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계정 찾기 다시 시도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승고 종교칼럼

leeseungo
8E06D65C-E654-43EF-8798-3BB4C12C2507
69991
Y
메뉴 닫기
오늘 방문자 수: 20
,
전체: 50,369
토론토 영락교회 장로
647-629-3630
[email protected]
메뉴 열기
leeseungo
leeseungo
77925
21855
2017-03-24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을 때부터 시작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인간을 창조 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는 동시에 인간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만드셔서 영원히 함께 하시려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간으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는 없으나 믿을 수밖에 없다.


 2017년도에도 교회력에 따라 사순절, 고난주간,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이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이에서 발생하였기에 묵상 하고자 한다. 예로 구약시대는 3대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에 대해 성경에 기록 되었으나 신약시대에는 성경에 기록없이 오직 교회력에 의해 사순절, 고난주간, 부활절을 지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만드실 때 오직 인간에게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는 그의 영을 불어넣어 주시고 영원히 함께 하시려고 계획하신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아무리 인간을 사랑하신다고 해도 인간이 의롭지 못하면 함께 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의(義)란 무엇인가? 의란 하나님을 믿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이는 의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최초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연약해서 죄를 짓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되 선악과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 하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더라면 아무리 사탄이 유혹하더라도 절대로 유혹에 현혹되지 않고 죄도 짓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 부족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계속 사랑하시기 때문에 성자 하나님으로 몸소 세상에 오셔서 다시 인간과 함께 하셨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모두 짊어지시고 죄인으로 십자가 상에서 피를 흘리시며 인간을 대신하여 죽으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으로 단지 인간의 죄로 죽으셨기 때문에 죽은지 3일만에 부활하신 것이다. 이것이 고난주간과 부활주일로 우리들이 오늘날 지키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 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네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께서 받았노라”(요 10: 17-18).


 또한 죽음에서 부활하신 하나님께서는 본향인 하늘나라로 되돌아 가셔야 하기 때문에 인간들과 두 번째 헤어질 수밖에 없다. 승천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하나님으로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성자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그의 공생애 기간의 복음에 대해 역사하신 내용을 일일이 모든 인간에게 전하며 깨닫게 하시고 계신다. 


 언젠가는 성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재림하셔서 온 세상 천지만물을 심판 하시고 정리하신 후 끝까지 믿는 자들과 함께 영원히 하늘나라로 승천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다. 그러나 영이시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三位一體)의 형상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 하시며 역사하고 계시다. 


 결론적으로 우리 믿는 자들도 고난에서 부활로 그리고 승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연속적이고 불변의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최초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탐심으로 죄를 짓고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사망은 인간을 만드실 때 주신 하나님의 영이 인간에서 떠나고 대신 악한 영인 사탄의 영이 마음속에 들어와서 날마다 죄를 짓게 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탄은 사망의 권세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계속 차단하고 있다.


 그럼으로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 상에서 피 흘리시며 죽으시고 다시 살아 나셨기 때문에 사탄의 사망 권세를 한 번에 묵살시키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를 보혈의 피라고 부르며 또한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을 위해 대신 피를 흘리시며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만일 고난과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사탄에 의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과 부활 그리고 승천하신 것은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 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믿기만 하면 우리 인간들도 하나님과 같이 죽음에서 부활하고 승천하여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거저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거절할 것인가? 따라서 인간들이여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믿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 곧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 하지만 끝까지 믿음을 거부하는 자 반드시 불꽃 연못인 지옥에서 사탄 마귀와 함께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 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 10: 28-30).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seungo
leeseungo
77835
21855
2017-03-23
발람과 발락의 성경적 의미

 

 발람은 하나님의 대변인 또는 선지자로 택함 받은 자로써 메소포다미아 유브라데강변에 위치한 고향인 드돌에 거주 하였다. 처음에는 발람이 진실한 선지자로써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라는 명성이 주위 모든 나라에 전해져 오고 있었다. 


 반면 발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4백여 년간 애굽땅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거의 인도 되는 여정에서 여리고 마주 편 모압 평지에 이르러 거기에 진을 치고 주둔하게 되었을 당시에 모압의 왕이었다.


 여기서 발람과 발락, 두 사람의 연관된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이 모압땅까지 오는 길목에 아모리왕 시혼의 땅을 지나가야 하므로 이스라엘이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어 아무 해를 끼치지 않는 조건으로 통과 할 것을 요구 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백성을 모아 이스라엘을 치므로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들을 쳐서 무찌르고 그 땅을 점령 하였다. 


 또한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의 땅에 모세가 또 사람을 보내어 요단강 동쪽 길르앗에 있는 야셀 성읍을 정탐한 후 그 촌락을 빼앗고 아모리인을 추방시켰다. 바산왕 옥이 그의 백성을 다 거느리고 와서 싸우려 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그 땅을 점령 하였다. 


 아모리인들의 두 왕국 시혼과 바산을 점령한 사실을 보고는 모압왕 바락이 두려워서 발람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여 물리쳐 주실 것을 요구함에 따라 두 사람의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관계성립의 내용을 보면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 손에 복채를 가지고 발람에 이르러 발락의 초청을 전하였다. 발람이 하나님께 여쭈어 보니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민22: 12) 라고 명확한 지시를 하였음에도 명예나 부를 생각하여 사신들과 함께 가고 싶은 불안정한 상황으로 발람은 변하여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발람이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 행동을 취하였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행동을 아시고는 한번 더 사신이 와서 청하면 그때 가라고 허락 하셨으나 기다리지 않고 사신들과 길을 같이 하였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분노하시고 천사를 보내어 가는 길목을 막아서게 하셨으나 천사들에게 발람의 목숨은 살려주고 가게 하되 오로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만 하게 하셨다.


 드디어 발락은 자기에게 온 발람을 여러 장소로 데리고 다니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하였으나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만 위하여 축복함으로써 하는 수 없이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발람이 하나님께 순종한 것으로 보였다.


 어찌 이런 일이 발생할 수가 있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발람은 하나님의 예언자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직접 인도 하시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 할 수가 있겠는가? 또한 발락은 발람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고 있으면서 하나님 백성에 대해 저주를 요구 할 수가 있을까?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역사하시기 위한 섭리라고 생각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발람의 사건이 구약성경 모세오경에서 시작하여 신약성경 히브리서, 베드로후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에 이르도록 발람의 경우를 피해야 할 대표적 예로 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을 통해 발람의 행동이 진실한 것인가를 살펴보자.


 이스라엘 민족이 모압땅 싯딤에 진을 치고 있었을 때 모압여자와 음행하며 모압 신들에게 절하며 “바알브올”에 가담 하였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염병으로 2만4천명을 죽이셨다(민25: 1-5, 9 참조). 이 일이 발람에 의해 일어났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 두었느냐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민 31:15-16).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계2: 14).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유 11). 발람은 신, 구약을 통해서 거짓 선지자요 위선자임이 증명 되었다.


 결론적으로 성경에서 거짓 선생이나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아니라 모두 믿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자들로 처음에는 충실한 믿는 자들로 하나님에 관해 온전하게 알고 있으며 거룩한 계명을 받은 자들로 발람처럼 처음에는 올바른 길을 걷다가 도중에 그 길을 버리고 거짓 선지자 및 위선자가 되어 이단의 설교와 거짓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착취 한다.


 이들 변절자들은 하나님의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도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히6: 4-6). 


 오늘날에도 믿는다는 모든 지도자들의 거짓 위선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거역하는 사악한 지도자들을 제일 미워하셔서 반드시 극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에 대해 원수를 갚으라고 모세에게 명령 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이 미리안을 쳐서 남자를 다 쳐 죽였고 미디안의 다섯 왕도 죽였으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다. 따라서 발람의 일생은 끝이 났다(민 31:7-8 참조).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벧후 2: 20-21).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seungo
leeseungo
77738
21855
2017-03-14
겟세마네 기도

 

 피 흘림 없이는 사함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 상에서 죽게 하시고 그 보혈의 피로 인간들의 죄를 사 하셨다. 죄 사함 받은 인간들은 믿음으로 의로워져서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갖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인성을 갖게 하기 위하여 인간의 여자의 태를 빌려 성령으로 잉태케 하시고 어린 아이로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다. 인간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한 어린아이 예수님이 태어 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본체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이 태어난 때는 구약시대로 이때에는 인간들이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짐승의 제물의 피로 대신하고 있었다. 여기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피는 오직 죄성이 없는 짐승과 예수님의 피밖에 없다. 죄성이 있는 제물의 피로는 죄 사함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동물의 피로는 인간의 생명을 대속 할 수가 없고 오직 죄만을 일시적으로 용서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대속 할 수 있는 피는 예수님의 피 밖에 없다. 이를 믿는 자들만이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요3: 16) 라고 말씀 하셨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세상에 태어난 예수님은 30년을 인성으로 인간과 똑같이 사셨고 3년 반은 신성으로 구속 사역을 이루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으로 사셨다. 따라서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시작 할 때로 30세쯤 되셨다고 한다. (눅3: 23 참고). 


 예수님이 공생애에 들어간 후 유월절을 3번 맞으셨으므로 공생애 기간이 3년쯤으로 성경에서 알게 된다. 첫 번째 유월절은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셨더니”(요2: 13), 두 번째 유월절은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요6: 4), 세 번째 유월절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룬 줄 알고”(요13: 1)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돌아가실 때쯤에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기 시작 하였다.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나타 내셨다.(마16: 21, 마17: 22 참조).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 유월절을 기하여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함께 하시면서 먼저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 하시고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라 하시고 또 잔을 들어 감사기도 하시고 다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기 위한 나의 피라고 말씀 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살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며 돌아가실 것을 말씀 하셨으나 제자들은 이 깊은 내용을 알지 못했다.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3제자와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시기 위해 가시다가 내가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 하시며 슬퍼하셨다. 


 제자들에게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어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하시고 바로 한적한 곳에 나아가셔서 기도 하셨다. 이것이 겟세마네 기도이다.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십자가 상에서 고통 속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 하셔서 승천하실 것을 이미 알고 계셨는데 왜 얼굴을 땅에 대시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도록 기도 하셨는가? 예수님께서는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갖고 계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느끼는 고통과 고뇌 그리고 고난에 대해서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 유아기 때부터 사람에게서 고난을 받으셨고, 그의 공생애를 막 시작 하면서 사단에게 고난을 받았으며, 앞으로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의 손에서 고난을 받을 것으로 이 모든 고난은 하나님께서 친히 구주를 채찍질하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마침내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이미 3시간 동안 십자가의 어둠 속에 들어 가셨다.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막14: 34) 라고 말씀 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의 고민의 내용이 무엇인가? 이것이 겟세마네 기도의 핵심이다. 무엇을 고민 하셨는가? 십자가 상에서 잔인한 죽음을 앞두고 두려워서 하는 말씀도 아니고, 또한 위기의 시간에 그의 제자들에게 버림을 당하리라는 생각도 아니고, 악한 자들의 손에 자신이 채찍질을 당하고 수치와 곤욕을 맛보며 십자가에 못 박히어 살이 찢기고 피 흘리는 육체적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도 아니다. 


 아버지께서 마시라고 주신 잔은 죄를 가장 싫어하시는 진노의 잔으로 물이 조금도 섞이지 아니한 순수한 진노만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그의 사랑하는 독생자에게서부터 그 얼굴을 돌려 숨기시려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고뇌이다. 


 다시 말해 죄를 멀리 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들의 죄를 짊어지신 주님과 영원히 결별하시기 위한 것으로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주님께서는 닥쳐오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생각에 몰두 하시고 그의 영혼의 모든 기능과 힘이 온통 고뇌에 휩싸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 36-39) 라고 기도 하셨던 것이다. 아버지의 진노의 잔이 아버지와의 교제가 단절되는 것을 의미하는 줄 느끼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로 한 주님의 순종이 얼마나 놀라운가! 


 마침내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겟사마네 동산에서 그에게 마시라고 주신 잔을 십자가 상에서 비우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진노의 잔을 십자가 상에서 마시면서 까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절규 하셨다.


 죄 없는 자가 정죄를 당하고, 허물없는 자가 박해를 받으며, 은혜를 베푸는 자가 잔인하게 죽음을 당하는 분은 인자이시요, 모든 일에 뛰어난 분이시요,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 자신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의 절규이다. 어떤 혀와 붓으로 구주의 고난을 다 설명 할 수가 있겠는가? 겟세마네 기도는 말 할 수 없는 육체적이며 정신적이며 영적인 고통과 고뇌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신성과 인성 사이를 오고 가시면서 겟사마네 기도에서 받으신 고뇌와 고통 그리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사명에 순종하고 완성하심으로써 죽음에서 승리하셨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인간들에게 구원의 길이 생기게 된 것이다.

 

 “내가 소시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의 두렵게 하심을 당할 때에 황망하였나이다.”(시88: 15).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seungo
leeseungo
77614
21855
2017-03-07
회상(回想)(하)

 

(지난 호에 이어)
 여기서 남북한의 여러 지도자 중 누가 국가와 백성을 위한 지도자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지도자는 김씨 일가의 독재정권으로 인간의 자유와 평화가 없으며 남한을 공산화하기 위해 무기개발에 치중 하므로 국민들이 굶주림에 살고 있다. 


 남한의 경우 역대 대통령을 보면 일부는 무능하고 대부분이 부정부패로 국고를 횡령 하였다. 일부는 오히려 나라를 해롭게 하였으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나는 교인으로 북한 지도자들은 2천만 동족을 위해, 남한 지도자들은 5천만 동족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가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7천만 민족은 지정학적으로 대국 사이에서 또한 세계패권국가에 의해 이용당하면서 급기야 동족 간에도 적대관계로 싸우고 있으니 동족의 운명이 서글프지 않을 수 없다. 선조 때부터 중국에게 처녀들을 포함한 요구하는 모든 것을 조공 드리며 종속 관계에 있었으며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주신 만주 땅까지 빼앗기고 지금은 북한을 이용하여 지하자원을 탈취하며 자기나라의 방어막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본래 미개국으로 우리나라의 문화를 받아 세워졌으나 오히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침범 당하여 명성황후 시해사건, 위안부 사건으로 세계의 미개 민족으로 멸시 받아왔다. 36년간 일본의 식민지 그리고 6.25 전쟁으로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리는 거지의 나라가 되었다. 


 가난한 백성들을 위하여 박정희 대통령은 경부 고속도로, 조선소, 포항제철 등의 기간산업을 구축하고 강압적인 경제개발로 짧은 기간에 세계가 놀라는 10대 경제 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북한의 김일성은 남침을 위한 핵개발 및 미시일 발사 등에 투자함으로 지금도 쌀밥의 고깃국 먹는 것이 희망이라니 북한 동족이 얼마나 불쌍하고 안타까운가! 


 왜 우리 7천만 한민족이 비운의 처지에서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가? 그 이유는 우리 민족 자신의 잘못에서 기인된다. 우리민족의 민족성(근성)과 단결력이라곤 전혀 없는데 원인이 있다. 민족성에 대해 예를 들면 바다 모래에 사는 꽃게 근성이라고 한다. 꽃게를 잡아 그릇에 넣으면 그릇의 뚜껑이 필요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한 마리가 그릇에서 탈출하기 위해 기어오르면 다른 놈이 잡아당기고 그릇에 있는 모든 꽃게는 서로서로 물고 있어 한 덩어리로 급기야 모두 몰살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4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한다. 이런 근성에서 백성의 지도자가 나오니 남북한 역대 지도자들이 자기만의 권력과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해 백성들은 얼마나 고통에서 살아야 하나!


 우리국토는 남북한 합쳐도 미국의 1개 주보다도 적은데 또 분단되어 1 개의 큰 도시에 불과한데 이것이 또 여러 개의 지방자치단체로 나뉘어져서 단체 간의 경쟁으로 홍보와 위상을 위해 불요불급한 시설이나 토목공사는 물론 각종 세계대회를 개최하는 등 막대한 세금이 낭비되며 또한 지역적인 파벌 즉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의 대립과 정치적인 여야 대립으로 국론이 분열되어 국가의 안보와 경제까지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


 민주와 자유의 한계를 넘어 불법행위로 법을 지키지 않는 무법주위로 공권력이 파기되어 사회가 혼란에 처해있다. 북한은 백성들을 억압하여 자유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실정이다. 우리 민족의 재능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지만 단결력이 없기 때문에 패권주위 국가에 이용당하고 있다.


 중국은 군사적 경제적으로 우월한 미국과 한국과 일본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하여 고슴도치 이론으로 북한을 방패용으로 핵무장 시키고 북한의 지하자원 획득은 물론 저임금의 북한 노동력을 이용하여 국익을 취하는 민족성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패권에 대비하기 위하여 남한을 이용하고 있다. 북한의 핵은 핵으로만 방어할 수 있음에도 핵은 자기들이 담당한다고 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기피하고 있다. 왜냐하면 만일 경제국가인 두 나라가 핵을 보유하면 고가의 군사무기를 판매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패권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에 전략적으로 미군을 주둔시키고 방위비까지 분담시키고 있으니 우리민족의 통일은 요원한 것이다. 7천만 동족이 단결해야 하는데 사상적으로 대립되어 있으니 한탄할 일이다. 아무리 남북 대화니 경제협력이니 하지만 아무 소용없이 시간만 지연될 뿐이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현실을 회상해 보면 지도자나 백성들이 모두가 오합지졸이다. 부패, 불법, 무질서,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서 유아독존 격이다. 젊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교육자가 되기로 결심 하였으면 끝까지 교육자의 길을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가가 된다.


 시장이나 도지사는 주민을 위해 몸을 바친다고 주민을 속여 당선되면 지역주민을 버리고 현직을 유지하면서까지 시정과 도정을 중단한 채 대통령후보로 열중하며 만일 대통령에 실패하면 다시 시장 도지사로 복귀한다. 


 막강한 권력 위에서 각종 국가의 혜택을 받고 있는 국회의원도 자기지역의 주민들을 위해 봉사한다고 유혹하여 당선되면 현직을 유지한 채 대통령 후보에 나선다. 이들이 거짓 위선의 망국적인 지도자들이다. 지도자들이 자주 교체 되어야 국가를 사랑하는 온전한 민주주위의 국가가 되는 것이다. 


 국회의원도 대통령 단임제와 같이 중임제로, 교수도 신기술과 문화에 따라 분야별로 임기를 조정하고, 재벌도 가족의 세습적인 지주제도에서 근로자 및 종업원 지주제도로 변화 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위선자이며 거짓 지도자들은 자기직분을 바꾸고자 할 때에는 현직을 버리고 다시 복귀할 수 없게 하루 속히 법을 개정하여야 한다. 일개 근로자도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면 다시 복귀할 수가 없다. 


 또한 지도자들은 정권교체라는 목적 하에 여야가 국민을 선동하여 국가를 위태롭게 하고 있으며, 법을 떠나 오히려 폭동을 자행하고 있으니 참으로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과거 조상들의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7천만 우리 한민족을 위해 북한 동포들에게는 자유와 평등을 알게 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남한 동포에게는 자유와 평등의 기본 질서와 법규를 계도하여 준법정신을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단결하여 통일된 국가에서 함께 공존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민족이 중국이나 미국의 패권국가로부터 이용당하지 않는 위대한 민족이 될 것이다. 예로 아프칸니스탄 민족은 경제와 국방력에서 비교도 안 되지만 민족의 단결력으로 소련, 미국으로부터 이용당하지 않았으며, 2천만의 이스라엘 민족도 단결력으로 2억의 회교국가로부터 국가를 지키고 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자나 깨나 7천만의 한족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른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른 자들은 심판을 자처하리라” (롬13: 1-2)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seungo
leeseungo
77491
21855
2017-03-02
회상(回想) (상)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씨족을 부족으로 부족을 국가로 만드셔서 각 국가마다 기업으로 땅을 분배하셨다. 우리 한민족(韓民族)에게도 혹서의 사막이 아닌 기후가 좋은 곳에 땅을 주셔서 살게 하셨다. 그러나 우리 민족성(속어: 근성) 때문에 단결하지 못하고 만주의 큰 땅을 중국에 빼앗기고 일본에게는 36년간 나라를 잃어 버렸다.


 다행히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으나 5년 후인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으로 비참한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많은 동족들이 죽었다. 미-소에 의거 휴전이 선포되고 38선 이북은 소련의 통치하에 남쪽은 미국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2017년을 맞이하면서 민족 나이로 80세가 되니 살아온 기간보다 죽을 날이 가까워지기 때문인지 과거를 회상하게 되는가 보다. 회상이란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으로 우리연배들의 회상은 일제시대와 6.25 전쟁의 비극적인 일들이 대부분으로 불운의 세대들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수원에서 6Km 서쪽 방향의 경기도 남양반도 농촌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일본 식민지에 반항하는 가곡 “울밑에서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라는 가요를 작사 작곡한 홍난파 선생과 동향이다. 우리가문은 전주 이씨로 선조 22대에 와서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 초대 왕이 되었고, 둘째 아들 정종이 2대왕, 다섯째 아들 태종이 3대 왕, 그리고 세종대왕을 비롯해서 12명의 아들들을 두었는데 8번째 근령군이 우리 가문이 되고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첫째 아들 양녕대군의 가문이다.


 태종 때 왕자의 난으로 왕의 직계를 제외한 형제들은 지금의 서울인 한양 4대문 밖에서 살게 하였다. 이씨 조선의 유교사상으로 우리 가문도 유교 가정으로 대대로 우상숭배를 겸한 제사문화 속에서 생활하였다.


 어머님께서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조상들에 대한 모든 제사, 절기에 따른 우상숭배 등으로 고생하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모든 제사는 물론 우상숭배물들을 다 깨부수고 농촌 천막교회에 출석하심으로써 우리 가정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동기가 되었다. 그 당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리라.


 내 나이 7세 때 일제하의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아버님은 48세에 세상을 떠나시고 두 형님은 모두 군에 입대 하면서 우리가정은 노모님 형수님 누님으로 여자 3분만 계시고 남자는 나 하나뿐이었다. 도저히 중학교에 입학할 수가 없어 한문 서당에서 4년간 한학을 공부 하였다. 한서의 마지막 주역 책을 포함한 4권의 책을 이수 못하고 중단 하였다. 


 한학이 오늘날 성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진리는 오직 하나이기 때문이다. 신학문을 받기로 하였으나 나이 관계로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신설 고등학교와 대학들은 돈만 지불하면 입학할 수 있게 되어 그만큼 학사관리가 엉망이었다.


 신설 대학이 지금은 일류대학교가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영어 수학은 나에게 큰 문제로 이를 위한 노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선교사들이 설립한 미션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다.


 나의 역경 속에서도 왜정시대(倭政時代), 대한민국정부시대, 북한의 남침 때 공산치하 그리고 현재 한국정세에 대하여 보고 느낀 것을 회상하고자 한다. 왜정시대를 회상하면 일본은 한국을 침략한 후 착취는 물론 한국인을 일본화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일본은 중국 및 동남아 국가를 정복하기 위해 한국을 기반으로 군량미로 모든 양곡을 착취하고 젊은 남자들은 일본소재 군수물자 생산공장으로 징집 당하고 젊은 여성들은 일본국 위안부로 전쟁터로 끌려가고 심지어 유교제사용 놋 유기그릇 일체를 탄알과 탄피용으로 강탈당하였다.


 일본어로 이름까지 개명하고 한국어도 못하게 함으로써 일본인화를 꾀하였으니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 당시 농촌에서는 목피와 들풀로 연명하며 갖은 병에 시달렸다. 대한민국 정부시대를 보면 일본이 전쟁에 패함으로써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우리나라는 미소 강대국 이익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고 북한은 소련의 통치하에 남한은 미국의 통치하에 있었으나 소련이 이미 김일성을 앞세워 북한에 공산정부를 수립 하였다.


 위에서 이씨왕조를 언급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설립된 대한민국 정부시대를 언급하기 위한 것이다. 첫 번째로 이승만은 미션계통의 배제학당을 거쳐 미국 유명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미 그리스도인으로 자유와 민주 그리고 평등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습득하고 또한 세계의 모든 정세를 몸소 경험했다. 


 귀국 후 이씨조선 왕족의 후손이면서도 왕족의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앞장섰으니 왕족으로부터 옥에 투옥되어 손가락조차 쓸 수 없을 정도의 고문과 거의 죽게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출옥 되었으나 계속 투쟁으로 독재 왕권을 타파하고 민주주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두 번째로 이승만은 북한에 공산주의 수립 전후에서 민족 지도자 김구 선생은 주로 국내파로써 세계정세와 공산주의자들의 성격에 대해 자기만의 양심적인 애국심만 믿고 지금도 북한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을 주장 하듯이 김구 선생은 한 개의 국가를 위한 연합정부를 받아드리려 했다.


 이때 기만적인 공산화 전술에 말려들어 남북한이 공산화될 것이 분명 함으로 이승만은 김구 선생과 대립하고 미국의 협조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세우고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지금도 김구선생을 아쉬워하면서 이승만을 원망하며 비판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을 제정하여 민의 국회를 만들고, 남녀차별 없이 평등권을 부여하여 백성이면 누구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하고 토지개혁 등 놀라운 개혁을 감행 하였다. 


 그 당시 북한 김일성은 군사력을 강화하여 남침을 작심하고는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마오쩌뚱에게 간곡히 요청하여 허락을 받아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남침으로 낙동강까지 진격하여 거의 남한을 점령 하였다.


 남침한 인민군은 인심을 얻기 위해, 어느 전쟁에서나 승리한 점령군은 점령지의 여성으로 성욕을 채우는 것이 상례이나 여성을 겁탈하지 않았다. 멸시 당하고 살던 천민과 무식한 사람을 위원장 등 간부로 등용하여 주민들의 신상을 파악하고 뒤에서 이들을 이용 하였다.


 젊은 여자로 여성동맹을 결성케 하여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시켰다. 그리고 젊은 남자들은 의용군으로 징집하여 전투에 이용 하였으며 학생들은 흥분과 감동성을 이용한 공산주의 노래로 세뇌시켰으며 일반 주민들은 낮에는 토목 공동사업에 부역하고 밤에는 늦게까지 집회에 참석하여 공산당 이념에 몰두하게 함으로써 누구나 잡념의 시간을 주지 않았다.


 네 번째 이승만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우의를 맺은 친구들이 미국의 정치 군사 분야에 포진되고 있어 이들의 도움으로 다시 서울을 탈환 하였다. 다시 조국을 세운 제2의 건국이다. 


 다섯 번째로 이승만은 그리스도인으로 동족을 사랑한 이념에서 북한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남침한 인민군들을 반공 포로로 석방 하였으니 참전한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애국애족의 민족지도자이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seungo
leeseungo
77425
21855
2017-02-22
십자가의 의의(意義)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던 그분께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그분께서, 바로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육신이 되시어 몸소 세상을 지으신 그분께서 자기 땅에 오셨으나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하였고 사람 가운데 거하셨으나 그분의 백성들은 그분을 배척하였다. 마침내 십자가상에서 극도의 고통과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셨다.


 인간의 죄값을 치를만한 이가 아무도 없기에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가 친히 자신을 대속 제물로 드리셨던 것이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음에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 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빌 2:8).


 죄인들을 구원할 구주, 불의한 자들을 대신하여 의를 세워야 할 구주,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으셔야 할 구주로 세우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태초부터 작정하셨던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께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요 10:17-18). 


 죽음이란 자신의 죄 값으로 받게 되는 형벌이다. 그러나 주님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으시며 타락한 인성을 취하지도 아니하셨을 뿐 아니라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도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거짓도 없으시며 (벧전 2:22),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셨다. 이점에서 거룩하신 주님 흠 없고 점 없는 분 (벧전 1:19)의 죽으심은 부당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죄성을 갖고 태어난 죄인으로 모두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상의 제물로 피를 흘리며 죽음을 맞이하셨던 것이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으리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피는 생명의 대속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모두 알아야 할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들은 죄인들 이여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갈 수가 없는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훌륭한 성품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불쌍한 사람을 위한 구제사업 또는 자선사업을 하며 좋은 일을 위하여 사회에 거액을 기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우리의 영혼 사이에 죄의 담이 가로막혀 있는 한 헛수고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지은바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눈보다 희게 씻기어지기 전에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죄 사함 받고 의로워지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길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하늘과 땅 온 세상이 하나님의 것이며 세상만물과 세상화복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께서 독생자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사악하고 무능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처참히 돌아가시다니! 그의 사랑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단지 은혜라고 표현할 수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시면서 하신 일곱 말씀을 음미하면서 예수님께서 신성과 인성 사이를 오고 가시면서 받으신 고뇌와 고통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사명을 완수하시고는 승리와 만족을 보여주신 주님을 생각할 때 영혼 구원은 물론 이 세상 사는 동안 어떠한 경우에도 극복하며 승리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의 죄가 얼마나 끔직하고 큰 것인가를 알지 못하고 영광의 주님인 그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도 모르면서 계속 죄를 짓고 살아가는 이 엄청난 비극이 아직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서글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고 계시면서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다는 재림의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 이니라” (롬 6:23)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seungo
leeseungo
77340
21855
2017-02-16
금송아지 숭배

 

 토론토 영락교회는 재적 교인 수가 4천5백여 명으로 정확한 교회출석 인원은 알 수 없지만 해외 한인교형 교회이다. 송민호 담임 목사님은 매년 성경일독 표에 의해 성경을 읽도록 권장하고 계시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매년 성경을 완독하고 상품까지 받고 있다. 목사님도 성경 읽기에 동참하여 읽어가는 성경 내용 중에서 매주 설교제목을 정하여 설교함으로써 능률적으로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한다. 


 또한 성경대학이란 과정을 설치하여 평일에는 부목사님들과 함께 성경의 이사야서와 같은 전문 분야별로 교인들을 인도하고 있어 교회의 사명을 다 하고 있다. 년 초에 창세기가 끝나고 출애굽기를 읽고 있는 중에 금송아지 숭배라는 제목의 글을 쓰기로 작심 하였는데 어느 날 목사님의 설교제목이 금송아지 사건으로 설교를 하시기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출애굽기에는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이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은 사역자들의 놀라운 내용이 많은데 목사님과 나의 제목이 동일할까? 느끼기도 하였다. 목사님은 평생 목회자로 신학을 전공한 신학박사로써의 말씀이기에 신앙의 차이가 엄청나게 다르지만 평신도로 느낀 감회를 모든 주석가들의 내용을 포함하여 솔직히 피력하고자 한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 하시기를 이방에서 4백여 년간 종살이 노예생활로부터 너의 후손들을 해방시키어 가나안 땅으로 구출하신다고 언약 하셨다.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 모세와 형 아론을 쓰셔서 유대민족을 구출하는 과정이 성경에 출애굽기의 내용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유대민족을 구출하는데 말 잘한다는 형 아론과 가기 싫어하는 동생 모세를 불러 쓰셨는가? 왜 아론은 출애굽 과정에서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여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순종 했는데 어떻게 금송아지를 직접 만들고 제단까지 쌓으면서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 이라고까지 공포할 수가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바로 왕을 강퍅하게 하시고 모세와 아론과의 담판에서 10번의 마지막 이적인 어린양의 피로 인한 유월절 사건을 통해 유대민족을 광야까지 탈출시킨 하나님께서 끔직한 금송아지 숭배사건이 발생될 것을 모르셨단 말인가? 끝까지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거역한 백성을 3천명이나 죽이면서 왜 아론은 죽이지 않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백성을 모두 죽이기로 결심 하셨으나 과연 모세의 중보기도로 포기 하셨는가? 


 위와 같이 5가지의 금송아지 숭배에 따른 의문을 갖게 된 것은 나의 믿음에 따른 좁은 견해이다. 따라서 여러 주석가들의 해석을 살펴보면 만일 아론이 백성들이 요구하는 금송아지 제작을 거부할 시는 돌에 맞아 죽을 것을 두려워하였다는 설, 또한 백성들에게 모든 금붙이를 가져오라고 하면 백성들은 금붙이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금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 하였다는 설, 또한 만일 금송아지 제작을 거부한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을 예방 하였다는 설, 또한 위기를 당할 때는 믿음을 떠나 육신적인 욕망으로 돌아가 믿음이 퇴보되어 우상까지 숭배하게 된다는 설이 있다.


 나의 믿음의 수준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를 아니하여 금송아지 사건은 이미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을 창조 하시고 관리 지도하시기 때문에 이에 모든 피조물들을 쓰고 계시다. 사람을 쓰실 때에는 의인이거나 의인이 아니거나, 선인이거나 악인이거나, 진실한자이거나 위선자이거나, 신자이거나 불신자이거나 구분없이 사용 하신다. 심지어는 사탄까지 쓰고 계시다.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유대민족을 탈출시키기 위해 모세와 아론을 쓰신 것이다.


 예로써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온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씀하신 욥을 사탄을 사용하여 확인토록 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 가롯 유다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아시면서 제자를 삼으셨으며, 또한 예수님이 믿었던 제자 베드로가 세 번이나 주님을 배반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의 수제자 “이그나티우수”는 나이 80세를 지나 순교 당할 때 재판관이 “네가 예수를 배반 하라” 하니 대답하기를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믿었는데 그는 한 번도 나를 배반하지 않으셨는데 어찌 내가 그를 배반 하겠는가? 마침내 “사자여 빨리 내 허벅다리를 깨물어라. 그리고 내 갈비뼈를 파헤쳐라, 허파를 끌어내고 심장을 끌어내라. 속히 내 사랑하는 예수님 앞으로 보내다오” 하면서 한 번도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고 순교했다는 기록을 인용 하였다.


 하물며 하나님의 거대한 출애굽 사건에 쓰임 받은 아론이 백성으로부터 돌에 맞아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감히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 의사에 따라 금송아지 우상숭배를 자행 하였을까? 생각 하였다. 이는 나만이 느낀 생각일 뿐임을 분명히 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과정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통해 인간의 생사를 주관 하시는 심판자이시며 구원자이심을 온 세상에 만민에게 보여 주셨다. 또한 광야에서 금송아지 사건을 통해 끝까지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을 즉시 전멸시키시려고 하셨지마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한 유대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 하신다는 언약을 지키시기 위하여 가나안 땅에 거의 이르러서 백성들을 모두 죽이시고 그들의 후손들만이 가나안 땅으로 인도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언약을 지키시며 죄지은 자들은 반드시 심판 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다. 따라서 우리 믿는 자들은 항상 겸손하게 순종하며 구원으로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단4: 35).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seungo
leeseungo
77259
21855
2017-02-14
요셉의 지혜

 
 

 육의 사람은 육의 생각을 하고 영의 사람은 영의 생각을 하게 된다. 육의 생각은 육적인 지식을 얻게 되고 영의 생각은 영적인 지혜를 얻게 된다. 또한 육의 사람은 대체로 악의 영에 의해 지배를 받지만 영의 사람은 온전한 성령의 영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된다. 


 성경을 통해 이에 따른 요셉의 경우를 보면 요셉은 매우 영적인 지혜자이다. 살펴보면 요셉의 부친 야곱은 자기 외삼촌 라반의 둘째 딸 라헬에 반하여 결혼하고 두 아들을 두었으니 요셉과 베냐민이다. 야곱의 아들 순으로는 요셉이 열 한 번째이고 베냐민이 막내가 된다. 야곱이 라헬을 매우 사랑하였으므로 두 아들 역시 사랑을 받고 살았다. 


 야곱의 편애에 따라 형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로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었다. 이유인즉 요셉이 17세 때 순진해서 부모와 형들 앞에서 꿈꾼 내용을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 했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해와 달은 부모를, 열한 별은 형제들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요셉을 큰 지혜의 지도자로 쓰실 것을 예시한 것이다.


 요셉에 대한 형들의 미움은 꿈보다는 야곱이 요셉 형제에 대한 편애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벤자민은 어머니 라헬의 난산으로 죽고 어머니도 없이 자라났기 때문에 더 편애를 받았을 것이다. 이로 인해 형들은 요셉을 마침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은 20에 팔았고 상인들은 애굽의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다. 


 결국은 야곱의 편애로 요셉이 애굽에 거주하게 된 동기가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조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에게 축복을 내려 후손이 번성되나 네 자손이 이방에 객이 되어 괴로움을 받겠으나 그 후 네 자손이 섬기던 나라를 내가 징벌 하고 네 자손이 돌아온다고 예언 하셨기 때문에 이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 요셉을 먼저 이방 애굽으로 보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영감(靈感)과 영력(靈力)이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 요셉은 어려운 역경에 처할 때마다 영의 지혜로 극복하기만 하면 더욱 더 형통 하였다. 소년시절부터 요셉은 증조부 아브라함, 조부 이삭, 그리고 아버지 야곱으로 이어온 하나님과 함께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역사 하시는 것을 몸소 느끼며 성장하였기에 훌륭한 영의 지혜자가 되었다.


 돈으로 요셉을 종으로 삼은 보디발은 요셉과 함께 하면서 가정이 형통하여 감으로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 모든 소유를 위탁까지 하였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유혹하고 동침을 요구하나 이를 뿌리친 요셉을 오히려 모략하여 요셉은 죄인으로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옥에 투옥 되게 되었다. 


 그러나 요셉은 주인 아내의 모략에 대해 일체 변명 없이 이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실 것을 믿고 인내하며 현재 자기가 처한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였다. 2년 후 바로가 꿈을 꾸었으나 해몽할 자가 없어 근심 중에 감옥의 히브리 청년이 해몽을 잘한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을 불러 명확한 해몽을 들은 왕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임명 하였다. 


 요셉은 자기의 해몽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대답한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성경에서 요셉이 하나님에 대한 첫 번째 신앙심의 표현이라고 볼 수가 있다. 요셉이 총리가 된 후 애굽에는 7년간 풍년이 들고 그 후 7년의 흉년이 들것을 왕의 꿈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로 알고 풍년 때 엄청난 곡식을 저장하여 흉년에 대비한 것이 애굽과 조국인 가나안은 물론 인접 국가까지 모든 백성이 아사 직전에 생명을 지켜왔던 것이다.


 따라서 야곱도 요셉의 형들을 애굽에 보내어 곡식을 사오라고 애굽으로 보내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마음의 감동의 눈물 없이는 느낄 수 없는 요셉의 영적 지혜에 감회를 느꼈다.


 요셉은 곡식을 사러 온 형들을 알고 있으나 모르는 척하고 어디서 왔느냐? 물으니 형제들은 가나안에서 왔다고 대답하니 요셉은 아니다 너희는 정탐꾼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다고 반박 하였다. 이는 그 동안의 고향부모, 동복인 동생 베냐민 등 모든 가족의 형편을 알려는 계획적인 것이었다. 


 그 후에 너희 막내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들은 여기서 돌아가지 못 한다고 하면서 형제들을 3일간 가두었다. 3일 후 너희 한 사람만 옥에 가두고 너희들은 곡식을 가지고 가서 집안에 굶주림을 구하고 막내아들을 데려 오라고 하였다. 요셉은 형들에게서 잠시 떠나 슬피 울고 시므온 한 명을 옥에 가두고 가나안으로 보냈다.


 돌아온 형들이 아버지 야곱에게 애굽에서 일어난 현황을 보고하는 가운데 너희 막내를 데리고 오면 너희는 정탐꾼이 아니니 이 나라와 계속 무역한다는 말을 듣고 야곱은 슬퍼한 가운데 ”막내는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는데 만일 막내까지 죽게 되면 너희들이 내 흰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는 것이다”라고 매우 한탄 하였다. 


 그럼에도 가나안 땅의 기근이 심하니 하는 수 없이 야곱은 하나님께 형제들과 베냐민을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허락 하였다. 마침내 돌아온 형들이 베냐민을 데리고 요셉 앞에 서니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종들에게 나의 집에서 모두 함께 정오에 함께 먹는다고 지시 하였다. 


 요셉이 집에 오니 형들이 땅에 엎드려 절하니 요셉이 너희 아버지도 안녕 하시냐? 아직도 생존해 계시냐고 물었다. 그 후 그의 청지기에게 명하여 형제들 중 베냐민 양식자루 속에 은잔을 넣고 돌려보내게 하고 멀리 떠난 후 청지기에게 이들을 잡고 조사하게 하였다. 


 어찌하여 너희가 선을 악으로 갚느냐? 주인의 은잔을 왜 도둑질 하였느냐? 문책하니 형들은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고 하면서 자루마다 조사하여 만일 은잔이 나오는 자는 죽이고 우리들은 내 주인의 종이 된다고 말하였다. 은잔이 베냐민 자루에서 발견되니 요셉은 잔이 발견된 자만이 나의 종이 되고 너희들만 너희 아버지께 돌아가라. 형제들은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묶여 있거늘 이제 우리들만 돌아가면 아버지께서 죽게 되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아이는 보내고 대신 우리들 중에서 종이 되겠노라고 간청 하였다. 


 여기서 요셉의 지혜를 보면 본인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살 때에 형들의 미움을 받은 것을 회상 하면서 반드시 자기 동생도 똑같이 형들에게서 미움을 받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고, 또한 동생에 대한 형들의 의리를 보고자 하였다. 


 은잔이 발견되면 죽이라고 약속한 은잔이 동생에게서 발견 되었는데도 죽이기를 거부하고 대신 종이 되기를 요구하며 동생의 생명을 구하는 형제간의 우의와 아버지에 대한 효심을 발견한 후에야 요셉이 형들에게 자기를 밝히는데 이르렀다.


 이에 형들은 반가운 것보다는 요셉이 자기들에 대한 복수의 두려움이 앞섰다. 이를 알고 요셉은 나를 이리로 보내신 것은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전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영적인 지혜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말 할 수가 없다. 매우 감격적이다. 이후 요셉이 아버지를 위시하여 형제가족들 66명을 애굽으로 초청하였으니 요셉 식구 4명을 합하여 70명의 후손이 430년간 애굽에서 살면서 근 2백만 명의 이스라엘 민족으로 번성 하였다.


 하나님께서 최초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네 씨가 이방에서 400년간 노예로 살고 가나안 땅으로 다시 데리고 오겠다는 말씀이 모세의 지도자를 사용 하셔서 이루게 된 것이다. 이 민족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선민으로 삼으셔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계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각각의 재능을 주어 만드셨으나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피조물들을 총 동원 하셔서 역사하고 계시다. 그 중 인간들을 사용하시는 경우를 보면 야곱처럼 모태의 잉태 전부터 사용하시기로 계획 하셨고 태어난 사람 중에는 요셉처럼 선택되어 단련시키어 사용 하셨음을 본다. 


 쓰임을 받는 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쓰임 받은 자들은 그의 재능이나 능력에 따른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택 받아 쓰임을 받는 자들은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한 명의 영적 지도자일지라도 국가와 민족 그리고 온 세계의 안녕과 평화가 이루어질 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서 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인내하고 순종하여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의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내려 주신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니라” (롬8: 28).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seungo
leeseungo
77163
21855
2017-01-28
성경에서 느낀 감회

 

 매년 성경을 읽고 있지마는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회가 다르다. 2017년 읽기 시작한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에 관한 내용에서 느낀 감회를 피력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불러 쓰시기 위해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말씀 하셨다. 거기서 너에게 복을 주어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하게 하신다고 약속 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내 사라와 조카 롯과 함께 75세 때 하란을 떠나 가나안 족속이 사는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가나안 땅에 도착하자마자 그 땅을 네 자손에게 주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과정을 인간들이 알 수는 없지만 왜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하는 족속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조차 모르는 아브람을 부르셔서 축복 하셨는가? 이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제일 사랑 하셨으나 사탄의 유혹으로 인간이 죄를 짓고 죄로 인한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대 역사에 쓰시기 위해 부르셨을 것이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갈대인의 우르에서 이끌어낸 후 가나안 땅의 소유자로 만드시고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터이니 이후로는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하고 또한 아내 사래에게는 아들을 낳아주게 하여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할 터이니 그의 이름을 사라 라고 말씀 하셨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에게 축복을 내려 후손이 번성되나 네 자손이 이방에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며 그들은 4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겠고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하겠으며 그 후 네 자손이 돌아온다고 예언 하셨다. 


 이 때에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사용 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리라. 하나님께서 수차에 걸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이 100세 때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이삭 이라 하였다. 이삭만이 하나님의 씨로 후손이 번성하여 기업을 이어 받을 자라고 말씀 하셨다.


 아들 이삭이 장성하매 아브라함은 이삭의 결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들은 자식들의 결혼에 마음을 쓰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최초 인간 아담을 만드시고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돕는 배필로 여자 하와를 만드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그러나 오히려 여자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가정이 와해되고 세상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내용인즉 남편을 도우라는 배필 하와가 하나님께서 동산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 정녕코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이를 남편 아담에게 까지 거역하게 하였다. 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로 가정을 만들어 주셨는가? 아담의 가정이 죄를 짓고 세상으로 보내신 후 아담의 후손들도 땅에 충만하게 번성하게 하신 것은 당초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 피조물들이 땅에 충만케 하리라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로 가정을 만들어 주셨는가? 이는 사랑하는 인간들만이 죄를 짓고 죽을 수밖에 없음으로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이시다.


 우리 인간들도 자녀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녀들이 결혼 후 가정이 파기 된다면 결혼에 주저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가정이 와해될 것을 아시고 아담과 하와를 결합하여 가정을 이루시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기에 아담의 가정의 와해로 인간이 영생할 수 있는 길을 만드심으로 선을 이루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들의 결혼 후 이혼율이 늘어나고 황혼이혼까지 증가하고 있고 아예 독신자가 늘어나 윤리 도덕상 사회와 국가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허망의 욕심에서 결혼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결혼의 관심과 우리 평민들의 자녀결혼의 관심을 비교해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씨인 이삭에서 후손이 번성하여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이룰 자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는 것이나 우리 평민들의 자녀결혼의 관심은 먼저 행복한 가정을 누리며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가나안 땅을 저주 하고 그 땅의 거주족속을 추방하여 너의 씨에게 기업으로 주어 너의 씨가 번성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라함은 늘 상기하며 며느리를 가나안의 거주하는 족속에서 구하지 아니하기로 결심했다. 


 자기 늙은 종을 불러 씨가 번성한다는 관습에 따라 자기 허벅지에 손을 넣게 하고 너는 내 고향 내 족속에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지시하니 종이 매우 무거운 부담을 느끼고 걱정하는 모습에서 만일 고향의 여자가 결혼은 하되 신랑이 이곳에 와서 살라고 하면 어떻게 하리까? 주인께 여쭈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에서 떠나라고 하셨는데 그럴 수는 없으니 없는 일로 하라.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역사 하셔서 이미 하나님의 천사를 그곳에 보내서 며느리를 택하도록 하셨음을 알고 있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하고 계심을 알 수가 있다.


 고향에서 며느리 리부가를 택하고 아브라함이 죽으니 이삭에서 에서와 야곱 쌍둥이가 태어났다. 리브가가 잉태 중에서부터 서로 싸우는지라. 여호와께 여쭈니 두 국민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 하셨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태속부터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다 하고 태어난 후에는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 하였다고 언급 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의 편애요 이삭과 리브가의 편애라고 할 수가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에서와 야곱이 잉태 전부터 각각의 재능을 주시고 이미 야곱을 택하여 쓰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편애로 표현하고 이삭과 리브가의 편애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영적 지혜의 행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편애 하겠는가? 일반 부모도 효도하는 자녀에게 고마움이 있고 불효 자녀에게는 섭섭한 마음은 있을망정 미워할 수가 있겠는가? 어느 손가락이라도 다치면 온 몸이 아픈 것을 느끼는 것 같이 자녀들을 모두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권을 위임 받고 야곱에게 축복하여야 하는데 형 에서 앞에서 동생에게 축복 할 수도 없고 하여 에서를 사냥을 보내고 야곱에게 축복을 하였다. 하나님과 영감을 함께하는 이삭이 영감의 지혜를 부자간, 형제간, 부부간의 관계를 원만히 하고 야곱에게 축복하고 야곱을 조부와 어머니의 고향으로 보내어 두 형제를 헤어지게 하였다. 


 이것이 모두가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라고 본인은 생각 하였다. 왜냐하면 이삭은 사냥한 것의 별미를 먹고 싶다고 에서를 사냥을 보내고 돌아오는 대로 에서를 축복 하겠다고 말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리브가가 가축의 염소로 별미를 만들고 털 많은 에서와 같게 염소의 털을 야곱에게 붙이고 에서의 옷을 입혀 야곱이 축복을 받게 하였다.


 하나님과 영감을 함께하는 이삭이 모르고 행한 일이라고 볼 수가 없다. 사냥해서 얻은 염소의 별미의 맛은 가축의 염소의 진미와는 비교가 될 수 없도록 맛이 있다. 그래서 이삭이 자주 에서에게 사냥을 하라고 권했던 것이다.


 이를 모를 이가 없고 염소의 털과 에서의 털을 어떻게 분간을 못하며 자기자식의 음성과 숨소리와 냄새를 맡고도 알 수가 있는데 이는 이삭이 에서는 동생에게 가뜩이나 장자 권을 무의식 속에 빼앗긴 분노가 있고 동생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는 것이 저주를 받을 것 같은 입장인데 형제를 놓고 동생을 축복 할 수가 있는가? 만일 형제 앞에서 동생에게 축복 한다면 에서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매우 곤란한 입장이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의한 이삭의 지혜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두 민족을 형성 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몸종 하갈로부터 이스마엘이 태어나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리라고 말씀 하셨다. 


 이 민족이 오늘날 아랍 국가 들이다. 그러나 너의 아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약속의 민족이 된다고 하셨다. 축복 받은 야곱은 간교하기가 그지없다. 야곱을 하란 외삼촌 라반에게 보내어 2십여 년간 연단을 시키셨다. 거기서 야곱은 고난의 시기를 보내면서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걸어온 야곱을 하나님께서 크게 쓰셨다.


 외삼촌 라반의 두 딸과 두 딸의 몸종으로부터 즉 4명의 여자에게서 12지파의 민족이 오늘날의 이스라엘 국가이다. 세상 종말에는 이 두 민족에 의해 온 세상 민족들이 좌우되어 현 세상을 끝나는데 활용 될 것이다. 


 마침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유다 지파에서 주 예수그리스도가 태어나 이 세상에 오시셔서 십자가 상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 하신 후 승천 하셨으나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구세주로 다시 세상에 재림 하셔서 새 하늘 새 땅의 영원한 하늘나라를 세우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대 역사의 막을 내리시리라. 이는 오직 나만의 환상의 감회임을 분명히 한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 보다 좋으니라.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시119: 71-73).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seungo
leeseungo
77026
21855
2017-01-26
지도자의 사명과 역할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시고 위대 하시기에 그 큰 우주를 만드셨는가? 하나님께서 얼마나 전능 하시기에 그 많은 천지만물을 만드시면서 종류마다 그 하나하나의 창조하신 이유와 목적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창조 시부터 오늘날까지 관리 지배하고 계시는가?


 창조물마다 재능과 기능을 주셨다. 인간에게는 재능을, 기타 창조물에게는 기능을 주시고는 온 만물이 재능과 기능이 연합한 유기적인 조직체를 만드시고 우주만물의 지도자가 되셨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인간만을 자기 형상대로 만드시고 자신의 영을 호흡으로 불어 넣으시어 영원히 함께 하시면서 인간으로부터 경배와 찬양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반면 인간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셨다. 특별히 인간에게만 부여하신 각자의 재능을 통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니라”(롬8: 28). 하나님께서는 최초인간 아담과 배필자 하와를 만드시고 최초 가정을 형성하게 하시고 아담을 최초 인간의 지도자로 세우셨다. 여기서 배필이란 서로 협력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써 지도자의 사명과 역할을 다 하지 못하여 가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와해됨으로써 에덴동산에서 세상으로 쫓겨났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 중 인간이 제일 사악한 것을 알고 계시지만 그래도 제일 사랑하셔서 이 사악한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살이 찢기며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신 십자가 사건은 창세전부터 계획 하시고 실천에 옮기신 것이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영과 함께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사람들은 육신이 되어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고 말씀 하셨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 사악해져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그들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기만 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 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까지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도 그리 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 함이라 하시니라”(창6- 6-7)라고 성경은 언급하고 있다. 


 마침내 노아의 가족을 제외하고 홍수로 모든 피조물들을 쓸어 버리셨다. 그 후 노아의 후손들이 번성하여 족속을 이루어 땅의 각 백성들로 나뉘어 족장의 지도자를 세워 살게 되었다. 그럼에도 족장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도전하기 위한 바벨탑 사건으로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알아듣지도 못하게 하시고는 온 지면에 흩어져 살게 하셨다. 온 인류를 세상에 흩으신 하나님께서는 우상족속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아브람을 새 지도자로 세우시기 위해 고향 하란 에서 가나안 땅으로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축복하셔서 후손들이 번성하여 그 뿌리에서 유대민족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그 후 400년간 애굽에서 노예로 종살이 하게 만드시고 이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셨다.


 출애굽 과정에서 이적과 기적을 보이시며 특히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인간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심으로써 인간들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심판자이시며 구원자이심을 온 세상 만민에게 알리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예증이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통치하는 지도자로써 하나님의 권위는 의로우시며 공평하고 거짓이 없으신 분이시다.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지도자로써의 권위와 사명의 목적과 역할을 비교해 보면 하나님은 자기를 희생 하시면서까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영적 세상에 사명의 목적이 있으나 인간의 지도자들은 하나님과 같은 의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세상에서 사명의 목적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역할을 보면 세상의 모든 지도자들을 세우시되 악인이나 선인이나 위선자나 죄인이나 사탄까지도 불문하고 구별없이 지도자를 세우셔서 지배 하시며 통치하고 계시다. 예로 사탄마귀로 하여금 인간에게 죄를 짓게 하고 그로 인해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셔서 인간을 구원하게 하셨다. 완악한 바로 왕을 강퍅하게 하시고 이적과 기적을 통한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보여 주시면서 유대민족을 구원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의 지도자를 하나님이 세워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든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른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른 자들은 심판을 자초 하리라”(롬13: 1-2)라고 까지 언급 하였다.


 이를 살펴보면 좋은 지도자라면 순종하지 않을 아무런 이유가 없으나 그러나 세상에 가득 차있는 잘못된 권위의 지도자들 즉 권위주의자, 위선자, 독재자, 불의한 지도자들에게도 순종하라는 것은 역설적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가 선하든 악하든 불문하고 지도자의 권위와 질서가 무너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상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의 권위, 아버지의 권위, 선생의 권위, 정치인의 권위, 종교지도자의 권위가 못 마땅해서 거부한다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일국의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국가의 지도자가 없어 통제가 되지 않는다면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대통령의 잘못이 있으면 법에 따라 차기 대통령이 탄생할 때까지 기다린 후에 처벌하면 되는 것이다. 영적 세계에서도 동일하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 권위와 성경에 대한 절대 권위가 무너지면 우리의 신앙은 송두리째 무너진다. 


 자연과학의 세계를 보면 은하계와 우주계와 태양계가 자연의 질서와 원리가 없다면 언제 어느 때 위성이 충돌할지 모른다. 그러나 창조 이래로 한 번도 우주계는 사고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통치의 질서 때문이다. 최종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세계와 우주를 다스리시는 지도자이시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을 창조 하시고 지배 하시는 전지전능 하시고 무소 부재하신 공의로운 분이시다.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교육과 훈련 및 책망으로 인도 하시면서 자비와 긍휼로 오래 참으시며 인도하고 계시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인간들에게는 죄와 지옥과 형벌과 심판으로 통치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신 공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지만 반면 불의에는 매우 무서운 분이시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 하시고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항상 모든 지도자를 세우시고 통치하고 계심을 알 수가 있다.


 첫 인간 아담으로 육체적 생명인 산 영의 지도자로 세우시고 마지막 예수그리스도(마지막 아담)로 생명을 주는 영의 지도자로 세우셨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의 순종 여부에 따라 죄로 인한 죽음으로 끝나느냐 아니면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아 영생하느냐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의 진리를 발견 할 수가 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10: 28).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더보기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