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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때가 있었지…
wnna

 

 1972년 10월 어느날 온 나라가 숨을 죽인 날이 있었다. 서슬이 퍼렇던 박정희정권은 3선개헌으로 권력을 계속 이어오던 중 그 해 10월 어느날 드디어 영구집권이나 다름없는 희한한 헌법을 내놓았다. 그 이름도 생소한 ‘10월유신’이었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공표된 유신헌법에 민주주의의 흔적은 많지 않았다. 이후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은 점점 더 높아갔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에 이어 조선일보 등 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고 나섰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독자들이 지면에서 느낄 만큼 자유언론을 실천한 언론은 동아일보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다. 다른 언론사의 기자들은 동아일보 기자들을 부러워했다.


 정부는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가해 광고게재를 막는 방법으로 언론사에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1973년 3월 조선일보의 광고주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조선일보의 경영진은 즉각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납작 엎드렸다. 이 후 정부정책에 대한 적극협조를 약속하고 위기를 모면했다. 국민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조선이 그렇게 태도를 바꾸자 동아일보의 정론보도는 더욱 두드러졌다. 그 암울했던 시기에 “동아일보 보는 맛에 산다”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그 신문의 인기는 날로 높아갔다. 당시 동아일보의 광고효과는 매우 좋아서 광고를 실으려면 현금을 주고도 며칠을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1974년 12월 16일 몇 몇 광고주가 자기 회사 광고 동판을 회수해 갔다. 이유는 묻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어서 다른 광고주들이 하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열흘만에 광고주의 98%가 그렇게 사라지자 12월 26일자 동아일보의 광고지면은 백지인 채로 나갔다.


 역사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신문 하단의 백지를 본 국민들의 얼굴은 백지처럼 하얗게 변했다. 그 동안 자매지의 책광고와 기존 광고주들의 광고를 앞당겨 싣는 방법으로 광고지면이 채워져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국민들은 경악했다. 경악은 이내 분노로 변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원로 언론인 홍종인이 12월 28일자 신문에 “언론자유와 기업의 자유”라는 제목의 의견광고를 게재했다. 이를 시작으로 각종 단체와 개인들의 격려광고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온갖 호소문, 격려문, 선언문이 실리기 시작했다. 어느 대학교수는 “나는 조용히 미쳐가고 있다”고 광고했고, 문인들은 전면광고 하나를 살 수도 없는 자신들의 주머니 사정을 안타까워하는 광고를 실었다. 


 “동아일보 배달원임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광고를 내기 위해 고철을 팔아 푼푼이 모은 돈을 기꺼이 내놓는 신문보급소 배달원들도 있었고, 배운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법대동기생들도 나왔다. 격무에 시달린 몸이 휴식을 취해야 할 황금같은 휴일에 신문팔이를 해서 모은 돈으로 격려광고를 내는 시내버스 안내양들도 있었고, “술 한잔 덜 먹고 여기에 내 마음을 담는다”는 운전기사도 있었다.


 어느 복덕방 주인은 “이겨라 동아”를 외쳤고, “왜 정부는 신문을 못살게 구나요?”라고 묻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서 운전사에게 동아일보에 격려광고 내러 간다고 했더니 운전사가 한사코 요금을 안 받더라며 광고를 접수시키다가 울음을 터뜨린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시민도 있었다.


 이렇게 쏟아져 들어온 광고들은 너무나 눈물겹고 감동적인 말의 향연이었다. 그 전까지 기사만 읽고 광고에는 눈길을 주지 않던 사람들이 기사보다 오히려 광고 읽는 재미에 빠질 정도였다. 


 박정희정권의 핵심인맥으로 일컬어지는 TK, 그 중에서도 핵심으로 알려진 한 고등학교의 동창회에서 시리즈로 실었던 광고를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첫 날엔 “와 이카노?”, 둘째 날엔 “이칼래?”, 셋째 날엔 “이 칼라 카나?”하는 식으로 이어진 그 광고들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이유는 우선 광고가 짧은데다 그 사투리에서 오는 투박하고 강렬한 울림 탓도 있겠지만, 그 광고주체가 박정권의 핵심인맥을 이루는 고등학교동창회라는 사실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다가 문득 기억 속에서 까마득히 사라졌던 수십년 전의 그 일들이 갑자기 떠오르는 이유는 뭔지? 비록 철은 없었지만 젊은 피가 끓던 그 시절의 그 일들을 이렇게 다시 떠올리며 적어나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에 이슬이 맺히는 이유는 뭔지? 그 때는, 그렇게 암울했던 그 때도 그런 언론이 있었고, 그런 국민들이 있었더랬는데… 그 후 동아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 후 결국 오래 버텨내지 못하고, 130여명의 기자를 무더기로 해고하면서 권력에 굴복하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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