고 믿음을 갖게 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길인 것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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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9
구원계획 속의 성탄의 의미

 

 매년 12월이 다가오면 주님의 성탄에 대해 묵상하게 되면서 글을 쓰곤 하였다. 2016년인 금년에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구원 하시는 계획 속에 성탄의 의미를 회상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목적에 따라 세상만물들을 만드시고 만물들마다 창조의 목적이 달성되도록 역사하고 계시다. 또한 창조물중 인간을 자기형상대로 만드시고 영까지 주셔서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시고 제일 사랑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동시에 사랑이심을 인간들에게 깨닫게 하시고 영원히 서로 사랑하며 영생하기를 원하셨다. 이것이 인간창조의 목적이다.


 그러나 최초 인간인 “아담, 하와”는 사탄의 유혹을 받고 창조목적에서 이탈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탄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죄인이 되었다. 천사 ”루시퍼”도 섬기는 영으로 구원을 얻을 하나님의 자녀들을 도와주는 목적으로 창조되었으나 (히 1:14) 창조목적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대적함으로써 사탄마귀가 되었다.


 이 모두가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탐욕으로 인해 죄를 지었던 것이다. 모든 피조물들이 조물주의 창조목적에서 이탈하거나 위반하게 되면 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사와 인간에게만 자유의지를 주셨다. 왜냐하면 감정의 의지가 있어야 서로 사랑이 이루어 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유의지로 인해 죄를 지을 수 있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위반하고 배반한 죄인들과는 공존이 불가능하므로 사탄과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된 것이다.


 추방된 죄인은 영원한 영의 세계에서 시간의 세계로 차원이 낮아진 세상에 살게 되었다. 그러므로 죄인에게는 영생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유한한 시간에 따라 살게 함으로써 한계점인 죽음이 오게 된 것이다. 최초 인간이 탐욕으로 하나님께 죄를 짓고 죄로 인해 사망이 생겨난 것을 알 수 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4).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도전할 시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고 사탄의 종으로 죽어가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이것이 성탄이다.


 하나님의 인간구원 계획의 단계를 보면 먼저 성탄, 십자가의 고난, 부활, 승천, 재림, 심판의 단계를 거쳐 새하늘 새땅을 만드시고 구원된 인간과 함께 영원한 영생을 위해 또다시 사랑으로 역사하고 계심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성탄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첫 단계로서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이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야만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할 수가 있고 십자가상에서 죽을 수가 있고 부활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성탄후 십자가상의 죽으심은 죄인된 인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속 깊이 확증하고 감동받아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하고 사탄의 영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영으로 환원되어 하나님과 다시 교제를 이루게 한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하나님의 사랑만이 사탄마귀를 꼼짝 못하게 하며 승리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시기, 질투, 탐욕, 거짓, 유혹 등의 무기로 인간을 유혹하여 사망으로 이끄는 사탄을 일격에 패배시키고 사망권세에서 승리하셨다.


 성경은 일찍이 성탄과 구원에 대해 언급하였다. 사탄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여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십자가상에서 발꿈치에 못으로 상함을 받을 뿐이라고 (창 3:15 참조).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만이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성령세례와 성령의 은사도 받을 수도 있고 성령의 열매도 맺어 거듭남으로서 하나님께로 갈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십자가를 항상 바라보면서 생명이신 예수님의 살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 먹고 마신다는 것은 십자가상에서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통해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여 우리가 예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요 6:56-57).


 결론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가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성탄을 통한 십자가사건뿐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통한 인간 구원계획이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진리이므로 이 진리를 순종하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하나님께로 인도 하시는 중보자로 지금도 일하고 계시다. 성탄은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의 소식을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할 때 홀연히 하늘에 허다한 천군과 천사가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받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라고 찬양 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여기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란 뜻은 하나님께서 예정 하시고 경륜해 오신 구원이 그 아들 그리스도의 나심으로 이루게 하실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 라고 말씀 하셨다.


 또한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로 예수님을 주신 은혜를 하나님께 찬송한다는 뜻이기도 한다.


 땅에서도 평화라는 뜻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아기로 태어나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의 장벽이 무너지고 화목이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화목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금년에도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은 구원 속에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받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라는 찬송이 하늘 높이 울려 퍼지기를 기원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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