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 02월22일 08:18
캘거리 02월22일 06:18
밴쿠버 02월22일 05:18
토론토 02월22일 08:18
서울 02월22일 22:18
지역별 Click
아이디:
비밀번호: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확인
yslee
이유식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www.budongsancanada.com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10 전체: 129,175 )
100년 후의 한-중-일 정치 경제 예측(2) & (3)
yslee

 

 2009년 중국을 방문했던 저의 여행기를 소개해 봅니다. 저는 중국을 이곳저곳 7번 갔었는데 그 중에도 연길에 2번을 방문했고, 두 번째는 제가 제정 운영하고 있는 민초해외문학상 2회 수상자가 연길의 조룡남 시인이었기에 시상식 차 방문했습니다. 


 이번 길에는 백두산에 올랐고 두만강 기슭을 따라 백두산에 오르며 <백두산에 올라>라는 시제로 다음과 같은 시도 한편 상재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사량했고 그리웠고 보고 싶었던 너 였던가/다아스포라의 눈물이 천지연 폭포수로 떨어지고/7천만 한민족의 통한/자작나무 사이 사이/숨어 울고 있는 바람소리로/남북을 오고 가누나/보아라/너와 나의 헤어져 있슴은/억새풀들의 흔들림으로/서녘 하늘에서 해 돋아 날을 기다리며/환희 속에 울고 있는 미소 일진데/억겁의 많은 별들 어디에서 반짝이리/산아/산아/백두산아/내 불타는 심장/여기에 두고 마른 풀잎 되어 나는 간다/사랑과 기쁨/희망과 절망을 감추고/민족의 업보/신 앞에 두 무릎 꿇고 앉아/통일 통일을 달라며 목놓아 울어본다//


 백두산 관광을 마치고 도문이란 곳에서 차를 한잔 나누면서 북한 땅과 도문을 연결하는, 차 두 대가 겨우 교차할 수 있는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가 1950년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밤을 이용, 북한으로 잠입하는 중요 도로의 역할을 했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도문 다리를 지나면 북한땅인데 산이 너무 경사져 있어 당시 중공군이 잠입하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군이 폭격을 할 수 없었다는 안타까운 내용도 알았습니다.


 귀갓길에는 연길 현지 한국인 유 변호사라는 분이 우리 일행을 평양 장수관이라는 북한이 경영하는 식당에 초대해 정갈한 북한음식 맛을 보았습니다. 7층 건물을 전부 사용하고 있는 장수관은 손님은 없는듯 썰렁했고, 우리 일행이 6층 전체를 차지하고 북한술과 요리를 즐겼습니다.


 한 테이블에 4명이 앉고 북한 여종업원 4명이 한사람 한사람을 친절히 봉사해주었습니다. 소위 손님을 대접하는 기쁨조라는 브라스 밴드 5인조가 흥을 돋워 주었으며 노래방시설이 있어 눈물 젖은 두만강, 울고 넘는 박달재, 찔레꽃 등 남한 노래방에서 흔히 부르는 노래도 있었지만 대부분 북한식 노래로 혁명피 등의 가사가 섬뜩하게 들렸습니다. 


 주연을 마치고 나오니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환송하는 북한 종업원의 아름다움과 친절에 저는 우리를 주빈으로 모시는 J회장에게 우리식 봉사료를 주고 싶다하니 한사코 말렸습니다. 이유인 즉, 팁을 주어도 그 봉사료는 다 빼앗기고 또한 불순하게 생각되면 그 여종업원이 곤욕을 치른다고 해서 쓸쓸히 돌아서야 했습니다. 하지만 20세 전후의 봉사원 눈에서 글썽이던 눈물방울을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답니다. 같은 민족이 어이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상념으로 그날 저녁은 통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제가 젊어서 정치 철학을 공부한다면 아니 세계에서 훌륭한 정치철학자가 나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와 유교사상을 합한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 구축된다면 우리 인류의 삶이 좀더 윤택하리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이제 프리드먼 교수의 100년 후의 중국의 정치 경제를 예측한 논문을 요약해 봅니다. 한마디 첨언한다면 이번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은 용정에 들러 용두레 우물가에서 목이 터져라 선구자 노래를 불렀던 기억, 윤동주님의 생가를 방문하고 민족 혼을 되새겼다는 것입니다.


 2000년대 중반, 신흥강국으로 부상해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심지어 G2로 불리게 된 중국의 앞날을 프리드먼 박사는 이렇게 예견했습니다.


 “중국의 미래는 이전처럼 부상이 아닌 붕괴를 생각해야 한다. 중국은 최근 잘해 왔지만 동시에 많은 문제를 떠안게 됐다. 핵심은 가난이다. 6억 명이 가구당 하루 3달러 미만의 벌이로 산다. 4억4,000만 명은 6달러 미만으로 산다. 13억명 중 10억 명 이상이 아프리카처럼 가난 속에서 살고있는 것이다. 물론 6,000만 명의 다른 중국이 있다. 연간 2만 달러를 버는, 하지만 이것은 중국의 5% 미만이다. 진정한 중국이 아니다. 


 중국은 ‘내부경제(internal economy)’가 없는 나라다. 유럽과 미국이 제품을 사주지 않으면 존립하지 못한다. 그래서 중국은 인질이나 마찬가지다. 계층 사이에는 상당한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을 때는 이 문제를 다루기 쉽다. 그러나 더 이상 그렇게는 못한다. 임금이 전처럼 싸지 않기 때문에 수익성을 받쳐주지도 못한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하려고 하지만 미국, 독일, 일본, 한국과 같은 쟁쟁한 나라가 버티고 있다.


 지금 중국의 위치는 1989년의 일본과 같다. 일본은 눈부신 성장 뒤에서 금융시스템이 붕괴하고 있었다. 지금 중국처럼 일본은 외국 자산을 사들였다. 중국의 성장 사이클이 막바지에 달했다는 신호다. 이럴 때 국가마다 제각기 다른 해법을 찾는다. 일본은 성장률을 낮췄다. 그러나 중국은 실업을 인내할 여력이 없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동한 농민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사회를 불안정하게 한다. 이들의 원망을 가라앉히기 위해 중국은 6,000만 명에게 세금을 거둬 분배해야 할 것이다. 거둬들인 돈으로 군대의 충성은 유지할 수 있겠지만 중국의 해법은 국민들을 억압하는 것뿐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100년 후의 한-중-일 정치 경제 예측(3)

 

 1987년 10월 말경 일본 동경 신죽구 미야꼬 호텔에 세계 한민족대표자 700여명이 모였습니다. 이 모임을 창립코자 애를 태웠던 일본 거류민단 단장 박병헌씨, 미주 총연합회 회장 조도식씨, 그리고 제5대 캐나다 한인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던 저는 처음 워커힐 쉐라톤 호텔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 후 초여름 서울 소공동 롯데 호텔에서 두 번째 모임을 가졌습니다. 모임의 목적은 사방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700만 동포들의 한 울타리를 만들어 해외에서 조직적인 한 목소리로 동포들의 상부상조와 조국에 대하여는 정치 경제 문화의 현실과 통일을 달성하는데 일조한다는 꿈이었습니다. 


 창립을 하는 모임이라 세계 각 나라에 흩어져 있는 동포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난제 중에 난제였음을 알면서 우리는 꾸준히 세계 각국 동포들의 현실 파악을 위하여 온갖 노력을 했으며,  특히 박병헌 일본 거류민단장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으로 그해 10월 드디어 첫 모임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캐나다 대표단은 총연 회장 이유식(캘거리)을 비롯, 동부 오타와 이태은 부회장, 중부 위니펙 김봉환 부회장, 서부 리자이나 한광수 부회장, 이사장 박동렬(몬트리얼), 부이사장 김원겸(위니펙), 사무총장 한성택, 전 7대 총연회장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일본을 방문하는 저는 일본이란 나라가 우리를 침략한 나라로 각인하고 있었기에 배타적인 심정과 적개심으로 쌓여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첫날밤을 피로에 지쳐 자고 일어나니 방안에는 김일성 및 북한 찬양 전단지가 있어 소름이 끼치도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조찬을 위해 식당에 내려갔더니 해외 각국에서 온 대표들 방 전부에 이런 김일성 찬양 전단지가 살포되었음을 알았고, 일본의 조총련 소행이라는 것을 민단으로부터 설명듣고 일본에서는 민단과 조총련의 대립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튿날 창립총회에서 박병헌 민단장을 회장으로 조도식 미주총연회장과 같이 부회장으로 선임이 되었습니다. 이로서 700만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해외 한민족대표자회 협의회가 창립되었습니다. 대표자협의회에서 줄기차게 모국 정부에 건의한 사항은 교민청을 신설해 달라고 강력히 건의를 했으며 그 결과가 1992년경에 우리가 건의한 교민청 대신 재외동포재단이 생기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87년 창립한 한민족대표자협의회는 그 후 독일 베를린, 미국 워싱턴, 프랑스 파리, 미국 하와이, 캐나다 밴쿠버 등에서 상임운영위원회를 개최하였으며, 그 후 동포재단에 우리의 행사를 넘기게 되었고 재단은 세계한인회장회의라는 명칭하에 지금까지 동포재단 주최의 행사를 매년 서울에서 개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한민족 대표자 협의회의 역사를 상세히 설명함은 우리 700만 동포의 역사를 후손들이 정확히 알아두어야 되겠다는 일념도 있습니다. 한민족 협의회를 창립한 박병헌 회장도 고인이 되었고, 미주 총연의 조도식 전 회장은 종교에 심취 지금은 신앙인이 되어 있습니다. 부족한 면이 있지만 한민족 대표자 협의회가 창립된 내면의 과정을 설명할 사람은 저 하나 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캐나다한인동포님들이 알아야 할 것은 대한항공의 캐나다 취항문제 입니다. 캐나다에 대한항공 취항이 그저 이루어진 것으로 많은 동포들이 인식하고 있겠지만 그 배후에는 총연합에서 취항을 위하여 일조의 노력을 경주했다는 것을 밝히고 싶습니다.


 즉 대한항공 취항을 위하여 그때 주 오타와 한국대사관의 허방빈 참사관의 노고에 감사를 이 자리를 통해 밝혀 둡니다. 첨언을 한다면 일본에서 회의를 마친 우리 회장단과 이사장단은 오타와 대사관의 허 참사관과 긴밀한 협의를 하며 대한항공 취항을 위하여 돈 메리진스키 연방교통장관을 만나 우리의 뜻을 간곡히 전했으며, 또한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을 예방해 대한항공 취항이 캐나다 한인동포들이 살 길이라고 간청했습니다. 


 한국정부와 오타와 연방정부의 합의에 의한 결정이었으리라는 생각도 하지만 우리 총연합회도 대한항공 취항을 위하여 물심으로 노력을 했음을 밝혀둡니다. 


 그 후 1988년 대한항공이 캐나다에 취항하면서 조중훈 회장께서는 그 때 총연합회 사무총장이던 한성택씨를 통해 저에게 감사장을 보내왔던 점 등을 한인동포들에게 인지시키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늘은 프리드먼 박사의 일본에 관한 정치경제 예측에 관한 이야기이니 총연과 일본 방문 등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생략하며 지난 11월 조국을 방문했을 때 제가 존경하는 한국 문단의 거목이신 K교수님과의 대화 한 토막을 소개코자 합니다.


 K교수님은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을 역임하셨고, 진주가 나은 3대 천재로서 k대학 문과대학장을 하신 분입니다. K교수님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장점은 수없이 많은데 장점이 아닌 단점 3가지만 지적을 하라 했습니다. 저는 장점은 생각해 보았지만 단점은 별로 생각을 한 적이 없다 했더니 교수님은 저에게 명쾌한 답을 주셨습니다. 


 첫째 단점은 우리 남한사람들은 얼마나 잘먹고 잘살고 잘입고 자유를 구가하면서도 권리는 주장하나 의무 수행은 하지 않는 민족이라는 점, 둘째는 북한정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못살며 배고픔과 동시에 자유라는 것이 말살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모른다는 것, 셋째 일본을 우리 민족은 왜놈들이라 비하하지만 일본사람들이 얼마나 높은 문화민족이며 법을 잘 지키고 정직하며 애국애족 하는지 우리 국민들은 모른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시인의 생각은 어떠냐고 물으셨습니다. 


 독자 여러분 우리 한번 생각을 해보자는 제언을 하며 이번 글이 일본의 정치 경제에 관한 프리드먼 교수의 예측이기에 여기에 한번 써보았음으로 양찰하시기를 바랍니다. 민초의 잡설산책은 한 중 일의 프리드먼 교수의 논문 요약을 이번 회로 끝을 맺으며 그 간 이 글이 발표되면서 캐나다 동포님들과 모국의 인터넷 카페 등에서 즐감하며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경제대국 일본을 프리드먼 박사는 일본의 무서운 단결력이 아시아 최강으로 복귀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가 일본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경제 볼륨에서 중국과 동등하다. 일본은 국방력이 강하고 빈곤층이 적다.

일본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고 해결할 능력이 있다. 일본은 단일국이다. 최근 쓰나미 대지진에 나타났듯 일본은 놀라운 단결력과 유대감을 갖고 있다. 일본에는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강한 비공식적 사회통제가 존재하는 고도의 응집사회다. 경제가 크고, 교육 수준이 높고, 정부를 따르는 국민이 있는 나라가 왜 쇠퇴하겠는가?


 외부에선 저성장, 고령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하면서 일본 경제가 정체된 20년을 ‘잃어버린 20년’ 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일본의 목표에 대한 오해다. 일본적 가치에 서양적 관점을 적용한 것이다. 일본은 기업의 이윤을 희생하면서 사회적 핵심가치인 고용을 유지했다. 20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가치를 보전한 것이다.


 일본도 더 이상 빚을 쌓아가며 가치를 보호할 수 없다. 일본 역시 경제와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 하지만 일본엔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이 있다. 중국처럼 빈곤 속에서 살고 있는 10억 인구가 없다는 것이다. 사회불안 없이 긴축을 견딜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대지진 수습 과정에서 리더십의 문제가 노출됐는데, 2차 대전 때에 일본의 리더들은 ‘어떤 전략으로든 반드시 승리하겠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리더가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기간에도 혁명을 일으키지 않은 유일한 국민이다. 리더십이 형성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나라다.


 하지만 프리드먼 박사는 일본의 위험성도 지적했다. 일본의 근본적인 약점은 천연자원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은 해상교통에 접근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호루무스 해협, 말래카 해협, 남중국해 모두가 일본의 생명선이다. 그래서 일본은 늘 걱정을 안고 있다.


 이 생명선에서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다시 공격적으로 변할 여지가 있다. 일본은 힘을 회복하면 필연적으로 해군력을 증강시킬 것이다. 공격적인 일본에 대처할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 3회에 걸쳐 프리드먼 교수의 세계정세 예측을 예의 주시함에 큰 뜻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즉 조국의 외환위기를 비롯한 세계정세를 정확하게 예측한 바 있는 미국 코넬대학 조지 프리드먼 교수는 코소보 전쟁과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정확하게 예견하여 ‘21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라 불리니 그의 저서 《100년 후, Next 100 years》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주: 노스트라다무스(중세의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예언가)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CA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