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 01월22일 07:10
캘거리 01월22일 05:10
밴쿠버 01월22일 04:10
토론토 01월22일 07:10
서울 01월22일 21:10
지역별 Click
아이디:
비밀번호: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확인
Hwangkyuho
고려대 사학과(대우증권, 씨티은행 근무/ 2009년 캐나다 이민)
2014년 문협 신춘문예(소설) 가작/ bestezho@gmail.com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9 전체: 4,587 )
싸이코패스 이거나 혹은 쏘시오패스
Hwangkyuho

 

 “남이 들으면 오히려 이해 안 가는 일이지만, 그건 사체를 훼손하는 와중에 아들 녀석에게 전화가 온 순간이었어요. 전화벨 소리에 놀란 게 아니라, 당황해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아들이 ‘감기 아직 안 나았어. 아빠?’ 하며 물어보는 말이 ‘아빠, 난 다 알고 있어. 그러지 마’ 그러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했어요."


 20명을 살해한 살인마 유영철이 한 말이다. 과연 그는 자신의 엽기적인 범죄에 대한 죄책감을 지니고 있을까? 시인 권성훈 씨는 '유영철 글쓰기에 나타난 사이코패스 성격 연구'라는 글에서 유영철의 살인 행각에서 사이코패스의 전형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권씨가 말한 유영철이 반사회적 성격을 가진 살인마로서 절정을 보여준다는 장면은 이렇다. 유영철이 아들의 전화에 긴장한 나머지 사체 정리도 못 하고 '라면' 대신 '밥'을 해 먹었다는 대목에서 살인마가 일시적으로 죄책감을 느꼈다고 봤지만, ‘밥을 먹는 행위’로 잠시 당황한 상황을 곧바로 모면하는 행태를 보였을 때가 바로 유영철이 싸이코패스의 전형임을 잘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즉, 그 장면은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전환할 수 없는 '공감의 무능력자'라는 사실과 '후회 혹은 죄책감 결여' 등 싸이코패스로서 유영철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살인마는 끝내 자신의 범죄를 미화시키고 참회를 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조슈아 오펜하이머/2012)은 1965년 인도네시아, 쿠데타 당시에 군이 ‘반공’을 명분으로 100만 명이 넘는 공산주의자, 지식인, 중국인들을 비밀리에 살해했던 대학살을 주도한, '판차실라 청년단'이라는 극우세력 암살단의 주범 '안와르 콩고’와 그 동료를 다룬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다. 


 이 영화는 기존 다큐멘터리의 방식과는 정반대로 피해자의 시각에서가 아닌 가해자 입장에서 연출하였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대학살의 리더 안와르 콩고와 그의 친구들은 들뜬 맘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도 하며 자랑스럽게 살인의 재연에 열중한다. 


 영화 초반 장면의 묘사는 이렇다. 한 남자가 어느 건물의 옥상에서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철삿줄로 다른 남자의 목을 감아 조르는 시늉을 하고 있다. "칼이나 낫으로 찌르면 피비린내가 너무 심하게 나서" 철사로 목을 졸라 사람을 신속하게 죽였다며 이를 '효율적인 처리법'이라 부른다고 했다. 모든 재연 과정을 즐기는 듯한 그의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젊은 시절 극장 앞에서 암표를 팔던 청년 안와르 콩고는 혼자서 1,000명 넘게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집에서는 손자들에게 자상한 할아버지로 살아가는 안와르 콩고. 한나 아렌트가 주장했던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한 예 같기도 한데, 너무 천연덕스럽게 일상 속에 사는 50년 전 학살자 그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촬영이 진행되면서 학살의 기억은 그들에게 낯선 공포와 악몽에 시달리게 한다. 그리고 영화는 예기치 못한 반전을 맞는다. 촬영 초기 기고만장하여 춤까지 추며 천연덕스럽게 웃고 떠들며 영화 씬들을 찍다가, 후반으로 가면서 점점 말수가 적어지고 웃음기가 사라지고 굳은 얼굴이 되어간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다시 옥상으로 올라간 안와르 콩고. 


 그는 자신의 '업적'이자 인도네시아의 찬란한 '역사'를 표현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피해자 역할까지 맡는다. 촬영 후 안와르 콩고는 자신이 목을 졸리는 상황을 연기한 모습을 모니터로 보고는 “정말 저 때 많은 감정을 느꼈다”면서 “내가 죽였던 사람들도 이런 걸 비슷하게 느꼈을 것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눈물을 흘린다. 


 이때 감독이 놓치지 않고 “그때 고문당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죽을 걸 알고 있었으니 훨씬 더 무서웠겠죠?”라고 그를 채근한다. 그때 비로소 안와르 콩고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 후 가장 처음에 자신이 감독에게 사람을 죽이는 걸 재연했던 옥상에서 다시 그것을 재연하다가, 끝내 구토를 한다. 그러다가도 금세 입을 닦고, 비장한 표정으로 "(당시에) 양심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합리화를 시도하는 그의 모습.


 “더 이상은 못하겠어.” “내가 정말 죄를 지은 건가요?” 과연 그는 진정으로 공감하고 뉘우치고 속죄한 것일까?


 사이코패스는 전문측 전두피질과 측두극의 회백질이 정상인보다 적어서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죄책감이나 수치심 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공감 결여’, 인간이 지닌 가장 뛰어난 사회능력은 공감능력이다. 피상적으로 남의 불행에 대해 '불쌍하다.' ‘가슴이 아프다.’ '유감이다.' '송구하다.' 정도의 말로 끝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현대 민주정치의 비극은 국민과 정치인 간의 불통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인은 항상 입버릇처럼 소통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소통을 내세운 정권이 거의 예외 없이 불통의 늪에 빠지고 마는 게 정치의 현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불통 정치가 소위 사이코패스 정치로 옮겨갈 치명적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로 낙인찍히는 것은 정치인과 정권에 대한 최고의 모욕이 아닐까 싶다. 사이코패스 성향의 정치인이 힘을 얻고 위세를 떨치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무섭다.


 정치인과 사이코패스의 유사성에 관한 연구 결과가 있다. 대개 사이코패스 하면 무조건 연쇄살인범을 떠올리는 경향이 많지만,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유형도 많다고 했다. 2009년에 연쇄살인범 사이코패스와 정치인의 특성을 분석한 전미 경찰청장협회 짐 코리 부회장의 논문을 보자. 그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인들이 이런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고 그의 논문에서 주장했다.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사이코패스 정치 지도자 히틀러와 스탈린이 그렇고 세계 각국 독재자 중에 사이코패스가 다수 건재하고 있다. 


 공감 능력이 없는 후안무치 뻔뻔함이 사이코패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한다. 우리는 뇌물을 받아먹고 줄줄이 감옥에 가고 있는 인사들이 혐의를 뻔뻔하게 부인하고 모르쇠와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짓말로 국민을 우롱하는 모습을 헤아릴 수 없이 지켜보고 있다. 


 수 조 원의 손실을 내고도 해외로 이민 가서 잘살고 있는 자, 천문학적인 돈을 횡령하거나 무모한 투자로 기업•은행을 망하게 한 자, 사익을 위해 공익을 저버리는 자, 자국민 수 백여 명이 바다에 빠져 죽어 가는데 무슨 까닭인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 채 제시간에 맞춰 두끼의 식사를 챙겨 먹으면서 머리를 다듬는데 90분(혹은 20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던 자, 그리고 진심어린 위로도 할 줄 모르는 자.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는 이미 사이코패스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정치인에 대한 누적된 불신으로 인해 이제는 그들이 제발 사이코패스가 아니기를 바라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슬프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싸이코패스나 쏘시오패스는 정신질환이다. 신속한 대처와 치료가 최우선이다.

 

(본 칼럼은 본보 편집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CA
ON