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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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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0
지도자의 사명과 역할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시고 위대 하시기에 그 큰 우주를 만드셨는가? 하나님께서 얼마나 전능 하시기에 그 많은 천지만물을 만드시면서 종류마다 그 하나하나의 창조하신 이유와 목적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창조 시부터 오늘날까지 관리 지배하고 계시는가?


 창조물마다 재능과 기능을 주셨다. 인간에게는 재능을, 기타 창조물에게는 기능을 주시고는 온 만물이 재능과 기능이 연합한 유기적인 조직체를 만드시고 우주만물의 지도자가 되셨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인간만을 자기 형상대로 만드시고 자신의 영을 호흡으로 불어 넣으시어 영원히 함께 하시면서 인간으로부터 경배와 찬양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반면 인간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셨다. 특별히 인간에게만 부여하신 각자의 재능을 통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니라”(롬8: 28). 하나님께서는 최초인간 아담과 배필자 하와를 만드시고 최초 가정을 형성하게 하시고 아담을 최초 인간의 지도자로 세우셨다. 여기서 배필이란 서로 협력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써 지도자의 사명과 역할을 다 하지 못하여 가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와해됨으로써 에덴동산에서 세상으로 쫓겨났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 중 인간이 제일 사악한 것을 알고 계시지만 그래도 제일 사랑하셔서 이 사악한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살이 찢기며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신 십자가 사건은 창세전부터 계획 하시고 실천에 옮기신 것이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영과 함께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사람들은 육신이 되어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고 말씀 하셨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 사악해져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그들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기만 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 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까지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도 그리 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 함이라 하시니라”(창6- 6-7)라고 성경은 언급하고 있다. 


 마침내 노아의 가족을 제외하고 홍수로 모든 피조물들을 쓸어 버리셨다. 그 후 노아의 후손들이 번성하여 족속을 이루어 땅의 각 백성들로 나뉘어 족장의 지도자를 세워 살게 되었다. 그럼에도 족장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도전하기 위한 바벨탑 사건으로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알아듣지도 못하게 하시고는 온 지면에 흩어져 살게 하셨다. 온 인류를 세상에 흩으신 하나님께서는 우상족속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아브람을 새 지도자로 세우시기 위해 고향 하란 에서 가나안 땅으로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축복하셔서 후손들이 번성하여 그 뿌리에서 유대민족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그 후 400년간 애굽에서 노예로 종살이 하게 만드시고 이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셨다.


 출애굽 과정에서 이적과 기적을 보이시며 특히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인간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심으로써 인간들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심판자이시며 구원자이심을 온 세상 만민에게 알리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예증이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통치하는 지도자로써 하나님의 권위는 의로우시며 공평하고 거짓이 없으신 분이시다.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지도자로써의 권위와 사명의 목적과 역할을 비교해 보면 하나님은 자기를 희생 하시면서까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영적 세상에 사명의 목적이 있으나 인간의 지도자들은 하나님과 같은 의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세상에서 사명의 목적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역할을 보면 세상의 모든 지도자들을 세우시되 악인이나 선인이나 위선자나 죄인이나 사탄까지도 불문하고 구별없이 지도자를 세우셔서 지배 하시며 통치하고 계시다. 예로 사탄마귀로 하여금 인간에게 죄를 짓게 하고 그로 인해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셔서 인간을 구원하게 하셨다. 완악한 바로 왕을 강퍅하게 하시고 이적과 기적을 통한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보여 주시면서 유대민족을 구원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의 지도자를 하나님이 세워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든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른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른 자들은 심판을 자초 하리라”(롬13: 1-2)라고 까지 언급 하였다.


 이를 살펴보면 좋은 지도자라면 순종하지 않을 아무런 이유가 없으나 그러나 세상에 가득 차있는 잘못된 권위의 지도자들 즉 권위주의자, 위선자, 독재자, 불의한 지도자들에게도 순종하라는 것은 역설적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가 선하든 악하든 불문하고 지도자의 권위와 질서가 무너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상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의 권위, 아버지의 권위, 선생의 권위, 정치인의 권위, 종교지도자의 권위가 못 마땅해서 거부한다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일국의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국가의 지도자가 없어 통제가 되지 않는다면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대통령의 잘못이 있으면 법에 따라 차기 대통령이 탄생할 때까지 기다린 후에 처벌하면 되는 것이다. 영적 세계에서도 동일하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 권위와 성경에 대한 절대 권위가 무너지면 우리의 신앙은 송두리째 무너진다. 


 자연과학의 세계를 보면 은하계와 우주계와 태양계가 자연의 질서와 원리가 없다면 언제 어느 때 위성이 충돌할지 모른다. 그러나 창조 이래로 한 번도 우주계는 사고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통치의 질서 때문이다. 최종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세계와 우주를 다스리시는 지도자이시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을 창조 하시고 지배 하시는 전지전능 하시고 무소 부재하신 공의로운 분이시다.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교육과 훈련 및 책망으로 인도 하시면서 자비와 긍휼로 오래 참으시며 인도하고 계시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인간들에게는 죄와 지옥과 형벌과 심판으로 통치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신 공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지만 반면 불의에는 매우 무서운 분이시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 하시고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항상 모든 지도자를 세우시고 통치하고 계심을 알 수가 있다.


 첫 인간 아담으로 육체적 생명인 산 영의 지도자로 세우시고 마지막 예수그리스도(마지막 아담)로 생명을 주는 영의 지도자로 세우셨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의 순종 여부에 따라 죄로 인한 죽음으로 끝나느냐 아니면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아 영생하느냐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의 진리를 발견 할 수가 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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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하나님의 말씀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독생자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또한 하나님이시다. 독생자 예수님은 본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생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십자가 상에서 죽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 상에서 죽이시고 3일만에 부활시키시어 승천케 하신 십자가 사건을 믿기만 하면 지은 죄를 사함 받고 우리들도 예수님과 같이 죽은 후 다시 살아나서 하늘에 올라가 예수님과 함께 영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함으로써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확실히 알게 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계획과 내용을 단계적 수준에 따라 시대적으로, 순서적으로, 체계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을 통해 인간들에게 가르쳐 주고 계시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이 아니시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스스로 있는자”라고 말씀 하셨다. 언제부터 스스로 계셨는지? 그 시기는 피조물들로써는 어느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시간적인 관념에서도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천 년을 하루같이 여기시지만 인간들은 하루를 천년 같이 보내고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초월 하셨지만 인간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짓고 하나님과 헤어져 사탄 마귀의 종으로 사망의 공포와 험한 세상에서 고통과 고난으로 불안하게 두려운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하루가 천년 같이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수천 년부터 곧 세상에 다시 오시겠다는 예수님의 재림이 오늘날까지 오시지 않고 계시니 인간들로서 얼마나 지루한가?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시다가 어느 때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세상만물을 만드셨는데 그 만물들이 무엇이며 각각 얼마나 되는지? 인간들은 알 수가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만물 하나하나마다 종류대로 만드신 이유와 목적 그리고 운용하실 계획까지 이미 다 세우시고 순서에 따라 역사하고 계시다. 따라서 십자가 상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도 모두 계획하고 계셨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고 계시는 모든 일들을 계속 인간들에게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된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백성들에게 교육과 훈련 및 책망을 통해서 온전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함으로써 최종적으로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한 구원을 이루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 16-17).


 하나님께서 천지만물들을 창조 하시는 역사가운데 사람을 창조 하시는 과정을 살펴보면 인간들에게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영을 호흡으로 불어 넣어 주셨다. 이는 인간과 함께 영원히 함께 하시면서 인간으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고 반면에 인간을 하나님의 유일한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들을 인간으로 하여금 대리 관리 지배케 하셨으니 이는 또한 하나님에게 순종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피조물들을 지배관리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육과 영을 강건하게 유지하여야 하기 때문에 성경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뜻은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육을 지배하여 죄짓지 말고 항상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천사를 창조하신 경우를 보면 천사는 하늘에 있는 영적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에 (시148: 2,5 참조) 몸과 영혼을 가진 사람과는 달리 사람보다 높은 수준이다 (히2: 7). 하나님께서 천사는 하나님을 경배 찬양하며 사자(使者) 인종으로, 인간들은 피조물 중 제일 사랑하는 대상으로 삼으시고 최 측근으로 함께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천사와 인간이 제일 먼저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하였으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따라서 천사는 타락하여 사탄마귀가 되고 인간은 타락하여 죄인이 되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사탄은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하는 영적 전쟁을 위해서 인간들을 유혹하여 죄인으로 타락시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는 회개의 구원은 물론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영원한 불 연못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이미 결정하시고 인간에게는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여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구원을 끝까지 거부하는 인간들은 사탄마귀와 함께 영원한 불 연못 지옥에 갈 것이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되어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구원을 예언 하셨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완성 하셨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죄 짓고 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모아 놓은 책으로 그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구원의 길로 완성 시키셨으므로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에 항상 깨어 있어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죄 지은 인간들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루 속히 죄 속에서 빠져 나와야 하나님께 구원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죄와 지옥과 형벌과 심판에 관계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순종하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유월절에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죽음에서 면하였던 것과 같이 십자가 상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흘린 피로 죄를 씻고 사망에서 영생으로 구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에게 부활 하시고 승천 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또 다시 이 세상으로 속히 보내 주시옵소서 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 하리라”(요8: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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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9
믿음 속의 소망

 

 믿음 속에 소망이 있고 소망 속에 믿음이 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소망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은 불신과 절망, 거짓과 위선, 불법과 불의로 인해서 진실과 저의, 겸손과 신뢰, 용서와 사랑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눈이 있어도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님이 낫고, 귀가 있어 들어서는 안될 것을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귀머거리가 낫고, 입이 있어 말해서는 안될 것을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벙어리가 오히려 나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도록 만드셨기에 인간들이 이를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이 점점 거짓과 위선으로 인간이 인간을 경계하며 사랑하고 신뢰 할 수 없는 불신의 관계로 인간들이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한서에 “호랑이를 그리데 가죽은 그릴 수 있어도 뼈는 그릴수가 없고, 사람을 알데 얼굴은 알 수 있어도 마음은 알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畵虎畵皮 難畵骨, 知人知面 不知心: 화호화피 난화골이요, 지인지면 불지심 이로다). 얼굴만 알고 그의 마음속을 알 수가 없으니 서로가 보고 듣고 말한 것을 믿고 진실을 논할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가만히 지내는 것이 나은 줄 알고 있으나 이것 또한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나무가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부모에게 봉양 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樹慾靜而 風不止, 子慾養而 親不待: 수욕정이 풍부지하고, 자욕양이 친부대 이니라)라는 말도 있다. 이는 세상을 편안하게 살고자 하나 세상의 험한 풍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편안한 세상을 만들어 부모와 형제 그리고 이웃 모두가 부모들에게 봉양하고 형제간 우애롭게 지내며 이웃간에는 서로가 화평하게 살고자 노력하고 노력 하였으나 세상이 점점 악해져서 모두가 죽고, 또 한 세대가 죽고 하니, 이 어찌 하랴! 라는 한탄의 시이다.


 이 모든 것이 인간으로는 해결 할 수 없기에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음을 알고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유대민족과 대한민국의 한민족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계시지 않는가?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두 나라는 국토가 매우 작은 약소국으로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인 적대성 국가들이 인접하고 있어 침략을 당해 속국이 되었으며 또한 남북으로 분단되어 동족간에 동족상잔의 전쟁이 빈번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미 수천년전에 이미 일어났던 상태이나 우리나라는 현재 휴전상태로 세상에서 오직 유일한 분단국으로 적대관계에 있으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유대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민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구약성경의 모세 5경으로 이야기 하지만 구약성경 전체와 그들 자신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탈무드를 만들어 함께 유대인들의 생활양식과 기독교의 관계, 지적 재산과 정신적 자양분으로 인간의 존엄성, 행복과 사랑 또는 율법적인 법정규정이나 판례법까지 포함되어 이를 따르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유교문화의 유교정신과 같다.


 근대에 와서 하나님께서는 세계의 흩어진 유대민족을 함께 모으시고 영국의 위임 통치하에서 벗어나 1948년 5월 15일 국호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건립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아직도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있지마는 하나님의 은혜로 언젠가는 복음이 받아들여질 것이다.


 우리민족의 경우 고려시대에 불교가 들어와 석가의 자비적인 문화와 이씨조선 5백년의 공맹사상으로 인간의 윤리도덕, 예의범절, 효도사상 등의 유교문화권에서 살아왔다. 


 한서에 소학, 대학(小學, 大學) 이란 책이 있다. 소학은 남녀불문하고 태어난지 8세가 되면 반드시 소학을 이수 해야만 된다. 인간의 윤리, 도덕, 예절, 경로사상, 겸손 등의 초등 학문이다. 반면 대학은 정신적, 영적인 고등 학문으로 인간관계에 있어 심령이 맑은 상태에서 덕을 베풀고 서로 사랑으로 친교하며 새로워지면서 최후 서로 선하게 되어 최고의 선을 베푸는 지선(至善)에 이르게 하는 고등 학문이다. 


 그 후 기독교가 들어와 많은 국민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근대에 와서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고, 6.25 남북전쟁을 거친 후 1948년 2월 26일 UN 소총회의에서 남한만의 정부수립 찬성으로 1948년 5월 10일 최초의 남한 총선거를 실시하고 1948년 5월 31일 198명의 국회가 구성 되었으며, 1948년 7월 17일 국회에서 헌법이 공포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이 선포되고 크리스천인 장로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아직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전 국민으로 전파되지 않았지만 동양의 복음전파의 나라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


 결론적으로 유대민족과 우리민족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민족으로 선택되어 역사하실 것을 확신한다.

유대민족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4백년간 애굽의 노예생활과 40년의 출애굽 과정에서도 애굽신을 믿는 우상숭배 등 하나님을 거역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기성세대들을 모두 죽이시고 후손들만 가나안 땅으로 인도 하셨으나 이들 역시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우상을 숭배하니 북 사마리아와 남 유다 국으로 분리시키시고 동족간 남북전쟁을 계속하게 하시고는 마침내 앗수루와 바빌론의 침공을 받아 다시 노예생활이 시작 되었다.


 하나님께서 노예생활에서 또 다시 구원 하셨으나 너무나 사악한 민족으로 서로가 질투와 시기 모함 등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거역함으로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을 세계로 흩으시고 국가조차 없이 유랑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민족을 또한 사랑 하셔서 신비적 (神秘的) 문화를 함께하는 불교 및 유교문화권의 약소국임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을 보내주셔서 국민의 30%이상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동양에서 유일한 기독교 국가를 만드셨다. 우리민족도 유대민족과 같이 목이 곧은 사악한 민족으로 우상숭배는 물론 그리스도를 박해도 하고 위선적인 믿음과 본인들만의 이익과 권세 명예만을 위해 국가가 쇠약해져서 중국 일본 등의 침략을 당하여 36년간 일본의 식민지 속국에서 해방되었으나 북한과 남한으로 분리되어 동족상잔의 6.25전쟁으로 국토가 초토화되고 경제의 어려움으로 국민들이 굶어 죽게까지 이르렀다.


 이를 긍휼이 여기신 하나님께서 훌륭한 민족 지도자를 주셔서 짧은 기간에 세계에서 10대 경제대국을 만드심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셨다. 그러나 사악한 민족성으로 인해 국가를 생각하지 않고 황금만능주위 속에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거짓과 모략 위선 등으로 경제가 또다시 붕괴직전인 빈민국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가 붕괴되고 약소국으로 변한다면 후손들은 수십 년 아니면 백 년의 고통과 고난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 두 민족을 사랑 하셔서 혹독한 심판을 하셨지마는 주님의 재림 전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부모들도 자식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항상 자식들을 관찰하고 훈계하며 만일 자식들이 이를 거절하고 잘못하면 혹독한 매를 가하여 끝까지 인도한다. 


 하나님께서 두 민족을 사랑하시는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이 1948년 5월 15일이 건국일로 된 것처럼 대한민국도 같은 해 3개월이 늦은 8월 15일이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대한민국 건국일로 선포된 것은 놀라운 섭리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선조 선배들의 간곡한 기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단4: 35).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이루어지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이루어집니다” (When a person meets another person, history takes place; but when a person meets God, A miracle happens.)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님의 2016년도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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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4
송구영신에 대한 묵상

 

 연말연시를 맞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년에는 많은 사건이 일어났고 많은 어려움이 발생한 다사다난(多事多難) 해였다고 말하면서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고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하며 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2016년도에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모든 나라가 천재지변과 인재지변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다사다난한 해였다. 이 모든 상황을 볼 때 주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끼곤 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만사 모든 일은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능력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을 갈망하며 송구영신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송구영신하면 한 해가 가고 새 해가 오는 것으로 “옛 것은 보내고 새것을 맞이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기독교 자료에 의하면 송구영신의 뜻에는 종교인은 물론 온 인류가 깨달아야 할 깊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예로 유대종교를 보면 2천 년 전 유대지도자들은 돈과 명예와 권력의 노예가 되어 당시에 최고로 부패하고 타락하였다고 한다. 그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유대 땅에 구원자로 오셨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의 혈통, 육정 또는 사람의 뜻으로 이루어진 구약의 율법시대인 육적 이스라엘시대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얻게 되는 권세를 얻게 되는 영적 이스라엘 시대가 되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다”(요1: 12-13). 여기에는 예수님의 육적 시대에서 영적 시대로, 또한 예수님의 재림으로 현세상 종말에서 하나님의 왕국과 새 하늘 새 땅의 천국이 건설되기 때문에 부패한 이전시대를 보내고 찾아온 새 시대는 반드시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이 숙명임을 송구영신으로 여기고 있는바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는 바가 매우 크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경우를 보면 새 해가 되기 전 12월 31일 밤에 교회에 모여 송구영신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는 기독 교리에 의한 것은 아니고 한국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전통이다. 새벽기도 역시 우리나라만이 잇는 전통이다. 


 송구영신이란 단어는 우리나라의 경우 1년을 기준으로 음력 섣달그믐 밤에 묵은해를 보내고 신년에 운수대통을 기원하던 무속적인 행사에 사용된 한국의 고유전통으로 사용된 용어라고 한다. “향토문화대전”에 의하면 송구영신은 이날 전국 각 곳에서 한 해의 마지막 날이므로 새벽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즉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하여 밤을 새우면서 새 해를 맞이한다고 표현되어 있다. 


 또한 “동국세시기” 라는 책에는 섣달 그믐날(12월 31일) 송구영신의 의미로 이날 사람들은 집안을 환하게 밝히고 정성스럽게 제사상을 차려 놓고 밤 잠을 자지 않고 신령(神靈)을 기다리기만 하면 신령은 불 밝히진 집을 찾아 들어온다고 하여 들어온 신령에게 소원을 빌기만 하면 일 년 동안 운수대통 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모두가 무속신앙과 관련이 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의 송구영신 예배는 1887년 12월 31일에 한국에 온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선교사가 교회를 세우고 사역하던 당시 정동교회와 세문안교회가 합동으로 최초 송구영신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비록 송구영신예배가 기독교의 절기는 아니지만 한 해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는데 뜻이 있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한 해를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더욱 성숙한 신앙과 믿음으로 온전한 구원을 이루며 살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간으로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한민족의 송구영신은 무속신앙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연말연시를 맞이하면서 신년에는 각자 자기 마음속의 신령에게 복을 내려 달라는 기복신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우리나라의 모든 종교가 천지만물을 창조 하시고 운행 하시는 영이신 하나님이 아닌 자기들 종교만의 신령에 따라 태동되었기 때문에 샤머니즘의 미신이나’ 유교는 조상을 신격화한 조상의 신으로, 불교는 석가의 득도로 인해 신격화하는 불신의 신 등으로 종교 활동을 하였음을 본다. 


 무신론자들의 대부분은 신년 첫날 산과 바다에 모여 막 떠오르는 해를 향하여 눈을 감고 두 손 모아 새해의 복 받기를 기원하며 깊은 산속 괴상한 바위 위에 촛불을 켜고 축복을 빌기도 한다. 또한 농촌에서는 부잣집은 10월 상달에 무당을 불러 귀신에게 복을 비는 굿을 하고 많은 곡식을 무당에게 지불한다.


 가난한 집은 굿은 못하더라도 가족이 아프면 하는 수 없이 무당을 불러 귀신에게 병을 낫게 해달라고 푸닥거리를 하거나 아니면 직접 시루떡을 앞에 놓고 본인이 고사를 하곤 한다. 현재로써는 모두가 이해 할 수 없는 미신행위에 지니지 않는다.


 기복신앙에는 많은 물질과 돈이 소요 된다. 왜냐하면 많은 재물을 신에게 바치면 많은 복을 받는다는 인간들의 욕심의 관성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난한자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농경시대는 농산물로 현재에는 현금으로 한다. 


 기독교가 들어온 후로는 이 미신의 기복신앙이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는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세운 정동 제일 감리교회와 새문안 장로교화가 합동으로 최초로 송구영신예배를 드린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본인의 생각에는 송구영신예배만은 신년에는 순수한 신앙생활을 다짐하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 전통적인 송구영신의 기복신앙에서의 불미한 무속신앙의 전통의 개념을 불식시킨다는 의미에서 헌금 없는 송구영신의 예배가 이루어졌으면 어떠할까? 나의 생각을 해 보았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있지 않더라”(계2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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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9
고난 속의 믿음

 
 믿음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회개를 통하여 죄 사함 받고, 주님의 삶을 본받아 영생의 구원의 길을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모든 죄 사함 받고 주님과 동행하니, 어디에나 하늘나라” 라고 찬송한다. 주님의 삶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파란만장한 그리고 험난한 고난의 길 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점의 죄도 없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기까지 하셨는데 죄의 몸에서 태어난 죄인인 우리들은 주님보다 더한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만 되지 않겠는가? 아니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고난을 받으셨으니 우리들의 믿음의 길은 고난의 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단정할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기 전 태어나서부터 고난을 받으셨다.


 우선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예수님은 구유에서 태어나자마자 유대 왕이 탄생했다고 하여 정치인인 헤롯왕의 암살음모와 종교인들의 기득권 보호로 인한 박해 등 인간으로부터 고난을 받으셨고, 또한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사탄마귀로부터 고난을 받으셨으며 더욱이 십자가상에서는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을 받으셨다.


 급기야 십자가의 극형으로 처형당하심으로써 생을 마치셨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 하시고 이를 섭리하시는 권세와 사망권세에서 승리하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권능을 가지신 분께서 이렇게 고난의 삶을 사셨을까! 매우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나 이는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구원의 길을 마련하여 주셨으니 천지지간에 이보다도 더 큰 영광이 있겠는가? 고난 후에 영광이리라. 따라서 믿음생활은 고난 속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지니라”(롬 8:17) 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다. 


 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험난한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가? 이세상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살아가려는 죄성 있는 인간의 본질에 따라 하나님 중심의 사상은 이 세상에는 정 반대되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으로 이 세상에 살고자하는 자 즉 예수님을 본받아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핍박받고 고난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뿐인가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믿는 자를 미혹하여 실족시켜서 사탄의 종으로 만들기 위해 항상 고난과 유혹을 계속하고 있다. 말세지 말에는 먼저 거짓선지자 및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믿는 자들을 괴롭힐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믿음의 길은 부모와 자녀들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다”(마10: 37-38 참조) 라고 하셨다. 이는 예수님에게 최우선적으로 무조건적 헌신할 만큼의 나의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가? 즉 내가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진 것 같이 너희들도 너의 십자가의 고난을 질 수 있겠는가? 라고 말씀하신 것은 믿음의 길이 얼마나 고난의 길임을 알게 하심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 따르기를 원하여 주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 가겠다고 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새도 등지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라고 말씀 하셨다. 즉 너는 정말로 나와 같은 삶을 기꺼이 살 수 있을 만큼 나를 따르기를 원하는가? 즉 모든 고생과 고난을 감수하겠는가? 하신 것이다(눅 9:57-58).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켜왔던 젊은 부자 관원이 예수님에게 묻기를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하니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너는 와서 나를 쫓으라." 라고 답하셨다(마 19:16-22). 청년은 근심을 띠고 돌아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얼마나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길이 어려운가를 알 수가 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 하듯이,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 하리라”(마 6:24). 오늘날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많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자기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히 이용하며 심지어는 교회 기득권 다툼으로 폭력이 난무하고 외형적인 교회성장으로 세습화하며 교회직분으로 교파간, 성도간 서로가 배타적이며, 선교와 구제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은 불의에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 말에 "기독교는 자칭 그리스도인으로 인하여 전도와 선교가 아니 된다" 고들 한다. 또한 불쌍하고 가난한자를 구제한다고 하면서, 우상을 숭배하는 가난한 자에게도 하나님의 거룩한 헌금을 낭비하며 하나님의 진리의 사랑을 전도하는 경우를 본다. 오직 사탄과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마 7:6). 라고 예수님께서도 말씀 하셨다. 믿음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성경을 통해 믿음의 조상들을 보면 대표적으로 구약시대에 하나님과 함께하였다는 아브라함, 야곱 등도 험난한 역경을 보냈으며 신약 시대에는 세례 요한, 12제자, 사도 바울 등 거의가 순교까지 하면서 믿음의 길을 걸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즉 박해를 견디다 못해 예수님을 부인하면 그 생명은 보존할 것이나 그러나 그리스도께 헌신하여 그 목숨을 잃은 사람은 그의 영혼이 영원토록 구원을 받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고난의 십자가를 각각 지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삶을 본 받아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 우리들의 빛이 세상을 비치게 하고 썩어가는 세상에서 방부제인 소금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세상 사람들로 우리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주님을 영접하고 믿음을 갖게 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길인 것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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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9
구원계획 속의 성탄의 의미

 

 매년 12월이 다가오면 주님의 성탄에 대해 묵상하게 되면서 글을 쓰곤 하였다. 2016년인 금년에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구원 하시는 계획 속에 성탄의 의미를 회상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목적에 따라 세상만물들을 만드시고 만물들마다 창조의 목적이 달성되도록 역사하고 계시다. 또한 창조물중 인간을 자기형상대로 만드시고 영까지 주셔서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시고 제일 사랑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동시에 사랑이심을 인간들에게 깨닫게 하시고 영원히 서로 사랑하며 영생하기를 원하셨다. 이것이 인간창조의 목적이다.


 그러나 최초 인간인 “아담, 하와”는 사탄의 유혹을 받고 창조목적에서 이탈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탄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죄인이 되었다. 천사 ”루시퍼”도 섬기는 영으로 구원을 얻을 하나님의 자녀들을 도와주는 목적으로 창조되었으나 (히 1:14) 창조목적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대적함으로써 사탄마귀가 되었다.


 이 모두가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탐욕으로 인해 죄를 지었던 것이다. 모든 피조물들이 조물주의 창조목적에서 이탈하거나 위반하게 되면 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사와 인간에게만 자유의지를 주셨다. 왜냐하면 감정의 의지가 있어야 서로 사랑이 이루어 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유의지로 인해 죄를 지을 수 있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위반하고 배반한 죄인들과는 공존이 불가능하므로 사탄과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된 것이다.


 추방된 죄인은 영원한 영의 세계에서 시간의 세계로 차원이 낮아진 세상에 살게 되었다. 그러므로 죄인에게는 영생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유한한 시간에 따라 살게 함으로써 한계점인 죽음이 오게 된 것이다. 최초 인간이 탐욕으로 하나님께 죄를 짓고 죄로 인해 사망이 생겨난 것을 알 수 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4).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도전할 시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고 사탄의 종으로 죽어가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이것이 성탄이다.


 하나님의 인간구원 계획의 단계를 보면 먼저 성탄, 십자가의 고난, 부활, 승천, 재림, 심판의 단계를 거쳐 새하늘 새땅을 만드시고 구원된 인간과 함께 영원한 영생을 위해 또다시 사랑으로 역사하고 계심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성탄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첫 단계로서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이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야만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할 수가 있고 십자가상에서 죽을 수가 있고 부활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성탄후 십자가상의 죽으심은 죄인된 인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속 깊이 확증하고 감동받아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하고 사탄의 영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영으로 환원되어 하나님과 다시 교제를 이루게 한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하나님의 사랑만이 사탄마귀를 꼼짝 못하게 하며 승리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시기, 질투, 탐욕, 거짓, 유혹 등의 무기로 인간을 유혹하여 사망으로 이끄는 사탄을 일격에 패배시키고 사망권세에서 승리하셨다.


 성경은 일찍이 성탄과 구원에 대해 언급하였다. 사탄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여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십자가상에서 발꿈치에 못으로 상함을 받을 뿐이라고 (창 3:15 참조).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만이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성령세례와 성령의 은사도 받을 수도 있고 성령의 열매도 맺어 거듭남으로서 하나님께로 갈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십자가를 항상 바라보면서 생명이신 예수님의 살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 먹고 마신다는 것은 십자가상에서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통해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여 우리가 예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요 6:56-57).


 결론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가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성탄을 통한 십자가사건뿐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통한 인간 구원계획이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진리이므로 이 진리를 순종하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하나님께로 인도 하시는 중보자로 지금도 일하고 계시다. 성탄은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의 소식을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할 때 홀연히 하늘에 허다한 천군과 천사가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받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라고 찬양 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여기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란 뜻은 하나님께서 예정 하시고 경륜해 오신 구원이 그 아들 그리스도의 나심으로 이루게 하실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 라고 말씀 하셨다.


 또한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로 예수님을 주신 은혜를 하나님께 찬송한다는 뜻이기도 한다.


 땅에서도 평화라는 뜻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아기로 태어나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의 장벽이 무너지고 화목이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화목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금년에도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은 구원 속에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받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라는 찬송이 하늘 높이 울려 퍼지기를 기원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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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2
구원의 확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들의 믿음이 구원받기에는 부족한 믿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번쯤은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믿음의 결과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구원에 대하여 성경은 “먼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다”(요 1:12)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죄인 된 비천한 우리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이 세상 부귀와 권세를 가진 부모의 자녀로 태어나도 축복이라고 하는데, 하물며 천상의 부모인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니 비교할 바가 아니다.

 

 두 번째로, 신분이 바뀌면 무슨 혜택이 주어지는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요 5:24)라고 또한 성경은 말한다. 이것이 구원이다. 즉 구원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고, 듣고, 순종하며 생활하는 데서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알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목적 하에 인간을 창조하셨다.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돌리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기를 즉,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도록 추구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 목적에서 이탈하여 죄를 짓고 하나님과 헤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인간을 되찾고 계시며, 반면에 인간은 죄와 악이 가득 찬 세상에서 사망의 두려움과 절망가운데 구원받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옛 성품은 육적으로 낳기 때문에 즉, 세상 부모님이 난 생명으로는 영원히 살수가 없다. 위로부터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즉, 거듭(중생: Regeneration) 나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에게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거듭나는 순간에 사람은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 또한,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다고 하였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따라서, 성령 안에서만이 믿음이 확고해지며 계속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성령님이 떠나시면 우리는 믿음도 약해질 뿐 아니라, 죄인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된다. 예를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대표적인 믿음의 조상, 다윗과 솔로몬도 일시적이나마 성령에서 떠나 육신의 정욕으로 음행과 살인 및 우상숭배에 이르기까지 큰 죄인이 되었고, 예수님의 12제자들도 믿음이 부족하여 십자가사건의 참 진리를 모르고,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시던 때 모두 도망까지 하였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이 강림함으로써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성령을 떠나서는 믿음과 구원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 9).

 

 또한, 성령께서는 구원에 대하여 성령의 증거를 통해서 확실하게 알게 하여 주신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며,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16, 요일 3:24) 성령 안에서만이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자녀 됨을 믿으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는 갈망이 생기며,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 사랑 안에서 서로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성령의 능력을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구원은 날마다 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와 간구로 성령 안에서 계속 거듭나야만 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이 변화되고, 생활이 완전히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경우에 따라, 구원의 인증은 되나 확신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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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4
탐욕(貪慾)

 

 사탄은 탐욕으로 인간들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다. 따라서 탐욕은 사탄이 사용하는 최대의 무기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生氣)인 살아 움직이는 기운을 호흡으로 불어넣어 주셔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인 생령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또한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생령이 된 인간 아담을 동산에 살게 하셨다. 그 후 아담의 몸에서 여자를 만들어 부부를 이르게 하였다. 그리고 동산 가운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두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담하와가 죄를 지을 것을 아시면서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에덴동산에 두셨는가? 이는 하나님께서 아담하와에게 자신을 순종 할 것인가 아니면 불순종 할 것인가의 선택권을 주시기 위해 선악과나무를 두신 것이다. 아담하와가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될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창세기 1장 26절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라고 말씀 하셨다. 


 여기서 우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표현함으로써 인간이 죄를 범하면 예수성자 하나님을 세상에 보내어 죄를 사하게 하실 것을 인간 창조 하실 때부터 계획하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은 본래 속이는 거짓말 장이며 거짓 아버지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거짓 유혹 되어 죄를 범할 것을 이미 아시고 이들을 십자기 사건을 통해 죄를 용서 하시려고 하셨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다.


 욥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옆에 있는 사탄에게 네가 어디서 왔느냐 물으니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다고 대답하니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이 없는 자라고 말씀하신데 사탄은 이를 불신하니 하나님께서 사탄으로 하여금 욥을 시험하신 것과 같이 아담하와도 사탄으로 하여금 유혹하도록 허락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담하와는 현명하고 지혜가 풍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땅과 바다와 공중에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으며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그들에게 주어 먹거리가 되게 하셨다. 그리고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하신 본뜻은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는가 불순종 하는가를 사탄을 통해 시험하신 것으로 만일 순종하면 영생 할 것이요 불순종하면 사망한다는 심판의 큰 뜻이 있는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사탄의 유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사탄을 믿고 사탄을 따르는 큰 죄를 짓고만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뜻을 훤히 알면서도 완전히 다른 거짓 내용으로 하나님께 도전하였음을 볼 수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선악과로 둔갑시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게 보이게 하여 선악과를 먹게끔 탐욕을 불어넣었으며 심지어는 선악과를 먹으면 죽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거짓 유혹까지 하였다. 어떻게 피조물 인간이 창조주이신 신격으로 변할 수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함께 하시려고 하셨으나 하나님을 불신하고 사탄을 믿으니 하는 수 없이 인간들을 세상으로 추방 하셨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의 몸으로 이 세상에 직접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시고 그의 보혈이 피로 인간들의 죄를 사하시고 다시 하나님과 영생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 하실 때부터 인간에게 자유를 주셔서 선택의 권한을 부여 하셨다. 따라서 하나님 뜻의 순종, 불순종 까지도 선택의 자유를 주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의 보혈의 복음까지도 믿고 안 믿는 자유를 주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를 허용하시지 않으셨다면 아무리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 하셨더라도 인간들은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 인간창조의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며 인간창조 계획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며 지고한 통치자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시며 유일하신 구세주이시므로 세상만물을 관리 하시며 통치하시는 권세를 갖고 계시기 때문에 추방된 세상 모든 인간들의 종족들에게 땅의 경계를 설정하여 주시고 살게 하셨으나 사탄은 다시 이들에게 탐심을 갖게 하여 하나님과의 영적 전쟁에 인간들을 오늘날까지도 이용하고 있다. 


 국가와 국가간, 민족과 민족간, 사회와 사회간, 가정과 가정간, 개인과 개인간에 화목과 평화를 방해하고 반목을 조장하여 거짓유혹으로 서로간의 적대관계로 만들어 가고 있다. 강대국들은 세계의 평화를 위한다고 하면서 지하자원이 풍부한 약소국들을 침탈하고 있으며 또한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지역을 확대하여 약소국을 종속화 시키고 있으며 이를 위해 인류의 전멸에 가까운 핵무기 등 각종 전쟁무기를 만들기에 최대의 총력을 다하여 경쟁하고 있다. 


 민족과 민족들은 자기민족만의 이익만 위하여 이기주의의 보호무역 등으로 약소국의 경제발전에 장애를 주면서 서로가 원망관계에 이르고 가정과 가정간에는 경쟁의식 속에 빈부격차가 날로 심화되어 화목할 수가 없으며 재벌가정은 재산다툼으로 부자, 형제, 가족이 원수지간이 되며 개인과 개인관계는 시기와 질투로 자기만을 사랑하며 서로간의 신의조차 있을 수가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는 상대방을 모략하고 자기만의 권력과 명예와 부귀를 독차지 하려고 하고 있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탄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말세지 말의 징조로 언제고 하나님께서 심판 하셔서 지상에서는 하늘의 왕국이 건설될 것이고 그 후에 하늘에서는 하늘나라 천국이 건설될 것이다. 믿음으로 참고 견디는 자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조국 한민족을 회상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민족에게 현재 중국에게 빼앗긴 만주 일대의 지역을 포함해 큰 땅을 주셔서 경계까지 정해 주셨는데 조상들이 자신들의 탐욕으로 만주땅을 빼앗기고 후에도 민족의 단합은커녕 4색 당파의 정치 싸움으로 36년간 일본의 침략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마침내 타력에 의해 일본으로부터 해방 되었으나 통치자의 탐심으로 한반도가 분리되어 적국으로 변하여 6. 25전쟁이 발생하여 동족간에 많은 살생을 초래 하였다.


 현재에도 정치가들은 모두가 백성을 위한다는 거짓 명목 하에 자기가 대통령으로 통치자가 되겠다고 서로가 모함과 비방으로 일관하고 거기다 민족의 단합은 고사하고 정치적 사상으로 대립되어 국민의 단합은 물론 분열을 조장하고 있으며 종교지도자들은 교파와 자기교회만을 외형적으로 성장에만 주력하고 북한은 동족살상을 위한 핵무기 개발에 전력하고 있으니 남북간 한민족의 운명 자체는 물론 주위 강대국의 멸시와 불법행동에 대해 어려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해결해 주시리라.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한 이스라엘 민족도 4천 년 전에 사탄의 유혹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숭배 등 죄를 짓고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단되었고 앗수르 및 바빌론의 침략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마는 우리 조국은 지금에 와서 이와 같은 상태에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울며 기도하며 종교지도자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인도하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 혹독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자기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 (사 3: 14).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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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4
주님만을 믿고 살자

 

 하나님은 천지간에 흑암과 광명, 악과 선, 거짓과 진실, 동물과 식물, 생물과 무생물, 빈부귀천 등 유형무형의 피조물 등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으므로 특히 인간들은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큰 뜻을 깨닫고 또한 피조물들을 관리 운영 하시는 능력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오직 인간들에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영과 육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영원히 영생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더욱 세상 살아가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세상에서의 인생의 삶이 세상 속어로 고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을 대칭적으로 창조하시고 관리하고 계심으로써 피조물간 서로서로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세상의 창조적 권능 그리고 역사하시는 능력을 깨닫게 하시면서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기에 모든 피조물을 복종케 하는 권세를 갖고 계시다.


 그러나 피조물 중 인간만이 하나님 권세에 불순종으로 죄를 지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죄 지은 인간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상에서 죽게 하시고 그의 피 값으로 인간을 구속하셨기 때문에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형제자매로서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인 것이다.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것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며 사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리스도의 것이면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더욱이 세상 말세에는 인간들이 자기 자신과 돈만을 사랑하고 자랑하며 하나님은 물론이고 부모에게도 감사하지 않고 거역하며 교만하고 남을 비방하며 배신할 뿐 아니라 사납고 무정하며 원한과 모함을 마음에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세상쾌락을 사랑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우리 믿는 형제들은 많은 고통과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딤후 3:1-12참조).


 세상고난과 박해를 인내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믿음밖에 없다. 믿음이 사랑으로, 사랑은 화목과 평강으로 이어져 마침내 최종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믿는 우리들이 세상 살면서 고통과 박해를 받을 때에는 항상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주님을 갈망하며 믿고 이 믿음으로 인해 박해를 받으면 천국이 우리들의 것이라고 한다.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3,5). 우리의 고통과 박해가 아무리 큰다 한들 십자가상에서 당한 예수님의 고통에 비길 수가 있겠는가? 머리에는 가시관이 씌워졌고 손과 발에 못이 박혀 피가 흘렀으며 뺨을 맞고 침 뱉음을 받는 수모와 갖은 조롱 등을 받으면서 심지어는 거짓 모함으로 죄인이 되어 돌아가신 예수님은 오히려 가해자들을 위한 용서의 기도를 한 것을 생각하면 우리들도 세상의 모든 고난과 박해를 인내하며 승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창조된 피조물 중 인간을 제일 사랑하셨지만 인간만이 하나님께 순종치 않고 거역하였다. 예로써 하나님만을 믿는다는 종교로는 유대교, 가톨릭교, 개신교, 이슬람교 등으로 이를 살펴보면 유대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삼고 역사하시는데 도구로 사용하셨으나 이를 착각한 교만으로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 민족의 구세주를 기다린다. 


 가톨릭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화목제물로 돌아가심으로 대제사장이 되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직접 기도하고 죄를 고백할 수 있음에도 인간성직자를 통해 고해성사하고 있으니 이는 율법시대에서 은혜시대로의 하나님 사역에 순종하지 않으며 또한 경배의 대상은 오직 영이신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에 영이 아닌 인간의 마리아상을 만들어 성당구내에 세워놓고 그 모습(image)에 종종 경배를 표하는 경우를 본다.

 
 이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개신교는 그리스도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모든 교파로 분리되지 않고 복음 안에서 믿음의 형제가 되어야 하는데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의 교파로 나뉘어졌을 뿐 아니라 교파 중에서도 수없이 분리되어 믿음생활에 많은 문제의 부작용이 초래하고 있다.


 주님께서 믿는 형제자매를 분리시켜 교파를 만드셨는가? 칼빈이나, 웨슬레나, 세례요한, 바울사도 등은 오직 주님께서 각각 주신 은사대로 믿음으로 인한 사역자일 뿐이다. 이슬람교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종교 중에서도 기독교를 모방하여 하나님을 알라로, 예수님을 마호멧트로 위장하여 오히려 기독교를 박해하고 있을 뿐 아니리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약속의 아들 이삭의 형이라는 이유를 들어 기독교의 종주가 된다고 불법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오직 기독교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 따라서 어떤 피조물이나 어떤 종교도 우리 믿는 형제자매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분리시키거나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롬12: 3). 


 결론적으로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만이라도 종파와 교파에 구애되지 말고 오직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며,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 행하며 오직 주님만을 주로 믿고 자기 자신의 은사와 믿음에 분량대로 최선을 다해 세상에서 승리하여야 할 것이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 하기로 작정 하였음이라”(고전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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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6
변절(變節)된 믿음

 

 믿음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로 비유할 수 있다. 생물은 먹고 살아가기 위한 양식이 있어야 한다. 생물인 믿음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믿는 자들은 일용할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주십사 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양식을 먹은 믿음은 점점 성장하여 살아서 움직이는 활동력이 되고 세상을 이기는 힘이 된다. 


 따라서 믿음이 성장 될수록 의로워져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 말씀인 일용할 양식을 섭취하지 아니하면 믿음은 죽고 말 것이다. 인간은 영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어 육의 양식인 음식도 먹어야 한다. 그러므로 영과 육이 강건하여야만 믿음이 성장하게 되므로 믿음을 위해서는 영과 육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또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이므로 항상 성령님께서 지켜주시며 인도하여 주셔서 세상으로부터 오는 육체적 욕망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등으로 인한 인간세상 모든 죄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죄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죄를 씻고 사함 받아 사망의 권세에서 승리하고 구원받는 믿음을 말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 31 참조). 


 성경을 통해 믿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탕자의 비유(눅15: 11-32)는 어느 아버지의 두 아들에 대한 믿음이다. 두 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 받은 믿음의 가정의 형제들이다. 그러나 두 아들의 믿음은 성장하지 못한 율법 속의 믿음에 속한다. 


 둘째 아들은 믿음에서 떠나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속 재물을 가지고 우상의 나라 이국으로 가서 재산을 탕진하고 먹을 것조차 유지할 수 없이 망한 후 죽음까지 생각하는 막다른 골목에서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고 되돌아오게 된다. 


 만일 이국에서 성공해서 잘 살 수 있었다면 아버지께 돌아오지 않고 회개의 기회도 없이 믿음에서 완전히 떠나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눅15: 18-19). 


 회개하고 돌아온 것이 모두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먼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상속재산을 주지 않을 수도 있고, 이국에서 성공하여 잘 살수있도록 노력하였을 것이 분명한데 실패하게 된 것도, 아버지를 떠나서는 살수 없다는 최악의 상태를 경험하여 회개하고 돌아오게 만든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리라. 


 그러나 형은 율법적인 신앙에서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여 구원에 이르기 어려운 믿음에 머물게 되는 대조적인 믿음이다. 큰 아들은 죄는 짓지 않았더라도 세상축복의 재물만을 생각하고 그래서 아버지의 가치척도로 아버지의 재산을 늘리는 일꾼이 되기를 자처하기 때문에 재산을 축낸 것만을 생각하고 돌아온 동생을 미워하고 비방하며 아버지까지도 원망 하였다.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너는 나와 함께 있으니 나의 소유재산이 너의 것이 아니냐 재물에만 관심이 있는 아들의 믿음을 성장토록 믿음의 기본인 사랑을 가르치셨음을 알 수가 있다. 여기서 아버지는 하나님이고 두 아들은 하나님의 믿음의 아들들이다. 율법시대에서 믿음이 은혜시대의 사랑의 믿음으로 성장하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믿음이다. 율법 속의 믿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가 없는 것이다.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의 믿음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두 부자에게 상상할 수 없는 천상축복과 지상축복의 은혜 가운데서도 다윗 왕은 일시나마 하나님의 믿음에서 떠나 세상 육신의 욕망으로 유부녀를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을 살인까지 하는 큰 죄를 지었다. 그러나 엄청난 회개로 다시 하나님께 돌아 왔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혹독한 죄과를 치르게 하고 회개를 받으시고 용서 하셨다. 그러나 아들 솔로몬은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 많은 이방 신들을 믿고 회개하고 용서를 받은 사실이 성경기록에 없으므로 완전히 하나님에서 떠난 믿음이었다. 


 가롯 유다의 믿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12제자의 발을 씻기시면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요13: 10). 라고 말씀 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받아드린 사람들은 이미 죄에 대해 깨끗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발을 씻는다는 것은 깨끗함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도들은 날마다 회개하여 죄 사함 받고 깨끗한 믿음을 유지하라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아침에 은혜 받기를 기도하고 저녁에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드리며 예수 안에서 믿음과 행함으로 믿음을 지키며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발을 씻는 과정에서 베드로는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 하시리라 하니 예수께서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없다고 하신 말씀의 뜻은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지 못하면 믿음을 지키지 못하여 믿음에서 떠나게 됨으로 구원에서 멀어진다는 뜻으로 보실 수도 있다.


 반면 제자 가롯 유다는 발을 씻더라도 그것만으로 깨끗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로부터 완전히 떠나 구원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를 변절된 믿음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변절된 믿음의 사람들은 구원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변절된 믿음이란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의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믿음에서 떨어져 낙오된 사람들의 믿음으로 아무리 하나님께 회개하여도 하나님은 이들의 회개를 받으시지 않으므로 이들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을 영접하고 일반적으로 구원을 받은 믿음의 성도들이다. 때로는 성도들의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가 있다가 되돌아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믿음에서 완전히 떠나 되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잠시 믿음에서 떠난 후 되돌아온 대표적인 인물이 다윗 왕이다. 육신의 욕망으로 간음과 살인의 큰 죄를 짓고 난 후 회개하고 죄의 대가를 받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구원의 은총을 이어가게 되었다. 또한 일시적으로 믿음에서 떠났던 아버지의 두 아들 중 동생의 경우 우상의 나라 이국에서 죄에 대한 뼈저린 회개로 아버지께 돌아와 구원을 받게 하셨다. 


 그러나 회개 할 수도 없고 하나님께서 회개를 받아드릴 수도 없는 변절된 믿음의 대표적인 경우가 가롯 유다와 솔로몬 왕이다. 이 두 경우는 변절된 믿음으로 오직 주 예수 하나님만이 구원이심을 알면서도 은 30량에 예수님 죽임에 협조 했으며 솔로몬 왕은 오직 주 하나님만이 구원의 구세주를 온갖 잡신으로 대체한 우상의 장본인이다. 


 이들은 회개할 수도 없고 하나님께서도 회개를 받아 드리실 수가 없으니 구원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은 마치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받아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된다. 즉 믿음에서 변절된 자들은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에서 떨어져 불사름이 되는 것이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부르짖었던 대제사장, 서기관, 율법학자들은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인줄도 모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였으나 마지막 때 모든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셔서 성령의 눈으로 조상들이 예수님을 죽이신 것을 보고 회개 하였다. 


 이들은 빌라도 면전에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며 호소하던, 주님을 본질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자들은 무지에서 이를 행하였다. 그들에게는 회개의 문이 열려 있으나 변절된 믿음의 자들은 예수님이 구세주로 구원자이심을 확실히 알고 은혜 받은바 되었음에도 예수님을 자기들이 직접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 


 이는 무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그의 선하심을 아는 자들에게서 일어났다. 이는 회개가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믿는 자들은 한번 구원을 받으면 영원히 구원 받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변절된 믿음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삼으시고 400여 년간 우상의 나라 애굽에서 노예생활 등 혹독한 고통으로 단련시키셨다. 


 백성들은 고통에서 구원하여 주실 것을 하나님께 호소하여 마침내 하나님께서 권능과 능력으로 이적까지 보여 주시며 이들을 애굽에서 구원 하셨으나 광야를 통한 출애굽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수없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척하여 회개하면 용서하셨으나 끝까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다시 우상의 나라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므로 하는 수 없어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믿음을 지킨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 하고는 변절한 믿음의 선조들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박탈하고 사막에서 모두 죽이셨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공평하고 무서우신 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감리교를 개척한 존 웨슬리(John Wesley)도 “우리는 구원을 가져오는 것에 대해 당신을 확신 시켰다. 우리는 당신이 당신의 죄로부터 구원되었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당신이 당신을 최후의 구원으로 이끄는 믿음, 사랑 그리고 거룩함을 가지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의 현재 굳셈에서 떨어져 나가게 될 것을 경고한다”라고 말하였다.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6: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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