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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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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후의 한-중-일 정치 경제 예측(2)
yslee

 

 2009년 중국을 방문했던 저의 여행기를 소개해 봅니다. 저는 중국을 이곳저곳 7번 갔었는데 그 중에도 연길에 2번을 방문했고, 두 번째는 제가 제정 운영하고 있는 민초해외문학상 2회 수상자가 연길의 조룡남 시인이었기에 시상식 차 방문했습니다. 


 이번 길에는 백두산에 올랐고 두만강 기슭을 따라 백두산에 오르며 <백두산에 올라>라는 시제로 다음과 같은 시도 한편 상재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사량했고 그리웠고 보고 싶었던 너 였던가/다아스포라의 눈물이 천지연 폭포수로 떨어지고/7천만 한민족의 통한/자작나무 사이 사이/숨어 울고 있는 바람소리로/남북을 오고 가누나/보아라/너와 나의 헤어져 있슴은/억새풀들의 흔들림으로/서녘 하늘에서 해 돋아 날을 기다리며/환희 속에 울고 있는 미소 일진데/억겁의 많은 별들 어디에서 반짝이리/산아/산아/백두산아/내 불타는 심장/여기에 두고 마른 풀잎 되어 나는 간다/사랑과 기쁨/희망과 절망을 감추고/민족의 업보/신 앞에 두 무릎 꿇고 앉아/통일 통일을 달라며 목놓아 울어본다//


 백두산 관광을 마치고 도문이란 곳에서 차를 한잔 나누면서 북한 땅과 도문을 연결하는, 차 두 대가 겨우 교차할 수 있는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가 1950년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밤을 이용, 북한으로 잠입하는 중요 도로의 역할을 했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도문 다리를 지나면 북한땅인데 산이 너무 경사져 있어 당시 중공군이 잠입하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군이 폭격을 할 수 없었다는 안타까운 내용도 알았습니다.


 귀갓길에는 연길 현지 한국인 유 변호사라는 분이 우리 일행을 평양 장수관이라는 북한이 경영하는 식당에 초대해 정갈한 북한음식 맛을 보았습니다. 7층 건물을 전부 사용하고 있는 장수관은 손님은 없는듯 썰렁했고, 우리 일행이 6층 전체를 차지하고 북한술과 요리를 즐겼습니다.


 한 테이블에 4명이 앉고 북한 여종업원 4명이 한사람 한사람을 친절히 봉사해주었습니다. 소위 손님을 대접하는 기쁨조라는 브라스 밴드 5인조가 흥을 돋워 주었으며 노래방시설이 있어 눈물 젖은 두만강, 울고 넘는 박달재, 찔레꽃 등 남한 노래방에서 흔히 부르는 노래도 있었지만 대부분 북한식 노래로 혁명피 등의 가사가 섬뜩하게 들렸습니다. 


 주연을 마치고 나오니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환송하는 북한 종업원의 아름다움과 친절에 저는 우리를 주빈으로 모시는 J회장에게 우리식 봉사료를 주고 싶다하니 한사코 말렸습니다. 이유인 즉, 팁을 주어도 그 봉사료는 다 빼앗기고 또한 불순하게 생각되면 그 여종업원이 곤욕을 치른다고 해서 쓸쓸히 돌아서야 했습니다. 하지만 20세 전후의 봉사원 눈에서 글썽이던 눈물방울을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답니다. 같은 민족이 어이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상념으로 그날 저녁은 통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제가 젊어서 정치 철학을 공부한다면 아니 세계에서 훌륭한 정치철학자가 나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와 유교사상을 합한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 구축된다면 우리 인류의 삶이 좀더 윤택하리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이제 프리드먼 교수의 100년 후의 중국의 정치 경제를 예측한 논문을 요약해 봅니다. 한마디 첨언한다면 이번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은 용정에 들러 용두레 우물가에서 목이 터져라 선구자 노래를 불렀던 기억, 윤동주님의 생가를 방문하고 민족 혼을 되새겼다는 것입니다.


 2000년대 중반, 신흥강국으로 부상해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심지어 G2로 불리게 된 중국의 앞날을 프리드먼 박사는 이렇게 예견했습니다.


 “중국의 미래는 이전처럼 부상이 아닌 붕괴를 생각해야 한다. 중국은 최근 잘해 왔지만 동시에 많은 문제를 떠안게 됐다. 핵심은 가난이다. 6억 명이 가구당 하루 3달러 미만의 벌이로 산다. 4억4,000만 명은 6달러 미만으로 산다. 13억명 중 10억 명 이상이 아프리카처럼 가난 속에서 살고있는 것이다. 물론 6,000만 명의 다른 중국이 있다. 연간 2만 달러를 버는, 하지만 이것은 중국의 5% 미만이다. 진정한 중국이 아니다. 


 중국은 ‘내부경제(internal economy)’가 없는 나라다. 유럽과 미국이 제품을 사주지 않으면 존립하지 못한다. 그래서 중국은 인질이나 마찬가지다. 계층 사이에는 상당한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을 때는 이 문제를 다루기 쉽다. 그러나 더 이상 그렇게는 못한다. 임금이 전처럼 싸지 않기 때문에 수익성을 받쳐주지도 못한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하려고 하지만 미국, 독일, 일본, 한국과 같은 쟁쟁한 나라가 버티고 있다.


 지금 중국의 위치는 1989년의 일본과 같다. 일본은 눈부신 성장 뒤에서 금융시스템이 붕괴하고 있었다. 지금 중국처럼 일본은 외국 자산을 사들였다. 중국의 성장 사이클이 막바지에 달했다는 신호다. 이럴 때 국가마다 제각기 다른 해법을 찾는다. 일본은 성장률을 낮췄다. 그러나 중국은 실업을 인내할 여력이 없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동한 농민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사회를 불안정하게 한다. 이들의 원망을 가라앉히기 위해 중국은 6,000만 명에게 세금을 거둬 분배해야 할 것이다. 거둬들인 돈으로 군대의 충성은 유지할 수 있겠지만 중국의 해법은 국민들을 억압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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